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근 “신정원 감독 믿고 따른 ‘죽않밤’, 준비한 건 대사뿐” [인터뷰]
입력 2020. 10.12. 16:48:48
[더셀럽 김지영 기자] 배우 양동근에겐 힘이 있다. 의도적으로 웃음을 유발하려 우스꽝스런 표정을 짓지 않아도, 슬랩스틱을 하지 않아도 관객을 폭소케 하는 힘이 존재한다. “진지한 사람”이라고 자신을 설명하는 양동근이지만,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을 만나 그의 매력이 더욱 빛을 발한다.

지난 추석을 겨냥해 개봉한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은 죽지 않는 언브레이커블을 죽이기 위한 이야기를 그린 코믹 스릴러. 양동근은 극 중 자신에게 의뢰를 온 소희(이정현)를 상담해주는 닥터 장으로 분한다.

남편 만길(김성오)의 외도를 의심한 소희는 인터넷에서 검색해 닥터 장에게 찾아가고, 닥터 장은 그런 소희를 위로하고 다독이며 자신이 알아본 만길에 대해 폭로한다. 그런 과정에서 닥터 장은 만길이 보통 인간과 다른 언브레이커블이라는 것을 알아채고 소희, 세라(서영희), 양선(이미도)과 함께 예상치 못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극 초반 흥신소 대표로 짐작케 하는 닥터 장의 매력은 극의 중반부에 다다르면서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만길을 살해하기 위해 설치해놓은 덫에 걸려 사망하고, 시신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뜻밖의 폭소를 안긴다. 더군다나 사건의 말미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려 “초등학교 어디 나오셨어요?”라고 아무렇지 않게 물어보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배를 움켜쥐게 만든다. 양동근과 함께 호흡한 배우들 또한 그의 열연으로 현장에서 웃음을 참느라 고역이었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그는 순진무결한 표정으로 “웃기려고 하는 코드가 전혀 없다”며 스스로를 ‘진지충’이라고 소개했다. 오히려 ‘아재개그’를 하는 쪽이라고 밝혀 더욱 뜻밖의 웃음을 자아낸다. 이번 작품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의 웃음을 전적으로 담당하고 있는 그는 도리어 신정원 감독의 공으로 돌렸다.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은 예상치 못한 포인트에서 웃음을 주는 재미가 있다. 웰메이드 상업영화 호흡 흐름에 지쳐있는 우리에게 신선함을 주는 코드. 그게 신정원 감독님의 코드다. 감독님의 전작 ‘시실리 2km’에서는 그런 코드가 통하지 못했는데 2020년에는 통하지 않나 싶다. 저는 진짜 감독님이 현장에서 주시는 디렉션으로 만들었다. 제가 준비한 것은 대사 외운 것밖에 없다.”

대본에 표현돼 있는 것이 적었고, 현장에서 신정원 감독과 만들어가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닥터 장의 장면 중 가장 웃음을 많이 자아내는 감전된 모습도 이에 해당한다. 신정원 감독은 현장에서 양동근에게 감전된 동물의 사진을 보여줬고, 양동근은 포인트를 집어내 캐릭터의 특징을 살렸다.

“표현을 어느 정도로 해야 할지, 수위가 촬영 당일에도 정해지지 않았다. 촬영 날 감독님이 한 장의 사진을 가져오셨는데 그 사진에서 감전된 동물의 입술이 말려 올라갔더라. 감독님은 그 입까진 얘기하지 않으셨는데 제가 그것을 보고 보여드렸더니 웃음이 터지시더라. 계속 웃으셨다고 하는데 저는 몰랐다. 그 정도의 반응일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현장에서도 반응이 뜨거워 저도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태였다.”

양동근과 함께한 이정현, 이미도, 서영희는 양동근 때문에 터지는 웃음을 참느라 현장에서 매우 힘들었다고. 그러나 양동근은 감전 장면에 ‘반응이 뜨거워 어찌할 바 몰랐다’고 한 것처럼, 그저 전적으로 신정원 감독을 믿고 따랐다. 현장에서 가볍게 주는 디렉션을 이해하고 습득해서 표현하는 게 그의 몫이었다.

“제 마음가짐 자체가 디렉션이 오면 무조건 해보자는 것이었다. 의문, 질문을 가지지 않고. 질문하는 것 자체가 내 중심이 차 있으면 받아들일 수 없어서 한다. 받아들일 수 없는 것 자체도 없애고 질문하지 않고 디렉션이 오는 대로 움직였다. 그랬더니 지금 많이 웃어주시는 이 상황이 왔다. 코믹영화는 억지로 오버하는 경향이 있어서 기피하기도 했는데 감독님의 영화는 상황이 웃겨서 웃게 되는 향연이다. 그래서 자신 있게 하게 됐다. 사실 저는 웃음 코드 자체가 없어서 몰랐고 주변에서 웃기다고, 재미있다고 하니까 믿고 출연했다.”



