‘사냥의 시간’ 박해수 “냉철하지만 용암 들끓는 한, 재밌는 경험” [인터뷰]
입력 2020. 05.01. 17:22:56
[더셀럽 김지영 기자] 베일에 가려져 있는 인물, 전사가 설명되지 않는 ‘사냥의 시간’ 속 한에게 중압감이 느껴진다. 상대의 기를 누르기 위해 화를 내지도,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지도 않지만, 존재 자체로서 공포감을 자아낸다. 배우 박해수는 별다른 설명이 없는 한을 분위기로 많은 것을 표현해냈다.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영화 ‘사냥의 시간’(감독 윤성현)은 희망찬 미래가 없는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디스토피아에서 유토피아로 가기 위해 위험한 작전을 계획한 네 명의 청춘들은 정체불명의 추격자 한에게 쫓긴다. 박해수는 미스터리한 인물 한을 맡았다.

준석(이제훈), 장호(안재홍), 기훈(최우식), 상수(박정민)로 인해 도박장이 털렸다는 이야기를 접한 한은 자신의 집에서 하나씩 준비해간다. 누군가를 살해한 경험이 한 번이 아니라는 듯, 벽에는 전시를 하듯 사람의 귀가 차례대로 걸려있고 한의 설정을 대변하듯 집의 분위기도 어두침침하다.

2시간 내의 분량에서 주인공들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보다 쫀쫀하게 연출한 것이 특징인 ‘사냥의 시간’에서 한의 서사는 대부분이 생략돼 있다. 이 때문에 한과 도박장은 무슨 연관이 있는지, 이전엔 어떤 일을 했기에 백발백중을 하는 명사수인지, “돈 때문에 쫓는 게 아니다”고 하는 한은 무엇 때문에 준석을 벼랑 끝에 모는 것인지 등을 명확하게 알기 어렵다. 그러나 장르의 특성상 쫓고 쫓기는 추격전, 심장을 움켜쥐게 만드는 긴장감으로 극에 더욱 몰입케 한다.

박해수는 아무것도 알 수 없고 베일에 가려져 있는 한의 캐릭터를 살려냈다. 윤성현 감독이 빛의 조절로 극의 분위기를 조성해놨다면 박해수는 한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그는 분노가 차오르지도, 스릴을 넘어서 엔도르핀이 도는지도 모를 만큼 표정에 변화가 없다. 대부분 어두운 장소에서 소리 없이, 무표정으로 등장하는 한이 더욱 무섭게 느껴지는 이유다. 박해주는 시나리오에서도 한의 불분명함과 이유 없음이 끌렸다.

“시나리오에서 한의 캐릭터는 일직선 상으로 달려갔다. 그럼에도 감정 상태, 변화하는 모습들, 죄책감, 희망 여러 가지가 다 들어있던 게 저한테는 흥미로웠다. 한의 캐릭터는 한 마디로 이유가 없고 불분명한 것이 매력적이었다. 지금 전사들이 한의 존재 자체의 이유가 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신기한 대본이었다. 서스펜스가 어떻게 만들어질까 하는 궁금증도 있었고, 제가 좋아하는 네 명의 배우들이 참여하는데 안 할 이유가 없었다. 감독님이 늘 공연을 보러 와주시고 하는 것에 대한 믿음과 신뢰로 출연하게 됐다.”



‘사냥의 시간’ 속 한을 보고 있노라면,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하비에르 바르뎀이 떠오른다. 그처럼 무표정 속에 잔인한 쾌락을 표현하고 그럼에도 어떠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 박해수는 하비에르 바르뎀을 조금씩 연구하면서 한을 쌓아나갔다.

“감독님과 하비에르 바르뎀을 이야기했었다. 하비에르 바르뎀이 갖는 동기와 목적이 한과는 다른 의미가 있다. 장르적인 특성상 좋아하는 영화지만 절대 제가 안톤 시거가 될 수 없지 않나. 저는 한을 하기 위해서 참고만 했을 뿐이다. 베낄 수 있다고 베낄 수도 없지 않냐. 공포물의 구성과 태도를 참고했다.”

영화에서 드러나지 않는 한의 전사는 시나리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 때문에 박해수는 윤성현 감독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감독의 말을 들으면서 한이 어떠한 캐릭터인지 구축해나갔다. 한은 외면으론 냉철함을 유지하되 내면에는 용암처럼 들끓고 있는 인물로 만들어 나갔다.

