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빛나는 순간’ 고두심 “‘조냥정신’은 제주 해녀의 정신” [인터뷰]
- 입력 2021. 07.08. 14:15:49
-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살다보면, 살아진다”
'빛나는 순간' 고두심 인터뷰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대사다. 6분간 이어진 인터뷰서 농도 깊은 몰입을 이끈다. 그리고 터져 나오는 눈물. 49년 연기내공과 저력을 입증, ‘역시 고두심’이란 생각이 든다.
‘빛나는 순간’(감독 소준문)은 제주 해녀 진옥(고두심)과 그를 주인공으로 다큐멘터리를 찍는 PD 경훈(지현우)의 특별한 사랑을 다룬 영화다. ‘나이 많은 여성과 젊은 남성의 사랑 이야기’란 점이 파격적이고, 드문 설정이다. 고두심과 지현우는 33살 나이차를 이겨내고, 이 지점에 의문을 갖는 자체가 편견이라는 메시지를 영화를 통해 전한다.
“참고 잘 이겨오다 보니까 아름다운 순간이 저에게도 오더라고요. (웃음) 그렇지만 여기에 큰 비중을 두진 않았어요. 멜로는 끼워 팔기 느낌이었죠. 지현우 배우와 33살 나이차잖아요. 언감생심이죠. 현실적으로는 무리잖아요. 물리적으로도 무리고요. 특별한 것이라고 해서 있을 수는 있지만. 거기에 뽑혔다는 게 너무 행운이었어요. 어떤 배우가 걸리려나 생각했는데 지현우 배우가 걸렸더라고요. 처음 봤을 땐 남성적인 모습보다, 여성스러웠어요. 강철같이 단단하고, 튼튼한 게 아닌. 피부부터 하얀 사람이라서 그런 분위기였는데 작품을 하면서 들여다보니 혼자 잘 놀고, 외유내강한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내적인 게 강한 사람이구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정제된 모습을 보여주는 게 저 나이에 쉽지 않은데 참을 수 있는 만큼 잘 참는 게 좋아보였어요. 강인해보였죠. 보면 볼수록 굉장히 강인하고, 신뢰감 가는 후배였어요.”
‘빛나는 순간’에서 잊을 수 없는 장면을 꼽자면 진옥과 경훈의 동굴 속 키스신이 아닐까. 두 사람의 마음을 확인한 이 장면은 나이차, 지역차, 직업차라는 편견을 넘어선 아름다운 사랑의 의미에 대해 질문한다.
“이 영화를 코로나19 시기에 찍었어요. 코로나 시기니까 입을 대는 게 실례일 것 같았죠.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되기도 했어요. 그땐 백신 이야기가 나오기 전이었거든요. ‘잠복 기간이었다가 걸리게 하면 어떡하지?’ 그런 두려움이 컸어요. 진옥이 경훈을 물속에서 구하고 인공호흡을 하는 장면은 더 심했어요. 어떻게 했는지 생각도 안 나요. 하하. 그래도 순수한 감정 연기를 끌어와야 했기에 ‘연애할 때 어떻게 했지?’ 생각하며 했어요. 예쁘게 잘 찍은 것 같아요. 감독님이 굉장히 편집을 잘해주셨죠.”
무엇보다 영화의 명장면은 진옥이 인터뷰 중 자신의 아픈 상처에 대해 쏟아내는 인터뷰 신이 아닐까. 약 6분간 이어지는 이 장면은 ‘국민배우’라 불리는 고두심의 49년 연기내공을 느낄 수 있다. 고두심은 이 장면을 위해 대본이 빽빽해지도록 메모를 하며 준비했고, 8분가량 독백을 흔들림 없이 쏟아냈다.
“제주에는 해녀들의 정신이 ‘혼’이에요. 모든 걸 다 희생하죠. 삼면이 바다잖아요. 거기에 한라산도 있어서 시야가 너무 넓어요. 조그마한 섬이지만 모든 걸 다 보듬고, 살아오는 사람이 해녀이고, 해녀의 정신이에요. 바다의 바닥에 들어가 전복을 따서 올라올 때 ‘숨을 참는다’라는 게 숨을 쉬어야 사람이 살잖아요. 그게 제주의 정신이에요. 아끼는 조냥정신, 근면정신이 해녀의 정신이죠. 그 역할을 어느 배우가 하는 것보다, 제가 하는 게 제일 잘 맞고, 표현을 잘 할 수 있겠다는 자부심이 있었어요. 감독님께서도 손 편지를 써서 주셨죠. ‘제주도 하면 고두심이고, 고두심의 얼굴은 풍광이다’라고 감독님께서 말씀해주셨어요. ‘그러면 해야지, 내 몸이 부스러져도 해야지’ 싶었죠. 젊은 청년과의 사랑 이야기는 보너스였고, 제주 4.3의 아픔이 그려져 있어 좋았어요. 인터뷰 장면도 감독님이 대사를 많이 주신 게 아니었어요. 제가 이어서 한 것이죠. 감독님도 인정하시더라고요. 놀라서 ‘컷’ 소리 못하고 어안이 벙벙해 있고. 저 스스로도 하고 나서 ‘내가 해냈네, 본 것처럼 해냈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신 내린 것 같이, 거미줄 같이 대사가 나오더라고요. 이 영화를 통해서 4.3의 아픔과 상처를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다면, 위로가 됐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빛나는 순간’은 인생의 한 번쯤 찾아오는 빛나는 순간의 희로애락을 섬세하면서도 절절하게 담아낸다.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사랑과 인생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 영화의 제목처럼 고두심에게 ‘빛나는 순간’은 무엇일까. 그리고 ‘빛’이 난다는 것은 찰나의 순간인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빛나는 순간’이라고 하면 ‘제일 좋았던 순간, 감정이 최고조로 올랐던 순간’이라고 생각하잖아요. 제 개인적으로는 여성으로서 아기를 잉태하고, 낳은 순간이 신비했어요. 아이를 가졌을 때 저에게 ‘빛나는 순간’이었죠. 그때가 제일 기억에 남아요.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50년을 이어온 건 축복이에요. 제 얼굴이 알려져서 스스로 절제해야하는 지점도 있고, 제 식구들, 주변인들이 감당해야하는 일들도 많지만 사랑 받은 만큼 쏟아 내야하는 것도 있다고 생각해요.”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명필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