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청년 같은 느낌으로”… ‘#살아있다’ 유아인의 변모 [인터뷰]
입력 2020. 06.29. 17:56:07
[더셀럽 김지영 기자] 영화 ‘사도’ ‘버닝’ ‘베테랑’, 드라마 ‘밀회’ 등에서 불안한 청춘의 얼굴을 표현해왔던 배우 유아인이 달라졌다. 영화 ‘#살아있다’를 통해 보다 더 친근하게, 주변 어디에서나 있을 듯 한 얼굴로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최근 개봉해 누적관객 수 100만 명을 돌파한 ‘#살아있다’는 원인불명 증세의 사람들이 공격을 시작하며 통제 불능에 빠진 가운데, 데이터, 와이파이, 문자, 전화 모든 것이 끊긴 채 홀로 아파트에 고립된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생존 스릴러. 유아인은 극 중 자고 일어난 뒤 갑작스럽게 재난을 겪게 된 평범한 청년 준우로 분했다.

영화 속 준우의 모습은 특별할 것 없는 인물이다. 오전 10시쯤 느지막이 일어나 집에서 가족들을 찾고, 엄마가 남겨놓은 메모를 보며 컴퓨터 게임을 켜, 게임 속 사람들과 만나는 평범한 20대다. 아무런 대비책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처해진 재난 상황에 준우는 당황함에 어찌할 바 모르며 집이 결국 피난처가 된다.

영화 ‘#살아있다’ 속 준우는 유아인이 그간 표현해왔던 청춘과 분명한 차이가 있다. 영화 ‘완득이’ ‘깡철이’에선 불완전한 상태에서 겪는 성장통, 드라마 ‘밀회’에서는 기댈 곳 없는 불안한 영혼, 영화 ‘베테랑’에서는 가진 건 있으나 내적으로 채워지지 않아 도리어 어두운 욕망을 표현해내는 재벌 3세, ‘사도’에서는 아버지 영조에게 벗어나고픈 억눌린 세자, 이러한 불완전한 청춘의 집합체 ‘버닝’까지. 그간의 필모그래피들 중 대다수가 아픈 청춘의 어두운 면을 끄집어내면서 그의 밑바닥까지 보여주는 연기로 시대의 얼굴이 됐다.

그런 그가 ‘#살아있다’를 통해 기저에 깔린 어두움을 표현하기 보다는 친근함으로 새로운 시대상을 표현해냈다. 유아인이 표현해왔던 캐릭터들 중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평소 좀비물을 선호하고 있었으나, 무엇보다도 준우를 통해 큰 폭으로 연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판단에 ‘#살아있다’ 출연을 결정지었다.

“‘#살아있다’만의 차별화된 부분들이 있고 배우로서 도전의식을 자극하는 지점들이 있었다. 정통 좀비물의 장르적 특성을 계승하면서도 배우의 활용방식 같은 색다른 부분이 있어서 할 이야기가 많을 것 같았다. 준우가 전반부를 끌고 나가야하는 숙제도 그렇고 평범하고 일상적인 청년이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하는 상황을 큰 폭으로 연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아인이 의미한 ‘큰 폭의 연기’는 한정된 공간에서 준우를 표현하는 것, 그 이상이었다. 갑작스럽게 직면한 재난 상황에서 느껴지는 당혹감, 가족들의 생존여부를 알 수 없는 불안함, 와 닿지 않는 재난 대비 방법을 이야기하는 언론을 향한 분노, 지탱하고 있던 생존의 끈이 놓여 졌을 때의 좌절감 등이 98분의 러닝타임동안 펼쳐진다.

