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준표 감독, '태일이' 개봉이 가져다 준 의미 [인터뷰]
- 입력 2021. 12.02. 10:21:27
- [셀럽미디어 김희서 기자] 홍준표 감독이 ‘태일이’의 개봉 의미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홍준표 감독
‘태일이’는 1970년 평화시장, 부당한 노동 환경을 바꾸기 위해 뜨겁게 싸웠던 청년 ‘전태일’의 이야기를 그린 애니메이션 영화다. 실존 인물이 주인공인데다 한국사의 뜨거운 역사의 한 부분을 장식한 전태일 열사의 이야기를 애니메이션으로 담아야 하는 만큼 홍 감독은 긴 시간 고민했다. 역사적 사건을 다룬 작품이라 하면 어렵거나 다소 무겁게 느껴질 수 있지만 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한 ‘태일이’는 왠지 모르게 친근한 느낌이 강하다. 홍 감독은 22세 청년 전태일 열사에 초점을 맞췄다.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는 전태일 열사에 대한 이야기라서 상당히 어렵겠다는 생각을 먼저 했다. 잘 모르는 시대에 이야기고 전태일 열사에 깊이 알지 못해서 그 이야기를 내 방식대로 전달해야 한다는 부담이 컸다. 스스로 ‘어려워서 잘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오래했다. 3개월 동안 고민하다가. 어느 순간 친구 같은 태일이라는 느낌이 받아들여지는 시점이 있었다. 몇 가지 소재들이 있었지만 가장 큰 계기는 전태일 열사가 평소에 노트나. 메모장에 수기로 메모한 내용이 많았다. 자기에 속마음을 털어놓은 글을 보니 조금 더 가깝게 사적으로 친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전태일 열사를 친구 태일이로 본 지점을 잘 표현한 이야기를 한다면 ‘관객분들도 어렵지 않게 전태일에 공감하지 않을까’에서 시작했다.”
전태일 열사의 이야기를 단 영화 한 편에 담기 위해선 줄거리를 축약하는 과정도 필요했을 터. 특히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매끄러운 전개로 이끌어가기 위해선 하나하나의 장면 선택이 신중하다. 그런 지점에서 홍 감독은 태일이의 집안 사정과 어린 시절이 담긴 짧은 부분을 본편과는 다른 그림체로 시작해 관객들이 태일이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따라갈 수 있도록 유도했다.
“공장에서 처음 취업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전태일이란 인물이 어떻게 서울에 올라왔고 가족들과는 어떻게 관계를 맺고 가족을 바라보는 태일이는 어떤 마음일까를 단편적으로 보여드리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부터 평화시장에서 시작하기보다 태일이에 대해 어느 정도 알려주고 싶었다. 이미지적으로도 본편보다 더 동화같다. 스크린에서 애니메이션 영화라는 것을 조금 더 편하게 보는 눈을 적응시키기 위해 조금 더 동화적인 그림같은 따뜻한 시선으로 보여주는 역할이었다.”
홍 감독은 태일이의 친근함을 살리기 위해 오롯이 그의 감정선에 집중했다. 평화시장에 일하며 겪는 부당한 대우와 상황들 속에서 느끼는 태일이의 다양한 감정들을 풀어내며 극의 흐름을 잡아갔다. 근로기준법의 존재를 인지하고 노동 환경을 바꿔야 한다고 각성하는 모습을 기점으로 달라지는 태일이의 모습 위해 설명이 필요한 앞뒤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쌓아갔다.
“전태일을 가까운 동료 태일이로 느끼기 위해서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둘지가 중요했다. 그래서 어린 시절을 보여주기도 하고 공장에서 동료들과 근로기준법을 알기 이전에 일은 좀 더 힘들었지만 같이 지내는 시간이 즐겁고 어린 여공들에게 많이 챙겨주고 도와주다가 그 이후로 달라지는 이야기에 포커스를 담았다. 그 부분에 집중하기 위해 공장 첫 출근부터 진행됐고 전반적인 이야기는 중간지점에 해당하는데 근로기준법을 알면서 상황이 달라지는 그런 방향성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려고 했다.”
‘태일이’는 실제 장소와 분위기를 완벽히 구현해내며 현실감을 더했다. 70년대 평화시장의 모습과 당대 길거리, 공장 내부 등을 사실적으로 그려내 애니메이션의 강점을 한 층 확장시켰다. 홍 감독 또한 관객들의 공감과 향수를 자극하기 위해 직접 발로 뛰어가며 현장답사를 통해 싱크로율을 맞추려고 노력했다. 특히 태일이가 일했던 창문 하나 없는 평화시장의 한미사의 경우 섬유들로 인해 부유하는 먼지들을 뿌연 빛으로 포착해내고, 다양한 빛을 활용해 태일이가 있는 공간 곳곳을 세심하게 그려냈다.
“공장 공간이 협소한 공간이고 많은 사람이 일하다 보니까 그림으로 표현할 때 상상할 수 없는 공감을 표현해야 했다. 실제로 전태일 재단 기념관에도 가고 청계천 박물관 가서 지어진 세트장 기반으로 했다. 평화시장을 직접 가고 내부에 들어가면 그때와 지금은 많은 부분이 달라졌지만 기분 목격은 그때나 지금이랑 다르지 않아서 거기를 다니면서 태일이가 어떤 경로로 출근하고 어떤 계단을 이용했는지 동선을 쫓았다. 옥상에도 올라가서 아래 내려다보면 어떤 느낌일지 답사로 확인했다.”
