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던 날’ 김혜수, 고민의 발걸음이 쌓여 길이 될 때 [인터뷰]
입력 2020. 11.12. 15:38:24
[더셀럽 전예슬 기자] ‘대체불가’ ‘변화무쌍’. 배우 김혜수를 지칭하는 말이 아닐까. 매 작품마다 남다른 존재감을 각인시킨 김혜수. 이번엔 무너져버린 인물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냄과 동시에 보는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전한다.

김혜수가 ‘운명’이라고 느낀 영화 ‘내가 죽던 날’(감독 박지완)은 유서 한 장만 남긴 채 절벽 끝으로 사라진 소녀와 삶의 벼랑 끝에서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 그리고 그들에게 손을 내민 무언의 목격자까지 살아남기 위한 그들 각자의 선택을 그린 작품이다.

제목만 보면,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란 생각이 들지만 ‘내가 죽던 날’은 누군가의 손길이 절실하게 그리운 이들에게 온기를 전해주는 ‘휴먼 힐링 드라마’다. 이 지점이 김혜수를 작품 속으로 이끌었다고 한다.

“주요 배역이 형사, 주요 증인이 소녀이다 보니까 우리가 익숙하게 생각하기엔 ‘사건을 파헤치나? 그런 미스터리? 서스펜스인가’ 생각할 수 있어요. 제목도 그렇고. 그런데 수사물이라고 규정을 하기엔 어려울 것 같아요. 그런 인물들이 사건을 통해 인물들과 만나면서 감정의 여정을 이야기하죠. 결국 자기 자신을 만나게 되는 이야기예요. 이 작품을 선택한 건 당연히 시나리오였어요. 제목이 뭔지 모르겠지만 강렬했죠. 시나리오를 다 읽어낼 때쯤에는 저도 모르게, 전혀 예상하지 않은, 기대하지 않은 위로와 위안이 있었어요. 제가 느꼈던 마음을 관객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면으로 시작했던 것 같아요. 저한테도 너무나 필요한 이야기였고, 누군가에게도 필요한 이야기였죠. 그래서 만나게 해주고 싶었어요.”



‘내가 죽던 날’은 여성 감독에 이어 여성 중심의 서사와 그들만의 특별한 연대를 그리고 있다.절벽 끝으로 사라진 소녀와 그 흔적을 추적하는 형사, 그리고 그들에게 손을 건넨 섬마을 주민까지 각자 삶의 벼랑 끝에 선 여성들의 보이지 않는 연대를 세밀하고 깊이 있게 담아내고 있다.

“시나리오를 봤을 때 깊이 있는 연대감이 느껴졌어요. 현수(김혜수), 세진(노정의), 순천댁(이정은) 각기 다르지만 각자 연결된 무언가가 있었죠. 현재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을 보내고 있는 현수와 세진인데 이 고통스러운 순간은 본인들이 만든 게 아니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통을 떠맡아야했고요. 현수가 처음 이 사건을 하겠다고 한 건 괴로운 현실을 잊기 위해서였어요. 일에라도 몰두해야 현실을 잊으니까 시작했던 거죠. 세진의 마음을 보살피고 손을 잡아주기 보다 내 현실을 잊고, 복직이라도 해야 살 수 있어서 막연하게 시작한 거죠. 종결된 사건이라 보고서만 쓰면 됐는데 세진을 보고, 느끼게 되면서 스스로를 보게 돼요. 가장 신뢰했던 사람이 남긴 상처란 지점도 현수와 연결점이 있었어요. 순천댁의 경우, 자신을 구제하지 못했지만 그 마음을 잘 알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줘요. 이런 인물들이 유기적이고, 연결점들이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했죠. 복잡함과 드러나지 않는 것들을 드러내고, 연대감을 준다는 게 막연했지만 해내야했죠. 거기서 쌓여가는 하나하나의 작은 힘들이 만났을 때 새로운 진실을 접했을 때 파장이 일어나요. 굉장히 중요했죠. 모든 것들이 시나리오에 갖춰져 있었지만 각자의 역할에 충실한 것이 상대를 만났을 때 시너지가 됐죠. 만드는 사람들이 끝까지 이루어냈듯 이 진심을 어떻게 잘 전달할 것인가에 주역했어요.”

빛나는 연기 앙상블이다. 현수에게 마지막으로 본 세진의 행적을 알려주는 순천댁 역의 이정은. 모든 장면에서 시너지를 폭발시키며 극에 몰입을 이끌 수 있었던 공을 이정은에게 돌린 김혜수다.

