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릭 "'굿걸'같은 예능 많이 제작됐으면, 여성 연대 좋았다"[인터뷰]
입력 2020. 08.01. 07:00:00
[더셀럽 박수정 기자] "네가 왜 거기서 나와?" 래퍼 슬릭(본명 김령화)이 Mnet 예능 프로그램 'GOOD GIRL : 누가 방송국을 털었나'(이하 '굿걸')에 출연한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 대부분이 이렇게 반응했다.

'굿걸' 1회에서 슬릭이 등장했을 당시 멤버들마저 그가 출연을 했다는 것에 놀라워했다. 그도 그럴 것이 슬릭은 '쇼미 더 머니' '언프리티 랩스타' 등 Mnet의 대표 래퍼 예능을 비판한 래퍼이기 때문이다. '여성 소비 방식'에 대한 지적이었다.

'지옥에서 온 페미니스트 래퍼' 슬릭은 왜 '굿걸'에 출연하게 됐을까. 이유는 단순했다. 평소 TV를 보지 않는 슬릭이 원하는 예능이었고, 그가 원하는 '굿걸'을 보여줄 수 있는 무대였기 때문이다.

'아재 예능' 혹은 '형님 예능'들이 판치고 있는 남성 중심 방송계에 '굿걸'은 달랐다. '굿걸'에서는 슬릭부터 소녀시대 효연, 치타, 에일리, 제이미, 장예은, 윤훼이, 전지우, 퀸와사비, 이영지까지 각기 다른 여성 아티스트 10인이 '따로 또 같이' 무대를 함께 만들어갔다. 그야말로 여성들이 연대할 수 있는 장이었다.



이하 슬릭 일문일답

'굿걸' 촬영을 마친 소감

- 마지막 촬영을 6월 말쯤 했다. '굿걸' 방송 이후 인터뷰를 다니면서 바쁘게 지냈다. (종영 후) 공허하진 않더라. (무대에 많이 올랐기 때문에) 조금 쉬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한 달 정도 지났는데 '굿걸' 촬영 당시가 멀게만 느껴진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찍고 온 것 같기도 하고(웃음). 신기한 경험이었다. 지금에서야 그런 생각이 든다. 촬영 당시에는 정신없이 찍었다.

'굿걸'에 슬릭이 출연한다는 사실은 함께한 아티스트들에게도 놀라운 일이었다. 출연을 결심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 '굿걸' 섭외가 들어왔을 때 경쟁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라는 점이 가장 좋았다. 여자끼리 팀을 꾸려서 만드는 프로그램이라고 하더라. 안 나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저에게는 동료 아티스트들이 필요했다.

-'굿걸'에 출연한다고 했을 때 주변 반응은 어땠나

주변에 '굿걸'에 출연한다고 이야기 안 했다. 제작진이 비밀을 지켜달라고 하셔서(웃음). 가족한테도 비밀로 했다. 기사 나갈 때까지 아무도 몰랐다. 첫 방송이 나가고 난 후에 걱정을 많이 하시더라. 방송 촬영을 많이 하지 않았으니까. 제가 무리하는 게 아닌가 주변에서 걱정을 하시더라.

- 본인은 걱정이 되지 않았나

걱정이 있었다면, (제작진이) 어떤 걸 할지 알려주지 않아서 함께하는 사람들도 누군지 몰랐고, 그분들과 무엇을 하는 지도 잘 몰랐다. 그 부분이 걱정되더라. 촬영이 진행되면서는 워낙 성격이 내향적이라서 다른 분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까 걱정됐다. 음악적으로 어떤 의견을 공유하는 건 좋아하지만 제가 뭔가 동료로서, 친구로서 다가가는 데는 시간이 걸리는 편이다. 인간관계에 대한 걱정을 좀 했던 것 같다.

