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도 없는 곳’, 김종관 감독만이 가능한 과감함 [종합]
- 입력 2021. 03.17. 17:16:44
- [더셀럽 전예슬 기자] “꿈도, 현실도 아닌 어떤 경계에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김종관 감독이 기억, 상실, 죽음, 늙음의 소재에 대해 과감한 모험을 시도했다.
17일 오후 서울 광진구 자양동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점에서는 영화 ‘아무도 없는 곳’(감독 김종관) 언론배급시사회가 개최됐다. 이날 시사회에는 김종관 감독, 배우 연우진, 이주영, 윤혜리 등이 참석했다.
‘아무도 없는 곳’은 어느 이른 봄, 7년 만에 서울로 돌아온 소설가 창석이 우연히 만나고 헤어진 누구나 있지만 아무도 없는 길 잃은 마음의 이야기다. 각본 및 연출을 맡은 김종관 감독은 “‘아무도 없는 곳’은 창석이란 인물이 짧은 시간, 여러 명의 인물들을 만나면서 심적인 변화를 겪는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최악의 하루’ ‘더 테이블’ ‘밤을 걷다’ 연장선에 놓여있는 ‘아무도 없는 곳’은 ‘김종관 유니버스’ 결정체라 할만하다. 김 감독은 “전작은 경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이야기의 레이어드가 쌓인다. 관객들이 여러 층의 이야기를 즐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구성을 해서 만들어낸 이야기”라며 “어느 부분은 전과 닮았지만, 한 인물이 여러 인물을 만나면서 심적인 변화를 겪지 않나. 그런 부분에서 이야기 자체가 창석이란 사람이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에서 차이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영화라는 매체를 이용해 만들 수 있는 표현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저예산이라 환경이 녹록치 않았지만 극장이란 공간에서 오로지 즐길 수 있고, 영화라는 언어를 이용해 어떤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싶었다. 영화 제목과 닮아있는 내용이 나오지만, 빛과 어둠이 있다면 어둠과 그림자의 영역을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면밀히 관찰해 만들고 싶었다”라고 기획 의도를 전했다.
또 김종관 감독은 “창석은 창작자이자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다. 창석이란 인물이 그 안에서 소설을 쓰는 사람이지만 여러 인물을 만나면서 내적으로 변화하는 이야기라 그 부분에 고민을 했다”면서 “전에도 표현을 해보고 싶었던 내용들이다. ‘최악의 하루’ ‘더 테이블’ ‘페르소나’의 ‘밤을 걷다’ 등. 꿈도, 현실도 아니고 어떤 경계에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라고 이야기를 착안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연우진은 ‘더 테이블’에 이어 김종관 감독과 두 번째로 호흡을 맞춘다. 극중 이야기를 쓰는 소설가 창석 역을 맡은 그는 “감독님과 작업하는 순간은 감동이다. 바쁘게 시간에 쫓기며 살아가는데 감독님과 만나는 순간만큼은 제 인생에서 가만히 서서 천천히 들여다보는 작업인 것 같다. 연기자로서 편안해지면서 제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감독님을 통해 알아본다. ‘더 테이블’에서 촬영하면서 느낀 즐거움을 베풀어드리고자 노력했는데 이번에도 큰 선물을 받은 것 같아 좋다”라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한 노력에 대해 연우진은 “제 마음 속에 어떤 것들을 비워내려고 노력했다. 바쁘게 달려온 시간 속에서 저도 모르게 꾸며낸 모습이 많았다. 없애고, 지워내는 작업을 하면서 창석을 준비했다”라며 “저는 이야기를 하기보다 들어주는 입장에 가까운 성격이다. 리액션의 연기가 스스로 본연의 모습이 나올까봐 걱정을 했다. 그런 것에 유의를 기울이며 날것의 것들을 표현하고자 답을 찾았다. 모든 걸 비우고 촬영장에 갔다. 이분들이 이야기하는 것에 빠져들고, 동요가 일어나는 신기한 작업을 했다”라고 밝혔다.
