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도 소화하지 못하면…” ‘부부의 세계’ 한소희의 굳은 소신 [인터뷰]
입력 2020. 06.12. 18:04:17
[더셀럽 김지영 기자] 평온했던 부부의 삶에 불을 지르는 극의 핵심. 배우 한소희가 아니었다면 ‘부부의 세계’가 긴장을 계속해서 유지 시킬 수 있었을까. 드라마 1회의 말미부터 마지막 회까지 단 한 순간도 시청자의 마음을 편치 못하게 만든 장본인, 한소희에겐 강인한 소신이 있었다.

영국BBC 드라마 ‘닥터 포스트’를 원작으로 한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는 머리카락 한 올로 시작된 의심이 파멸로 가기까지의 과정을 그렸다. 한소희는 극 중 부러울 것 하나 없이 화기애애했던 지선우(김희애), 이태오(박해준)의 가정에 불을 지르는 여다경으로 분했다.

‘부부의 세계’ 1회에서 지선우는 이태오의 목도리에 묻은 머리카락 한 올로 주변의 모든 인물들을 의심한다. 이태오와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동창 설명숙(채국희)부터 이웃사촌인 고예림(박선영)까지. 자신의 의심이 오해였을까 염려하던 그는 결국 단서를 찾아낸다. 이태오와 내연관계를 유지하던 이는 다름 아닌 엄효정(김선경)의 딸 여다경이었다. 예상치 못한 인물의 등장에 지선우는 충격에 빠졌다.

원작과 비슷하게 흘러가는 드라마의 초반 전개는 다른 작품에서는 만나보지 못한 속도감으로 시청자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한 시간을 10분으로 착각하게 할 만큼의 빠른 전개, 답답하지 않은 극 중 인물 간의 대립, 계속해서 터지는 또 다른 사건들로 시청률과 화제성을 1위로 견인했다.

박해준과 김희애 사이에서 극의 긴장감을 높인 한소희는 적은 대사와 눈빛으로 극의 몰입을 도왔다. 두 여자를 사랑한다는 이태오에게 이혼을 종용하고 지선우를 찾아가 도발하며 내연관계가 아닌 정말 사랑하는 사이라고 주장하는 행동들에 분노를 자아냈다. 더군다나 중반부를 넘어선 떠났던 고산시에 돌아와 지선우의 마음에 다시 불씨를 지피고 결국 이태오의 본모습을 알게 되면서 괴로워하는 모습들로 강인한 인상을 남겼다.

뻔뻔한 내연녀의 모습을 완벽하게 그려낸 한소희는 전작에서도 비슷한 캐릭터를 맡은 바 있다. MBC 드라마 ‘돈꽃’에서 청아그룹 회장의 손자인 장부천(장승조)의 내연녀 윤서원을 맡았으며 tvN 드라마 ‘백일의 낭군님’에서는 주체적이고 야망 있는 세자빈으로 분해 매력 있는 악역으로 눈길을 끌었다. 세 번째 만난 비슷한 캐릭터는 그에게 전혀 우려로 작용하지 않았다.

“새로운 캐릭터, 새로운 드라마지만 또 제가 접해보지 못한 장르의 드라마라 저에겐 도전이었다. 비슷한 캐릭터를 다르게 표현하는 것도 굉장한 도전이다. 사실 우려라는 게 이것으로 이미지가 굳어질까 걱정하는 것 아니냐. 이것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데 다른 캐릭터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완벽하게 해내고 싶은 욕심이 있었고 고착화된 이미지를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비슷한 결의 캐릭터를 연속해서 맡는 것보다 더한 부담감으로 작용했던 것은 첫 주연작이라는 것이었다. 김희애와 박해준이라는 대선배의 사이에서 긴장감을 유지해야하는 여다경 캐릭터는 그에게 부담감을 넘어서 스트레스까지 작용했을 정도였다.

“시작할 때부터 알고 있었다. 연기로 대선배님과 붙어도 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못하면 나만 욕먹으면 되지만 선배님한테 피해를 입히면 안 되니까. 그리고 박해준 선배님도 드라마로는 첫 주연작이라고 하셨다. 그런 기대에 제가 누를 입히면 안 된다는 생각에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또 나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시작이 반이기도 하지만 시작 자체가 어렵긴 했었다.”

부담에서 작용한 스트레스는 오히려 한소희에게 채찍이 됐다.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서 온 걱정이었기 때문에 이를 이뤄낼 수 있도록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더군다나 한소희는 “스트레스가 없으면 나태해지는 성격”이라며 자신을 더욱 다그쳤다고 털어놨다.

