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성 찾으려” 이미도, ‘죽않밤’에 담은 열정 [인터뷰]
입력 2020. 10.16. 16:53:10
[더셀럽 김지영 기자] B급 영화 감성에 신정원 감독의 매력을 한 스푼 넣은 ‘죽지않은 인간들의 밤’에는 사실 의뭉스러운 구석이 여러 군데다. 하지만 이의 부족함을 전혀 느낄 새 없이 러닝타임 내내 배를 움켜잡고 포복절도를 할 수 있는 건 배우의 몫이 크다. 그 중에서도 이미도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안타까움과 또 뜻밖의 웃음을 동시에 안기는 ‘웃픈’ 상황을 맛깔나게 표현해냈다.

지난 달 29일 개봉한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감독 신정원)은 언브레이커블의 존재를 확인한 소희(이정현)가 친구 양선(이미도), 세라(서영희)와 함께 언브레이커블을 죽이려다 벌어지는 일들을 담았다. 이미도가 맡은 양선은 소희, 세라의 고등학교 동창으로 현재는 무명배우로 활동 중이다.

이미도는 첫 등장부터 웃음을 안긴다. 여고 동창모임에서 뒤늦게 나타난 양선은 ‘또각’소리를 내며 우아하게 계단을 내려오지만 이내 폼이 흐트러져 친구들에게 비웃음과 안타까움을 산다. 서울에 올라와 배우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사투리가 고쳐지지 않아 감독에게 혼이 나고, 급기야 남자친구가 바람을 폈다는 소식까지 겹치면서 딱한 상황들이 이어진다.

그럼에도 양선은 비극적이거나 우울한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적절한 웃음과 섞여 말 그대로 웃긴데 슬픈, ‘웃픈’ 상황을 자아낸다. 발목이 접질려 넘어지는 순간에 어쩔 수 없이 터지는 웃음, 남자친구의 급작스러운 사망으로 당황스러워하는 모습에 보는 관객들에겐 도리어 웃음이 새어나온다. 슬픈 상황에도 만길(김성오)의 생일을 축하할 수밖에 없는 양선의 처지엔 폭소가 터진다.

연이어 사건들이 터지고 종잡을 수 없는 전개에도 왠지 모르게 납득이 가고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영화를 다 보고나서야 몇 몇의 부분에 고개가 끄덕거려지지만, ‘그래서 언브레이커블이라는거야?’라는 의문이 남는다. 이는 이미도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영화처럼 기승전결이 정해져 있지 않고 어떠한 사건들이 터진다. 그리고 이 사람이 외계인인지, 어떻게 뭘 해야 하는지 그런 게 설명되지 않고, 양선은 왜 이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지 등이 설명 안 돼 있으니까 그런 게 조금 이해하기 힘들었다. 사실 저희 삶이 영화처럼 기승전결,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지 않지 않나. 사건들의 연속인데. 신정원 감독이 아니었다면 이해하기 어려웠을 거다. 감독님 작품이니까 더 이해가 되더라.”

시나리오를 처음 접한 이미도는 ‘신정원 감독님이 쓰신 시나리오니까’라는 이해로 최대한 받아들이려 노력했고, 그럼에도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엔 감독에게 질문하고 또 질문했다. 신정원 감독에게도 명확한 답을 들을 수 없자 그는 다르게 이해하기로 결정했다.

“감독님을 쫓아다니면서 양선이 이 사건에 대해서 아는지, 모르는지를 물었다. 처음에는 그냥 연기하라고 하셔서 했는데 제가 하도 물으니 감독님이 본인의 네 편의 작품 중에서 양선이 제일 어려운 캐릭터라고 하더라. 모르겠다 양선은. 사실 저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떠한 힘들이 작용하면서 움직이고 있는데 모르고 그냥 살지 않나. 그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고. 그런 것처럼 그게 이 영화의 묘미가 아닌가한다.”



신정원 감독에게도 얻어내지 못한 이해는 결국 이미도의 몫이 됐다. 대본에는 닥터 장(양동근)과 양선이 연인이라는 설정만 있을 뿐 이들의 애틋한 관계와 감정이 다뤄지진 않았다 이에 이미도가 설정을 추가했고 그것이 지금의 극 중 닥터 장과 양선의 모습이었다. 최대한 관객이 보기에 양선이 억지스럽지 않고, 극에 잘 녹이는 게 중요했다. 코미디 영화이지만 일부러 과장된 액션이나 웃음을 표방하지 않기로 판단했다.

“양선이 왜 이 사건에 휘말리게 돼서 끝까지 다니는지 이해가 안 되더라. 타당성을 찾기 위해서 사랑했던 사람이었다는 것에 집중했다. 그 힘으로 끝까지 갔다. 제가 슬퍼하고 우는 걸 추가로 넣었고 제가 양동근 씨의 팬이었기 때문에 그 감정이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 같다. 웃기려고 한 것은 아니고 치열하게 역할에 타당성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렇지 않으면 억지스러워 보일 것 같았다. 양선은 슬픈데 사건이 자꾸 터지니까 거기에 리액션을 하는 게 영화에서는 재밌게 보이더라. 이번 작품을 통해 코미디는 억지로 오버연기, 슬랩스틱이 아니라 관계, 상황 속에서 캐릭터가 살아있으면 웃음도 터진다는 것을 배우게 됐다.”