- '굿걸' 출연 이후 반응은 살펴봤나

초반에는 일부러 반응을 안 보려고 했다. '굿걸' 출연 전에 국내 힙합신에서 안 좋은 소리를 많이 들었었다. 페미니스트라는 이유 하나로 비난을 많이 받았다. 인터넷상 반응도 안 살펴봤다. 첫방 이후 반응도 안 봤는데 '굿걸' 작가님이 연락이 오셨더라. 좋은 피드백이 많다고 보라고 하셔서 보게됐다. 실시간 검색어에도 제 이름이 올랐다고 하시더라. 그때부터 조금씩 보기 시작했다

- '굿걸' 출연 후 '야망 순두부' 등 귀여운 애칭도 생겼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반응은

'야망 순두부' 마음에 든다(웃음).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저로 인해서 페미니스트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는 말이었다. 페미니스트에 대한 인식이 안 좋구나라는 생각에 놀라기도 했다. 어떤 사람을 보고, 어떤 선례를 보고 어쨌든 편견이나 생각이 바뀐 거 아니냐. 방송의 힘이 대단하다는 걸 느꼈다.

- 동료 아티스트가 필요해서 '굿걸' 출연을 결심했다고 하셨는데, 이 프로그램을 통해 이루고 싶었던 목표도 있었을 것 같다

일단 노래를 많이 만들고 싶었다. 팀 작업을 하는 거였으니까. 누가 나오는지는 몰랐지만 여러 장르의 노래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컸다. (그런 면에서는) 잘 해온 것 같다. 물론 더 많은 곡을 만들고 싶었지만 3번의 경연 무대에 섰으니까 만족한다(웃음).

- '굿걸'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무대 '히어 아이 고'(HERE I GO)가 가장 인상 깊었다. 첫 무대였던 만큼 가장 공들인 무대였을 것 같은데, 촬영 날 어땠나

방송 무대에 오른 건 처음이다. 이렇게 꾸며진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도 처음이라 낯설더라. 음향도 다르고. 제 무대가 어떻게 담길지 가늠이 안 가더라. 정신없이 촬영했던 것 같다. '틀리지 말자' '실수하지 말자' '얼지 말자'라는 생각만 하면서 무대를 꾸몄다.

- '굿걸' 2회 예고편에서 다른 멤버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혼자 떨어져 있는 모습이 담겼다. '악마의 편집'이라는 반응도 있었다

'악마의 편집'이라고 생각 안 했다. 본 방송을 보면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다 나오지 않냐. 단지 그냥 그런 일이 일어난 거다. 그 자리가 저에게는 얼마나 낯설었겠냐. '굿걸' 멤버들 역시 제가 낯설었을 거다. 물론 촬영 당시에는 좌절스럽긴 했다. 촬영이 산더미까지 남았는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걱정을 많이 하긴 했다. 그날 촬영이 끝나고 멤버들이 미안해하면서 한 명씩 와서 사과를 하더라(웃음).

- 우여곡절 끝에 처음으로 협업을 한 멤버가 소녀시대 효연이다. 함께한 소감이 궁금하다. 방송에서 소녀시대를 향한 팬심을 드러내 화제가 되기도 했었는데.

효연 언니와 함께 하지 않았다면 처음부터 마지막 촬영까지 정말 어려웠을 거다. 언니와 단둘이 그런 시간이 주어져서 정말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여럿이 함께 하는 시간보다 단둘이 있을 때 더 적응을 잘하는 편인데, 가장 어려운 존재일 수 있는 효연 언니와 초반에 그런 시간이 생겼고, 그 이후에 모든 게 잘 풀렸다. 첫 유닛 무대 이후 다들 저를 더 편하게 대해줬고, 마음이 놓인 상태에서 촬영을 진행할 수 있었던 것 같다.

- 에일리와 함께 했던 'Don't cry for Me'로 상대팀을 꺾고 승리했다. 에일리와 무대 준비 과정 때부터 호흡이 좋아 보이더라

정말 좋았다. 에일리 언니 역시 효연 언니와 마찬가지로 저에게는 범접할 수 없는 분이었다. 데뷔하기 전에 휘성 씨 콘서트장에서 에일리 언니 무대를 본 적이 있다. 그때의 기억이 강했는데, 이렇게 다시 만났다니 감회가 새롭더라. 같이 작업까지 한다니 엄청 대단한 일 아니냐. 에일리 언니는 정말 멋있다. 정말 프로페셔널하다. 에일리 언니 같은 가수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롤 모델이 생겼다.

