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저널 그날' 쿠빌라이 칸, 몽골제국 최대 번성기…통치철학은?
입력 2021. 10.12. 22:00:00

KBS1 ‘역사저널 그날’

[셀럽미디어 김희서 기자] 몽골제국이 최대의 영토를 차지하고 최고의 번성기를 누리게 했던 쿠빌라이 칸. 그의 삶과 통치철학까지 알아본다.

12일 방송되는 KBS1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칭기즈칸의 나라, 몽골제국' 다섯 번째 시간 '쿠빌라이, 최대 몽골 제국을 이루다' 편으로 꾸며진다.

◆ 칸 of the 칸, 쿠빌라이 칸

칭기즈칸의 손자로 태어나 제5대 칸의 자리에 오른 쿠빌라이. 칭기즈칸이 몽골 제국을 탄생시켰다면 쿠빌라이는 몽골 제국 최대 번성기를 만든 칸 중의 칸이었다. 이탈리아 여행가 마르코 폴로는 <동방견문록>에 몽골에서 17년간 보고 겪은 것들을 쓰고도 죽기 전에 “내가 본 것의 반 밖에 말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만큼 몽골 제국을 융성하게 했던 쿠빌라이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 아릭 부케 vs 쿠빌라이, 칸의 자리를 두고 펼쳐진 치열한 공방전

제4대 칸 뭉케가 남송정벌 중 갑작스레 사망하며 지도자의 자리가 공석이 된 몽골 제국. 차기 칸의 자리를 두고 뭉케의 동생 두 명이 강력한 후보로 떠오르는데... 뭉케 파의 지지를 받아 정통성을 앞세우는 기호 1번 아릭 부케, 그리고 정주문화까지 아울러 몽골 제국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기호 2번 쿠빌라이!

두 후보의 박빙의 승부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 고려가 새로운 캐스팅 보트로 떠오른다. 과연 쿠빌라이와 고려태자의 만남이 몽골제국의 대칸 결정에 어떠한 결과를 불러왔을지 알아본다.

◆몽골 울루스의 새로운 국호 대원(大元)

칸이 된 쿠빌라이는 국호를 ‘대원’으로 정하며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또 수도를 옮겨 지금의 북경 자리에 ‘대도’를 세워 유목지대와 정주 지대의 경계에 자리를 잡는다. 쿠빌라이가 중국식 왕조 이름을 택하고 유교 의례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보고 ‘몽골이 한화(漢化)된 것 아닌가?’라고만 생각한다면 오해! 쿠빌라이는 죽을 때까지 초원의 DNA를 잊지 않았다. 정복을 넘어 통치를 고민했던 쿠빌라이가 몽골제국을 다스리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자세히 알아본다.

◆몽골 vs 남송, 5년간의 양양 포위 작전

남송을 정벌하기 위해 양양에 도착한 쿠빌라이의 10만 대군. 하지만 쿠빌라이 군은 공격은커녕 양양성 주위로 환성을 둘러싸는 토목공사를 시작한다. 스피드를 자랑하던 철갑기병 몽골군이 지구전을 선택한 것이다. 양양성 주위에 터를 잡은 쿠빌라이 군은 오히려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고, 성 안에 갇힌 남송군은 애가 타는데... 쿠빌라이 군은 왜 기존의 전술대로 남송을 정복하지 않은 것일까? 몽골군이 남송을 상대로 5년씩이나 포위 작전을 이어간 이유를 알아본다.

◆쿠빌라이 군의 비장의 무기, 회회포(回回砲)의 등장

5년이나 이어진 포위전, 더 이상의 소모전은 없다! 회심의 일격을 위해 결단을 내린 쿠빌라이는 전장으로 이슬람교도 기술자들을 파견한다. 쿠빌라이가 이슬람교도 기술자들을 동원한 이유는 바로 그들이 ‘수학 천재’였기 때문. 터키에서 온 기자이자 방송인 알파고 시나씨와 함께 이슬람교도들의 놀라운 수학 능력에 대해 알아본다.

양양성의 동태를 살핀 이슬람교도 기술자들은 ‘OOO의 원리’를 이용한 투석기, ‘회회포’라는 신무기를 만들어 전세를 바꾼다. 회회포는 기존의 투석기와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

[셀럽미디어 김희서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KB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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