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의 시간’ 안재홍 “나와 다른 장호, 쉽지 않았지만 재밌었던 작업” [인터뷰]
입력 2020. 05.06. 17:02:53
[더셀럽 김지영 기자] 배우 안재홍이 달라졌다. 전작들에서 친근한 캐릭터로 입지를 다져왔던 그가 이번 영화 ‘사냥의 시간’에선 180도 다른 캐릭터로 새로운 모습을 선보인다. 영화 속 장호가 성장을 하고 있는 것처럼, 안재홍도 조금씩 성장 중이다.

최근 공개된 영화 ‘사냥의 시간’은 새로운 인생을 위해 위험한 작전을 계획한 네 청춘과 이를 뒤쫓는 정체불명의 추격자, 이들의 숨 막히는 사냥의 시간을 담아낸 추격 스릴러물이다. 안재홍은 친구들에게 의지하며 작전을 처음 제안한 준석(이제훈)을 지지하고 따르는 인물 장호를 맡았다.

영화는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대략적인 2030년 후반을 시대적 배경으로 삼아 국가체제는 완전히 무너지고 도시엔 체계가 없다. 화폐 가치가 폭락하면서 경제 위기를 맞고 조폭과 총, 마약 등이 즐비하다. 암울한 상황으로 인해 국민들은 생산적인 노동보다는 쾌락을 위한 도박, 강도짓으로 생계를 버틴다. 이는 흔히 외국 영화에서 사랑받는 디스토피아 장르로, 국내에선 드물게 관객과 만나왔다. 안재홍은 이런 디스토피아 장르의 ‘사냥의 시간’을 “귀한 작업”이라고 여겼다.

“잘 접하지 못했기 때문에 반갑고 재밌는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외국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디스토피아를 추구하는 시대상과 가상의 배경을 만들어서 세계관을 가진 작품을 접한다는 게 쉽지 않고 그만큼 귀한 작업이라고 생각이 많이 들었다. 너무 재밌게 공간 속에서 흠뻑 빠져서 뛰어 놀았던 것 같다. 30년대 후반을 임의로 설정해서 만들었는데 어느 한 장면도 그냥 촬영할 수 없었다. 로케이션에도 공을 많이 들이셔서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독특한 분위기를 많이 느꼈다. 더 재밌고 신났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안재홍은 ‘사냥의 시간’이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나 이를 전면으로 내세운 SF 장르는 아니라고 밝혔다. 영화 속 배경을 만드는데 디스토피아가 도움이 된 것이지 SF의 맛을 보여주는 영화는 아니라는 것이다. 안재홍의 말처럼 ‘사냥의 시간’ 속 시대적 배경과 암울한 상황은 이로 인한 이야기의 뒷받침으로 작용하고 영화 속으로 더욱 빠져들게 만든다.

“디스토피아는 배경을 만드는데 도움이 됐고 그 속에서 추격스릴러가 오히려 영화의 본질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의 대사에도 나오지만 화폐가치가 무너졌고 은행에서 환전도 못하게 막고 청춘들은 붕괴된 시스템 속에서 헤쳐 갈 길이 없지 않나. 뭐라도 발버둥 쳐야하는 네 청춘이 사설 도박장에서 한 탕을 해서 다른 희망을 펼칠 수 있도록 떠나려고 하는 디스토피아에서 유토피아를 꿈꾸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자욱한 안개가 낀 듯 막막한 상황에서 부모를 여읜 장호에겐 준석, 기훈(최우식)이 인생의 전부다. 이 때문에 준석이 교도소를 다녀오고 위험한 계획을 세워도 갈등하는 기훈을 오히려 설득하고 준석의 의견을 지지한다. 거친 욕설과 기훈과 목소리를 잠깐씩 높일 때가 있지만, 하물며 자신을 두고 다른 얘기를 할까 잠든 척을 하기도 한다. 극 초반엔 철이 아직 들지 않은 치기 어린 청춘으로 보이지만, 한(박해수)과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위기를 겪고 장호의 서사가 마무리될 때 비로소 완성된다.

