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원의 밤’ 뻔한 누아르 클리셰에도 남는 여운 [씨네리뷰]
- 입력 2021. 04.09. 07:00:00
- [더셀럽 전예슬 기자] 푸른빛을 띤 회색이라고 할까. 여기에 핏빛 붉음이 물들여졌다. 영화 ‘낙원의 밤’을 채우는 ‘색(色)’이다. 전형적인 클리셰에 뻔 한 ‘누아르’지만 제주도의 절경, 캐릭터들이 처한 상황과 대비되면서 어딘가 묘한 맛을 남긴다.
'낙원의 밤'
범죄 조직의 에이스 박태구(엄태구)는 하나뿐인 가족이었던 누나와 조카를 사고로 잃게 된다. 라이벌 조직의 보스가 사고의 배후란 걸 안 태구는 복수에 나선다. 그리고 북성파의 타깃이 된 태구는 수장인 양사장(박호산)의 도움으로 러시아로 밀항 전, 제주도로 피신한다.
태구가 제주도에서 만난 인물은 무기상인 쿠토(이기상)와 그의 조카 재연(전여빈)이다. 태구의 등장이 못마땅한 재연은 일주일 내로 떠나라며 그를 차갑게 대한다. 그러던 중 태구는 북성파 보스가 죽지 않고 살았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북성파의 2인자 마이사(차승원)는 태구가 있는 제주도로 향하고, 추격을 시작한다.
‘낙원의 밤’은 ‘신세계’ ‘마녀’ 등으로 한국 누아르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박훈정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았다. 비정한 드라마로 짙은 여운을 남긴 박 감독은 ‘낙원의 밤’에선 서정과 낭만을 한 스푼 씩 더했다.
익숙한 스토리에 전형적인 클리셰들의 범벅이다. 라이벌 조직 간의 서열 싸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주인공이 핏빛 복수에 나선다는 점 등. 그러나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광과 갱스터 서사에 더해진 낭만은 독보적인 ‘감성 누아르’의 탄생이다. 여기에 액션 장면들은 ‘누아르의 대가’답게 역동적으로 그려낸 박훈정 감독이다. 결말까지 예측 가능한 이야기임에도 여운이 남는 이유다.
범접 불가한 배우들의 연기도 빼놓을 수 없다. 엄태구는 저음의 허스키한 목소리를 강점으로 활용, 영화에 힘을 보탠다. 박훈정 감독은 엄태구를 생각하며 태구를 쓴 게 아니라 밝혔음에도 두 인물은 높은 싱크로를 자랑한다.
누아르 장르에서 흔히 볼 수 없었던 여성 캐릭터, 재연도 눈에 띈다. 재연을 연기한 전여빈은 오로지 ‘눈빛’으로 역할을 담아내 이해, 설득시킨다. 특히 어떤 상황에도 두려움 없이 주체적으로 행동하기에 그 어느 캐릭터보다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차승원이 연기한 마이사도 독특하다. 주인공의 라이벌 상대로 등장하지만 마냥 무섭지만은 않다. 툭 던지는 말 한마디,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뜻하지 않게 웃음을 자극한다. 극 후반, 양사장 역의 박호산도 제몫을 해내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낙원의 밤’은 제77회 베니스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유일하게 초청된 한국 작품이다. 해외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오늘(9일) 오후 4시 전 세계 190여국에 공개된다.
[더셀럽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넷플릭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