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잔칫날’ 하준, 스크린을 압도한다는 건 [인터뷰]
- 입력 2020. 12.04. 15:51:34
- [더셀럽 전예슬 기자] 108분의 러닝타임을 힘 있게 끌고 간다. 홀로 가득 채웠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배우 하준의 이야기다.
기자는 최근 영화 ‘잔칫날’(감독 김록경)에서 경만 역을 맡은 하준과 화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당초 오프라인 인터뷰를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함께 출연했던 소주연이 타 현장에서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은 확진자와 동선이 겹치면서 기자간담회를 비롯해 모든 일정이 취소, 인터뷰는 온라인상으로 대체됐다.
‘잔칫날’은 무명 MC 경만이 아버지의 장례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가장 슬픈 날 아이러니하게도 잔칫집을 찾아 웃어야 하는 3일 동안의 이야기를 담은 웰메이드 드라마다. 하준은 극중 아버지의 장례식을 위해 잔칫집을 찾는 경만 역을 맡아 인상 깊은 연기를 펼쳤다.
“오디션을 봤어요. 감독님과 PD님이 저를 좋게 봐주셔서 작품에 참여할 수 있었죠. 이정도로 깊은 감정 연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배우로서 흔치 않아요. 설렘과 두려움이 같이 있었지만 그런 걸 표현할 수 있는 매력이 있었다고 생각했죠.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감독님 이야기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감독님과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고, 당시 살아온 이야기를 많이 듣는 게 작품을 해결할 답이라고 생각했어요. 유독 감독님과 밥을 많이 먹고, 산책도 했죠. 시간적 제약이 많았기에 절약하기 위해서 감독님과 ‘신 바이 신’으로 한 것도 많았어요. 감독님이 경험을 했던 부분들이었죠. 아버지 병간호도 오래하셨고, 떠나보내신 기억도 있어서 경만의 톤 등 제 눈에 보인 감독님의 부분을 흡수하려고 했어요. 감독님이 또 배우 출신이세요. 모니터를 보면서 저와 호흡해 깊이 접근할 수 있었어요.”
어린 여동생과 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해 있는 아버지로 인해 집안의 실질적 가장 역할이었던 경만. 아버지가 돌아가셨단 연락을 받고 한 걸음에 달려갔지만 슬퍼할 겨를도 없이 장례비용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결국 행사 일을 하는 선배로부터 잔칫날 행사 대타를 제안 받고 돈이 필요했던 경만은 동생 경미(소주연)에게 사실을 숨긴 채 팔순 잔치가 있는 삼천포로 향한다. 가장 슬픈 날, 웃어야하는 상황에 처한 경만을 그려내기 위해 하준은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아냈다.
“경만은 기본적으로 억눌려있는 친구인 것 같았어요.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부터 돈에 대한 압박을 받잖아요. 가장이고, MC라는 일이 예전엔 좋아서 했다면 지금은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고. 저도 아르바이트를 많이 하면서 느꼈지만 일을 하고 페이에 대한 얘기를 꺼내는 자체가 쉽지 않아요. 그래서 ‘죄송하다’라는 말을 달고 살게 되는 것 같아요. 저도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많이 달고 살았죠. 기본적으로 억눌려있는 게 있어요. ‘내가 참지 뭐, 내가 삭히고 털면 돼, 오늘 하루도 버틸 수 있어’라는 게 습관이 된 인물이죠. 억눌려있는 느낌이 나오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 세수할 때 등 상황에서 자기감정을 표현하고요.”
하준의 ‘원맨쇼’가 아닐까. 하준은 가장 슬픈 아버지의 장례식날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울고 싶은데 웃어야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전달하면서 보는 이들의 공감과 눈물샘을 자극한다. 이 모든 것은 자신의 경험과 빗대었기에 표현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저도 보면서 눈물이 났던 건 아버지의 영을 하는 신이었어요. 그 외 아르바이트 신은 대본에 쓰여 있는 것도 있었지만 추가적으로 행사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을 녹여냈죠. 제품 판매업도 했고, 영화관에서도 일을 했어요. 거기서 일을 하면서 ‘나도 언젠가 무대 인사를 하러 여기에 오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는데 ‘범죄 도시’ 무대 인사를 하러 간 적도 있었죠. 하하. 행사 아르바이트 경우, 경만을 연기하는데 도움이 많이 됐어요. 화장품이 출시되면 명동 등 핫플레이스에 가서 게임 진행시키고, 고객들 회원가입을 유도하고 사은품을 드리는 행사도 진행했죠. 백화점에 가면 향수 시향지를 드리는 것도 했어요. 제가 서울예대를 나왔는데 졸업과 동시에 아르바이트 인생이 시작돼요. 계속 집에서 경제적인 지원을 받을 순 없잖아요. 그러면서 ‘연기를 계속 해야 하나? 나에겐 언제 기회가 올까? 기회가 왔는데 놓친 건 아닌가’하는 수많은 고통을 겪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해서 힘들었어요’보다는 2030대 청춘들이 겪는 당연한 거니까. 또 한편으로는 2030대분들이 답답하지만 많이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도 들어요.”
