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선의 삶’ 이우정 감독 “과거 바보 같았던 모습에 위로가 됐으면” [인터뷰]
- 입력 2021. 08.27. 15:29:15
-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누구에게나 마주하고 싶지 않은 ‘그 시절’이 있다. 상처로 가득 찬, 악몽 같은 10대 시절이라고 할까. 떠올리고 싶지 않아 피하고, 도망쳤지만 결국 그 기억과 맞닿을 때가 찾아온다. 그 시절을 지나온, 혹은 지나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위로와 용기를 전할 영화 ‘최선의 삶’.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 나가는 주인공을 통해 위로를 받았다는 이우정 감독은 그 힘을 빌어 영화를 완성해냈다.
'최선의 삶' 이우정 감독 인터뷰
기자는 최근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 위치한 아트나인에서 ‘최선의 삶’ 메가폰을 잡은 이우정 감독과 만나 영화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최선의 삶’은 열여덟 강이, 아람, 소영이 더 나아지기 위해서 기꺼이 더 나빠졌던 우리의 이상했고 무서웠고 좋아했던 그 시절의 드라마다. 임솔아 작가의 동명의 장편소설 ‘최선의 삶’을 원작으로 한다. ‘송한나 ’‘옷 젖는 건 괜찮아’ ‘애드벌룬’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 등 단편 영화를 통해 주목 받은 이우정 감독이 가객과 감독을 맡았다.
“원작을 읽었을 때 제 과거에서 도망치고 있었어요. 다른 방식으로 내가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아무것도 못하는 상황이었죠. 앞으로 나갈 수 없고, 이러지 못하고 있을 때 원작을 읽었는데 강이라는 인물, 자신의 상처라고 할까요. 악몽을 마주하는 자체가 저에게 힘이 됐어요. 그래서 영화로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죠.”
강이, 소영, 아람 역에 각각 방민아, 한성민, 심달기가 각 역할에 분했다. 캐릭터와 혼연일체 연기를 보여줘 높은 싱크로와 완벽한 캐스팅을 자랑한 ‘최선의 삶’이다.
“심달기 배우를 본 사람은 ‘아람은 심달기다’라고 생각할 거예요. 알쏭달쏭한 아람 인물에게 찰떡인 사람이 있을까 생각했죠. 소설책을 읽고 바로 심달기 배우에게 보냈어요. 캐스팅이 되고 제일 오래 기다려준 배우였죠. 방민아 배우는 미팅 날 초면인데 엄청난 것들을 쏟아냈어요. ‘최선의 삶’을 읽고 자신이 예전에 강이 같았을 때 힘들고, 아팠던 부분, 그 후에 살아오면서 강이 같은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들, 그리고 이 영화를 자기가 하게 됐을 때 다시 꺼내는 두려움과 무서움 등을 털어놨죠. 강이의 감정과 얼굴이라는 건 민아 배우가 이전에 한 번도 보여준 적 없잖아요. 그런 것에 대한 두려움까지 다 이야기해줬죠. 첫 장편이고, 예산이 작은 영화라 현장에서는 정신이 없을 거란 걸 알고 있었어요. 사전에 (연기를) 다 끝내자고 했죠. 촬영 전에 민아 배우와 정말 오래 이야기를 나눴어요. 강이의 감정들, 그 감정이 각자 경험했던 나의 과거가 이 시과 비슷하다고 얘길 했죠. 그런 것들을 다 공유했어요. 그 과정에서 강이라는 인물이 민아 배우에게 됐다고 느꼈죠. 한성민 배우는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을 보면서 ‘소영이를 하면 너무 잘 어울리겠다’ 생각했어요. 미팅을 요청했는데 걸어 들어오는 순간 ‘소영이구나’라고 생각하며 압도됐죠. 앉아서 차분히 이야기를 나눠 보니 소영이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왔더라고요. 제가 생각했을 때 소영이를 단편적으로 볼 줄 알앗는데 그 당시 성민 배우는 소영이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까지 다 안고 왔어요. 너무 고마웠죠. ‘같이 하면 되겠다’라고 생각했어요. 배우 세 분 다 인물에 대해 엄청 고민을 많이 하고 왔어요. 좋은 욕심이 있다는 것의 향연을 보는 느낌이었죠. 세 배우들이 꽁꽁 숨겨 온 것들을 카메라 앞에서 풀어헤치는데 감동적이었어요.”
이우정 감독의 고백과도 같은 영화 ‘최선의 삶’은 원작에 각색을 거쳐 완성됐다. 각색을 거치면서도 가장 중점을 둔 것은 인물들의 ‘감정선’이라고.
“원작에서 중학생이던 인물들을 고등학생으로 (나이대를) 올렸어요. 중학생 설정일 때 캐스팅할 수 있는 나이대의 배우들과 찍을 수 없는 게 있었죠. 결국 이 영화에서 담아야하는 감정들에 중점을 뒀어요. 세 인물이 맞닥뜨릴 감정에 집중하고자 했죠. 싸움 장면들은 소설에서 몇 페이지에 걸쳐 세세하게 되어 있어요. 똑같이 세세하게 영상으로 구현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싶었죠. 영상으로 구현한다면 배우들이 다 해야 하는 거니까요. 또 날 것을 살릴 수 있을까, 관객들은 얼마나 감흥을 느낄 수 있을까 고민들에 그런 것들은 빼게 됐어요. 삭제한 장면 앞뒤로 남아있는 배우들의 얼굴, 표정들이 다 설명해줄 수 있어서 가능하지 않았나 싶어요. 그러나 이 선택에는 호불호가 있는 것 같더라고요.”