양동근은 신정원 감독의 믿음을 토대로 특별한 어떤 준비보다는 완벽하게 대사의 완급조절을 하는 것에 중점을 뒀다. 다른 캐릭터에 비해 많은 대사를 늘어지지 않게, 관객의 집중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맛깔나게 표현할 수 있도록 신경을 썼다.

“편집하다가 길거나 지루하면 편집이 된다. 제가 대본을 봐도 설명하는 부분에서 대사가 많았고 거기서 처지면 편집이 되겠다는 판단이 서더라. 빨리 안 가면 큰 일 나겠다 싶었고, 저도 그렇고 스태프들도 아까울 터이니 조금이라도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템포를 빠르게 해보려고 했다. 대사에 틈이 생기면 편집이 되니 빨리 말을 한다. 저도 다급한 호흡으로 대사를 하는 건 처음 해봤다.”

일부 다른 배우들은 맡은 캐릭터와 실제 성격과의 간극을 해소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다. 자신의 성격과 달라 캐릭터에 몰입하기 어려워하고, 작품에 임하는 동안 캐릭터에 빠져들고 도리어 실제 자신의 모습과 달라져 캐릭터를 떠나보내는데 시간을 소요하기도 한다. 양동근은 대중이 바라보는 모습과 실제 성격의 차이로 부담을 느끼기보다는, 대중의 시선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진지하긴 하지만 어느 순간에서부터 처음 보는 분이든 저를 보면 웃더라. 무심결에 한 마디 던지면 또 웃고. 이상하다싶어서 물어본 적도 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풍기는 에너지가 바뀐 것 같다. 그리고 제가 배우로서, 표현가로서 하는 것을 보게 될 사람, 관객, 시청자들의 니즈가 무엇인지, 매체를 보면서 얻고자하는 게 무엇인지 또 궁극적인 즐거움을 이제 좀 알게 됐다. 이왕이면 유쾌하거나 즐거운 것을 하고 아이들이 보니까. 또 아내도 즐거운 것을 좋아한다. 재미없다고 구박을 당하긴 하지만 그러다보니 여러 생각 없이 코믹장르를 하게 됐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추구하지 않고 대중이 원하는 니즈에 맞출 것. 이는 단순한 고민과 판단에서 나온 게 아닌 여러 해에 거쳐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였다. 데뷔 33년 동안 수많은 걱정과 고민, 스트레스를 겪었을 그가 내린 결론이라는 점에서 더욱 성숙하게 느껴졌고 그의 말들이 퍽 와 닿았다.

“배우, 혹은 예술가라는 차원에서 접근해서의 고민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저는 이제 그런 예술가 적인 접근은 안하기로 했다. 이건 기술직이다. 연기 기술을 가지고 산업에 투입된 도구. 그렇게 혼을 불태우는 건 엄청난 소모전인데 나 혼자 살면 그런 소모전을 하겠지만 처자식도 있고 하니까 처절하게 나를 버려가면서 하면 집이 안 돌아간다. 30년 열심히 쌓은 기술직이라고 생각해서 다른 재미를 찾아가는 것이다. 혼신을 다해서 이렇게 해야 연기를 보고 만족감을 가질 때가 있었고 그런 에너지로는 롱런을 할 수 없을 것 같더라. 30년의 굴곡을 겪다보니 지금 시점은 정말 기술직으로 여기면서 내가 해야 할 것, 배우의 혼신의 힘으로 가는 작품 말고 감독, 영화는 완전히 감독의 예술이라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서 이 작품의 반응도 재밌다. 이전 것을 기준으로 오늘 온 게 아니라 새로운 시도와 새로운 시각으로 새롭게 임했는데 지금 모든 것이 새롭다. 정말 새 출발인 느낌 같다. 배우 인생 시작한 첫 작품.”

대중문화예술인이라는 한 직업을 30년 넘게 한 그는 인생의 선배로서 하나의 일을 오래할 수 있는 비법으로 ‘무조건 버텨라’라고 강조했다. 양동근은 “하는 일은 같아서 권태롭지만 새로운 철학을 찾게 되는 순간이 오는 것 같다”고 조언했다.

“하나를 오래 하려면 무조건 버텨야 한다. 물론 저도 우여곡절 많았고 위기의 순간도, 때려치우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저는 다른 일을 할 재주도, 뇌도, 의지도 없었다. 당연히 오래하다 보면 매너리즘에 빠지고 권태를 느낀다. 어떤 일이든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유가 바뀌더라. 내가 해야 하는 이유 말이다. 10년차 때 다르고, 20년차 때 다르고. 그게 재밌는 것 같다. 하는 일은 같아서 권태롭지만 새로운 철학을 찾게 되는 순간이 오는 것 같다. 그래서 ‘무조건 버텨라’다.”

[더셀럽 김지영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 TCO(주)더콘텐츠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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