“스스로를 채찍질하면서 성장시키는 스타일이어서 오히려 스트레스가 도움이 됐다. 그래서 더 스트레스를 받으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체중조절도 극단적으로 했고 ‘버티자’는 상태를 유지했다.”

한눈에 봐도 이태오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외모, 필라테스 강사라는 직업을 가진 만큼 늘씬한 몸매 등은 지선우를 오히려 더 자극했을지도 모른다. 한소희 또한 여다경의 외적인 면모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밝히며 극단적인 체중 감량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여다경이 문제의 시작이지 않나. 감독님이 항상 ‘다경이가 예쁘지 않으면 이 드라마는 아무도 공감을 하지 못한다’며 다경이의 존재만으로 선우에게 위협이 된다고 하셨다. 화장도 신경을 써서 하게 되고 체중조절도 엄청 했다. 다이어트 또한 연기의 수단 중에 하나라고 봐주셨으면 좋겠다. 저는 그래야 먹고 살지 않나.(웃음) 촬영이 뒤죽박죽이다 보니까 운동을 규칙적으로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그냥 굶었다. 47kg까지 감량했다.”



부유한 집안에서 부족함 없이 자란 여다경이 왜 사회에 반하는 불륜을 저지르게 됐을까. 자신과 이태오의 관계가 부적합하다는 생각이 아닌, 진짜 사랑이라고 믿는 이유에 한소희 역시 의아함이 있었다. 그는 ‘그렇게 믿지 않으면 사랑을 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처음 ’유부남 이태오를 왜 사랑할까‘하는 고민이 있었다. ’유부남‘과 ’이태오‘라는 두 개의 키워드가 있다면, 바꿔서 생각하려고 했다. 하필 이태오가 유부남이었던 것. 그리고 이태오의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라는 대사가 지선우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지만 이태오의 입장에선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한 이상한 말이다. 진짜 위험한 말이기도 하고. 그래서 다경이도 믿고 싶은 것이다. 우리의 사랑은 불륜으로 시작된 사랑이 아니라 순수한 사랑이라고 믿고 싶고 더 단단해진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여다경의 심리를 이해하려 했지만 스스로의 사상과 계속해서 부딪혔다. 머리로는 이해하려 하지만 마음으로는 와닿지 않았다. 그럴수록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서 여다경이 되어갔다. 캐릭터에 점차 몰입하면서 이준영 역을 맡은 전진서도 싫어지고 박해준과 김희애의 애정신도 기분이 나쁘더라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고 털어놨다.

“한소희의 사상과 여다경의 사상이 부딪혀서 힘들었던 부분도 많았다. 주관적인 판단이 되지 않아서 주변 스태프한테 의견을 물어보기도 했다. 저도 신기했던 게 점차 촬영하면서 준영이가 싫어지더라. 스스로도 소름이 돋았다. 계속 다경이의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생각하다 보니 김희애 선배님과 박해준 선배님의 키스신을 보고도 기분이 나빴고. 빨리 여다경에서 빠져나와야겠다 싶었다. 내 도덕성도 사라질 것 같았다.”

극의 중반부, 지선우는 여다경의 집에 찾아가 여병규(이경영), 엄효정에게 여다경의 임신 사실을 고백한다. 그러면서 상대는 자신의 남편인 이태오라고도 덧붙인다. 화가 머리끝까지 차오른 여다경은 분노를 참지 못해 지선우의 뒤통수를 타격한다. 방영 이후 공개된 비하인드 영상에서는 한소희의 밝은 모습이 담겼지만, 사실 그는 걱정에 휩싸여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었다고 회상했다.

“얼굴에 핏빛이 하나도 없고 선배님들이 웃으니까 저도 웃었다.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겠더라. 김희애 선배님밖에 안 보였다. 다행히 한 번에 끝나서 제가 뛰어다니는데 그건 다 끝난 뒤의 상황이다. 앞에는 제가 한마디도 안 해서 편집했을 것이다. ‘어떡하지’라는 생각뿐이었다.”

결국 지선우가 이태오와 이혼하고 여다경과 이태오는 고산을 떠난다. 이 이후의 전개들은 원작에선 없는 장면들이며 한소희는 2년 뒤 돌아오는 여다경에게 보다 성숙해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6부까지의 다경이는 원작이랑 같은데 2년 뒤에는 차이를 두고 싶었다. 2년 뒤 돌아온 다경이에겐 아이도 생겼고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랐던 친구가 주체적으로 가정을 지키려면 뭔가 더 이성적으로 판단을 할 만큼 성장할 것 같았다. 여우회라는 소재도 있어서 그 안에서 다경이가 인정을 받아서 어울리려면 절대 2년 전과 같아선 안 될 것 같았다.”

