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옥’ 연상호, 디스토피아 세계관 속 ‘희생’의 의미 [인터뷰]
- 입력 2021. 12.02. 14:30:32
-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마침내 상상해본 적 없는 세계의 문이 열렸다. ‘지옥행 고지’라는 파격적인 설정과 매회 반전을 거듭하는 스토리로 다양한 인간 군상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졌다. 연상호 감독이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으로 디스토피아 세계관의 정점을 찍었다.
'지옥' 연상호 감독 인터뷰
‘지옥’은 예고 없이 등장한 지옥의 사자들에게 사람들이 지옥행 선골르 받는 초자연적인 현상이 발생하고, 이 혼란을 틈타 부흥한 종교단체 새진리회와 사건의 실체를 밝히려는 이들이 얽히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넷플릭스 시리즈다.
1일(한국시간) 글로벌 OTT 콘텐츠 순위 집계 사이트인 플릭스 패트롤에 따르면 ‘지옥’은 11월 30일 드라마와 예능 등 TV 프로그램을 대상으로 순위를 정하는 ‘넷플릭스 오늘 전 세계 톱 10 TV 프로그램(쇼)’ 부문에서 547점으로 1위를 차지했다.
앞서 ‘지옥’은 지난달 19일 공개 후 하루만인 11월 20일 1위에 오른 바. 이후 11월 21일 ‘아케인’에 밀려 2위를 기록했지만 다음 날, 1위를 재탈환한 후 9일 연속 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옥’ 공개되는 날 하루 지나면 넷플릭스에서 순위가 나와요. ‘한국 순위에서 2위정도 하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기다렸죠. 2위를 기대했는데 ‘1위를 해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했어요. 밤 11시 정도 업데이트 되더라고요. 다음 날 일어나보니 제작사 대표님이 ‘지옥’이 글로벌 1위를 했다는 이야기를 하셔서 어리둥절했어요. 당황스럽기도 하고. 너무 감사한 생각이 들어요.
‘지옥’은 ‘송곳’의 최규석 작가가 그림을, ‘부산행’ ‘반도’의 연상호 감독이 스토리 집필을 맡은 동명의 웹툰이 원작이다. ‘웹툰 역사상 가장 충격적’이라는 극찬을 모으기도. 연상호 감독과 최규석 작가는 원작 웹툰에 이어 시리즈에서까지 함께하며 자신들이 창조한 세계관을 더욱 견고히 했다.
“최규석 작가가 연출자로 연출했기에 디테일한 부분까지 문의했어요. 시나리오에 표현되어 있는 살인범이 집 근처에 가면 어떤 룩이어야하는가에 대해 고민까지 했죠. 최규석 작가가 작업한 스타일을 보면 영화와 비슷하게 하더라고요. 실제로 표현되어 있는 장소와 자료를 수집해 만화에서 표현했죠. 만화에서 표현됐던 것들도 있지만 제가 애초에 생각했던 것들과 닮아있어 놀라기도 했어요. 특히 살인자의 집 근처에서 납치되는 장면은 최규석 작가가 놀라셨어요. 만화에서 그린 장소라 하더라고요.”
‘지옥’은 웹툰을 실사화 해 영상으로 표현해야 했다. 실사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신경 쓴 점은 무엇일까. 특히 연상호 감독은 배우들과 대본 리딩이 아닌, 연출에 대한 브리핑 시간을 가졌다고 해 그 이유를 궁금케 했다.
“배우를 통해 표현되는 것이기 때문에 배우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연기로 자연스럽게 시청자들에게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리딩 때 이틀정도 모드 자면에 대해 배우들에게 어떻게 찍고 싶다고 이야기했죠. 말미에 부탁드렸던 건 브리핑한 건 큰 틀이고, 그 안에서 배우들이 자연스럽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저도 영화를 연출하면서 배우들이 만들어온 것들을 보며 놀라고 즐겼죠. 대본 리딩을 하면 리딩 시간이 작업을 위한 시간 보다는 일조엥 영화를 시작한다는 세레모니란 생각이 들었어요. 연출자 생각을 배우와 완벽하게 공유하는 시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리딩보다, 브리핑 시간을 가진 거죠. 그 시간에는 배우, 주요 키 스태프들이 참석해요. 그게 작품을 위해 훨씬 낫다고 생각해 진행한 거예요.”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세계를 배우들의 열연으로 생생하게 그려냈다. 지옥행 고지와 시연이 정의롭지 않은 인간을 향한 신의 경고라고 주장하는 새진리회 의장 정진수는 1~3화를 이끄는 인물이다. 정진수 역에는 배우 유아인이 완벽하게 분해 현실감을 불어넣었다.
“유아인 배우를 처음 만난 건 ‘버닝’ 촬영 고사였을 때였어요. 이창동 감독님과 유아인 배우와 같이 이야기할 자리가 있었죠. 유아인 배우가 작품을 대하는 태도가 인상 깊더라고요. ‘버닝’ 공개 후 시사회 때도 만나서 많은 얘길 나누진 못했지만 관심 있게 바라봤던 기억이 들어요. 정진수라는 인물은 내면에 뒤틀린 단단한 논리가 있어요. 내면에 감춰진 것들이 비쭉 튀어나와야한다고 생각했죠. 그런 것들을 표현하는데 있어 유아인 배우가 세심하고, 디테일하게 세공하듯 만들어줬어요. ‘버닝’ 영화와 동시에 유아인 배우에 대한 인상이 정진수 역할을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죠.”
