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도 없이’ 유아인, 이미지 변신+홍의정 감독을 통해 얻은 수확 [인터뷰]
입력 2020. 10.22. 07:00:00
[더셀럽 김지영 기자] 배우 유아인이 또 한층 성장했다. 이미 많은 전작들로 그의 진가를 확인했지만, 이번 ‘소리도 없이’는 더욱 강렬하다. 대사가 없어도 많은 감정표현을 할 수 있으며 흡입력을 이끌어낼 수 있음을 증명해냈다.

최근 개봉한 ‘소리도 없이’는 범죄 조직의 청소부 태인(유아인)과 창복(유재명)이 유괴된 아이로 인해 예상치 못한 사건에 휘말리는 이야기를 그린다. 유아인은 이번 태인을 위해 15kg을 증량하고 삭발하는 등 파격적인 이미지 변신을 시도했고, 그 결과는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번 태인의 모습은 유아인의 의견으로 완성된 이미지였다. 불룩하게 나온 배, 구부정한 허리, 축 처진 어깨는 아무런 보살핌을 받지 못한 채 자란 태인의 전사를 예상케 하며 말을 하지 않는 혹은 못하는 설정임에도 그의 표정과 행동, 몸짓에서 속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극 중 창복은 태인이 잘되길 바라고,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쉴 새 없이 잔소리하고 조언한다. 그런 태인은 창복의 말을 새겨듣지 않는데, 이 또한 표정으로 느낄 수 있다. 더불어 창복이 태인에게 초희(문승아)를 맡기자 온 몸과 표정, 행동으로 거부하는 그를 보면서 대사가 없음에도 의사가 정확하게 표현이 된다는 것을 확인케 한다.

“배보니까 좋더라. 예쁘고 맑은 얼굴만 그려온 건 아니지만 영화 자체로 시도해보고 싶었다. 그래도 많이 봐주시는 것 같아서 안도감이 들었다. 감독님도 변화를 확실하게 드러내는 것을 원하셨고 그게 잘 전달됐다면 감사하다. 이제 이런 식의 연기가 반경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 같다. 내 입장의 태도로 연기하는 게 아니고 제가 형성하고 있는 이미지들, 외적으로 만들어내는 이미지 게임 같은 것에서 연장선으로 연기를 대하게 된다. 순도 있는 연기, 진정성 있는 연기로만 되지 않는 어떤 지점이 생기는 것 같다.”

이미지 변신의 연장선에서 나아간 게 최근 그의 파격적인 변화였다. 전작 ‘#살아있다’에서 탈색한 반삭 헤어스타일, 이번 작품에서도 거의 삭발에 가깝게 빡빡 깎은 머리, 두툼한 외형으로 눈길을 끈다. 유아인은 자신의 이러한 변화를 “다양한 색”으로 해석했다.

“본질을 떠나서 하나의 이미지를 그려내는 배우로 봤을 때 상당히 다양한 색이 묻어있고 소비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진정성만으로는 느껴지지 않아 탈색도 해보고 살도 찌워보고 가발도 써보고 한다. 그게 전부가 될 수는 없겠지만. 하지만 모든 연기의 출발점이 외모고 보이는 것이라 이러한 변신들은 연장선에 있는 것이라 점점 더 좋았던 것 같다.”



스스로 입이 짧다고 밝힌 그는 살을 억지로 찌우기 위해 고칼로리 식단을 만들어 먹었다. 그는 먹는 게 힘들었다고 토로했고 살이 찌니 입술과 코, 눈두덩이 까지 살이 찌더라고 웃었다. 그러나 유아인은 힘겹게 만들어 낸 몸인 만큼 더욱 마음에 들은 듯 했고 살이 찌니 자연스러운 외형이 나오더라고 만족했다.

“붓기인지 살인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되더라. 그것들이 나의 살이고 몸이라는 것을 떠나 시각적 장치이니 잘 만들어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맡는 인물에 따라서 자세, 태도, 걸음걸이가 많이 반영된 편인데 이번에는 살이 쪄서 어쩔 수 없이 나타나더라. 구부정하고 걸을 때 보면 엉덩이가 튀어나오고 이상한 S라인이 자연스럽게 그려지더라. 그렇게 찌운 살이라 살을 더 드러내고 싶은 의지도 있었다. 감독님에게 ‘몸의 노출에 대한 배려를 하지 마시고 필요하면 얼마든지 쓰시라’고 했다.”

말을 하지 않는 태인은 부가적인 언어수단으로 창복, 초희와 대화를 나눈다. 뚱한 표정, 불만을 드러내는 몸짓, 행동 등으로 수월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보인다. 대사를 구사하지 않아도 유아인이 얼마나 대본을 잘 소화했는지 느껴지는 부분이다.

“표정이나 몸짓으로 표현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상황에서 나타나는 표정, 몸의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표출하고 수렴하면서 갔다. ‘내가 이런 몸의 움직임을 했었던가’하는 새롭게 느껴지는 순간들도 있었다. 태인이는 내가 아니라서 보니까 귀엽더라.(웃음) 배우로서 촌스러운 욕심에 비춰본다면 표현하고 싶고, 말하고 싶고, 할 수 없어서 폭발되는 감정들을 연기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다른 형태를 요구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이 정도로 아무것도 안 해도 되나’하는 생각도 있었고 강박에 시달리는 시간도 존재했다.”

