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철의 동네한바퀴’ 경남 진주, 옥봉동·중앙유등시장·육회비빔밥·한복거리·귀곡동 까꼬실마을
- 입력 2020. 06.27. 19:10:00
- [더셀럽 전예슬 기자] ‘김영철의 동네한바퀴’ 경남 진주에서 78번째 여정이 시작된다.
27일 오후 방송되는 KBS1 ‘김영철의 동네한바퀴’에서는 ‘보배롭다, 그 이름-경남 진주’ 편으로 꾸며진다.
물산이 뱃길을 따라 이동하던 조선후기에서 근대까지, 거대한 남강을 낀 진주는 경상권 상업의 중심지였다. 산청, 마산, 충무, 거제, 창원 등 경상권 각처 보부상들은 진주로 모여들었고, 그런 상인들의 장사 허가권과 신분증을 발급해주고, 쉬어갈 객주도 제공해주었던 것이 오늘날 상공회의소의 전신, ‘상무사’였다. 진주 옥봉동 골목을 탐방하다 보면 지게를 지고 물건 팔러가던 보부상 벽화와 한옥으로 된 상무사를 만날 수 있다.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역사 속의 건물이 되어버렸지만, 아직 이곳에는 온갖 물산이 집결하는 영화롭던 시절의 기억을 가진 이가 있다. 바로 옆 골목에서 태어나 그 시절 상인들을 보고 자랐던 토박이 마을 해설사다. 그에게서 상무사의 생생한 옛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136년의 유구함을 자랑하는 진주중앙유등시장에는 시장보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진주육회비빔밥이 있다. 그 시작은 임진왜란 중 진주성 전투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병사들과 백성들이 왜군과 대치하면서 성에 남아 있던 소를 잡아 육회로 만들고 각종 나물을 모두 섞어 비빔밥을 만들어 먹은 것이 유래가 되었단다. 게다가 소의 자투리 부위까지 국을 끓여 남김없이 재료를 사용했고, 지금까지도 선짓국을 함께 곁들여 먹는 것이 전통으로 남아있다. 김영철은 82년간 3대가 이어온 시장 안 노포로 향한다. 호국의 선진들에게서 탄생한 비빔밥은 과연 어떤 맛일까.
질 좋은 뽕나무와 누에고치의 생산, 남강 물로 들인 고운 색의 비단은 예로부터 진주의 큰 자랑이다. 5-60년 전까지만 해도 진주중앙유등시장에는 그 명맥을 입증하듯 1층에는 주단집, 2층에는 한복공방들이 빼곡하게 들어서있었다. 지금은 밤새 비단옷을 지어 전국으로 나르던 명성이 무색하게 더 이상 한복을 찾지 않는 시대가 되어버렸지만, 여전히 시장에는 자리를 지키며 한복을 짓는 어머님들이 남아있다. 사양길을 걷고 있는 우리나라 옷을 바라보면 안타깝기 그지없지만, 열일곱 꽃다운 나이임에도 고향에서 진주로 넘어와 한복 손바느질 기술을 배우며 아들딸 자식들 키워낸 시간들은 소중하게 남아있단다. 배우 김영철은 아직 남아있는 한복시대의 마지막 역사를 지켜보며, 시끌벅적했을 한복거리의 흔적을 따라가 본다.
촉석루는 전시상황에 진주성을 지키는 장군들의 지휘본부이자, 임진왜란 당시 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투신하며 충절을 바친 곳이다. 그가 뛰어든 바위는 ‘의암’이라는 이름으로 그 순절을 기리고 있고, 논개는 의기로 격상돼 진주성 촉석루 의기사에 영정과 위패가 모셔져 있다. 김영철은 꽃다운 그 넋 앞에 꽃 한 송이와 향기로운 커피 한 잔을 올리며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1970년 남강댐의 건설로 남강과 덕천강을 막아 아름다운 진양호가 생겨났다. 경상권 사람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상수원이자 홍수를 막아주는 방어책이지만, 귀곡동 까꼬실마을은 호수 아래로 잠기고 사람들은 뭍으로 떠나게 되었다. 김영철은 여전히 고향 마을을 오가며 농사짓는 토박이 주민들을 따라 마을로 들어가는 배에 몸을 싣는다. 모두 한 길로 이어져있을 마을이었을 텐데, 사람들은 멀리 떨어진 정류장이라도 된 듯 차례로 배에서 내려 집으로 향한다. 이제 마지막 정거장으로 가는 길, 저 멀리 숲속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에 궁금증이 생긴다. 저기도 사람이 살고 있는 걸까.
‘김영철의 동네한바퀴’는 매주 토요일 오후 7시 10분에 방송된다.
[더셀럽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KBS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