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 이성민, 완벽에 다가가는 도전 [인터뷰]
입력 2021. 09.24. 12:46:36

이성민

[셀럽미디어 김희서 기자] 배우 이성민이 연기 인생에서 기적의 순간을 떠올렸다.

‘기적’(감독 이장훈)은 오갈 수 있는 길은 기찻길밖에 없지만 정작 기차역은 없는 마을에 간이역 하나 생기는 게 유일한 인생 목표인 준경과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이성민은 극 중 원칙주의 기관사이자 준경의 아버지 태윤 역으로 분했다. 무뚝뚝하고 표현에 서툴지만 아들 준경에게 늘 말하지 못하는 미안함과 애틋한 속마음을 지닌 인물이다.

영화 중반부까지 태윤은 대체로 무표정에 과묵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준경이와 밥을 먹을 때도 기차역 타령만 하는 아들을 야단만 칠 뿐 별다른 이야기를 나누지도, 지그시 눈을 바라보지도 않는다. 아들인 준경의 입장에서도, 관객의 시선에서도 태윤은 무심한 아버지로 그려진다. 이성민은 감정을 철저히 숨기면서도 매 순간 태윤의 정서 변화를 밀도있게 표현했다. 실제 성격과 다른 부분도 있었지만 이성민 본체의 것들도 담아냈다.

“태윤의 무뚝뚝한 지점, 말이 별로 없고 그런 점은 저랑 비슷해요. 그런 제 모습이 어느 정도 투영이 됐고 다른 점이 있다면 사실 그렇게 모질진 않아요. 그런 감정을 오래 갖고 있지 않은 성격이라 금방 털어내거나 피하는데 태윤이는 자기의 아이가 사고 난 구간을 매일 왔다 갔다 하잖아요. 끊임없이 본인에게 고통을 주는 삶을 계속 사는 인물인데 저라면 그렇게 못하죠.”

이성민은 실제 아버지와의 기억들을 더듬어보면서 태윤에 공감했다. 영화가 끝을 향해 달려갈 때 즈음, 태윤이 그동안 준경이를 왜 그렇게 모질게 대했는지, 숨겨진 내막을 알 수 있다. 태윤을 통해 이성민 또한 아버지가 과거 자신에게 말하지 못한 어떤 사연이 있었을 거란 상상을 펼치며 캐릭터의 완성도를 더했다. 아들에게 애정 어린 눈빛을 보내지 않는다거나 양원역 이야기를 꺼내는 준경에게 언성만 높이는 등 태윤의 몸짓, 시선 하나하나에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다.

“저도 아버지인데 아버지와 나의 추억을 되새겨봤을 때 아버지의 무뚝뚝함, 아버지가 왜 그러셨을까는 생각해보지 못했어요. 아들 입장에서 왜 표현이 서툴고 다정하지 못했는지 그런 생각은 저도 안 해본 것 같아요. 태윤을 연기하면서 그 아픔을 이해하려고 했어요. 태윤은 굉장히 동화로 말하면 저주받은 인물이에요. 나로 인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다 죽으니까 하나 있는 아들에게 표현을 못하는 저주를 받은 인물인 것 같았죠. 내가 너무 사랑하는 아들이지만 표현을 할 수 없는 아픔, 비극적인 고통을 어떻게 잘 표현해야 할까를 고민했어요. 관객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거의 아들의 눈을 보지 않고 연기해요. 눈을 보고 이야기하지 않아요. 이렇게 찍으면서 ‘우리 아버지도 내가 모르는 아픔, 어떤 남모를 사연이 있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에게 그랬던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됐어요.”

실제로 자식을 둔 아버지이기도 한 이성민은 아버지로서 스스로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시간도 가졌다. 딸에게는 되도록 친구 같은 아버지가 되고 싶어서 먼저 다가가고 노력하는 편이라는 이성민. 매 작품에서 명연기를 보여주는 배우 이성민이지만 자식 앞에서는 여느 아버지들과 다르지 않은 보통의 아버지였다.

“저는 ‘우리 아버지처럼은 안 해야지’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좀 더 많은 대화를 하고 많이 소통하고 많이 스킨십도 하려고 애썼어요. 그럼에도 자식은 내 뜻대로 안 되는 것 같아요. 아버지 입장에서 자식을 봤을 때나 자식 입장에서 아버지를 볼 때 무뚝뚝하게 보일 수도 있고 내 마음대로 안 되는데. 저는 좀 더 친근하고 친구같고 다정다감한 아빠가 되려고 해요. 잘 모르겠어요. 저의 일방적인 생각이지만 저는 좋은 아빠라고 생각해요.(웃음)”

이성민은 ‘기적’ 속 준경이에게 감정이입이 된 이유를 털어놓기도 했다. 마음껏 연기할 수 있는 환경 하나 없던 경북 봉화에서 배우의 꿈을 갖고 무작정 연극판에 뛰어들었던 이성민은 어느덧 내로라하는 배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연기자가 됐다. 이루어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일들을 해내고 마침내 기적을 일궈낸 준경과 이성민은 꽤 닮았다.

