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세’ 임선애 감독, 소재에서 주제로 뻗어 나가기까지 [인터뷰②]
입력 2020. 09.01. 17:19:11
[더셀럽 김지영 기자] (②에 이어서) 최근 어느 세대, 성별을 지칭하고 희롱하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노인에게도 혐오가 이어졌다. 아직 겪어보지 못한 나이, 경험할 일이 없을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에서 파생된 말들이 유행을 가장한 혐오가 된 것이다.

영화 ‘69세’는 범죄의 사각지대인 여성 노인 성폭행을 전면으로 다루면서 인간의 존엄성을 다루는데, 이 속에 우리가 그동안 깊게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도 명쾌하게 꼬집는다. 사건의 발단인 효정이 당한 성폭행 사건도 결국엔 한 인간을, 존엄성을 무시한 행동이라는 점에서 이야기는 영화의 주제로 가지를 뻗어 나간다.

이는 예수정의 뜻과 동일했다. 시나리오를 읽은 예수정은 효정(예수정)이 당한 사건을 보고 “고통스러울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고 했다. 효정의 처지를 다 알고 있는 중호(김준경)는 효정이 만만하다고 생각해 그를 타겟팅했고 그런 그에게 힘으로 제압해 성폭행했기 때문이다.

“성폭력도 폭행이지 않나. 더군다나 영화의 후반부에 나오지만 효정은 오십견 환자기 때문에 더더욱 힘을 써서 거부하기 힘들다. 그런 약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중호가 무력으로 효정을 제어한 것인데, 약해서, 노인이라서 피해를 당한 게 너무 자존심 상한다는 표현이 좋았다. 사실 효정은 극에서 얕게 그려지지만, 그동안 살아오면서 그것과 준하는 추행과 희롱을 겪어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신고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만한 동인(기주봉)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나를 믿어줄 사람, 들어줄 사람에게 말할 수 있지 않나.”

결국 효정이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혼자만의 결심도 있었겠으나, 그의 옆에서 묵묵히 응원해주는 동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앞선 인터뷰에서 미투운동과 같은 연대, 움직임으로 지금의 ‘69세’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고, 또 다른 목소리를 내는 데 용기를 내는 사람이 있듯이 효정의 용기도 결국엔 연대로 더욱 힘을 낼 수 있었다.

“효정이 갑자기 굳게 마음을 먹고 고백을 하려고 했던 게 아니다. 이야기를 하면 자신을 믿어줄 사람, 들어줄 사람이 동인이었던 것이고 그런 말을 했을 때 신고를 말리거나 ‘한 번 더 생각해 봐라’는 제지보다는 잘못됐다고 함께 목소리를 내줄 사람이 있어서 용기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중요한 것 같다. 주변에 누군가가 자신의 말을 믿어주고 그 사람과 연대해줄 때 결국은 목소리가 밖으로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임선애 감독은 이번 데뷔작에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모두 담아내면서 한 사람도 불쾌하지 않게, 자신의 과거 행동을 되돌아보게끔 연출했다. 임선애 감독의 메시지는 영화 곳곳에 드러나지만 가장 눈에 띄고 경각심을 주는 장면이 칭찬의 탈을 쓴 희롱으로 고통스러워하는 효정의 모습이다. 효정에게 가해자 중호와 같은 말을 하는 수영장 회원들은 악의 없이 칭찬으로, 효정이 들리게끔 말을 한다. “할머니답지 않게 몸매가 좋아” “뒷모습만 보면 아가씨인 줄 알겠어”하는 말 등이다. 이에 효정은 트라우마로 괴로워하지만 이내 이들에게 일침을 가하며 관객에게도 반성하게끔 한다.

효정이 들은 말이 표면적으로 보기에는 ‘젊어보인다’와 같은 칭찬일지라도, 외모 품평의 대상자가 된다는 것 자체로 불쾌함을 느낄 수 있을뿐더러 효정과 같은 이들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임선애 감독은 이를 성(姓)과 세대를 구분 짓지 않고 경각심을 느끼게 하려 신경을 썼다.

“수영장 회원들이 처음 들어올 때 남자 선생님 몸에 대해서 평가를 하고 희롱을 한다. 여성도 분명 남성에게 성희롱적 발언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 의도적으로 넣은 대사다. 예쁘고 몸매 좋다고 하면 칭찬인 줄 아는 그런 것들이 받아들여지던 시대에서 지금은 달리 생각할 수 있는 때가 온 것 같다. 자기검열을 하고, 외모 품평이 조심스러운 게 좋은 현상이지 않나. 칭찬이라고 전제를 까는 순간 상대를 대상화하고 그런 이야기가 좋다고 하는 것은 온전히 자기 기준이다. 우리 주변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미처 인식하지 못한 부분이 자연스럽게, 의도했지만 의도적으로 드러나지 않으려고 했다.”

이와 비슷한 맥락을 가진 장면이 편의점 씬이다.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친 동인(기주봉)은 편의점 야외 테이블에서 라면을 먹다가 급한 소식을 듣고 차마 치우지 못한 채 자리를 뜬다. 이를 본 편의점 직원은 동인이 다 들리게끔 노인 혐오성 발언을 하고 동인의 사과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화가 난 동인은 행패를 부려 경찰서로 연행되지만, 신사답게 또 사과한다.