어떻게든 가정을 지키고 싶었던 여다경은 결국 이태오와 지선우가 하룻밤을 보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무너진다. 고예림의 간접적인 공격에도 감정을 억누르고 있던 그는 이태오에게 직접 듣고 그간의 감정들을 터트린다.

“이태오에게 잤냐고 물어보는 신이 16부에서 날것으로 표현해야 하는 장면이었기 때문에 가장 힘들었다. 고예림과 지선우가 잘못된 사랑이라고 하지만 여태까진 감정을 억누르고 외면해왔지 않나. 이태오에게 따져 물으면서 날것의 감정이 나오게 되는 과정들이 힘들었고 가장 신경 쓰였다. 준비도 많이 했고. 여다경이 몰락하는 가장 큰 순간이어서 제대로 무너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랑에 빠졌던 이태오는 결국 지선우가 가꿔놓은 인물이었고, 지선우가 곧 본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여다경은 가족과 함께 고산시를 영영 떠난다. 자신이 하고 싶었던 미술 공부를 다시 하게 되면서 새로운 남성이 접근해도 눈길 하나 주지 않는다. 일부 시청자들은 ‘불륜을 저질렀어도 평온한 일상을 되찾는 금수저’라는 결말에 볼멘소리를 냈으나 한소희는 “씁쓸하고 현실적인 결말”이라고 했다.

“금수저는 살길 찾아서 간다는 게 한편으론 씁쓸한 마음이 들지만 또 다른 마음에서는 다경이의 인생은 그때부터가 지옥의 시작이 아닐까 한다. 남편 없이 아이를 25살에 키운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지 않나. 다경이의 삶은 없을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신뢰를 잃었기 때문에. 도서관에서 만난 남자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 건 하나의 감정이었다. 전의 상실. 햇병아리 같은 남자가 귀엽게 메모 간다는 게 이 남자의 순수한 사랑이 부럽기도 하면서 그 사랑에 대응해줄 수 없다는 다경이의 현실을 안 것이다. 그래서 그 남자에게 어떠한 추파도 던지지 않고 나가지 않나.”



여다경에 빠져 빨리 캐릭터와 분리를 시켜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는 한소희는 비혼주의자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단순히 이태오 같은 사람을 만날까 하는 우려보다는, 신뢰가 무너지는 과정을 직접 지켜봤고 사랑만으로 결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불륜이라고 하면 막장 드라마라고 하지만 ‘부부의 세계’를 보면 모든 감정이 공감된다. 누군가를 믿지 못하는 신뢰에 대한 감정들이나 주변에 있을 법한 캐릭터들이 있다. 고예림이나 설명숙 같은. 그러니까 이게 현실적인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또 이전에는 사랑만으로 결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사람 관계의 신뢰가 없어지면 사랑만으로 붙잡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 신뢰가 무너지는 시점이 사소하지 않나. 새벽에 울리는 전화, 퇴근 시간과 귀가하는 시간의 공백 등 때문에 신뢰가 깨지는데, 그런 것을 극복해야 하면 나라는 사람의 자존감이 높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외도나 불륜은 하지 말라고 목을 졸라도 하지 않나.(웃음) 그런 상황이 와도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자존감이 높아야 할 것 같다.”

연이어서 내연관계인 캐릭터를 맡아서일까. 한소희는 이제 사랑이 없는 캐릭터를 맡아보고 싶다며 사랑이라는 감정에 진절머리가 난다는 식으로 표현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제 시작”이라고 말하며 걱정이 크다는 한소희의 행보가 더욱 궁금해진다.

“앞으로는 사랑이 배제된 역할을 하고 싶다. 사랑만을 위해서 뭔가를 이뤄내고, 잃고 했는데 이제는 우정 드라마라든지, 회사 가는 게 귀찮은 청춘 드라마 같은 것을 해보고 싶다. ‘부부의 세계’가 끝났지만 저에겐 이제 시작이다. 계속 행복함과 불행이 공존하는 건 제가 잘하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김희애, 박해준 선배님이 없었으면 저라는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이 작품으로 대중들에게 저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는 것이지 내가 잘해서 관심을 받았다고 생각을 하지 않아서 이제 시작점이라고 본다. 그래서 차기작이 너무 걱정된다. 진짜로 걱정이 많이 된다.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은데 너무 잘 되다 보니까 그런 것 같다.”

[더셀럽 김지영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 9ato 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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