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도’ 이정현 “모성애 없었다면 민정이 이해되지 않았겠죠” [인터뷰]
- 입력 2020. 07.21. 17:29:46
- [더셀럽 김지영 기자] 배우 이정현이 강인한 여전사로 변신했다. 황폐화가 되어버린 영화 ‘반도’ 속 대한민국에서 그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다른 게 아니었다. 아이를 살리려는 마음, 모성애였기에 가능했다.
코로나19가 종식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많은 관객을 이끈 ‘반도’는 ‘부산행’의 4년 후 이야기를 그린다. 하루아침에 폐허가 되어버린 땅에서 탈출하지 못한 이들은 야생에서 크는 들개처럼, 하루를 버틴다. 이정현은 인간성을 상실해버린 631부대를 탈출 해 딸 유진(이예원)과 딸처럼 거둔 준이(이레)와 김노인(권해효)까지 보살피며 가장이 된 민정으로 분했다.
4년 동안 민정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영화에서 그려지지 않는다. 다만 ‘부산행’을 기점으로 좀비 바이러스가 전국에 급속도로 퍼져 군인 신분이었던 정석(강동원)이 한국을 탈출하려 할 때 민정이 애를 안고 도움을 청하지만 철저히 외면당할 뿐이다. 이를 비롯해 대사로 민정이 잠깐 631부대에 있었고 죽을힘을 다해 빠져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평범한 여성이었던 민정이 4년 동안 무슨 일을 겪었기에 극 중에서 총을 사용하고 뛰어난 저격 실력을 갖게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민정이 강인한 정신력으로 이겨낼 수 있었음은 알 수 있다. 그는 단순히 혼자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는 인물이 아닌, ‘엄마는 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시나리오를 처음 읽은 이정현을 설득시켰다. 연상호 감독이 쓴 ‘부산행’ 4년 후의 이야기라는 것도 충분히 관심이 가는 부분이었지만 민정이 그에게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평범한 여성에서 강인한 여전사로 변하게 된 모습들이 이정현의 머릿속에서 빠르게 그려졌다.
“가장 매력에 끌렸던 것은 평범했던 여자가 4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고립된 곳에서 생활을 하고 부대를 탈출하면서 지내고 있는 모습이었다. 민정의 모든 전투력이 모성애에서 나왔다고 생각을 하니까 모든 게 납득이 가면서 캐릭터가 매력 있게 느껴졌다.”
지난해 새신부가 되고 아직 자녀가 없는 이정현이었지만 모성애 연기가 어렵지 않았다. 실제로 조카가 8명이라고 밝힌 그는 부모의 마음을 완벽하게는 알지 못할지언정, 대략적으로는 느껴왔던 감정이었고 ‘모성애’라고 하니 민정의 서사들이 이해가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실제로도 이레, 이예원 같은 딸을 낳고 싶다”고 속마음을 털어놓기도 했다.
“만약 민정에게 아이 설정이 없었다면 민정이 여전사가 되는 설정은 말이 안 됐을 것이다. 그런데 민정에게 두 아이가 있다는 설정으로 모성애가 설명이 되니 납득이 가더라. 자녀가 없지만 조카를 8명이나 보살폈다. 이레와 이예원도 저에게 ‘엄마’라고 부르며 저를 따라서 진짜 딸들 같았다. 저도 이레와 예원이 같은 딸을 낳고 싶다.(웃음)”
이정현은 시나리오에서 본 민정의 활약에 액션 연기를 준비하면서 실력을 갈고 닦았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촬영 현장에서는 실력을 조금도 보여줄 수 없어 아쉬웠다고 털어놓으면서도 연상호 감독의 연출력에 놀라움을 표했다.
“모든 배우들이 제일 하고 싶어 하는 연기가 액션이다. 저도 많이 설레서 감독님에게 ‘뭘 준비하면 되냐’고 하니 총 잡는 걸 연습하라고 하더라. 무술감독님에게도 여쭤보니 촬영현장에서는 더 많은 것을 요구할 수도 있으니 만반의 준비를 하라고 해서 이단 옆차기, 5회 연속 구르기 등을 연습했다. 그런데 하나도 못 썼다.(웃음) 내려치는 동작만 시키셨는데 화면을 통해서 보니 크고 멋있는 액션으로 완성이 됐더라. 신기한 게 하루는 3초, 다음 날은 4초 이런 식으로 찍고 이어 붙이니 하나의 시퀀스가 완성되더라. 애니메이션을 했던 감독님이어서 그런지 시간계산이 대단하더라. 정말 신기했다.”
