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이' 이정흠 감독 "여성 시청자, 즐겁게 봐줘서…더 만족스러워" [인터뷰②]
입력 2021. 12.23. 08:00:00

JTBC '구경이'

[셀럽미디어 김희서 기자] [인터뷰①]에 이어 이정흠 감독이 케이 역에 대한 심도 있게 고민한 부분을 털어놓았다.

하드보일드 코믹 추리극은 사실 아직은 대중적으로 익숙치 않은 장르이기도 하다. 주인공인 구경이에게도 깊은 서사가 드러나지 않는다. 케이가 살인하는 이유와 동기에도 설명이 불충분해 일각에선 캐릭터들의 서사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했다. 다만 ‘구경이’에선 구경이와 케이, 그 주변인들과의 관계성에 초점을 뒀다. 그게 바로 하드보일드 장르의 매력이다.

“하드보일드에서 중요한 부분은 서사보다는 등장인물이 지닌 정서와 분위기인데 ‘구경이’는 그러한 고전 하드보일드 영화 혹은 소설의 공식을 충실히 따르며 주인공만 여성으로 바꾸어 비틀기를 시도한 작품이다. 하드보일드는 서사적인 개연성이나 사실성을 추구하지 않는 편인데, 대체로 한국 장르 드라마는 사실성과 개연성에 충실한 서사를 바탕으로 진행된다. 성초이 작가는 애초에 그러한 서사를 과감히 생략하며 구경이, 케이 등 주요인물이 지닌 분위기나 정서, 그리고 관계성에 집중하는 대본을 썼다.”

‘구경이’는 조금은 낯설고 처음 시작하기까지의 진입장벽이 있는 장르였지만, 감각적인 연출이 그 벽을 허물어주는데 큰 기여를 했다. 이 감독은 인물들의 관계성을 두드러질 수 있도록 시각적인 면에도 많은 공을 들였다.

“연출로서 이 생략된 서사를 어떠한 방식으로 시청자에게 설득시키느냐가 가장 큰 숙제였는데, 대본에 충실하게 서사에 집중하지 않고 캐릭터의 본질적 특성과 그 캐릭터들이 만들어내는 관계성에 집중하자는 생각으로 연출했다. 서사의 공백은 인물들을 따라가면 자연스럽게 극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구경이-송이경이라는 두 주인공의 공통점과 차이점에서 드러나는 관계성을 시각적으로 표현해내는데 많은 공을 들였다. 조명의 명암이나 색감을 극단적으로 대비한다든지, 두 사람의 분장이나 의상으로 비슷한 듯 다른 느낌을 준다든지, 두 인물의 시선 방향을 위/아래로 나누어 관계성을 암시한다든지, 두 사람이 놓여있는 공간의 표현에 차이를 둔다든지 시청자들이 시각적으로 구경이-송이경이라는 인물이 같은 듯, 다른 인물임을 무의식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시각적인 설계에 많은 중점을 두었다.”

극 중 케이는 그간 미디어에서 비추어진 연쇄살인마의 전형적인 틀을 깬 캐릭터였다. 대부분의 범죄 사건에서 약자의 위치에 있던 여성이 반대의 역할을 섰다. 또한 케이는 ‘악한 인간들은 죽어도 된다’는 생각으로 살인을 정당화했다. 반면 구경이는 케이가 살인하려는 자가 누구이든 우선 범죄를 막고자 했다.

“저희는 이 드라마를 준비하며 나쁜 사람을 죽이고 싶어하는 마음과 그걸 막고 싶어하는 마음을 다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세상에는 나쁜 놈들이 너무 많은데 사법체계가 그걸 처벌해주지 않으니 누군가 죽여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지금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드러내는 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케이는 그런 마음과 문제를 대변하는 상징적인 존재다. 이러한 상징적인 존재에게 옳거나 그르다는 답을 내리기보다는 이 존재를 통해 여러 방식으로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제작진은 케이의 살인 행위와 생각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기존에 봐온 악당들과는 다른 느낌으로 그리되, 그럼에도 그의 범죄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음을 장면 곳곳에 묻어나도록 했다.

“케이가 자신만의 규칙에 맞추어 나쁜 놈만 죽이는 모습을 보며 통쾌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작품 곳곳에 ‘과연 케이가 나쁜 놈만 죽였을까’라는 의심들도 심어두었다. 케이의 책장에 꽂힌 50여 권의 책이 다 하나의 살인인데, 그 모든 살인이 나쁜 놈들을 죽인 건 아니라고 생각하며 연출했다. 그래서 케이의 살인 법칙을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을 지양하려 했고 살인 방법 역시 자세하게 묘사하지 않으려 했다.”