“제가 설정한 장호는 기억이 나지도 않을 어린 시절에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상처가 깊게 남아있는 이 사회에 일찍부터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상처도 깊고 거기서 나오는 외로움이 너무 클 것 같았다. 그래서 준석이와 기훈이가 장호에게 있어서는 이 세상의 전부라고 설정했다. 그만큼 외로움도 많이 타고, 준석과 기훈이 아닌 다른 사람을 대할 때는 배타적일 것 같고 오히려 정을 주지 않을 것 같은 인물이라고 판단했다.”

친구들과 있을 때는 서글서글하고 때론 능구렁이 같은 장호는 타인을 대할 땐 날카롭다. 특히나 도박장을 털 때는 급박한 상황이라는 것을 인지하더라도 과하게 화를 내고 약간의 폭력성을 보이기도 한다. 또한 장호의 말미 한과 대치하면서 이전엔 보이지 않았던 내면의 울분과 성향이 폭발한다. 이후엔 생의 마지막을 앞두고 준석에게 속마음과 진심을 내보이는 장면들이 장호의 가장 인상 깊은 순간이다.

“도박장을 털 때와 쓰러진 채로 준석에게 말할 때 가장 애착이 가는 것 같다. 특히 사설 도박장을 털 때도 환전소를 들어가서 남자 직원을 밀치고 여자 직원에게 협박을 하는 장면들에서는 준석과 기훈을 대할 때와 전혀 다른 태도였으면 했다. 그래서 더 거칠게 표현했다. 장호라는 인물로서 어쩌면 양 극단에 있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것 같다. 배우로서 한 인물의 양 극단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런 점들이 같은 캐릭터성을 가지고 잘 변주하는 장면이었던 것 같다.”

친구의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아주지 못하는 철없는 인물로 보일 수 있으나 장호는 극의 말미로 향할수록 조금씩 성장한다. 극 초반에는 희망 없고, 하루살이와 다를 바 없는 장호는 사설 도박장을 터는 것을 계기로 한과 대치하고 대립하면서 준석을 지키기 위해 괴력을 발산하면서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장호의 성장기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인물이 변화를 겪는다고 생각한다. 초반에는 희망 없는 청춘의 모습에서 의지를 갖게 되고 돌파해 나가면서 이 인물이 마침내 죽음을 맞이할 때 ‘외롭지 않다’라고 얘기를 하는 게 정말 그럴 수 있고, 준석이를 위해서 하는 말일 수도 잇겠지만, 한 꺼풀 나아가면서 인물이 죽음을 맞이한다고 봤다. 장호가 한에게 총을 쏠 때도 뭔가를 극복한 느낌이라고 본다. 총이라는 무기가 주는 생경함, 공포감을 표현하고 싶었다. 장호의 성장기처럼 변화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그리고 싶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정봉, ‘쌈, 마이웨이’ 김주만, ‘멜로가 체질’ 손범수, ‘소공녀’ 한솔 등. 안재홍은 그간의 작품들에서 비슷하게 친근한 캐릭터로 그만의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어벙한 것 같으면서도 똑 부러질 때 있는 현실성 높은 인물이 곧 안재홍 같았다. 그러나 이번 ‘사냥의 시간’ 속 장호를 통해 안재홍의 변주에 다양성이 입혀졌다. 이를 시작으로 더욱 다채로워질 그의 행보에 환한 등불이 켜지길 바라본다.

“색다른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는 좋은 갈망으로 시작했던 작품이었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저라는 개인과 참 닮지 않은 인물을 보이면서도 재밌으면서도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그리고 정말 치열하게 임했었고. 관객에게 조금 더 좋은 것, 사실적인 걸 담기 위해서 장호라는 인물로 극단의 감정까지 몰아붙였던 그런 시간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감회가 새롭고 또 많이 사랑받고 오래토록 남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



[더셀럽 김지영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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