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연’, 사랑과 욕망의 ‘햄릿’
입력 2022. 03.12. 15:52:25

‘야연’

[유진모 칼럼] ‘야연’(펑샤오강 감독, 2006)은 화려한 미장센과 색채, 장중한 음악과 유려한 와이어 액션, 그리고 메시지까지 돋보이는 영화이다. 907년 당나라. 연인 완(장쯔이)이 황제에게 간택되어 황후가 되자 낙담한 황태자 우루안(우옌주)은 정혼녀 창누(저우쉰)를 버리고 오지로 떠나 가무로 소일하며 산다.

3년 후 황제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시해의 주체로 의심되는 그의 동생 리(거요우)가 황위를 계승한다. 완은 자신은 물론 우루안까지 목숨이 위험하다는 걸 깨닫고 리와 재혼한다. 리는 호위부대 우림위에게 우루안을 주살하라고 명령하지만 부하들의 희생으로 목숨을 구한 우루안은 황궁에 입궁한다.

리는 창누의 아버지인 은 태상을 시험하기 위해 설표 조형물을 선사한다. 또 완을 황태후라고 부르는 유주 절도사 배홍을 사형에 처하고, 그 자리를 은 태상의 아들 준에게 이양한다. 성대한 황후 즉위식을 앞두고 우루안은 강력한 독약을 구한다. 그리고 즉위식 기념 가면극에서 황제 시해를 재현한다.

리는 수교를 위해 거란과 서로 왕자를 맞교환하기로 했다며 우루안을 보낸다고 선언하고 우림위에게 호위를 맡긴다. 우림위는 국경 근처에서 우루안을 살해하려 하지만 매복해 있던 준의 무리가 구해 준다. 완이 야연 때 리를 독살하고 자신이 황제 자리에 앉겠다며 은 씨 부자와 음모를 꾸몄기 때문.

하지만 태상의 생각은 달랐다. 완이 리를 독살하는 순간 그녀를 제거하고 준을 황위에 올리려는 역모를 꿈꿨던 것. 연회가 열려 완이 리에게 독배를 건네는 순간 창누가 나타나 우루안을 향한 마음을 담은 가면극을 펼치겠다고 한다. 그의 생존을 모르기 때문. 리가 감사의 뜻으로 그 독배를 하사하는데.


당연히 ‘햄릿’을 연상케 하지만 그 시대의 어느 나라든지 권력을 위해 천륜을 저버리는 일은 비일비재했었기에 개연성은 충분하다. 주제는 사랑과 욕망이다. 리는 완을, 완은 우루안을, 창누는 우루안을, 준은 창누를 각각 사랑한다. 우루안은 완을 선친에게 빼앗겼을 때 이미 사랑도 욕망도 모두 내려놓았다.

현재 그가 원하는 것은 오로지 복수일 따름. 완과 창누의 자신을 향한 사랑을 욕망(육욕과 권력)이라며 경멸한다. 복수에 눈이 멀었기 때문. 사실 그의 삶에의 의지는 완이 선친의 여자가 되었을 때 이미 끝났다. 황태자라는 권력을 내던지고 오지에서 가면을 쓴 채 가무로 허송세월을 보내는 게 전부였다.

그는 수동적 허무주의를 초월한 염세주의자이다. 쇼펜하우어는 ‘삶이란 욕망하는 것.’이라면서도 동시에 ‘삶이란 고통.’이라는 테제를 던졌다. “선제는 검소했다.”라는 리의 대사에서 보듯 우루안의 아버지는 성군이었다. 황궁에서 황제가 마음대로 여자를 간택하는 승은은 여자 입장에서는 성은이었다.

그러니 우루안으로서는 속수무책이었던 것. 죄인은 완이다. 만약 선제에게 자신과 황태자와의 관계를 밝혔다면 당장은 아니지만 나중에 황후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하루라도 빨리 권력을 잡고 싶었을 뿐만 아니라 혹시라도 우루안이 폐위될 것을 우려해 그런 선택을 할 만큼 욕망의 화신이었다.

쇼펜하우어는 ‘삶이 고통스러운 것은 욕망이 끝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완은 끝없이 권력을 탐하고, 그럴수록 내면의 고통은 켜켜이 쌓여만 갔던 것이다. 우루안이 ‘속세’를 떠나 예술가가 된 것은-쇼펜하우어 탄생 전이니 그를 몰랐지만-최소한 욕망의 끝이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검술의 달인이다. 그런데 우림위와의 무술 경연에서 실수해 패배한다. 선친을 시해한 숙부와 선친을 떠나 그의 품에 안긴 완 앞에서 평정심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그는 신을 죽이고 ‘권력에의 의지’로 위버멘시(극복인)에 이르고자 한 능동적 허무주의자인 니체에까지는 오르지 못한 것이다.


창누는 등장인물 중 가장 순수한 영혼이다. 권력을 탐해서 황태자비가 된 게 아니라 우루안을 흠모해서 그런 것이다. 그의 마음에 자신이 들어갈 틈이 없다는 것도 안다. 우루안이 거란에 볼모로 잡혀갈 때 자신도 따라가겠다고 순정과 열정을 보이자 완이 그것을 질투해 태형을 명령해도 굽힘이 없다.

리가 형을 시해하고 황위에 오른 이유는 권력 때문인지, 사랑 때문인지 애매모호하지만 러닝 타임이 흐를수록 후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결말은 더욱 확실하다. 그는 “계책보다 순수한 마음이 우선이군.”이라며 “당신이 준 술인데 어찌 안 마실 수 있소. 죽을 수 있어 행복하군.”이라며 독배를 든다.

완은 사랑과 욕망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팜 파탈이다. 그래서 질투심에 눈이 멀어 창누를 괴롭히고, 결국 그녀가 독배를 드는 데도 말리지 않는다. 그녀의 사랑은 이기주의이다. 자신만 사랑하기에 제 욕망이 이끄는 대로 우루안에 대해 욕심을 버리지 않는 것이지 진실한 사랑이 아니다.

준은 누이를 사랑하지만 제 욕망보다 누이의 행복이 우선이다. 우루안은 암시장에서 결국 독약을 가져가지 못했다. 마음이 모질지 못하기 때문. 며칠 후 완이 그걸 가져가며 “이보다 더 강한 독약이 있냐.”라고 묻자 장사치는 “인간의 마음입죠.”라고 답한다. 바로 완의 욕망이 최강의 독약이었다.

리와 완은 유난히 붉은색에 집착한다. 황후 즉위식 때 두 사람은 붉은 천에 황금색 장식이 달린 의상을 입는다. 리의 붉은색은 피로 강점한 권력을, 완의 그것은 타오르는 욕망을 각각 의미한다. 금장식은 당연히 재력이다. 가면은 그런 인간의 추한 욕심과 희로애락의 감정을 숨기기 위한 도구이다. 만약 사랑이 순조로운 쌍방향이라면 그 숱한 이별 노래와 영화는 없었을 것이다.

[유진모 칼럼 / 사진=영화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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