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19가 확정한 OTT 전성시대
- 입력 2022. 03.21. 13:26:29
- [유진모 칼럼] 영화진흥위원회가 지난해 집계한 ‘2020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에 따르면 그해 대한민국 극장 전체 관객 수가 5952만 명으로 전년보다 73.7%가 감소했다. 이는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이 가동된 2004년 이후 최저 수치. 2004년부터 2012년까지 1억 명대, 2013년부터 2019년까지 2억 명대를 유지해 왔었다.
국내 OTT(Over The Top) 시장 규모는 2012년 1085억 원에 불과했는데 지난해 1조 원을 넘겼다. 한국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해 가구당 시청 플랫폼 수 1.3개가 올해 2.3개 정도로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 말 디즈니 플러스가 진출한 데 이어 HBO MAX와 아마존 프라임까지 시동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존 프라임은 넷플릭스, 훌루와 함께 미국의 3대 OTT 업체. 앞으로 부동의 1위였던 넷플릭스는 물론 티빙, 왓챠, 쿠팡 등 토종 업체들이 더욱 공격적인 마케팅과 서비스를 펼칠 것은 명약관화하고, 그 외 다른 다양한 OTT 업체도 호시탐탐 국내 시장을 넘보고 있어 극장의 입지는 더욱 줄어들 전망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의 기존 패러다임을 많이 바꾸었는데 그중 가장 두드러지는 게 의식주에서 인터넷 쇼핑과 음식 배달 증가라면 문화에서 ‘극장 구경’의 감소일 것이다. 코로나19가 유행되기 시작한 2020년 이후 국내에서 1000만 명을 동원하는 영화는 사라졌다. 지난해 1위 ‘모가디슈’는 361만 명.
과연 코로나19는 사라질 것인가? 만약 그렇게 된다면 관객들은 다시 극장으로 잰 발걸음을 옮길 것인가? 결론부터 내리자면 장기간 그럴 가능성이 현저하게 낮다. 굳이 HBO MAX의 ‘왕좌의 게임’이나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배급사(혹은 제작사) 입장에서는 OTT가 가성비가 높다.
극장과 수익을 나누어 갖지 않는 데다 글로벌 배급이 가능하기 때문. 관객은 ‘어벤져스’ 수준이 아닌 이상 편하고 값싼 ‘안방극장’이 좋다. 지난해 월트 디즈니와 워너 브러더스가 블록버스터를 극장과 OTT에 동시 공개한 데 대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과 스칼렛 조핸슨이 반발한 건 이제 구시대적 발상이 되었다.
영화는 예술인 동시에 산업이다. 일방통행 논리가 원칙적으로 적용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이다. 그 시스템은 ‘투자배급사(혹은 투자사와 배급사가 분리되기도 한다)-배우-제작사-홍보 대행사’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OTT가 자리잡기 전에는 톱스타, 혹은 스타 감독이 배급사보다 살짝 우위였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월트 디즈니나 워너 브러더스, 혹은 한국의 CJ E&M, 롯데엔터테인먼트, 쇼박스, NEW 등의 메이저 투자배급사들의 위상이 더 높아졌다. 일부 초특급 스타를 제외하면 사실상 자본이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한다. 게다가 OTT는 접근성이 뛰어나므로 톱스타도 그걸 마다할 리 없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 이미 OTT는 자리를 잡아 가고 있었다. 일인 가구가 늘었고, 다인 가정에서도 각자의 스마트폰 사용 시간이 길어졌기 때문이다. 코로나19는 그런 패러다임의 변화의 수레바퀴에 채찍질을 했을 따름이다. 각종 콘텐츠를 집에서 홀로 즐기는 흐름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다.
그뿐만 아니라 ‘N포 세대’라는 신조어는 국내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세계적 추세이다. 최소한 동영상 콘텐츠 소비라는 측면에서만 볼 때는 확정적이다. 이런 트렌드에 힘입어 메이저 스튜디오 혹은 OTT 업체의 제작 방식도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OTT를 후순위가 아니라 선순위로 역전해 생각한다.
그건 이제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회’가 아니라 보편타당이 되었다. 향후 ‘갑’은 흥행력이 보장된 톱스타를 엄청난 금액으로 캐스팅하기보다는 연기력이 보장되고 가능성이 있는, 약간 신선한 얼굴을 개발해 내는 방식을 채택해 되도록 많은 제작비를 작품의 완성도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흘러갈 것이다.
스타 시스템이 아예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기존의 압도적인 우위는 더 이상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현재가 그렇듯 미래도 콘텐츠 시장은 IP(지적재산권)의 시대이다. 마블의 일등 공신이 케빈 파이기이듯 향후 작가와 더불어 기획자(프로듀서, 제작자)가 요람을 흔드는 손이 될 것이다. 스타는 그다음이다.
그래서 할리우드의 ‘제작자급’ 스타들은 스스로 IP 확보 혹은 메이저 스튜디오의 IP와의 협업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단적인 예로 스타 배우의 숫자와 유명 작가의 숫자만 비교해 봐도 희소가치에 의한 답은 나온다. 보수적 영화인의 반발은 생존의 몸부림이라기보다는 시류의 변화에 대한 무감각이다.
마지막 숙제는 극장. 지난해 이미 국내 대형 멀티플렉스 체인들은 체중 감량에 돌입했다. 극장이 사라지지는 않을 터이지만 전성시대 대신 고급화와 차별화로 고유의 문화를 창조하는 소수 정예 쪽으로 바뀔 것이다. 결국 미시적, 통시적이 아닌, 거시적, 공시적인 시각과 판단만이 미래의 성패를 결정한다.
[사진=넷플릭스, 디즈니+, 웨이브, 티빙, 왓챠, CJ ENM, 롯데엔터테인먼트, 쇼박스, NEW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