케이라는 캐릭터를 들여다볼수록 제작진들이 치밀하게 고심한 흔적이 엿보였다. 완벽 범죄란 없듯이 이 감독은 케이도 실패한 전적이 있을 수 있으며 극에서도 케이가 완벽한 살인마라는 이미지는 피하고자 했다. 이에 철저히 케이에 대한 공감보단 의문으로 끝냈다.

“아무래도 나쁜 놈을 죽이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보면 통쾌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데, ‘구경이’는 각 살인마다 예측하지 못한 실패를 심어놓아 그 통쾌함을 피하려 했다. 예를 들어 몰카범인 박규일이 죽을 때 몰카 피해자인 미애가 등장한다든지, 고담이 죽을 때 케이의 이모인 정연이 등장한다든지. 결국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케이의 살인이 뜻대로 안 되는 모습을 보여주며 ‘과연 케이의 50여 건의 살인은 완벽했을까. 거기에는 단 하나의 오류도 없었을까. 과연 그들은 모두 죽을만한 사람들이었을까.’ 이런 의심을 통해 케이의 행동을 이해는 하지만 공감하지 않고 의문을 던질 수 있게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마지막 회가 방송된 후 케이를 감옥에 가둔 결말에 대한 반응을 보니 의견이 분분하더라. 그만큼 이 사회의 시스템에 대한 대중의 불신이 깊은 것 같아 한편으로는 많은 씁쓸함을 느끼고 있다.”

‘구경이’는 히어로부터 악인들까지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들이 주축을 이뤘다. 덕분에 기존의 이미지와 반전된 모습들로 배우들을 재발견한 작품이기도 했다. 이 감독은 앞으로도 여성 배우들이 맡는 캐릭터에 한계가 없길 바랐다.

“기본적으로 출연하신 배우들은 모두 출중한 연기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제가 무언가를 더 부각할 건 없었다. 다만 이영애, 김혜준, 김해숙, 곽선영 배우들이 기존에 하던 역할에서 좀 더 확장된 역할을 할 수 있는 판을 만들어주려고 노력했을 뿐이다. 장르적으로 남성 배우들에게 주어지던 역할들이 여성 배우들에게 가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재미있고 다채로운 모습을 볼 수 있는지 ‘구경이’를 통해 많은 시청자들이 새삼 느끼셨을 거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여성 배우들의 스펙트럼을 확장할 수 있는 많은 역할들이 다양하게 나왔으면 좋겠다.”

‘구경이’는 화려한 연출과 몰입감 있는 전개, 배우들의 호연 등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았으나 시청률은 1~2%대로 고전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시청률로 드라마를 평가할 수 없는 시대다. 이 감독은 시청률보다도 여성 시청자들이 재밌게 봐준 것에 남다른 의미를 얻었다.

“드라마의 특성상 시청률이 잘 나올 작품이라는 생각은 안 했다. 애초에 ‘구경이’를 기획하고 제작할 때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여성 시청자들이 불편함 없이 마음 편하게 볼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자 했는데, 다행히도 여성 시청자분들이 많이 봐주고 좋아해주셔서 시청률에 대한 아쉬움은 어느 정도 덜어낼 수 있었다. ‘구경이’를 즐겁게 봤으면 하는 시청 층이 정말로 즐겁게 보았다는 게 연출자로서는 더 만족스럽고 기분이 좋다.”

이정흠 감독은 전작 '너를 노린다', '조작', '아무도 모른다'에 이어 '구경이'까지 공교롭게도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을 연출해왔다. 그가 연출하고 싶게 만드는 작품은 무엇일까. 이 감독은 시청자들과 함께 답을 찾아갈 수 있는지를 먼저 살펴본단다.

“여러 사람들과 토론해보고 싶은 사회적 문제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작품을 우선적으로 선택한다. ‘너를 노린다’는 학벌주의와 학생대출, ‘조작’은 사회에서 언론의 역할, ‘아무도 모른다’는 아이들을 위한 ‘좋은 어른’의 역할, ‘구경이’는 사적복수에 대한 질문이었다. 제 스스로 답을 찾기 힘든 질문들을 시청자들과 함께 이야기해보고 토론해볼 수 있는 작품을 하는 게 저에게는 중요한 것 같다.”

[셀럽미디어 김희서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JTBC 제공]

더셀럽 주요뉴스

인기기사

더셀럽 패션

더셀럽 뷰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