“대본에서도 전사가 드러나진 않았다. 이 캐릭터의 동기와 의도는 드러나지 않지만 얘기를 하면서 와닿았다. 전쟁 속에 있었던 인물이 고요함 속에서 살아있으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나하고. 감독님이 저한테 요구했던 외형적인 것은 단식을 해서 최대한 외면으로서는 냉철함을 유지하되 내면에서는 용암처럼 들끓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삐뚤어진 마음을 정당하다고 느끼는 한에게 공감하려 노력을 많이 했다. 감독님은 아주 정확한 캐릭터 구축을 하고 계셨다.”

윤성현 감독이 설정해놓은 한은 특수훈련을 오랫동안 받은 전직 특수부대 요원 군인 출신이었다. 해외 특수부대에서 파병돼 전쟁통에서 살아온 인물이다 보니, 사소한 행동들 하나까지도 몸에 익혀져 있으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지침이 몸으로 표현돼야 했다. 박해수는 그러한 한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실제 전직 특수부대 요원과 함께 총기훈련, 자세 상황에 대처하는 태도들을 훈련을 많이 받았다. 총은 계속 안고 있었다. 한은 다른 사람이 봤을 때 인간 같지 않은 모습이기에 공포에 대한 신비로운 존재, 미스터리한 존재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구축했다. 배우로서는 인물에 들어가야 하는 낯섦이 있지만 재밌었다. 전사들을 많이 갖고서 현장에 갔고 몸에 익히고 그러면서 준비했던 기간이었던 것 같다. 심리적으로 이용했던 것도 있고 일기를 쓰면서 칩거하기도 하고 숙소에서 거의 나가지 않았었고 어둠 속에만 있으려고 했다. 현장에서는 머물기만 했지 밝은 곳에는 없었다.”

또한 박해수는 한이 여러 전쟁을 겪으면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을 것이라는 설정을 더했다. 폭격과 총, 비명소리, 피와 어둠 속에서 계속해서 탄약 냄새가 나는 전쟁을 떠나 집에서 고요하게 있을 땐 스스로가 죽어있음을 느낄 것이라 판단했다.

“그렇게 항상 살인이 일상이 됐던 사람에게 일거리가 생기고, 죽여야 하는 인물이 다른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도 살아있음을 느꼈을 것 같다. 내 심장이 뛴다는 것을 느끼고 살아있음을 느낀다는 생각. 맹수가 생각했던 행동과 다른 먹잇감을 찾았을 때 행동이 달라지는 쾌감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리적인 요인에서 그런 부분에서 생각을 많이 하면서 접근했다.”

한은 살기 위해서 발버둥 치는 준석을 보고 희열을 느꼈을까. 삶의 벼랑 끝에 서 있는 준석에게 5분의 시간을 줄 테니 갈 수 있는 한 멀리 도망쳐보라고 여유를 부린다. 준석과 장호, 기훈은 다른 도시까지 전력을 다해 도망을 치지만 이들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한은 다시 이들의 턱끝까지 쫓아오고 다시 보내주기를 반복한다.

“감독님이 준석의 공포에 질린 눈을 보고 느껴보라고 하더라. 나도 내가 갖고 있던 에너지와 준석이 살아야 하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대사는 ‘재밌네’지만, 살아있음을 느꼈을 것 같다. 한에겐 그런 감정이 남달랐을 것이다. 그게 한에겐 시작점이기도 해서 의미 깊었다. 그리고 제훈 씨가 준석을 훌륭하게 연기해줘서 아마 제가 한과 동기화가 됐던 것 같다.”

이는 곧 한의 여유이자 공포심이 극에 달하는 장면이다. 마치 맹수가 사냥감을 손위에 두고 가지고 노는 듯한 한의 행동으로 보는 이들조차 겁에 질리게 만든다. 박해수는 이 장면을 연기할 때 한이 정신질환을 겪고 있는 인물로 보이는 것을 가장 우려했다. 그래서 박해수는 한을 정신질환자로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해 막장 인생을 사는 네 명의 인물과 달리 한이 젠틀한 차림새에 여유가 느껴지는 반말, 존댓말의 어투를 사용했다.

“정신병이 드러나는 캐릭터는 한계가 있다고 느낀다. 사실 심리적으로 들어가면 분명히 문제가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그런 것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인물로서가 아니라 신비로운 존재로 미스터리한 존재로 만들고 싶었던 게 젠틀함이 보였던 것 같다. 친절하고 상냥하고. 그들은 거친 인생을 사는 청년들의 막장 인생임에도 불구하고 한이라는 인물이 더 존재 자체가 극한에 몰려있는 인물이지만 젠틀하고 품격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점에서 존댓말과 함께 조금 더 친절하고 상냥하게 가는 게 맞지 않나 싶었다.”