“사실 영화 시나리오를 보고 촬영하면서까지 준경이 이야기는 저랑 연관이 없다고 봤어요. 그런데 촬영을 끝내고 감독님이 영화를 설명하면서 꿈 이야기를 말씀하시는데 그때 준경이라는 캐릭터와 제 삶이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첫째는 같은 고향. 둘째는 제가 배우가 된 게 기적이 일어난 거였어요. 재수하면서 터무니없는 꿈을 꿨다가 포기하려던 때에 버스터미널에서 우연히 본 연극 단원 포스터를 본 그 순간이 지금의 기적이 발현된 순간이죠.”

‘기적’만의 특별한 매력에 대해 이성민은 이장훈 감독의 연출력을 감탄했다. 매 장면에서 웃음과 가슴 뭉클한 눈물 버튼이 적재적소에 배치돼 재미와 감동을 오가며 완벽한 완급조절을 이뤄냈다. 코미디와 드라마 장르의 적절한 조화에 이성민 또한 만족감을 표했다.

“‘다 계산이 돼 있었구나’ 천재란 생각을 했어요. 굉장히 계산을 명확히 하시는 연출자란 생각을 했고 군더더기가 없고 담백했어요. 제가 놀랐던 것 중 하나가 영화 초반은 경쾌하게 가다가 소위 말해 비극으로 넘어가는 지점이 순식간이었어요. 관객을 웃다가 울리는 영화의 구조를 갖고는 있지만 큰 부담 없이 신파가 느껴지지 않게 볼 수 있는 지점이 좋았어요. 깔끔하게 넘어가는 연출력이 감탄스러웠어요.”

연극배우로 데뷔한 이성민은 드라마와 영화를 넘나들며 작은 단역에서부터 주연까지 쉼 없이 자신만의 필모그래피를 채워갔다. 배우가 꿈이었다면 이미 그 꿈은 이룬 셈이지만 이성민은 여전히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새로운 작품을 만날 때마다 또 다른 도전을 거듭하는 이성민은 연기에 대한 갈증을 보였다. 늘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하는 지금의 배우 이성민이 되기까지에는 그의 고뇌가 숨어있었다.

“어릴 적 연극을 할 때도 ‘어렵게 사는데 이걸 왜 하냐’는 물음을 받았어요. 그때도 저한테는 화두였고. 지금도 화두이긴 하지만 그때보단 정리가 된 것 같아요. 연기를 계속 도전하게 만드는 건 내가 느끼는 부족함인 것 같아요. 뭔가 완벽함이 있다면 아마 이 일은 빨리 끝냈을 수도 있어요. 시작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만 이 일은 배우로서 완벽함을 찾아가고 그것이 이 작품 통해 찾지 못하면 또 다음 작품에서 도전하고. 그게 제가 작품을 계속 하게되는 원동력 같아요. 또 다른 의미로는 나에게 주어진 일이고 내 직업이기도 하고. 나의 가족들을 위해서 끊임없이 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해요. 배우로서 작품은 끊임없이 도전하는 거죠.”

이성민에게 ‘기적’의 순간은 언제였을까. 이성민은 고민할 겨를도 없이 그가 연기 인생을 시작하게 된 그 날을 꼽았다. 우연히 버스에 내려 본 연극 단원 모집 공고를 보고 운명처럼 연기를 시작한 이성민은 지금에서야 그 순간을 기적이라고 불렀다.

“기적이란 것이 지금 당장 이루어질 수 없는 것들을 바라는 게 아니라 인생을 돌아보면 30 몇 년 전에 그 순간 그 자리에 그 버스가 안 서고 그 자리에 버스문이 안 열렸으면 내가 극단 포스터를 보지 못했을 텐데. 그걸 보고나서 극단에 들어가고 연기를 하고 직업으로 삼게 되고 이 자리까지 오니까 30년 전 그 자리에 섰던 버스가 기적같아요. 누구에게나 기적은 분명히 있을 거라 믿어요. 지금 바라는 기적은 많죠. 코로나도 빨리 끝났으면 좋겠고 극장에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고 내가 출연한 영화를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기적’은 결국 꿈에 관한 이야기다. 꿈을 이루는 사람과 꿈을 이루려는 사람을 돕는 사람들의 따뜻한 모습에서 출발했다. 영화 속 준경이 꿈을 이루는데 손을 내밀어준 태윤처럼 ‘기적’은 이성민에게도 그의 또 다른 꿈을 실현시켜준 기적같은 작품이 됐다.

“‘기적’에서 어떤 메시지를 찾아본다면. ‘꿈을 꾸는 아이들에게 우리가 꿈을 이뤄줄 수 있는 좋은 아버지. 선생님이 돼야 하지 않을까’예요. 가족의 소중함, 사랑의 메시지일 수도 있고요. 남녀노소 누구나 볼 수 있는 영화에요. 누구나 즐겁게 웃을 수 있고 누구나 눈물을 훔칠 감동적인 영화. 지루하지 않고 여러분이 상상하는 것과 다른 영화니까 극장에 오셔서 확인해보시면 좋겠어요. 제게는 봉화 출신 아이가 배우가 돼서 고향인 봉화 이야기를 연기한 작품. 꿈을 이룬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네요.”

[셀럽미디어 김희서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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