연상호 감독의 뛰어난 편집 계산 실력에 감탄을 하기도 잠시, 정확한 시간 계산은 물론이거니와 CG 촬영 장면도 그에겐 새로운 경험이었다. 이정현은 전혀 힘들지 않은 현장이었다며 당시를 떠올리면서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CG 촬영은 세트가 두 개였는데 트럭의 앞부분을 잘라 양옆과 좌우로 흔들리는 것 하나, 앞뒤로 움직이는 걸로 있었다. 그게 진짜 놀이기구 같아서 이레 배우랑 예원 배우가 너무 좋아하고 신나하면서 촬영했던 기억이 난다. 처음에 촬영할 때는 감독님의 설명을 들어도 이해가 잘 안 됐는데 특수효과 기술이 들어간 화면으로 모니터링 하니까 이해가 되더라. 그리고 액션도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감독님이 몇 초만 시키고 컷을 해서 에너지가 소모되지 않았다. 8시에 시작한 촬영이 12시 전에 끝난 적도 있었고. 영화를 보고 사람들이 고생한 줄 알더라. 하나도 고생 안 했는데.(웃음) 그것도 감독님에게 감사한 부분이다. 힘들어 보이게 찍어주셔서. 무엇보다도 사고가 나지 않아서 다행이다.”
앞선 강동원 인터뷰에서도 강조했었던 것이 “연상호 감독님은 화를 내지 않는다”였다. 이는 이정현도 같았다. 더 나아가 이정현은 연상호 감독에게 뭐든 ‘오케이’를 들었다고 털어놨다. ‘반도’는 체력적으로나 연기적으로 힘든 부분이 없었던 평화로운 촬영장이었다.
“워낙에 시나리오에 설명이 잘 돼 있어서 감독님에게 따로 물어볼 것도 없었다. 촬영을 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셨다면 저한테 ‘이런 식으로 해주세요’하는 대화가 있었을 텐데 항상 한, 두 테이크 만에 ‘오케이’가 떨어졌었다. ‘여기서 오케이를 안 하면 물어봐야지’ 싶었는데 바로 ‘오케이’를 하시니 별다른 대화 없이 촬영이 너무 수월하게 됐다. 그래서 촬영도 너무 일찍 끝나고 좋았다. ‘괜찮은 거 맞느냐’고 물어봐도 계속 ‘오케이’만 했었다.”
‘반도’에서 민정의 캐릭터가 주목을 받는 것에는 모성애라는 특성도 있으나 남성 캐릭터에게 기대지 않고, 힘을 빌리지 않는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라는 점이다. 그간 수많은 한국 작품들에서 여성은 수동적이고 남성의 도움 없이는 주체적으로 나아갈 수 없는 캐릭터를 그려와 아쉬움을 남겼던 터. 최근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를 원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짐에 따라 연상호 감독도 이를 수용한 것이었다.
“주체적인 캐릭터를 맡아서 사실 되게 좋다. 여배우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제한적이고 큰 상업영화에서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도 없으며 여배우한테 시나리오가 많이 안 들어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반도’에서 민정은 여성 캐릭터가 납득될 수 있게 설정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하고 이런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운인 것 같다.”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가 충무로에 덜하지만, 이정현은 능동적인 캐릭터, 여성이 필두가 된 작품들을 더러 맡아왔다. 그는 일부러 그런 선택을 하지는 않았다고 밝히면서 더욱 다채로운 캐릭터를 표현하고 싶다고 의욕을 드러냈다.
“시나리오를 검토할 때 수동적인 캐릭터를 제외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들어오는 캐릭터가 다 그런 역할이다. 힘들고 고생하고 고되고 강인한 역할. 작품을 고를 땐 시나리오와 감독님이 좋으면 선택하는 편이다. 장르를 구별하는 편은 아니고 규모에 상관없이 한다. ‘범죄소년’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가 그렇다. 아직도 그런 다양성 영화 시나리오를 찾고 있다. 상업영화랑 병행해서 다양성 영화를 하면 다양성 영화에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 그래서 꾸준하게 병행하고 싶다. 다양성 영화가 좋은 이유는 상업영화에서 보지 못한 다양한 캐릭터들이 정말 많다. 그러니 시나리오를 많이 주셨으면 좋겠다.”
이와 함께 코로나19가 아직 종식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반도’를 기점으로 극장가가 활력을 되찾았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반도’는 21일 오후 기준으로 2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이정현의 희망처럼 이번 여름 극장가 중 가장 먼저 스타트를 끊은 ‘반도’를 시작으로 많은 영화들이 주목 받기를 바라본다.
“극장이 좀 활력을 되찾는 것 같아서 너무 좋다. 영화계에 타격이 커서 앞으로 영화 못 찍는 거 아닌지 엄청 걱정을 했었는데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아서 기쁘다. ‘반도’로 많은 관객들이 극장을 찾아주셔서 기쁘다. 저희 영화를 기점으로 많은 영화들이 개봉을 하는데, 다들 잘 됐으면 좋겠다. 무엇보다도 ‘반도’가 매년 여름마다 생각나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
[더셀럽 김지영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 NEW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