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세’, 당신은 차별과 편견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지 않나요? [씨네리뷰]
입력 2020. 08.19. 12:38:51
[더셀럽 김지영 기자] 노인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자식에게 폐를 끼칠까봐, 나이 때문에 자신의 말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까봐, 남들의 시선이 신경 쓰여 쉬쉬하고 넘어갔던 일들이 이제는 사회문제로 대두됐다. 그간 아무도 조명하지 않았고 용기를 내라고 응원해주지 않던 이들의 목소리에 임선애 감독이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아주 담담하게 영상으로 담아냈고 호소력 강한 메시지로 외친다. 스스로의 명예와 존엄을 지키는 일에 차별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최근 여성을 상대로 한 성범죄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대부분은 피해자를 대하는 올바른 태도를 다시 알아가는 중이며 피해자가 겪는 고통에 비해 현저하게 낮은 형량에 분노를 터트리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한 대상이 대한민국의 최 약층인 노인 여성이다. 거동이 불편하고 저항하는 힘이 부족해 성범죄자의 표적이 되고 있지만, 다른 범죄에 비해 알려지지 않은 게 불편한 사실이다.

젊은 여성이 성폭행을 당해도 피해자를 공감해주기는커녕, 온갖 비약들을 가지고 상처를 후벼 파는 세상에 노인 여성이 아픔을 호소해도 제대로 귀기울여주는 대상은 현저하게 부족하다.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치매를 의심하고 ‘젊은 남자가 왜 노인을’이라며 피해자의 인격마저 모독한다. 임선애 감독은 아무도 다루고자 하지 않았던 노인의 성범죄 문제를 화두로 던지며 인간의 존엄성을 이야기한다.

오는 20일 개봉하는 ‘69세’는 오로지 피해자인 효정(예수정)과 그를 돕는 동거인 동인(기주봉)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그려진다. 평소 무릎이 좋지 않아 물리치료를 다니던 효정은 남자 간호조무사 중호(김준경)에게 성폭행을 당하는데, 피해자의 아픔을 노골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영화의 시작을 성폭행으로 시작하지만 아무런 선입견이 들어가지 않도록, 피해자의 고통을 전시하지 않도록 영상 없이 소리로만 전달된다. 관객은 암흑같이 어두운 극장에서 사건의 발단을 접하고 중호의 성희롱을 직접 듣는 듯 수치심을 함께 느끼게 된다.

퇴원 후 눈에 띄게 달라진 효정의 행동, 손목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멍, 헛구역질을 거듭하는 것을 보며 동인이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린다. 효정은 동인의 믿음으로 용기를 가지고 경찰서로 향한다. 그러나 경찰은 사건의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며 효정의 치매를 의심하고 동인과 동거하고 있다는 이유로 이들을 비웃는다. 세상의 편견이 한 데 녹여있다.

효정은 차림새 때문에 무시하는 시선과 행동 때문에 깔끔한 스타일로 옷을 입고 다니는데, 이 또한 그를 성희롱하는 대상으로 만들고 편견에 사로잡히게 한다. “할머니가 아가씨처럼 옷을 입고 다니네” “얼굴만 안 보면 아가씨인 줄 알겠어” “몸매가 아가씨 같네” 등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말들이 그를 더욱 무너지게 만들고 아픈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

사건의 개연성이 없다고 구속영장을 기각하고 효정의 심리 상담을 담당했던 전문의도 “진료실에 CCTV가 있었더라도 범죄를 입증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모든 건 나이 때문이다. 20대 남성이 60대 노인을 성폭행할 이유가 없다는 편견과 오십견이 있는 할머니가 어떻게 20대 남성을 거세게 저항했겠냐는 것이다.

계속되는 현실의 벽에 부딪히는 효정은 무너지는 듯 하지만 다시 일어난다. 그리고 세상에 외친다. 불편한 얘기이지만 그럼에도 용기를 내는 건 살아있기 때문이라고.



억울한 누명, 피해 입은 사실을 폭로하는 영화에서 주인공을 돕는 변호사가 필수의 존재로 등장하지만, ‘69세’에서는 오로지 효정 혼자서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다른 이의 도움 없이 효정은 존엄성을 내세우며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약속하고 앞으로 걸어간다. 효정을 돕는 동인은 부차적인 존재면서 그 역시도 세상의 편견과 함께 맞서 싸운다.

아직 효정, 동인과 비슷한 세대가 아니라면 평소 무의식적으로 노년을 향해 존재하고 있었던 편견과 선입견이 얼마나 내재돼 있었는지 ‘69세’를 통해 반성할 수 있을 터다. 더불어 최대한 고통을 덜어내고 담담하게 담아낸 연출임에도 묵직하게 다가오는 피해자의 아픔이 관객에게 전달돼 효정의 아픔이 뼛속까지 스며든다.

특히 임순애 감독은 조명과 빛을 이용해 피해자의 아픔과 암울한 상황을 전달하는데, 극의 말미 앞을 향해 나아가는 효정이 맑은 하늘 아래서 결단을 하는 모습을 통해 영화는 열린 결말로 막을 내리지만 끝까지 해결해나갈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와 함께 최대한 감정을 절제시키고 정적인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메시지를 엔딩까지 끌고 가는 힘을 보여준다. 어느 한 순간도 극의 집중을 흩트리지 않고 극장 문을 나설 때까지 여운을 짙게 남긴다.

효정을 연기한 예수정은 영화 ‘부산행’ ‘82년생 김지영’ ‘신과 함께- 인과 연’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슬기로운 감빵생활’ 등에서 보여준 연기와 다른 톤을 표현해냈다. 효정의 단단한 내면을 미묘한 표정과 분위기로 보여주고 관객이 그에게 빠져들게 만든다. 중호를 고소하기 전 갈등하는 마음, 수사 중 느끼는 모욕, 이따금씩 떠오는 아픈 상처로 인해 트라우마를 겪는 일상, 마음을 다잡은 뒤 중호에게 엄포를 할 때 등 매 순간마다 다른 분위기로 진정성 있게 또 절제된 감정으로 이야기한다.

킬링타임용이 아니며 불편한 이야기임에는 틀림없는 ‘69세’를 그럼에도 봐야하는 이유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힘이 있다. 피해자의 아픔과 고통만 내세우지 않고 여기서 더 나아가 세대를 불문하는 인간의 존엄성을 이야기하기 때문. 평소 생각하지 못한 주제를 이번 영화를 통해 고민해보는 게 어떨까.

‘69세’는 오는 20일 전국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더셀럽 김지영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 영화 '69세' 포스터,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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