하준은 슬픔, 억울함, 분노 등 다양한 감정을 스크린 위에 녹여냈다. 흘리는 눈물의 의미도 다르다. 신마다 다르게 전해야 했던 눈물신과 감정신을 표현하는데 뒤따르는 고충은 없었을까.
“제가 눈물이 많은 편이에요. 저는 중학교 때 어머니가 돌아가신 기억이 있어 더 공감됐던 부분이었죠. 감정적으로 이렇게 보여야지 생각한 건 아니에요. 경만의 입장으로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많이 걸었던 것 같아요. 촬영 전 프리단계에서 혼자 많이 걸어 다니면서 경만에 대해 생각하고, 제가 아르바이트했던 걸 생각하면서 경만의 진심에 대해 많이 느끼려 했어요. 감정적으로 안 힘들었다고 하면 거짓말이에요. 삼천포에서 80% 이상 촬영했는데 그 장소 자체가 고즈넉했어요. 숙소 앞에 바다가 보였는데 그 장소가 더해주는 위로가 있었죠. 힘들었지만 포근함이 있었어요.”
‘잔칫날’의 김록경 감독은 배우로서 먼저 얼굴을 알린 바. ‘돌려차기’에 출연하며 배우로 입문한 김 감독은 ‘황해’ ‘파수꾼’ ‘화이’ ‘고지전’ ‘뷰티 인사이드’ 등 다양한 작품에서 조연과 단역으로 출연했으며 지난 8월 개봉한 ‘여름날’에서는 주연으로 활약했다. 연출에도 다재다능함을 보였던 김록경 감독은 ‘잔칫날’로 첫 장편 데뷔를 알렸다. 배우로 활동했던 경험이 있기에 경만이라는 역할의 옷을 입은 하준에게 준 디렉션은 섬세함과 꼼꼼함이었다고.
“감독님이 굉장히 섬세하고, 꼼꼼하게 디렉션을 주셨어요. 감독님이 촬영 현장에서 많이 갈 수 있는 테이크가 없을 거라고, ‘신 바이 신’을 하자고 하셨죠. 문장과 문장 사이에 있는 정적과 포즈, 감정의 변화까지 디테일하게 얘기해주셨어요. 현장가면 부딪히는 배우, 공기가 주는 에너지가 다르니까 거기에 맞춰 연기를 했죠. 감독님이 거의 저와 하나가 돼 호흡했어요. 평소보다 더 많이 조각조각 변화를 줬죠.”
‘잔칫날’은 제24회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에서 최고의 영예인 ‘작품상’을 비롯해 관객들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관객상’, 최고의 연기에 수여하는 ‘배우상’, 그리고 영화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와 믿음을 보여주는 ‘배급지원상’까지 4개 부문을 휩쓸었다. 부천국제영화제에서 4관왕을 차지한 소감을 묻자 하준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말문을 이어갔다.
“배우생활을 하면서 상을 받아본 적이 없어요. 군대에 있을 때 신병훈련소에서 대표 훈련병을 하면 주는 상이 있는데 그거 받은 기억밖에 없죠. 하하. 아직 상이라는 게 얼떨떨해요. 집에 잘 모셔두긴 했는데 그 상패를 볼 때마다 현실이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감사하고 좋은데 한편으로는 부담스럽고, 멋쩍기도 하죠. 사실 관객들이 어떤 반응을 나타날 때 더 살아 숨쉬는 것 같아요. ‘영화 좋았다, 감동이었다’하는 리뷰들을 보면 굉장히 행복하죠. 그게 저에게 큰 상이에요. 아직 상에 대한 의미를 정립할 순 없을 것 같아요. 영화 개봉 후 관객들이 보고, 반응을 하고, 소통을 하면 ‘이런 의미가 있었구나’하는 게 정립될 것 같아요.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개봉하는 것에 너무 감사하죠.”
코로나19 재확산 여파 속 극장 개봉된 ‘잔칫날’. 이 영화는 떠나보낸 사람과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만든다. 하준은 “보고나 나면 아버지, 어머니에게 전화 한 번 드릴 수 있는 영화였으면”이라고 바랐다.
“의미 없는 전화만큼 의미 있는 게 없잖아요. ‘전화 왜 했냐’하면 ‘그냥 했다’하고. 특히 가족은 더 그런 것 같아요. 저는 가족들에게 ‘사랑한다’라고 표현을 많이 하는데 사랑한다고 용기를 줄 수 있는 작품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 감히 추천 드리고 싶어요.”
[더셀럽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트리플픽쳐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