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로커’ 아이유 아닌 이지은, ‘연기’의 행복 [인터뷰]
- 입력 2022. 06.16. 12:46:18
-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연기를 하면 제가 살면서 전혀 생각하지 못한 지점을 건드리는 것 같아요. 사람이 어느 지점에선 반성적으로 살잖아요. 서른 살이 되면서 많이 생각하지 못했던 사회 이면, 미혼모, 엄마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됐어요. 연기를 하고, 다른 사람의 삶을 살면서 생각이 건드려지는 게 좋더라고요. 그게 저를 굴리는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해놨던 것에 대해 다시 재정비하고, 인간을 굴리게 되는 것 같아 좋아요. 연기를 하면서 소속감을 느끼는 것도 좋아요. 가수로서 제가 프로듀싱을 맡는 순간부터는 외로운 순간들이 찾아오더라고요. ‘내 선택이 맞았나?’ 반문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어요. 그러면서 팀원들에게는 티를 내지 않아야한다는 강박도 있었죠. 드라마, 영화를 할 때는 완벽한 팀 생활이기 때문에 안정감이 들더라고요.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같이 간다는 소속감이 좋았어요.”
'브로커' 이지은 인터뷰
이지은의 첫 스크린 주연작 ‘브로커’는 베이비 박스를 둘러싸고 관계를 맺게 된 이들의 예기치 못한 특별한 여정을 그린다. 제75회 칸 국제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돼 이지은은 ‘브로커’ 팀과 함께 레드카펫을 밟고, 폐막식에 참석했다.
“모든 게 얼떨떨했어요. 송강호 선배님에게 모두가 의지했죠. ‘선배님 방금 잘한 거 맞아요? 저 실수한 거 아닐까요?’라고 선배님에게 여쭤봤어요. 저는 얼떨떨했고, 많이 떨어서 솔직히 즐기진 못했던 기억이 있어요.”
칸 영화제에서 최초 시사 후 ‘브로커’는 12분간 박수갈채를 받았다. 특히 이지은의 연기를 두고 해외 매체들은 ‘여우주연상’ 후보로 언급하기도.
“그 당시에는 일정이 빠듯해서 반응을 찾아볼 여유가 없었어요. 저뿐만 아니고, 선배님도 그러셨을 거예요. 관계자분들이 시사 다음 날 오셔서 ‘지은 씨도 좋은 말이 많았어요’라고 해서 의례하는 말인 줄 알았어요. 이후 파파고도 돌려서 번역해보니 진짜 제 얘기를 했더라고요. 너무 신기했어요. 프랑스에서 팬들을 만난 것도 신기했던 경험이었거든요. 프랑스에 제 팬이 있을 거라고 생각을 못했어요. 공항부터 환대해주셔서 얼떨떨하고, 마치 몰래카메라 같았어요. 레드카펫에서는 더 많은 팬들이 저의 CD를 들고 서 있었죠. 모든 게 ‘서프라이즈’의 한 장면 같았어요.”
인상 깊은 문구가 있었냐는 질문에 이지은은 환한 웃음으로 말을 이어갔다.
“CD를 들고 있던 게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가짜 같았죠. ‘어떻게 저걸 사셨을까? 직구를 하신 걸까?’ 등 생각들이 짧게 지나갔어요. 하하. 유럽에서 공연을 해 본 적 없고, 물리적으로 먼 나라에 있으니까. 물론, 요즘 온라인상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제가 퍼포먼스를 화려하게 하는 가수도 아니고, 언어 쪽에 기대서 음악을 하는 편이니 언어의 장벽이 있을 텐데 제 음악을 들어주실 거란 기대가 없었거든요.”
‘브로커’를 통해 본격적인 스크린 행보에 나선 이지은. 그는 극중 미혼모 소영 역을 연기했다. 소영은 보통 20대와 다르다. 살기 위해 성매매를 했고, 원치 않는 임신에 아기를 버리기까지 한다. 이러한 역할을 연기하기란 쉽지 않았을 터.
“제일 먼저 머릿속에 들어온 고민은 ‘송강호 선배님과 과연 내가 면대면으로 연기할 수 있을까? 기절하지 않고?’ 이런 생각이 먼저 들어왔어요. 송강호 선배님과 연기는 제가 연기를 계속 한다고 해서 쉽게 오는 게 아니잖아요. 고레에다 감독님에게 대본을 처음 제안 받은 순간도 기억에 남지만 제일 먼저 들었던 걱정은 송강호 선배님 앞에서 연기였어요. 감독님은 편안하게 설명해주셨죠. 제가 많이 귀찮게 해드렸어요. 대본에 나와 있지 않은 소영이의 구체적인 전사, 왜 그런 선택을 했고, 이 지점에선 왜 그렇게 행동을 했으며 소영이는 선택에 후회가 없는 인물인지 등 귀찮게 물어봤어요. 감독님은 그때마다 애매한 지점 없이 얘기해주셨죠. 그래서 많이 의지했어요. 어려운 역할이 맞고, 제가 맡기엔 큰 역할이기도 했어요. 그런 것들이 걱정되긴 했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매 작품 사회에서 소외되고 보호받지 못한 삶과 인물을 날카로우면서도 따스한 시선으로 담아냈다. ‘브로커’에선 언어와 문화의 차이를 넘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그려냈다. 각자 다른 사연과 상처를 지닌 인물들이 함께하는 여정을 통해 교감하고 변화해 가는 과정을 온기 있게 표현한 것.
