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담보’ 하지원, 24년 연기 인생의 원동력 ‘지금 이 순간’ [인터뷰]
- 입력 2020. 10.08. 14:46:05
- [더셀럽 전예슬 기자] ‘담보’ 속 어린 승이를 보는 듯하다. 천진난만하게 웃음 짓다가, 가족 이야기를 할 때면 이내 곧 눈시울이 붉어진다. 배우 하지원의 이야기다.
2015년 개봉된 ‘목숨 건 연애’ 이후 오랜만에 국내 스크린에 모습을 드러낸 하지원. 그가 6년 만에 복귀를 알린 작품은 ‘담보’(감독 강대규)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을 줄 몰랐다”라고 말한 그가 ‘담보’ 출연을 결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감독님이 미리 전화를 주셨어요. ‘담보’라는 작품이 있는데 어린 아이가 있고, 어른 승이 역을 맡아줬으면 좋겠다고 하셨죠. 영화의 시작과 끝 부분에서 무게감 있게 사람들에게 진정성 있게 다가갔으면 한다고. 그게 중요하기 때문에 분량은 이 정도라고 하셨죠. 감독님에게 미리 이야기를 듣고 시나리오를 읽었어요. 관객들에게 주는 어떤 메시지를 공유하고 싶더라고요.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그 느낌들을 주고 싶었어요. 사실 이 영화에서 분량이 중요한 건 아니니까요. 늘 관객을 만날 때는 항상 똑같이 설레고 떨리는 것 같아요. 이번에도 떨려요. 많은 분들이 영화를 봐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크죠.”
‘담보’는 인정사정없는 사채업자 두석과 그의 후배 종배가 떼인 돈을 받으러 갔다가 얼떨결에 9살 승이를 담보로 맡아 키우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세 사람은 예상치 못한 인연으로 얽힌 후 조금씩 서로 간의 거리를 좁혀간다. 어린 승이 역의 박소이가 극의 초, 중반을 이끌었다면 어른 승이의 하지원이 클라이맥스를 담당한다. 친모와 친부를 만나는 장면은 많은 감정을 쏟게 해 눈물샘을 자극하기도.
“감정적으로 진짜 많이 힘들었어요. 극을 처음부터 쭉 연기한 게 아니기 때문이죠. 그리고 연기하는 부분도 깊고, 세고, 아팠어요. 정말 많이 힘들었죠. 엄마를 만나는 신이 첫 촬영이었는데 첫 촬영부터 힘들었어요. 마지막 장면은 재촬영을 했어요. 쏟아낸 감정을 다시 시간이 지난 후 한다는 건 힘든 일이에요. 이미 기억된 메모리가 있기 때문에 거기서 눈물을 흘리고, 만나는 감정을 새롭게 한다는 건 사실 힘든 일이죠. 그 촬영할 때 걱정도 많이 되고 촬영을 하면서도 많이 힘들었어요. 테이크도 몇 번 많이 갔는데 마음에 들지 않더라고요. 감정이 나오지도 않았죠. 마지막, 영화에서 나오는 장면은 우주에 내가 혼자 있듯 다 지웠어요. 슬픈 감정, 어떠한 것도 다 비운 상태로 다시 시작하는 느낌으로 찍었죠. 가끔 연기를 하다보면 감정 컨트롤이 안 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지점까지 가다보니까 눈물을 많이 흘려서 분위기가 이상해지기도 했어요.”
엄마의 빚과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두석과 종배에게 맡겨진 9살 ‘담보’ 승이. 나이에 맞지 않게 자립심이 강하고 영특한 모습을 보이기도. 어린 승이를 보며 공감갔거나 이해가 갔던 부분은 무엇일까.