특히 연우진은 창석을 준비하며 김종관 감독의 모습을 참고했다고. 그는 “감독님과 위스키 바에 단 둘이 간 적 있는데 감독님이 재즈를 들으며 허공을 응시하는 모습에서 순간 창석의 색깔을 이런 톤으로 잡으면 되겠다는 영감을 얻었다”라며 “말로 무언가 전달하지 않아도, 위스키 한 잔에 재즈음악을 들으며 어딘가 보는 적적함과 고독함이 큰 미쟝센으로 다가왔다”라고 말했다.
‘아무도 없는 곳’은 커피숍, 박물관, 카페, 바 등 익숙한 듯 낯선 서울의 공간들에서 듣고 들려준 이야기로 완성된다.
창석이 바에서 만나는 인물은 기억을 사는 바텐더 주은이다. 주은 역을 맡은 이주영은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는 김종관 감독님이 여태껏 작업했던 영화들과 연결되는 느낌이었다. 나도 김종관 감독님의 세계관에 같이 참여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어 반가웠고, 감사했다”면서 “주은이라는 캐릭터는 아픔이 있는 캐릭터다. 그 아픔에 대해 빠져 슬퍼하거나 낙담하지 않은 캐릭터란 생각이 들었다. 어린 아이 같기도 하고, 덤덤한 사람, 강한 사람이란 생각도 들었다”라고 전했다.
추억을 태우는 편집자 유진 역의 윤혜리는 “시나리오를 처음 만났을 땐 김종관 감독님의 ‘더 테이블’을 보고 느꼈던 특별한 말투 같은 게 있다고 생각했다. 이번 시나리오에서도 유진이라는 역할을 봤을 때 소위 말하는 젊은이들이 쓰는 어투보다 조숙하고, 성숙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낯설다고 해서 표현을 못하고 싶진 않았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으며 어떤 접근을 해야 할까란 고민을 했다. 감독님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데 저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으로서 반갑게 참여했다”라고 밝혔다.
영화 초반에는 넷플릭스 ‘페르소나’의 ‘밤을 걷다’로 인연을 맺은 이지은이 미영 역으로 특별출연한다. 김종관 감독은 “넷플릭스 ‘페르소나’에서 같이 작업했다. ‘아무도 없는 곳’이 전작의 형식적인 것들에서 더 가고 싶다는 욕구에서 만들게 됐다. ‘밤을 걷다’에서 다뤘던 이야기와도 연결돼 있다. 비슷한 시기에 쓰여 졌고, 고민하면서 나와 있는 자매품 같은 영화의 성격”이라며 “이지은 배우에게 의논을 했다. 캐릭터도 이어져 있는 느낌이 있다. 영화적으로 재밌게 흘러가는 게 아닐까 싶었다. (이지은이) 좋은 의미를 보태준 것 같다”라고 캐스팅 과정을 설명했다.
영화는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흘러간다. 대화 형식으로 기억, 상실, 죽음, 늙음 즉,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김종관 감독은 “그림자의 영역에서 이야기를 해보자고 했다. 죽음, 늙음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저는 결과적으로 이 영화를 보고 관객들이 슬픔에만 잠기진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죽음이든 늙음이든, 어둠의 영역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늙음에 대한 서글픔도 나오지만 창석의 입장에는 누군가 같이 늙어가는 것에 대한 동경이 있을 거다. 이 영화 안에서 본인들이 생각하는 가치들을 얻어가셨으면 하는 마음에 영화를 만들게 됐다”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김종관 감독은 ‘아무도 없는 곳’만이 가지는 매력에 대해 “어둠도 포근할 수 있구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면서 이 생각을 떠올리셨으면”이라며 “영화 전체적으로도 이 느낌을 받으셨으면 한다”라고 했으며 연우진은 “삶의 또 다른 부분인데 상실은 필연적으로 생각한다. 상실의 시대를 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줄 수 있는 마음의 잔잔한 파동과 위로라고 소개하고 싶다”라고 덧붙였다.
‘아무도 없는 곳’은 오는 31일 개봉된다.
[더셀럽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김혜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