“감독님의 작품 초기작부터 열심히 봤던 입장에선 늘상 해오신 화법과 조금 다르다고 느꼈어요. 감독님 개인의 화법이기도 한 것 같았죠. 주제를 다룰 때 돌려 말하진 않는 분이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대사 번역, 직역하는 과정에서 다른 작품보다 직설적인 대사가 있었던 것 같아요. 영화는 처음이고, 느껴보지 못한 직설적인 화두를 던지는 표현법이 저에겐 신선했죠. 연기하면서 어려운 점이 있었지만 경험하는 게 좋았어요. 말뿐만 아니고 행동, 눈빛, 분위기로 갈 법한 신에서도 확실하게 대사로 짚어주고, 명시를 해주시니까 연기하기 더 어려웠던 것 같아요. 여러 테이크를 시도하면서 감독님의 생각에 가까워지는 과정에선 같은 부분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중 가장 기억에 남고, 몰입한 신으로 동수(강동원)와 함께한 관람차 장면을 꼽았다.
“대본을 볼 때도 기억에 남았고, 눈물이 났던 장면이에요. 현장에서 찍으며 긴장했지만 몰입했죠. 영화관에서 보면서도 좋았어요. 시간적으로 빨리 찍어야 했는데 대본에선 ‘해가 질 무렵’이라고 명시되어 있었어요. 촬영이 시작하자마자 한 번씩의 기회만 있었죠. 대사가 긴 신인데 실수를 하면 내일 다시 와서 촬영해야 했어요. 덜덜 떨었는데 막상 슛이 들어가고 나선 떨었던 게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선배님과 호흡이 좋았어요. 해가 떨어지는 것 등은 제가 컨트롤 할 수 없는 부분이잖아요. 그때 그 시점이 담긴 걸 영화로 보니까 멋지더라고요. 애정이 가는 신이죠.”
이지은은 좀처럼 사연과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소영 역을 표정과 손짓, 걸음걸이 하나도 놓치지 않는 섬세한 연기로 다층적인 캐릭터로 완성했다. 미혼모 역이 쉽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역할에 도전한 이유는 무엇일까.
“막연하게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물어봤을 때 ‘엄마’ 역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기다렸는데 말이 안 되는 타이밍에 제안이 왔죠. 신기했어요. 그때 당시 엄마 역할을 하고 싶었던 건 어떤 엄마를 그렸던 건 아니고, 출산을 경험한 사람, 그런 고비를 넘긴 사람의 감정선을 이해해보고 싶고, 연기해보고 싶었던 막연한 지점이 있었거든요. 연기하고 나선 여전히 경험하지 못했던 거라 이해가 안 되는 지점도 있어요. 그래서 또 다른 엄마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소영이 상현(송강호), 동수, 해진(임승수)에게 “태어나줘서 고마워”라고 말하는 장면은 세상에 태어난 모든 이들을 따스하게 위로한다. 이는 ‘브로커’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메시지다.
“후반부에 촬영이 진행됐어요. 그때는 서로서로 편해진 현장이었죠. 대본을 봤을 때부터 잘해야겠다고 책갈피를 꽂은 신이었어요. 현장에 갔는데 모두 그 역할로 보였죠. 원래는 힘을 주고, 슬프게 연기할 계획이었는데 이걸 소영이가 슬프게 할 필요가 있나 싶었어요. 소영이가 일부러 슬프게 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담백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했어요. 감독님께서도 그 버전을 좋아해주셔서 두 테이크 만에 ‘오케이’를 해주셨죠.”
‘브로커’로 성공적인 스크린 주연 신고식을 치른 이지은은 차후 박서준과 함께 호흡을 맞춘 이병헌 감독의 ‘드림’으로 또 다시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제가 아이유로 활동할 때 밝고 경쾌한 모습을 보였잖아요. 그 이면을 보여주고 싶어서인지 어두운 역할이 많이 들어오더라고요. 요즘 무겁고, 사연 있는 역할을 맡다보니 일상적이고 고민이 없는 역할도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음 작품인 ‘드림’은 그런 모습을 연기했어요. 이후 차기작을 고른다면 일상적이고, 무념 무상한 역할을 해보고 싶네요.”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