극 중 전태일 열사의 모습은 여느 애니메이션에서나 볼 법한 친숙하고 지극히 평범한 청년의 이미지였다. 역사적 인물이고 영웅적 면모로 알려진 전태일 열사이지만 그의 청년다움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홍 감독의 의도가 반영된 결과다. 때문에 어디서든 흔히 볼 수 있는 청년의 큰 용기가 ‘태일이’에서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존재했던 인물이고 우리가 기억하는 전태일 열사 모습이 있다. 외모적인 부분은 애니메이션으로 담기는 과정에 있어서 너무 닮게 그리기보다 열사 태일이의 많은 부분을 염두했다. 우리 주변에 흔히 있을 것 같은 20대 청년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부분이라. 외모적으로도 너무 큰 개성이 드러나거나 특징이 두드러지지 않게 했다. 이야기적으로도 전태일 열사가 노동 사회에서 상징적 인물이지만 바로 옆에서 보는 듯한 느낌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 지점이 영화 말미에 전태일 열사의 큰 행동으로 봤을 때 감동이 오고 안타까움 슬픔이 올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태일이’는 배우 장동윤, 염혜란, 진선규, 권해효, 박철민, 태인호 등이 목소리 출연에 나서며 완성도를 높였다. 따뜻한 영상미에 배우들의 실감나는 목소리 연기가 어우러져 진정성을 더했다. 드림 캐스팅 조합이던 배우들이 모두 흔쾌히 출연해 홍 감독은 만족스럽게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캐스팅 후보 1순위로 생각했던 배우 분들이 다 캐스팅돼서 너무 만족스러웠다. 배우분들이 애니메이션 더빙에 대한 부분에 처음에는 이질감이 있고 어려운 점이 있었다. 본인의 성격이 아닌 캐릭터 성격에 몰입해야 했다. 애니메이션이지만 캐릭터의 성격은 유지하되 배우분들의 톤과 스타일로 연기할 수 있도록 같이 디렉팅을 하면서 참여를 했다.”
작업을 하면서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었다는 홍 감독은 극 말미 전태일 열사가 분신 직전 계단에 앉아있던 장면을 언급했다. 전태일 열사는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귀 기울이는 이는 없고 도리어 입막음하는 이들에 맞서야했다. 선택의 기로에 놓인 전태일의 고뇌가 드러나는 모습에서 뭉클함이 전해졌다. 애니메이션 한 컷을 통해 전태일의 복잡한 감정과 표현하기 어려운 표정을 그림으로 옮겨왔을 때도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는 홍 감독이다.
“이미지적으로 한편으로 조심스러웠던 지점이 있다. 영화 마지막 태일이가 분신 직전 계단에 홀로 앉아서 근로기준법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미지적으로 쓸쓸하고 외로운 혼자만의 싸움을 주고 싶은 지점이 있었다. 공간에 혼자 앉아있을 때 당시 전태일 열사가 어떤 심정이었을까. 어떤 마음으로 그 자리에 앉아 생각할지는 사실 아무도 모르는데. 어땠을까 상상하면서 그 복잡한 감정을 한 장면에 담는 게 어려웠고 그 부분에 가장 신경을 많이 썼던 것 같다. 어떤 표정을 취했을지 생각하면서 작업했다.”
열악한 노동 환경을 다루는 이야기인 만큼 홍 감독은 고강도 노동이 이루어지는 영화판의 실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50여 년 전 노동 환경을 바꾸기 위해 고군분투한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담은 작품이기에 홍 감독은 지금 우리가 일하고 있는 환경도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랐다. 덕분에 ‘태일이’는 근로 기준을 지키며 무리없이 완수했다.
“애니메이션 작업도 노동강도가 높은 작업이다. 1초 작업을 위해 24장 그림을 그리고 상당히 노동강도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한때는 근로기준이 많이 안 지켜지기도 했다. 다만, ‘태일이’를 작업하는 동안 근로기준법을 이야기하는 인물을 다루고 있어서 잘 지키면서 해보자고 했다. 결과적으로 모든 작업과 스태프들의 근로 시간을 잘 지키면서 이끌어왔던 것 같고. 그런 식으로 완성을 했던 것 같다.”
전태일 열사의 51주기를 맞은 올해 ‘태일이’의 개봉은 더욱 뜻깊다. 이에 홍 감독은 어느 시기든 전태일의 이야기를 알릴 수 있음에 의미를 이야기했다. 더불어 홍 감독은 단지 흥행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전태일이 많은 이들에게 불리고 기억될 수 있기를 소망했다.
“50년 정도 흐른 시점인데 51년이든 52년이든 적절한 시기는 없을지도 모른다. 애니메이션 태일이가 아니더라도 전태일 이야기를 언제든지 어떤 방식으로든 할 수 있는 게 의미가 있다고 본다. (흥행 욕심은) 당연히 있다. 애니메이션 작품 자체도 잘 돼서 흥행도 되고 나름대로 목표치에 도달하는 것을 원하는데 그게 중요한 만큼 많은 사람들이 전태일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되길 바란다. 그 흥행과 성공이 이어져서 50년이 지난 이후에도 전태일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작용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셀럽미디어 김희서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명필름, 리틀빅픽처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