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 상반기결산⑤] 오스카 품은 윤여정, 1인치 장벽을 허물다
- 입력 2021. 07.05. 07:00:00
-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원더풀’ 윤여정!”
윤여정
2021년 4월 26일, 대한민국은 감동과 환희로 물들었다. ‘세계’를 무대로 한국 배우 ‘최초’로 처음, 미국 권위의 영화상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 트로피를 들어 올린 윤여정. 한국 영화 역사 102년을 통틀어 또 하나의 금자탑을 세운 그다.
◆ 화려한 데뷔
올해로 데뷔 55년차를 맞은 윤여정은 1966년 TBC 3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다. 3년 뒤, 1969년 MBC로 이적한 그는 드라마 ‘장희빈’으로 단숨에 톱스타 반열에 올랐다.
윤여정은 1971년 故 김기영 감독의 영화 ‘하녀’로 영화 인생을 시작했다. 극중 윤여정이 맡은 역할은 주인집 남자를 유혹하는 가정부로 당시 정서로써는 ‘파격’ 그 자체였다. 이 영화로 그는 제10회 대종상영화제 신인상, 제8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제4회 시체스 국제판타스틱 영화제 여우주연상 등을 수상,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 결혼과 이혼
주가를 올리던 윤여정은 1974년 조영남과 결혼식을 올렸다. 톱가수였던 조영남과 결혼한 그는 배우 활동을 잠정 중단하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슬하에 두 아들을 낳고 결혼 생활을 이어가던 윤여정은 결혼 13년 만에 조영남과 이혼을 선언했다. 이혼이 많지 않았던 시절, 톱스타의 이혼은 대중에게 충격을 안기기도.
이혼 후 윤여정은 조심스럽게 복귀 시동을 켰다. 1984년 MBC 단막극 ‘베스트셀러-고깔’로 브라운관에 모습을 드러냈으나 ‘이혼녀’라는 타이틀로 인해 주연으로 캐스팅은 쉽지 않았다. 생계를 이어나가야 했던 윤여정은 비중이 적은 단역부터 조연까지 가리지 않고 여러 작품에 출연했다.
그런 그를 다시 스크린으로 불러낸 것은 2003년 임상수 감독의 ‘바람난 가족’이었다. 이후 ‘여배우들’(2009) ‘하녀’(2010) ‘돈의 맛’(2012) ‘계춘할망’(2016) ‘죽여주는 여자’(2016)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2018) ‘찬실이는 복도 많지’(2019) 등 다양한 색깔을 지닌 장르 출연과 캐릭터를 맡으며 행보를 이어갔다.
드라마와 영화에서만 모습을 비췄던 윤여정이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은 ‘신의 한 수’가 됐다. ‘꽃보다 누나’ ‘윤식당’ ‘윤스테이’ 등에서 자연스럽게 비춰진 성격, 입담, 감각은 젊은 세대들의 감성을 자극했던 것. 유쾌함과 동시에 정곡을 찌르는 그만의 화법은 젊은층은 물론, 전 세계인들을 열광케 했다.
◆ “나는 윤여정입니다”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는 말을 입증한 윤여정. 올해 74세인 윤여정은 ‘화이트 오스카’의 벽을 깨부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4월 25일(현지시간, 한국 시각 26일 오전 9시)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주최로 로스앤젤레스 유니언 스테이션에서는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개최됐다. 이날 여우조연상 시상자로 등장한 브래드 피트는 영화 ‘미나리’의 윤여정을 호명했다.
‘미나리’는 1980년대 한인 가족의 미국 정착기를 다룬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인 영화다. 윤여정은 극중 이민간 딸 모니카(한예리)를 돕기 위해 한국에서 미국으로 간 할머니 순자 역을 일반적인 할머니의 모습을 벗어나 자신만의 개성을 덧입혀 연기했다.
시상대에 오른 윤여정은 “브래드 피트를 드디어 만나게 됐다. 저희가 영화를 찍을 때 어디 계셨냐”라고 농담을 건네 웃음을 자아냈다. 브래드 피트는 영화 ‘미나리’의 제작사 플랜B의 설립자이자 배급사 A24의 대표인 것.
이어 윤여정은 “저는 한국에서 온 윤여정이다. 유럽분들은 저를 ‘여영’ ‘유정’이라고 부르는데 모두 용서해드리겠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자신의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거나 함부로 부르는 점을 꼬집은 것.
윤여정의 연륜이 빛난 건 이뿐만이 아니다.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배우들을 언급하며 ‘존중’을 드러냈기 때문. 그는 “나는 경쟁을 믿지 않는다. 어떻게 내가 글렌 클로즈를 이길 수 있겠나”면서 “다섯 후보들이 있지만 우리는 각자 다른 역할을 해냈다. 우리 사회에서 사실 경쟁이 있을 수 없다. 그저 제가 운이 조금 더 좋아 이 자리에 서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자신의 첫 영화 출연작이자 감독인 故 김기영 감독도 잊지 않았다. “김기영 감독님은 저의 첫 감독이었다. 여전히 살아계신다면 제 수상을 기뻐해주셨을 것 같다”면서 “다시 한 번 모든 분들에게 정말 감사하다”라고 덧붙였다.
윤여정은 ‘미나리’를 통해 오스카를 포함한 각종 시상식과 영화제에서 총 42개의 트로피를 품에 안는 ‘대기록’을 썼다. 한국 배우가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른 것은 물론, 후보 중 유일한 아시아인이 수상한 것은 의미가 깊다. 아시아 배우 최초로 여우조연상에 올라 수상까지 거머쥔 것은 ‘사요나라’에 출연한 일본 출신 우메키 미요시 이후 두 번째로 63년 만의 쾌거다.
또 윤여정이 수상한 미국배우조합(SAG)상과 영국 아카데미영화(BAFTA)상 여우조연상도 한국 배우로는 처음이다. ‘한국 배우 최초’라는 윤여정 이름 앞에 붙은 수식어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수식어가 됐다.
◆ 아카데미 초청 수락할까
오스카 품은 윤여정이 아카데미 회원으로 초청받았다. 아카데미상을 주관하는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는 지난 1일(현지시간) 신입 회원 초청자 명단을 발표했다. 아카데미가 공개한 올해 신입 회원 초청자는 395명으로 윤여정은 연기자 부문 신입 회원으로 초대됐다. 윤여정이 아카데미의 초청을 수락한다면, 정식 회원으로서 아카데미상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전 세계를 뒤흔든 ‘미나리’와 윤여정의 파워는 골든글로브의 규정도 바꿨다. ‘미나리’를 외국어 영화로 분류해 차별 논란에 휩싸였던 골든글로브는 앞으로 외국어 영화도 작품상, 감독상, 연기상에 포함시킨다고 발표한 것. 한국 영화계는 물론, 미국 영화의 양대 산맥인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에도 영향력을 끼친 ‘미나리’와 윤여정은 유의미한 이정표를 세우고 있다.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뉴시스, 셀럽미디어DB, 판씨네마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