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백’ 배종옥, 영화·드라마·연극까지 끊임없는 변주 [인터뷰]
- 입력 2020. 06.10. 17:10:24
- [더셀럽 전예슬 기자] 전혀 다른 얼굴이다. 우아하고 이지적인 이미지를 벗고 치매를 앓는 시골 촌부로 분했다. 그동안 똑 부러지는 캐릭터를 도맡아왔던 그가 왜 이런 변신을 한 것일까.
배종옥이 연기한 채화자는 남편의 장례식장에서 발생한 ‘농약 막걸리 살인사건’의 유일한 용의자로 지목된 인물이다. 남편의 핍박에 딸 정인(신혜선)은 집을 떠났고 아들 정수(홍경)는 자폐성 장애를 가지고 있다. 설상가상 남편마저 세상을 떠났다. 채화자 곁에 남은 사람은 없다. 배종옥은 화자를 한 여성의 인생으로 바라봤다.
“한 여자의 인생이 안쓰럽잖아요. 첫 남편을 잃고 살다가 지금의 남편이 그런(살인을 저지른) 사람이고. 그걸 아는 순간, 저라도 제 정신이 아닐 거 같아요. 그 여자에 대한 안쓰러움으로 시작했어요. 그렇게 시작하니까 모든 감정들의 변화가 가능했죠. 변화가 어려웠을 뿐이지 인물을 표현하는, 관통하는 라인에 어려움은 없었어요.”
배종옥은 ‘결백’을 통해 파격적인 분장을 선보였다. 60대 화자를 표현하기 위해 리프팅 밴드와 가발을 착용하는 등 5시간이 넘는 노역 분장을 했다. 그러나 배종옥은 분장보다 화자의 감정 변화를 전달하는데 더 어려움이 뒤따랐다고 한다.
“화자는 치매를 앓고 있어요. 과거와 현재를 왔다 갔다 하면서 감정의 변화를 겪죠. 제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깊이 있게 표현하길 감독님이 요구하시더라고요. 그게 잘 안됐던 것 같아요. 저도 모니터를 보면서 느꼈거든요. 그래서 연기를 할 때 매번 수정하고, 변화시켰어요. 하나의 감정을 스트레이트하게 가져갔다면 그 안에서 변화는 충분히 가능하지만, 왔다 갔다 하니까 착오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매번 모니터를 보면서 연기를 했어요.”
배종옥과 신혜선은 모녀 관계로 등장한다. ‘모녀 호흡’을 기대했으나 두 사람이 함께 진실을 추적해가고, 감정을 쌓는 등의 장면은 드물다. ‘공백’과 ‘어색함’이 존재했던 두 사람 사이는 결말로 향하면서 비로소 채워진다. 배종옥은 이러한 엄마와 딸의 관계를 낯선 거리감으로 유지하려 했다고 한다.
“말이 모녀관계이지 화자와 정인은 너무 오랫동안 떨어져있었어요. 간극을 메울 상황이 아니었고요. 더구나 엄마는 딸을 알아보지 못하고요. 그런 관계를 유지하려고 서로 노력했어요. 현장에서 친하게 지내지 않고, 낯선 거리감을 유지하려는 보이지 않는 노력을 하려고 했고, 혜선이도 했죠. 영화를 봤을 때 그 느낌이 잘 살아났다고 생각해요. 어색한 모녀 관계를 표현하기 위해 현장에서 말도 안하고 밥도 잘 안 먹었죠. ‘밥을 함께 먹는다’라는 게 친숙함을 쌓아가는 계기잖아요. 혜선이가 캐스팅됐을 때 ‘진실X거짓’이라는 연극에서 처음 만났는데 그때 잠깐 맥주를 마신 후 작업할 때는 만나지 않았어요. 거리감 있는 시간을 가진 거죠.”
배종옥은 이런 과정을 ‘외로움’이라고 정의했다. 캐릭터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겪어야만 하는 필연이 과정인 셈이다.