영화의 장소가 되는 읍내동과 강이가 살았던 빌라, 다녔던 학교 등 공간의 디테일도 살렸다. 강이의 시선을 따라가면서 한 마디로 설명하거나 정의할 수 없는 열여덟의 복잡 미묘함을 신이나 특정 대사로 영화에 담아낸 것.
“최대한 생생하게 강이를 따라가려고 했어요. 정해놓은 시간, 약속 안에 아주 세세하게 콘티를 짜서 할 수 있을 만큼의 예산은 아니었거든요. 임팩트 하게 줄여야 했던 상황에서 핸드헬드 촬영은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요. 또 장소는 원작 자체에 읍내동이 쓰여 있었어요. 작가가 살았다고 추정되는 강이의 집, 건물 이름까지 나와 있죠. 시나리오 작업을 하면서 그 공간에 갔는데 빌라가 그대로 있더라고요. 리모델링을 진행해서 옆에 떨어진 건물에서 촬영을 했어요. 맨 처음 읍내동에 도착했을 때는 ‘영화적인 공간은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비탈에 있는 집이라고 해도 극적이지 않고, 건물 또한 평범해 보였죠. ‘우리의 배경으로 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고, 각색해 나가면서 그게 저희 영화에 딱 맞다는 생각으로 바뀌었어요. 더 과장되게 포장하지 않고, 그냥 제가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가장 보편적인 그림들이라고 생각했죠. 읍내동과 집 배경부터 인물들이 입고 있는 옷들을 평범한 그 시절의 것들로 뒀어요. 너무 심하게 가난하고, 극단적으로 묘사한다거나 하지 않는 방법으로 했죠.”
영화의 시작과 전개, 끝은 강이의 내레이션으로 채워진다. 원작에 쓰여 있는 문단이나 구절 등이 영화 속에서 그대로 읊어진다. 내레이션으로 장면과 장면 사이를 채우고, 인물의 감정을 대신한다는 점에서 고민은 없었을까.
“저는 원작을 가진 영화들이 있을 때 영화에서 흘러나오는 문장들을 들으면 희열이 있어요. 원작이 없을 경우, 그만큼 어려운 것 같아요. 원작이 가진 힘인 것 같아요. 내레이션으로 원작의 문장을 가지고 오지 않고, 영상으로 보여주겠다는 포부를 가지지만 그건 어려워요. 그래서 저는 내레이션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라 확실하게 전달할 수 있는 걸 가지고 오자고 했죠. 이것은 시나리오 때부터 들어가 있었어요. 원작의 문장들에 집착했죠. 제가 연출을 못했다는 불안감도 커서 원작의 문장을 지고 가고 싶었어요.”
원작 ‘최선의 삶’은 압도적인 평과 함께 제4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을 수상한 화제작이다. 아이유가 MBC ‘같이 펀딩’을 통해 인생책으로 언급하며 이슈를 더하기도.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최선의 삶’은 일찌감치 각종 영화제에 초청, 상영돼 화제를 모았다.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 KTH상, CGK&삼양XEEN상 2관왕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제46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새로운 선택상을 수상하고, 제9회 무주산골영화제, 제23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연이어 초청됐다.
“작가님은 그 어떤 것도 개입하지 않고, 의견도 주지 않으셨어요. 영화로 만들기로 했는데 바로 영화 촬영에 들어가지 못해서 작가님과 친해져버렸거든요. 그냥 멀리서 응원해주시는 분이었어요. ‘다 바꿔도 되니까 원하는 대로 하라’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더 불안했죠. ‘진짜 바꿨을 때 안 좋아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첫 상영 때는 작가님이 부산으로 영화를 보러 오셨어요. 끝나고 눈을 못 보겠더라고요. 싫은데 친해져서 표현을 못 하시는 건가 싶더라고요. 다행히 좋게 봐주셨어요. 좋아해주셨고요. 그래서 고마웠고, 힘을 많이 받았어요.”
처음 마주한 감정들이 휘몰아치는 설명 불가능한 10대 시절을 겪은 이들이라면 ‘최선의 삶’에 공감할 것이다. 아팠던 만큼 최선을 다했던 그 시절에 뜨거운 위로와 용기를 전할 ‘최선의 삶’. 매 순간 최선을 다했던 또 다른 ‘강, 소, 아’에게 이우정 감독은 잔잔한 위로의 메시지를 건네고 싶다고 전했다.
“저는 이 작업을 하면서 과거에 미운 사람이 있었어요. 이 과정을 거지면서 내가 진짜 미워했던 건 그 사람보다, 그 사람 앞에 있던 바보 같은 내 모습이었죠. 많은 분들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때의 자기한테 위로해 줄 수 있는 영화가 됐으면 해요.”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엣나인필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