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어보’ 흑백에 담긴 선명함 그리고 정직함 [씨네리뷰]
입력 2021. 03.31. 07:00:00

'자산어보' 이준익 감독 설경구 변요한

[더셀럽 전예슬 기자] 대학 재학 시절, 전공과목으로 ‘영화론’이란 수업을 들은 적 있다. 영화사에서 빠질 수 없는, 기념비적인 작품을 여러 편 봤는데 사실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색체가 빠진 ‘흑백’이라 그런지 기억에 남지 않은 듯하다.

졸업을 하고, 흑백영화들을 접할 기회가 줄어들었던 때. 지난 2016년 2월 개봉한 ‘동주’(감독 이준익)를 보게 됐다. 검고 하양만이 있음에도 영화는 그 어느 색체보다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렇게 ‘무채색의 미학’이란 무엇인지, 흑백영화만이 가지는 매력을 느꼈다고 할까.

이준익 감독은 이번에도 색체를 덜어내고, ‘흑’과 ‘백’만으로 담아냈다. 맛은 담백하고, 인물의 감정과 몰입은 깊어졌다. ‘한 폭의 수묵화 같은’이라는 말이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시대와 인물을 선명하게 담아낸 영화 ‘자산어보’의 이야기다.

‘자산어보’는 정약용(류승룡)의 형이자 조선시대 학자 정약전(설경구)을 조명한다. 신유박해 당시, 정약전은 정약종, 정약용과 함께 천주교 교리를 따른 죄로 간신히 사형을 면하고 흑산도로 유배당한다.

섬 안에는 창대(변요한)라는 젊은이가 있다. 어려서부터 배우기를 좋아해 천자문, 소학, 명심보감 등 가리지 않고 책을 읽는다. 그러나 가난한 탓에 식견을 넓히지 못했고, 제대로 된 스승이 없어 홀로 하는 글 공부에 한계를 느낀다.

그런 창대에게 정약전은 말한다. “내가 아는 지식과 너의 물고기 지식을 바꾸자”라고. 성리학을 진리로 여겨 사학죄인 정약전과는 말도 섞지 않으려 했던 창대는 ‘거래’라는 말에 못 이기는 척 받아들인다. 신분도, 나이도 다른 두 사람은 서로의 지식을 나누며 ‘벗’이 되어간다.



‘자산어보’는 영화가 시작하기 전, 오프닝에 ‘서문을 바탕으로 한 창작물’이란 문구가 나온다. 정약전과 ‘자산어보’는 실재지만, 창대에 관한 이야기는 허구다. 두 사람의 관계를 통해 그 시대에 몸부림치며 살아왔을 사람들의 흔적을 보여주고자 한 이준익 감독의 의도가 담겨있는 것이다.

시대를 통해 인물을 꿰뚫는 이준익 감독의 통찰력은 명배우들의 열연과 어우러져 빛을 발한다. 첫 사극 도전이라는 말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설경구는 정약전 그대로가 된다. 눈빛, 대사, 행동을 따라가다 보면 그 시대에 함께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낄 것이다.

변요한은 물 만난 물고기 같다. 창대의 외적인 모습뿐만 아니라 인물의 감정선에 완벽히 스며든 것. “‘자산어보’는 변요한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빛나는 작품이 될 것이다”라고 자신한 설경구의 말처럼 ‘인생 캐릭터’를 만난 그다.

이정은, 민도희, 강기영, 방은진, 조우진, 류승룡 또한 ‘자산어보’를 빛낸 배우들이다. 빈틈없는 이들의 열연은 126분의 러닝타임을 가득 채운다.

‘자산어보’는 오늘(31일) 개봉됐다. 12세이상관람가.

[더셀럽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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