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나에게 등을 돌려도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씨네리뷰]
입력 2021. 01.28. 11:45:21
[더셀럽 김지영 기자]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열심히 한다고만 해서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분명 최선을 다했음에도 보이지 않는 벽은 존재하고, 세상의 불합리한 일들이 쏟아질 때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지만 그럼에도 붙잡고 있는 것은 모두가 나에게 등을 돌려도 나 자신은 붙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블라인드 면접으로 직원을 채용했지만 학력이 낮다는 이유로, 성별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회사의 불합리함을 고발했다는 등의 이유로 부당 파견을 하는 회사의 행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루아침에 지방으로 발령을 내리고 사무직을 하던 직원에게 현장직을 시키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영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감독 이태겸)는 회사의 불합리함 속에서도 지지 않는 노동자 정은(유다인)의 이야기다.

7년 동안 본사에서 일하던 정은은 불합리한 이유로 하루아침에 지방 하청업체에 파견된다. 사무직으로 근무하던 정은에게 지방 현장직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고, 하청업체 직원들도 정은을 반기지 않는다. 하청업체 예산은 줄어들고 그 안에서 정은의 월급까지 감당해야 하기 때문.

자신의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은은 할 일을 찾아서 하고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송전탑 수리를 책을 보면서 혼자서 헤쳐나간다. 이론으로 배운 기술과 현장에서 마주하는 송전탑은 달랐다. 고소공포증과 송전탑 공포증이 동반된 정은은 한 걸음 떼기도 두려워하고 겁을 먹는다. 그러던 중 막내 충식(오정세)은 정은이 현장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번 작품을 연출한 이태겸 감독은 영화 ‘1984: 우리는 합창한다’로 울산 조선소 노동자들의 현실을, ‘복수의 길’에선 사장에게 돈을 받지 못한 두 이주노동자의 복수를 현실 풍자극으로, 영화 노동자로 살아가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룬 ‘소년 감독’까지 우리 사회의 불편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그려왔다.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도 이태겸 감독이 그려왔던 이야기와 동일 선상에서 만연한 고용불안과 사측이 주도하는 노노갈등, 직장 내 성차별 등 한국 사회의 여러 구조적 모순을 건드린다. 권고사직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본사 탕비실에 책상이 놓였던 정은, 정은과 함께 회사에 대응하며 싸웠던 직원의 극단적 선택, 어떻게 해서든 정은을 해고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이는 원청의 만행, 회사를 노동청에 고발해도 이길 수 없는 현실, 업무상 과실을 인정하지 않고 합의금으로 마무리 지으려는 회사의 행태 등 우리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고스란히 담았다.

극 중 정은이 불합리하고 어려운 상황 속에 처해있음에도 희망이 남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처럼 영화도 마냥 우울하고 힘든 이야기만 하지 않는다. 송전탑을 오르지 못하던 정은이 일례의 사건으로 송전탑 끝까지 오르고, 수리하며 마을에 들어오지 않던 전기가 퍼지기 시작하는 장면은 암울했던 정은의 상황에서 조금씩 빛이 들어올 미래를 뜻하는 듯하다.

배우 유다인은 정은의 깊은 감정까지 고스란히 표현한다. 불합리한 일을 당하고 있음에도 쏟아낼 곳이 없어 술로 삼키는 일상, 부당한 근무평가에는 할 말을 하고, 공포증을 이겨내려 애쓰는 모습, 원청과 온몸으로 싸우는 장면, 모두가 만류하던 송전탑에 마침내 오르는 모습 등을 통해 안타까움과 공감을 자아내고 끝내 응원을 하게 만든다.

모두가 정은에게 손을 내밀지 않고, 외면하던 때 충식만은 그에게 자신의 시간을 내어주며 그를 가르친다. 오정세가 연기한 서충식에겐 남모를 따뜻함이, 늦은 나이에 일하게 되어 고군분투하는 모습에서는 절박함이 느껴진다. 다수의 작품에서 극에 녹아들었던 오정세는 이번 작품에서도 기대 이상을 보여준다.

지금 이 시각에도 회사와 싸우고 있을 어딘가의 정은에게 보내는 응원의 메시지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는 전국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더셀럽 김지영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 영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포스터, 스틸컷]

더셀럽 주요뉴스

인기기사

더셀럽 패션

더셀럽 뷰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