“정은 씨의 작품을 많이 봤어요. 늘 좋은 배우고, 어떤 역이라도 그 이상으로 해내시잖아요. 그런 분과 같이 연기한다는 건 배우로서 큰 축복이에요. 실제 저의 기대와 예상, 설렘을 매순간 넘으셨어요. 저는 순천댁을 연기할 이정은이라는 존재가 정말 순천댁 같았죠. 연기하기 전, 말을 많이 아끼셨는데 감싸주고, 안아주는 느낌이 있었어요. 그건 배우의 마음 속에 그런 게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아요. 그런 생각은 안했는데 늘 그렇게 느껴졌죠. 촬영할 때나 만날 때도 그렇고. 그건 그 사람이 가진 내면의 힘인 것 같아요. 아주 따뜻하고, 그것으로도 참 많이 위로가 됐죠. 영화 후반부, 리어카를 끌고 오는 순천댁을 만나는 현수의 장면이 있어요. 멀리서 수레를 끌고 오는데 정말 순천댁이 오고 있더라고요. 그냥 그때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났어요. 연기하기 전이었는데 가까이 오는 순천댁, 정은 씨도 울고 있더라고요. 한동안 울었어요. 서로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됐어요. 뭔지 모르겠지만 순천댁임과 동시에 이정은이라는 사람, 현수임과 동시에 김혜수라는 사람이 순천댁과 현수, 이정은과 김혜수로 만난 건 마아요. 그 순간이 길었는지, 짧았는지 모르겠지만 너무 특별하고 처음 경험해본 것이었어요. 완벽한 순간 같은 느낌이 들었죠. 정말 오랫동안 기억할 것 같아요.”



영화 ‘국가부도의 날’ ‘타짜’ ‘도둑들’ ‘차이나타운’, 드라마 ‘하이에나’ ‘시그널’ 등 매 작품마다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김혜수. 배역보다 ‘김혜수가 더 보인다’라는 평에 고민이 많았던 그이지만 이번에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현수 그 자체가 되고자 노력했다.

“‘내가 죽던 날’의 현수의 경우, 굉장히 현실적인 인물이잖아요. 영화적으로 메이드가 되고, 가공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해왔던 인물 중 ‘차이나타운’ ‘타짜’ ‘미옥’ 등 영화적으로 메이드가 된 작품은 리얼리티보다 영화적인 설정 같은 게 중요하고, 드러나야만 했던 캐릭터였죠. 이 작품은 이 작품에 맞게 그린 거예요. 다른 작품도 다른 작품에 맞게, 충실하게 그려진 거죠. 김혜수를 싹 지우고 하는 건 불가능해요. 이 작품에 충실했고, 충실한 만큼 보이게 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현수를 표현하는 의상 같은 경우, 100% 감독님과 의상팀에 의존했어요. 제가 해석한, 제가 현수를 통해 드러내고자하는 의상이 저도 모르게 저의 취향이나 관성 같은 게 작용할까봐. 그 부분은 100% 영화 의상팀의 결정을 받아들였어요.”

어느덧 데뷔 34년차, 지금까지 독보적인 커리어를 쌓아오고 있는 김혜수. 그 길에는 연기를 향한 고민의 발자국이 남겨져 있었다. 수많은 발자국이 쌓여 김혜수 만의 길이 만들어진 게 아닐까.

“작품은 마음 가는대로 해요. 20대, 30대 땐 대부분 천편일률적이었죠. 배우로서 욕망을 빗겨가는 것도 많았어요. 이런 작품을 만난다는 자체가 행운이에요. 그런 작품을 만나야만 다른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잖아요. 예전에는 ‘작품을 왜 이렇게 못 고르냐’라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저에게 주어지는 폭이 그만큼이라면 거기서의 최선을 다하는 거죠. 어떠한 배우들도 게으르지 않아요. 자기 자신대로 준비를 하죠. 이런 기회가 누구나, 다양하게 제공되는 건 아니에요.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거죠. 저도 경험을 했기에 가능성이 있는 배우들, 꾸준히 오래 했지만 무언가를 뛰어넘지 못한다는 것에 대해 판단이나 평가를 유보해주셨으면 해요.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건 저도 참 느렸기 때문이에요. 느린 와중에 거기서도 무언가를 해내가면서 온 거죠. 실제 역량이 있다 해도 보여줄 기회가 적었어요. 저 역시 그랬고요. 그건 해낸 사람들에게만 자꾸 기회가 가니까요. 그래서 작품 하나로 가혹한 평가를 한다면 그 다음은 없는 거예요. 그 다음이 있어야 또 뭔가가 있는 건데 말이죠.”

[더셀럽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강영호 작가 제공]

더셀럽 주요뉴스

인기기사

더셀럽 패션

더셀럽 뷰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