전사와 서사가 부족한 인물, 캐릭터를 나타낼 수 있는 대사 없이 카리스마와 중압감을 나타내기란 이로 말할 수 없이 어려웠을 터다. 박해수는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어려웠다”고 솔직하게 말하면서도 윤성현 감독을 전적으로 믿고 가면서 오히려 재미를 느꼈다고 말했다.

“네거티브가 있는 역할을 연기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표출되지 않아서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것도 어려웠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온전히 감독님을 믿고 가서 오히려 촬영할 때는 신기하고 재밌었다. 당시엔 제 마음 속에 있었던 것은 ‘저들을 죽일 이유가 있고 심판할 이유가 있다’는 정당성을 찾았던 것 같다. 현장에 가는 게 무서우면서도 즐거운 마음으로 갔었다. 집에서 현장 나올 때는 무서웠지만 현장 들어갈 때는 재밌었다. 그런 부분이 역할로 들어갈 때는 쉽지 않았나 싶다. 그런 정당성을 찾으려고 하는 게 재밌으면서 좋았던 경험이었다.”

흔히 캐릭터에 공감하고 이해를 해야 체화하기 쉽다고들 말한다. 박해수 또한 한의 정당성과 이유를 찾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 지금의 한이 탄생했다. 더 나아가 한과 박해수가 동일화되자 오히려 무서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장르적인 특성상 어둠 또는 공포 존재 자체를 뿜어야 하고, 제 나이 마흔에 할 수 있는 연기로는 한계가 있지 않나. 그래서 정당성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네 명을 죽이는 이유를 찾은 게 ‘나는 살아야 한다’였다. 생존 법칙에서 내가 살아야 상대가 죽는 것이고, 죽지 않으면 내가 죽는 것이니까. 하나의 생각과 품격을 올리기 위해서 재판을 할 수 있는 권리가 나한테 주어졌다고 믿고 들어가려고 생각했다. 체득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지, 체득하니까 신나더라. 무서운 것 같다. 체득이 되는 순간 무서워지는 것. 그런 생각을 심어놓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었고 그러면서 일기도 많이 쓰고 책도 좀 보고 했었다. 메소드 연기를 하거나 캐릭터에 빠져서 그럴 수 있는 능력도 안되지만, 최소한 이 역할을 하지 않으면 안되니까 정당성을 찾으려고 했다. 화면에는 막 다 보이고 이유가 타당하게 보여서도 안되고. 이유가 다 나오면 다르지 않나. 쫓고 쫓기는 자에 대한 내용만 있을 뿐이지. 표출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영화의 제작부터 개봉까지 수일이 걸린 ’사냥의 시간‘은 우여곡절 끝에 넷플릭스로 190여개 국의 관객과 만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와 맞물려 예상보다 늦게 관객을 만나게 된 셈이지만, 동시에 많은 관객을 만나게 된 것은 전화위복임에 틀림이 없다. 박해수 또한 현 상황을 좋게 바라보며 더 발전된 영화 관람 상황을 기대했다.

”이번 영화를 통해 항상, 온전히, 아름답게 끝까지 관객들을 찾아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라는 것을 느꼈다. 넷플릭스를 통해서 더 많은 시청자와 더 많은 관객을 만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개봉을 못 하는 영화들도 많았고 개봉이 늦춰지면서 문제가 되는 영화도 많고 현 시국에, 사태에 혹여 어려운 여러 가지 문제점들도 많은데 다행히 감사하게 시청자들한테 관객들을 만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좋은 영화를 보여주고 싶었던 문제 때문에 늦어지면서 아쉬운 점도 많았는데 그게 어떻게 보면 전화위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190여개 국에 선보인다는 것은 배우로서 열려있는 것으로 많은 관객을 볼 수 있고 관계자들이 볼 수 있는 이득이 있다는 것으로 생각한다. 저는 지금 시기가 조금 변화하고 있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산업 분야나 모든 분야가 조금씩은 변화되고 있는 타이밍인 것 같다. 영화도 그렇고 공연도 그렇다. 한 플랫폼을 따라가지 않고 변화되는 타이밍에 극장 개봉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방향성으로는 긍정적이라는 생각이다. 영화 쪽만이 아닌 많은 부분에서 이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셀럽 김지영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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