임선애 감독은 이 장면을 예수정 과거 인터뷰에서 착안했다. 영화 ‘신과 함께-죄와 벌’로 인터뷰를 진행한 예수정은 당시 ‘100세 시대에 60대면 할 게 많다. 남은 삶을 끌려가듯 살지 말고, 남은 삶에 감사하며, 운전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65세를 넘은 분들이 스스로를 분리수거 해서 포기하곤 한다’ 등 삶의 운전자가 돼야 한다는 말을 보고 시나리오에 녹아냈다.

“노년 세대를 보고 불필요한, 쓸모없다고 폄훼하는 경우들이 많지 않나. 노인을 폄훼하는 문화들도 많고, 용어도 있고. 결국 우리가 닥칠 미래인데 다들 자기가 늙는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가 망각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것을 표현하고자 했다.”



영화는 효정이 사건을 당한 병원 옥상에서 고발문을 두고 나오는 것에서 막이 내린다. 직접 자신의 손으로 사건을 알리는 데 힘을 쓰는 것보다 고발문이 바람에 날려 누군가가 읽어주기를,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가 세상에 퍼지기를 바란다. 용기를 내어 옥상에 오르고 고발문을 두고 나오는 효정의 모습이 한결 가벼워 보여 영화는 열린 결말이지만 효정에게 긍정적인 앞날이 기다리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고발문을 직접 효정이 날리는 건 어색하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광화문광장에서 1인 시위를 하는 게 어떻냐고 했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시사프로나 뉴스에서 늘 봐왔던 모습을 영화에서 답습하고 싶지 않았다. 효정만의 방식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효정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용기를 낸 게 아니다. 자기 자신 일이라면 누군가의 손에 쥐여 줘야 한다. 관철을 시켜야 하니까. 그런데 효정은 성폭력 상담센터에서 상담을 받고 나올 때 상담센터로 들어가는 여고생을 보면서 자신보다 처지가 좋다고 생각할 수도, 나 아닌 또 다른 세대도 겪고 있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또 딸의 피아노 가게에 찾아갔는데 딸과 통화를 하고 있지 않나. 69세가 묵인하고 침묵한다면 다음 밑의 세대도 또 당하고 그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면 안 된다는 판단을 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효정은 자기 자신보다는 하나의 용기라고 생각한 것이다.”

성폭행을 당한 후 옥상에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영화 초반의 효정과 극 말미의 효정은 같은 공간이지만 다른 분위기로 관객을 맞이하고 떠나보낸다. 임선애 감독은 영화의 오프닝과 엔딩 장면을 구체화 시킨 뒤 작업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극 말미 나레이션으로 ‘올라섰다’ ‘한 발을 내딛었다’ ‘한 걸음, 한 걸음’이라고 흘러나온다. 영화 초반과 중첩이 되는데, 피해를 입었던 그 날 올라섰던 순간이 있고 마지막엔 효정이 옷을 갖춰 입고 그곳에 간 것으로도 효정은 절반을 성공한 셈이다. 어차피 거기에 올려두면 바람에 날아가고 세상에 알려질 테니까. 예수정 선생님도 마음에 드셨던 것 같다.”

임선애 감독은 이번 작품을 연출하면서 피해자의 고통을 전시하지 않으려 노력했고 또 많은 것을 배웠다. 촬영이 들어가고 나서도 여전히 시나리오에 구멍은 있고 이를 배우가 채워야 한다는 점, 이밖에 촬영과 편집, 보정 등 모든 부분에서 힘을 더해야 영화가 비로소 탄생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다음 작품엔 더 많은 경우를 대비해야겠다”며 웃음을 지었다.

“‘69세’도 다른 걸 쓰다가 넘어오긴 했지만 너무나 즐겁고 매력적이며 만족스러웠다. 또 열정적으로 몰입하는 순간이 찾아오길 바란다. 어떨 때는 이야기 안에서 주인공들이 움직이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데 그런 순간이 오기를 바라면서, 시나리오를 쓰면서 기다린다. 연출을 처음부터 하고 싶었지만 결국 빙 돌아서 지금에서야 하게 됐다. 지금은 그냥 내가 계속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연출자가 되고 싶다. 스스로 만들어내는 오리지널 각본, 원작이 있는 이야기, 내가 끌리는 이야기를 풀어보고 싶다. 영화를 만드는 게 즐겁고 체력이 닿는 한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싶다.”

임선애 감독과 인터뷰를 진행하던 당시는 광화문 집회로 인해 막 코로나19가 재확산되던 시기였다. 다소 무거운 주제, 영화관을 선뜻 방문하기 어려운 시기로 관람을 독려하는 목소리를 힘주어 내지 못하는 시점이지만, 다양한 방법으로든 ‘69세’를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

“장벽이 높은 영화긴 하다. 그렇지만 소재나 이야기, 노년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도전의식 같은 마음으로 했을 때처럼 관객도 한국 영화에서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면을 좋게 봐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이런 영화도 있으니 그래도 한 번 봐주세요’하는 마음으로, 그래도 봐주시면 좋을 것 같다.(웃음)”

[더셀럽 김지영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 (주)엣나인필름 제공, 영화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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