“속도감 있게 진행되지만 인물에 있어서는 내면 깊게 들어가지 않나. 장르물에서 이렇게까지 짚어내도 되는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준우가 느슨한 캐릭터지만 ‘버닝’의 종수만큼은 아니고, 텐션이 있지만 당연히 ‘베테랑’의 조태오 같을 수 없는 중간쯤의 캐릭터다. 하나의 고정적인 텐션을 가져가는 것보다는 자유분방함을 표현할 수 있었다. 그런 것들을 다채롭게 보여줬으면 했고, 확장적인 느낌을 주는 인물이었으면 했다. 특히 코로나19 상황을 겪으면서 영화 속 고립상태를 은유, 의미적으로 느껴보다가 현실이 됐지 않나. 그런 것을 영화에선 의도하지 않았지만 시기가 맞아떨어져 시의성이 강한 작품이 됐다.”



무엇보다도 유아인은 이번 작품에서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피력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합을 찾아 나가는 과정에서 또 다른 쾌감을 느꼈다. 그에게 ‘#살아있다’는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시도들을 해나가면서 소통의 재미를 느껴가는 현장이었다.

“너무 장르성에만 치중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연기 시도들을 해볼 수 있었다. 리허설 영상을 찍어서 보내드린 적도 처음이었다. 현장에서 다른 배우들과 전보다 더 많이 소통할 수 있었고, 그동안 조심스러워했던 부분들을 뛰어넘어보려고 했다. 사실 배우들끼리 연기를 얘기하는 게 쉽지 않다. 그러나 ‘#살아있다’는 그런 부분들도 시원하게 털어놓으면서 해볼 수 있는 현장이었다.”

다른 촬영 현장에 비해 낮은 연령대, 자유로운 의사소통 방식이 유아인의 행동을 변화시켰다. 서로 예의를 가지고 시원하게 소통해보겠다는 마음가짐이 ‘#살아있다’의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만들었고, 도전의식을 가진 배우들과 함께 진정으로 영화를 만들어나갔다.

“첫 시도들을 실패했다면 위축됐을 것 같은데 꽤 좋은 결과를 가져오더라. 배우들과 소통을 할 때도 너무 조심스럽게 얘기하는 게 아니라 시원시원하게 얘기해보고 도전의식을 가진 배우들이라는 측면에서 안도감이 들었다. 극 초반에 등장한 이현욱 배우와 함께할 때부터 조금씩 해봤는데 잘 녹아드는 것들을 보면서 연기를 해봤다. 만일 이런 시도들이 무너지고 실패했다면 힘들었을 것 같다. 어디까지 인지는 모르겠지만 시도해보자는 태도들이 흥미로운 순간들을 만들어내더라.”

조일형 감독과 소통을 하면서 만들어낸 장면이 극 중반에 등장하는 만취한 준우의 댄스 장면이다. 집밖의 상황을 잠시 잊어보기 위해 노래를 크게 틀고 흐느적거리는 행동을 통해 재난 상황에서 벗어나고픈 모습이 유쾌함과 슬픔이 함께 동반된다.

“원래는 술을 마시고 ‘알 수 없는 막춤을 춘다’ 정도였는데 중요하게 생각했던 장면이었다. 혼자 리허설을 하고 찍어서 보여드렸다. 이런 저런 춤을 춰보고, 흐느적거리기도 하면서 영화가 본질적으로 계획했던 것보다 선을 넘는 식으로 그림을 그렸던 것 같다. 답답함이 몸으로 풀어져나지만 가족들의 죽음을 전화로 듣게 되는 순간이다. 장르적으로 속도감 있게 진행되는 영화에서 함축적인 답답함을 확 담아내는 의미 있는 장면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고 감정적으로도 좀 많이 나아가고 싶은 지점이 있었다. 그래서 제가 움직이고 춤추는 순간들을 계획했던 것보다 늘렸고 가족 장면은 줄어들어 간결하게 표현됐다. 그게 효과적이라고 생각해서 감독님께 제안했고 수용해주셨다.”



유아인은 그동안 미완의 청춘을 대표하는 얼굴이라는 말에 쑥스러움을 표했다. 그러면서 이전에 다양한 작품들에서 표현했던 모습은 보여주고 싶은 얼굴이었고, 대중의 호오(好惡)가 있을 수 있었으나 유아인은 “나름의 차별화 전략일 수도 있다”며 웃으며 말했다.