“현장에서 섬처럼 있었어요. 배우라는 직업이 외로워요. 다들 도와주지만 캐릭터의 몫을 해내야하는 무게감이 있죠. 또 화자는 치매에 걸렸고, 인물들과 교류를 하는 상황이 아니기에 그런 외로움이 있었어요.”
‘결백’은 ‘그때 그 사람들’ ‘사생결단’ 등 작품에서 조감독 생활을 거쳐 ‘스탠드 업’으로 제8회 미쟝센단편영화제 희극지왕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박상현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이다. 신혜선도 이 영화에서 주연으로 첫 스크린 도전에 나섰다. 배종옥은 선배로서 중심축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을까.
“그런 부담은 없었어요. 감독님이 신인이지만 조연출 생활도 했고, 자기 시나리오를 3년 동안 만져왔기 때문에 작품을 이끌어가는 것에 있어 걱정은 없었죠. 신혜선은 영화가 처음이라고 해도 얘기하면 그 감정을 곧바로 흡수하더라고요. 이해력이 빠르고 집중도 좋은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늘 나만 잘하면 된다라고 생각하면서 연기했죠.”
지금까지 추적극들은 대부분 남성 위주의 캐릭터와 배우들로 이루어졌었다면 ‘결백’은 엄마와 여성 변호사로 역할을 설정하면서 ‘여성 중심’이 됐다. 기존 남성 중심으로 견인되던 추적극과 확실한 차별성을 두고 있는 것.
“요즘 남자 위주의 캐릭터들이 많았어요. 영화 안에서 여자 캐릭터가 한정적이고 할 게 없었죠. 그런 점에 비하면 저희 영화는 반가운 작품이에요. 활성화 됐으면 좋겠어요. 언론배급시사회 때도 많은 분들이 좋게 봐주셔서 고무적이었어요. 저희는 저희끼리 아무리 좋다고 해도 객관적인 시각이 필요하잖아요. 개봉을 앞두고 상당히 긴장했었는데 반응이 좋아 다행이었죠.”
1985년 KBS 특채 탤런트로 연예계 데뷔한 배종옥은 그동안 영화, 드라마, 연극 등 숱한 작품에 출연했다. 35년, 긴 연기자의 길을 걸어오면서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슬럼프를 넘고 꾸준한 활동을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슬럼프를 겪을 때도 일하는 게 행복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끊임없이 달려오지 않았나 싶어요. 물론 굴곡도 있었죠. 어렸을 때, 결혼하고 나서 엄마로서 등 그 과정들에 있어 블랭크(공백)가 와요. 그렇지만 배우가 되기 위해선 멈추지 않아야 했죠. 배우로서 성장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그 블랭크를 채우기 위해 연극도 하고 매체를 왔다 갔다 한 거죠. 멈추지 않고 캐릭터의 장을 넓히면 그 안에서 발전이 있다고 생각해요. 연륜이 필요한 연기보다는 끊임없이 자기를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있어 가능한 게 아닌가 싶어요. 그런 블랭크를 잘 넘기면서 갔던 시간들을 지금 생각해보면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구나’라는 생각도 들고요.”
‘결백’은 아빠의 장례식장에서 벌어진 막걸리 농약 살인사건 용의자로 몰린 엄마 화자의 결백을 밝히려는 변호사 정인이 추시장(허준호)과 마을 사람들이 숨기려 한 추악한 진실을 파헤쳐가는 무죄 입증 추적극이다.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두 차례 개봉이 연기된 이 영화는 오늘(10일) 드디어 개봉을 하면서 침체됐던 극장가에 활기를 불어넣고자 한다.
“‘결백’은 스토리텔링이 굉장히 탄탄해요. 그게 저희 작품의 강점이죠. 느끼는 감정이야 다 다르겠지만, 정인이 사건을 헤쳐 가고 과거들을 파헤쳐 가는 과정이 보는 내내 재밌으실 거예요. 그들이 잘했든, 잘 못했든 그들을 이해하는 시간이 됐으면 하는 생각이에요.”
[더셀럽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주)키다리이엔티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