공백이 있는 대본에 배우가 여러 가지를 추가한다는 것은 연출자에겐 선이 넘는 행동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그러나 신정원 감독은 배우들의 아이디어를 적극 수용해주는 편이었고 지금의 코믹한 양선의 모습들이 나올 수 있었다. 이미도는 신정원 감독을 믿었고, 신정원 감독도 이미도를 믿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어떤 감독님들은 콘티 안에 제한을 시키기도 하지만 신정원 감독님은 ‘해봐라’ 하시는 편이다. 저도 감독님에 대한 믿음이 있으니까 끝까지 해보는 것이다. 감독님 본인은 말씀도 없고 웃는 사람이 아니라고 하지만 감독님을 현장에서 계속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다.(웃음) 감독님이 혼자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웃는 포인트가 있는데 그게 감독님의 색깔이다. 감독님이 터지면 무조건 웃기고 이 영화가 산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감독님 몰래 애드리브를 하기도 했다.”

신정원 감독 몰래 애드리브를 한 장면이 소희의 집에 갑자기 찾아와 닥터 장을 찾는 장면이었다. 그 씬에서 장총을 쏘려다 떨어트리고 양선이 발등을 찧는다. 이 모든 것도 이미도의 진실성을 찾기 위한 계산이었다.

“양선이 긴 총을 갖고 와서 쏘는데 사실 말이 안 되지 않나. ‘내가 만약에 진짜 이 총을 쏜다면?’이라는 가정을 했다. 발등을 찧는 애드리브를 아무한테도 말을 하지 않고 했더니 다들 컷하고 나서 괜찮은지 묻더라. 진짜 떨어트린 줄 알고. 그런데 감독님은 웃으시더라. 사실 그건 웃기려고 한 게 아니고 추가로 설정을 더 넣은 것이었다. 한 장면, 한 장면이 허무맹랑하게 보이지 않도록. 그만큼 정성과 노력을 많이 기울였다.”



이후 양선은 닥터 장의 죽음을 티내지 않으려 만길의 생일파티를 하면서 휘파람을 불어준다. 눈은 울고 있는데 입에선 휘파람이 새어나온다. 이 또한 이미도의 아이디어였고, 이를 너무나도 재밌어한 신정원 감독은 이후 장면에서도 이를 써먹었다.

“사실 그건 제 재주다. 여자가 이런 걸 할 거라고 생각을 못하는 것 같더라. 전 그 포인트가 재밌어서 계속 한다. 그럼 남편은 또 부끄러워하고. 현장에서 했을 때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는데 그런 포인트를 잡고 반복을 하니 웃겼던 것 같다. 이후에 감독님이 저처럼 휘파람을 불 수 있는 남자 배우를 찾아서 만길의 친구도 부는 장면이 탄생했다. 하룻밤 사이에 일어나는 일이라 매일 밤 촬영이고 현장이 힘들었지만 웃겼다는 반응이 많아서 기쁘다. 의미를 생각해서 보지 말고 정말 현실 웃음이 터지셨으면 좋겠다. 영화를 보면서 웃음이 세 번만 터져도 그분들에게 웃음을 드렸다는 것만으로도 기쁘다.”

사실 양선의 입장에서만 바라보면다면 안타깝고 측은한 마음이 더 드는 게 사실이다. 무명배우로 활동하면서 현장에선 감독과 스태프에게 무시를 당하고, 동창들 앞에서도 기를 세우려 남자친구에 대해 거짓말로 대단한 사람이라며 자랑하지만, 동창들은 양선의 말이 거짓말임을 안다.

“양선이 불쌍하다. 닥터 장의 여자 친구였다고 하지만 닥터 장도 양선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었고 아무한테도 사랑을 받지 못하는 캐릭터였다. 너무 짠하더라. 양선의 짠함이 도리어 많은 분들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가 싶었다. 다들 사랑받고 싶지 않나. 양선이는 사랑받고 싶어서 친구에게도 허세를 부리는 것이다. 사실 양선의 무명배우라는 설정은 원래 없었다. 그냥 동창생 중에 한명이라는 설정만 있었는데 감독님이랑 얘기를 하다가 20대 때 저의 얘기를 열정에 불타올랐던, 현실에 부딪혔던 저를 얘기하니까 감독님이 캐릭터가 좋았다고 생각하고 추가해주셨다. 제 생각에도 열정을 갖고 있지만 시련을 닥친 캐릭터가 이 사건을, 이 남자친구 때문에 총까지 갖고 올 수 있는 울분과 열정, 끝까지 갈 수 있는 힘이 생기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제가 더 짠했던 것 같다.”

이렇듯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은 이미도의 정성과 진심이 모두 담긴 작품이었다. 한 작품, 한 작품마다 진심을 다해서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관객과 만난다면 그의 정성이 관객에게 통하지 않을 리 없을 터다. 그러기 위해선 배우 이미도보다 인간 이미도가 바로잡혀있는 것이 중요했고, 이는 곧 건강하게 사는 것을 뜻했다.

“요즘 많이 생각이 드는 게 제가 배우의 길을 가려면 그냥 인간 이미도도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요즘은 이슈 때문에 흔들리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래서 책임감도 느끼지만 공인으로서의 장점이 누군가를 대표해서 공감을 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이 든다. 배우로서 어떤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 만큼 SNS라는 도구로 많은 분들에게 건강하게 사는 것을 보여주면서 힘을 주고받을 수 있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다. 사실 어떤 역할이든 공감이 중요하다. 그래서 전 건강하게 살고 싶다.”

[더셀럽 김지영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 TCO(주)콘텐츠온 제공]

더셀럽 주요뉴스

인기기사

더셀럽 패션

더셀럽 뷰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