“그려내고 싶었던 모습이고 좋은 평가들을 해주시는 것에 있어서 감사할 뿐이다. 그 시기에 젊은이를 표현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미완의 존재이지만 젊은이들의 불안, 미완한 상태를 갖고 있는 청춘에 어울림직한 아름다움, 빛을 다뤄낼 수 있어서 감사했다. 사실 그런 것들을 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기 때문에 조금 집착했던 부분이 있다. 개인적인 기호나 욕심들보다 배우로서 그려내고자 하는 그림이 저한테는 훨씬 더 강렬했기 때문에 집착으로 그려온 게 있는 것 같다. 지금은 나를 닫아놨던 것들이 허물어진 느낌이 든다. 사실 모든 것들은 자존감과 연결되는 것 같다. 나를 서있게 하는 힘이 그 시절엔 그랬다.”

그 시절에 표현하고 싶은 얼굴을 보여줬던 유아인은 시간이 흘러가면서 색다른 도전, 욕심이 생겨났다. 그래서 도전한 작품이 ‘버닝’과 ‘#살아있다’였다. 연기 인생에 과도기를 겪으면서 다른 모습을 보여주면서 변화시키는 과정들을 겪은 것이다.

“제가 환멸을 잘 느낀다. 내 자신이 지긋지긋하고.(웃음) 어떻게 보면 쭉 그려왔던 그림의 한 단락의 거의 끝이 ‘버닝’과 같은 작품이었고, 그 이후로는 과도기를 겪으면서 고민을 크게 했다. 그러려면 기다리는 게 아니라 스스로를 조금 더 풀어야겠다고 생각을 했고, 내가 가진 기준을 갖고 성격을 해체하고 가치관조차도 관리해야 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저를 개선시키는, 변화시키는 과정들을 겪었다.”

스스로를 변모하는 과정들을 겪으면서 내적으로도 변화를 느꼈다. 이전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신경을 쓰는 상태였다면 현재는 조금 더 편안한 마음을 가지면서 보다 편안한 상태가 됐다. 그는 골똘히 생각을 하며 말을 이어나가며 조금은 평온해진 표정으로 자신의 상태를 설명해나갔다.

“이전에는 말을 크게 믿지 않았다. 말의 정확성을 믿지 않았던 것 같다. 말이라는 게 만들어내는 오해나 어떤 말이 현실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옳은 말보단 틀린 말이 많다는 느낌으로 살아와서 조심스럽고 정확한 단어를 선택하고 싶었다. 현실이 모호하기 때문에 모호한 상태로 말하면서도 모호한 것을 선명하게 혹은 정확하게 얘기하는 우를 범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냥 내려놨다고 해야 하나, 포기했다고 해야 하나, 너무 무게를 두지 않는다고 해야 하나, 다음의 말이 있겠지 라는 생각을 한다거나, 말 한 마디에 집착하지 않게 됐다. 좋은 것 일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웃음) 말하는 도중의 신중함을 찾았다고 하자.”

유아인은 이전보다 편안해진 상태에서 준우를 만난 셈이다. 그는 그런 준우를 자신과 같은 마음으로 ‘#살아있다’를 관객이 봐주길 바랐다.

“많은 인물들의 현실적인 보편성, 그 시대의 젊은이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들을 시적언어로 보여준다면 ‘#살아있다’의 준우는 진짜 현실에 존재할 것 같은 청춘이지 않나. 그런 생각의 전환들이 있었다. 은유적으로나 진지하게 가져가는 것보다는 스스로 편해지고 싶었다. 관객도 편안함을 느끼셨으면 좋겠고. 제게 선 굵은 이미지를 느껴주시는 것도 좋지만, 어찌보면 좀 더 나와 가까운 모습들을 느끼셨으면 한다. 한편으로는 내가 가지고 있던 필모그래피를 통해서 형성될 수밖에 없는 이미지를 깨고 싶은 것도 맞다.”



[더셀럽 김지영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 UAA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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