태인은 말을 하지 못해도 답답해하지 않고 표현하려 애를 쓰려고 하지도 않는다. 부가적인 언어수단으로도 의사가 잘 전달되기 때문. 이는 곧 유아인의 연기 신념과도 맞닿아있는 듯 했다.

“잘 만들고 다듬은 상태로 표현이 되어야 관객이 느끼겠지만 표현이 정제될수록, 표현이 절제될수록 느끼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강렬한 표현을 통해서 압도적인 것을 느끼는 것도 좋지만 우리 안에서 자연스럽게 여백을 채우기 위해 발현되는 감정, 정서들이 있다. 결국엔 그게 관객에게 조금 더 권력을 내어주는 작품의 태도, 이 인물의 태도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임했던 것 같다.”

여기서 더 나아간 지점이 ‘소리도 없이’를 선택 이유였다. 유아인은 대사 없이 ‘….’으로만 적힌 시나리오에도 허투루 쓰이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고 그 속에서 홍의정 감독의 잠재력을 발견했다. 신인임에도 뛰어난 실력을 갖췄다는 것을 알아차렸고 함께 하겠다는 결심이 섰다.

“대사들과 묘사가 철저하게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밀도 있는 시나리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진지하지만 엉뚱하게 뒤통수를 후려치는 듯 한 매력이 있었다. 정보를 잘 알 수 없는 신인 감독님의 작품이었기 때문에 실제로 만나 뵀을 때 느껴지는 기대감도 있었다. 솔직하시고 자연스럽고 가식이나 허세를 찾아볼 수 없었고 훌륭한 퀄리티를 가진 인간이라는 느낌이 있었다. 그래서 감독님의 단편작 ‘서식지’를 보면서 ‘이런 사람이 영화를 만드는 솜씨도 뛰어 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완전히 준비되어 있는 감독님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유아인은 인터뷰 내내 홍의정 감독에 대한 강한 신뢰를 드러냈다. 인터뷰에 앞서 진행된 기자간담회, 라디오 등의 일정, SNS에서도 홍의정 감독에 무한한 애정과 믿음을 내비친 바 있다. 그는 영화의 모든 몫을 감독에게 돌리면서도 “아주 강한 애정에 기반한 전략”이라고 말해 웃음을 선사했다.

“희망을 걸어도 좋을만한 감독님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게 제 선에서는 희망이지만 작은 힘이라도 실어드리면 더 큰 일을 해낼 수 있는 감독님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소리도 없이’는 감독님을 앞장세우고 제가 뒤로 빠져있으니 편하고 자연스럽다. 장난삼아 ‘홍의정을 브랜딩한다’라고 하지만 그걸 나쁘게 써먹지 않을 것 같은 기대감을 주는 감독님이시다. 최근에 통화하면서도 ‘어려운 상황에 도장을 찍어뒀으니 저를 버리지 말라’는 얘기를 하기도 했다.”



영화 ‘소리도 없이’는 짧은 러닝타임에 다양한 화두를 던진다. 선과 악은 명확하지 않다는 것, 모호한 환경 속에서 각자의 생존을 위해 변화할 수 있다는 것 등을 일상적인 톤으로 아이러니를 극대화시킨다. 유아인은 영화의 메시지와 평소 삶 속에서 생각하고 있는 문장과도 일맥상통하다고 했다.

“삶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문장이기도 한데, ‘불완전함의 완전함, 불명확성 속에 명확성’이다. 완전함을 지향하고 추구하는 요즘 세태, 외부로부터 강요받는 세상 안에서 이런 영화의 태도가 있고 저마다 다르게 해석하실 것 같다. 백날 명확하게 떠들어봐야 모든 것이 불명확하다는 것만 알고 명확하고, 완전함을 지향하고, 추구하고, 고지를 점령한 척 하지만 순간에 지나지 않고 불완전함만이 완전하다는 생각을 가져왔다. ‘소리도 없이’는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위치,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가지고 살아가는 관계성 안에서 우리가 가져야할 태도가 아닐까. 그게 우리가 느끼는 지금 세상의 불편함, 위험한 것들이 다음을 그려볼 수 있는 방법이 되리라 믿기 때문이다. 이는 곧 홍의정 감독의 시선 덕분이다. 신랄하고 날카롭고 노골적으로 무언가를 비판하고 비난하지만 어떤 희망으로 부여잡고 불쾌하게, 밉게 느껴지지 않는 매력이 있다.”

믿고 따를 수 있는 홍의정 감독을 만나 새로운 영화가 탄생했고 유아인은 이전과 다른 연기로 대중과 만나게 됐다. 그는 ‘소리도 없이’를 통해 내면의 배움을 얻었다.

“실질적으로 얻게 되는 것보다 체험을 중시한다. 말로 표현하기도 쉽지 않고 증거를 남기기도 어려운 것이지만 사실 일상, 삶 속에서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런 것을 체험하기도 쉬운 일이 아니고 경험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작품을 통해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몸, 정신, 내면의 상태를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 큰 경험이다. 앞으로 그 체험의 결과가 다듬어져서 어떻게 무기로 쓰일지는 모를 일이지만, 적어도 미세하게 나아가기 위한 작은 움직임이라 생각한다. ‘그런 게 밥먹여주냐’고 하겠지만, 그게 진짜 밥을 먹여주더라. 밥을 찾아다니는 게 아니고 그런 느낌들을 찾아다니면 밥을 먹여주더라.(웃음)”



[더셀럽 김지영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 UAA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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