“어린 승이가 연기하는 것을 보고 가슴이 아팠어요. 그 어린 아이가 겪은 일들은 엄청나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두석 아저씨가 구출하고, 위기 상황에 처한 승이를 봤기 때문에 두석 아저씨가 이 아이에게 얼마나 많은 사랑을 줬는지 느껴졌어요. 사채업자란 걸 떠나 굉장히 따뜻한 사람들이잖아요. 평범한 가정이 아닌 특별한 사랑을 받았기에 승이는 당당하게 열심히 살아가는 힘이 됐을 거예요. 저는 조금씩 보여주는 몽타주가 울컥했어요. 승이가 고등학생 때 두석 아저씨가 오토바이로 승이를 데리러 오는데 ‘친구들이 보니까 오지말까?’라고 해요. 승이는 ‘신경 쓰지 마’라고, 아빠보다 더 아빠를 감싸주죠. 어린아이 같지만 어른들의 마음을 승이는 다 알잖아요. 그렇게 자란 승이가 너무 사랑스러웠어요.”
이 세상엔 가족보다 못한 가족도 있지만 ‘담보’는 가족이 아닌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가족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든다. 하지원 역시 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어도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을 연기하며, 다시 한 번 ‘가족’의 의미를 되새겼다고 한다.
“제가 살면서 의지할 수 있고 지켜주는 존재가 가족이에요. ‘담보’를 통해 더 많이 느꼈죠. 어떤 조건이나 이런 것 없이 나를 위해 싸워줄 수 있고, 보호해줄 수 있고. 친동생이 맞아서 들어오면 대신 싸워주잖아요. 그게 가족인 것 같아요. 날 위해 지켜주고, 보호해주고, 조건 없이 의지할 수 있고. 그런 게 더 많이 느껴졌죠.”
하지원의 눈을 바라보면 깊이가 느껴진다. 웃음을 지을 땐 행복을, 눈시울을 붉힐 땐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눈물이 흐른다. 하지원은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 깊고, 풍부한 감정연기가 가능했던 이유는 그 상황과 역할에 공감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저는 최대한 놓인 상황에 100% 몰입 해야만 눈물이 나더라고요. 제가 이입이 안 되면 눈물이 안 날 때도 있어요. 그래서 작품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시나리오예요. 그 다음은 캐릭터적인 부분이죠. 이 세계에 한 번 들어가서 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 해요. 저는 무대에 서는 게 시간여행자 같은 느낌이 들어요. 이 세상에 들어가서 느껴보고, 표현해보고 싶다라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죠. 캐릭터도 제가 공감을 해야 해요. 때론 이 캐릭터가 너무 안쓰러워서 내가 지켜주고 싶은 캐릭터가 있고, 아니면 너무 매혹적이어서 한 번 그 삶을 살아보고 싶은 캐릭터가 있죠. 그때그때마다 조금씩 다른 것 같아요. 행복한 삶만 있는 게 아니고, 비극적이거나 여러 다양한 삶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KBS 드라마 ‘신세대 보고 어른들은 몰라요’로 데뷔한 하지원은 어느덧 데뷔 25년차다. 그동안 여러 작품과 역할로 대중을 만나왔던 그에게 ‘지칠 때는 없었냐’라고 묻자 “좋아하는 일이니까 에너지를 쏟을 수 있었고 미칠 수 있었다”라고 답했다.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살아가는 하지원을 보니 절로 ‘천상 배우’란 말이 떠오르지 않는가.
“‘이러다 죽는 거 아니야?’라고, 잠을 일주일 씩 못자면 지치는 순간들이 와요. 제가 좋아하지 않는 일이었으면 못했을 거예요. 제가 좋아하니까 에너지를 쏟을 수 있고, 미칠 수 있었던 거죠. 아프고, 지치고 하는 것들이 제가 좋아하는 것에 미치지 못하니까 계속 도전할 수 있었던 거예요. ‘지금 이 순간’이라는 말을 좋아해요. 지금 이 순간에 에너지를 다 쓰죠. 힘을 남겨두지 않아요. 그게 저의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더셀럽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