- 마지막 경연 무대에서는 퀸와사비와 만났다. 극과 극 성향의 래퍼의 만남에 기대가 컸다. '굿걸' 멤버들도 '전혀 상상이 안 간다'며 놀라워했다

- 사실 '굿걸' 멤버들 중에서 가장 빨리 친해진 게 퀸와사비다. 이야기를 나눠보니까 비슷한 부분이 많더라. 그런데 다른 분들은 우리가 많이 다르다고 생각하더라. 오히려 '그렇게 생각하다니, 의왼데?'라고 생각했다(웃음). 초반에 대기실을 같이 썼다. 이야기를 나누는 데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더라. 그리고 둘 다 방송은 처음이다 보니까 잘 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 '굿걸' 다른 멤버들의 무대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무대도 있었나

개인적으로 (장) 예은이의 '목소리' 무대가 좋았다. 예은이의 도전이었다. 예은이는 주체적으로 모든 걸 해내려고 하는 친구였다. 그런 걸 잘 보여준 무대가 아니었나 싶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어떻게든 한다는 예은이의 '뚝심'을 잘 보여준 무대였던 것 같아서 제일 좋아한다.



- '굿걸' 출연 전 후 가장 달라진 점이 있다면

저라는 존재를 많이 알릴 수 있었다.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많이 생겼다. 아직 오프라인으로 팬들을 만날 기회가 없어서 체감은 못하고 있지만, 제가 이제까지 해오던 일들에 관심을 가져주시는 분들이 많이 생겼더라. 긍정적인 변화인 것 같다. 기분 좋다. 제가 진행하고 있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는데, 청취자분들도 꽤 많이 늘었다. 처음에는 혼란스럽기도 했는데 많은 분들과 함께 하니 더 좋더라. 요즘 더 재밌게 하고 있다.

- 슬릭에게 '굿걸'이란

도전하는 사람들. 사실 제가 TV를 안 보게 된 경유도 생각해보면 여성이 미디어에서 수동적이고 객체로 비칠 때가 많다. 그걸 보기 싫어서 안 보게 된 거다. 지금도 여전히 그런 매체들이 많다. '굿걸'이라는 프로그램은 여성 아티스트들이 나온다. 남성 주체가 있다면 그것에 반하는 여성이 아니라 성별이 여성들이 나와서 여러 가지 장르에 도전한다. 그 10명이 한 명 한 명 다 다르다. 10명의 여성상을 제시해주는 거 아니냐. 그런 도전의 의미가 남다르다고 생각한다.

- 다른 경연 프로그램과 달리 여성 아티스트들이 '연대'를 한다는 점에서 시청자들도 만족스러워했다

많은 분들이 그렇게 느껴주셔서 감사하다. '굿걸'을 그런 점에서 재밌게 봐주셨다는 분들이 많이 계시더라. 그렇게 느끼시는 분들이 많이 늘었다는 것도 좋지만 단순히 가볍게 '재밌게 봤어'가 아니라 '정말 좋았다'라고 하는 마음들이 더 크게 느껴졌다. 이런 많은 분들의 마음들이 잘 전달돼서 비슷한 예능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굿걸' 이후 다른 예능에도 욕심이 생겼나

저는 늘 열려있다. 준비가 되어 있다(웃음). 제가 살아온 결이 있기 때문에 어떻게 비칠지는 잘 모르겠다. '굿걸'에서의 저의 모습을 보고 재밌어하시는 분들이 있지 않았냐. 충분히 저의 이런 모습들을 활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지 않겠냐. 재밌는 그림이 나올 거라 생각한다. 아직 보여줄 게 많다.

- 9월에 특별한 팬미팅을 준비 중이라고 들었다

비건 레스토랑에서 팬분들과 함께 음식을 나눠먹고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이번 팬미팅에서 무대도 보여드릴 예정이다. 감사하게도 이미 매진이 됐더라. 이렇게 까지 관심을 가져주실 줄 몰랐는데 깜짝 놀랐다. 비건 음식에 대해 거부감 없이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저는 여러 가지 장르에 기반하여 랩을 하고 있는 래퍼다. 싱글 단위로 꾸준히 앨범을 작업 중에 있고, 큰 프로젝트도 구상 중이다. 무엇보다 앞으로 협업을 많이 해보고 싶다. '굿걸'에 출연 이후 협업의 매력에 대해 많이 알게 됐고, 동료들도 많이 생겼다. 재즈 피아니스트 남메아리와 밴드를 하고 있는데, 그 외에도 주변 동료 뮤지션들과 어떻게 협업을 해야 결과물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 중이다. 요즘 저의 최대 관심사다.

[더셀럽 박수정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김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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