초반 서사를 이끈 인물 중 박정자를 빼놓을 수 없다. 박정자는 남편 없이 자녀를 키우고 있는 어머니로, 아이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려다 지옥의 사자들을 마주하는 인물이다. 박정자 역의 김신록은 캐릭터가 지닌 책임과 공포의 밸런스를 탁월하게 담아냈다. 더불어 마지막 6화에서는 예상치 못한 등장으로, 시청자들에게 충격과 반전을 선사했다.
“김신록 배우는 드라마 ‘방법’에서 처음 만나게 됐어요. 백소진(정지소) 엄마 역할을 누가 할 것인가 이야기를 감독님과 나눴죠. 감독님이 김신록 배우의 연극, 단편영화를 좋게 보고 있더라고요. 저는 김신록 배우에 대한 정보가 없었어요. 감독이 김신록 배우가 맞다고 해서 감독의 선택을 지지했어요. ‘방법’의 완성본을 보고 굉장히 놀랐죠. ‘이정도로 입체적이었던가?’하면서 놀랐어요. 거기서 보고, 김신록 배우의 엄청난 팬이 됐어요. 그래서 ‘지옥’의 박정자 역할을 부탁드리게 됐죠. ‘지옥’을 찍으면서 김신록 배우에 대해 놀란 건 저 뿐만이 아니었어요. 스태프, 같이 연기했던 배우들이 상당히 놀랐죠.”
지옥행을 고지하는 천사 역에는 정지소가 연기했다. 연상호 감독과 정지소는 드라마 ‘방법’과 영화 ‘방법: 재차의’로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지옥’의 장르는 코스믹 호러예요. 미지의 초자연적인 존재가 공포의 근간을 이루고 있죠. 고지를 내리는 천사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여줄 수 없지만 천사에 대해 궁금해하실 것 같더라고요. 마치 ‘부산행’에서 첫 번째 좀비가 심은경 배우인 것처럼. 그런 측면에서 천사 역할을 누군가 해줬으면 했어요. 초기 콘셉트 아트는 정지소 배우와 닮은 느낌이 있었어요. 정지소 배우에게 연락해 ‘천사 역을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얘기해 진행하게 됐어요.”
연상호 감독은 먼 미래나 과거가 아닌 바로 지금, 이곳에 ‘지옥의 사자’들을 소환해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 인간다움과 정의에 대한 직설적인 물음을 던졌다. 살인인지, 천벌인지 알 수 없는 초자연적인 현상이 신의 뜻이라 주장하는 사람들과 이를 의심하는 사람들, 통제할 수 없는 두려움 앞에 놓인 이들이 각자의 신념에 따라 맹렬히 충돌하며 현실 속 또 하나의 ‘ㅈ옥도’를 그려나가는 모습이 강렬한 충격을 선사한다.
“단편 애니메이션을 꽤 오래 전부터 해왔어요. 작업하며 고민했던 건 제가 가지고 있는 성향 자체가 메이저가 아닌, 마이너 하잖아요. 소수의 사람들만 좋아하는 것이다라는 것들이 저를 괴롭히던 것 중 하나였어요. 작품을 만드는 것도 예산이 필요하기에 다수를 만족시키는 걸 해야지 만들 수 있어요. 제 성향이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작품을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넷플릭스는 기존 한국의 드라마나 영화와 많이 다르더라고요. 전 세계를 통해 하는 거기에. 이 이야기가 마이너 하더라도 넓게 공개하는 것이기 때문에 충분한 예산으로 작업해도 좋다고 해 작업을 할 수 있었어요.”
‘지옥’의 4~6화는 또 다른 이야기가 진행된다. 지옥행 고지를 받은 사람들이 죄를 고하고, 새진리회는 이 혼란을 틈타 부흥한다. 그러나 어떠한 ‘죄’라는 것을 지을 수 없는, 갓 태어난 신생아까지 고지를 받으면서 ‘지옥’은 부모의 사랑, 희생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이런 희생은 디스토피아 장르의 극복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요소인 것일까.
“인간이라는 존재를 이성적인 측면에서 바라본다고 하면 인간이 가진 여러 가지 보편적 특성 중 설명할 수 없는 것이 희생인 것 같아요. 희생이라는 게 극적인 요소이자 설명할 수 없지만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특성인 거죠. 이 작품은 애초에 시작 자체가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로 시작해요. 마지막은 인간이 가진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로 끝나는 게 맞지 않나 생각했죠. 그런 게 희생이고요.”
‘지옥’은 마지막 회에서 박정자의 부활로 또 다른 스토리를 예고했다. 시즌2에 전 세계 시청자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는 상황. 연상호 감독은 시즌2 가능성에 대해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사실 마지막 장면에서 일어나는 이야기가 처음 시작하는 초자연적인 일 만큼이나 이 세계 안에서는 어마어마한 초자연적인 일이에요. 그 일이 일어났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란 상상이 즐거웠죠. 이 일 이후는 사람들의 움직임, 변화가 중점이 되는 이야기가 될 거예요. 최규석 작가와는 올 여름부터 이후의 이야기에 대해 구상하고 있었어요. 지금은 구상이 마무리된 상태죠. 내년 상반기 정도 만화로 먼저 선보일 수 있을 거예요. 영상화에 대해선 논의된 바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만화와 영상화가 잘 이루어졌으면 해요.”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넷플릭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