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열의 표절 인정을 어떻게 평가할까?
입력 2022. 06.17. 15:14:18

유희열

[유진모 칼럼] 싱어 송 라이터 유희열이 지난 14일 자신의 신곡 ‘아주 사적인 밤’이 류이치 사카모토의 ‘Aqua’를 표절했다고 시인했다. 유희열은 1994년 그룹 토이를 통해 데뷔한 이후 서울대학교 작곡과 출신의 매우 반듯한 이미지를 견지해 왔다. 2009년부터 진행해 온 KBS2 ‘유희열의 스케치북’도 그런 이미지를 견고하게 다져 주었다.

게다가 SBS ‘K팝 스타’ 시즌 3~6를 통해 동료 심사 위원 박진영, 양현석과는 다른, 따뜻하면서도 비상업적인 태도로 초지일관해 ‘선비’ 이미지를 확고하게 다졌다. 따라서 상업성보다는 음악성을, 이기주의보다는 이타주의를 추구하는 학구적 뮤지션이라는 페르소나를 갖추게 되었다. 그렇기에 표절은 매우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렇다면 유희열의 표절은 28년 동안 ‘타블라 라사’ 같은 순백의 표상으로 군림해 온 위상이 사상누각이 되어 버렸다는 의미 하나에 불과한 것일까? 표절은 한마디로 창작자의 도둑질이다. 창의력이 무기인 작가가 창작이 아닌, 베끼기를 했다는 치명적인 범죄이다. 논문 표절은 정치계부터 시작해 사회 전반의 대표적인 암적 존재이다.

하지만 빙산의 일각이어서 그렇지 전 세계의, 특히 대한민국 대중가요의 표절은 1980년대부터 매우 심각한 문화적, 법적 문제였다. 김대중 정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대한민국 정부령의 대일 문화 봉쇄 정책에 따라 일본 가요는 국민 정서를 해칠 수 있는 적산(敵産) 계열이라는 이유로 우리 국민의 공식 접근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적지 않은 뮤지션들이 이를 악용해 노골적으로 일본 가요를 표절하고는 했다. 그랬을 정도이니 유럽의 선진 팝 음악을 도용하는 사례 또한 빈번했었다. 1995년 초 그룹 룰라는 2집 타이틀 곡 ‘날개 잃은 천사’의 엄청난 성공으로 정상에 오른 뒤 그해 말 3집 발매를 앞두고 100만 장의 선주문을 받으며 돈방석에 앉을 분위기였다.



그런데 발매 하루 전 한 스포츠 신문에 타이틀 곡 ‘천상유애’가 일본 그룹 닌자가 5년 전 발표한 ‘오마쓰리 닌자’를 표절했다는 기사가 실리고, 리더 이상민이 자해 소동을 일으키는 등 한바탕 난리를 치른 후 팀은 미국 LA로 훌쩍 떠났다. 뚜껑을 연 결과 가사만 바꿨을 뿐 거의 100% 일치했고, 룰라는 한동안 슬럼프에 빠진다.

아이러닉한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음반이 130만여 장이 팔렸다는 것. 하여튼 이 사건을 계기로 국내 가요계에서는 표절에 대한 판정 기준이 매우 엄격해졌지만 표절 논란은 그치지 않았다. 당시를 넘어 지금에조차도 룰라가 뛰어넘지 못하는 서태지의 경우에도 표절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을 정도이다.

물론 표절 판정 기준은 애매모호하다. 법적 기준은 ‘1. 음악이 저작권법에서 보호받을 만한 창작적 요소가 존재해야 한다. 2. 음악의 창작적 요소를 의도적으로 따라 한 것이다. 3. 진짜로 유사한 부분이 있어야 한다.’이다. 세간에 알려진 ‘몇 마디 이상이 같으면 표절이다.’라는 기준은 없다. 결론은 ‘표절 판정은 어렵다.’이다.

게다가 원곡으로 의심되는 표절 대상 노래의 창작자의 고소도 필요하다. 국내법과 국제법의 상관관계도 얽혀 있다. 서태지와아이들 시절부터 급격하게 유행되기 시작한 샘플링은 이 표절 판정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퍼프 대디 역시 ‘I'll be missing you’에서 스팅이 폴리스 시절 작곡한 ‘Every breath you take’를 무단 샘플링 했다는 판정을 받고 저작권료를 빼앗긴 바 있다.

이렇듯 샘플링은 사전 허락(사용료 지불)만 받으면 사용이 가능하다. 랩이 대중음악의 주류로 자리잡은 지금 사실상 표절 판정은 더욱더 오리무중으로 빠진 셈. K팝이 세계 시장을 휩쓰는 이 시대에도 국내 가요계에서 표절 의혹은 치열하게 난무한다. 그래서 SM, JYP, YG, FNC 등 대형 엔터테인먼트 기업에서 유독 두드러져 보인다.



그러나 법이 판정하지 않는 한 유희열처럼 쉽게 인정한 케이스는 희귀하다. 오죽하면 고 신해철이 ‘(만약 표절이 아니라면)파리가 새이다.’라는 통렬한 아포리즘을 남겼을 정도이다. 결론적으로 유희열은 비난받아야 할 게 아니라 칭찬받아야 마땅하다. 28년의 노력이 모래성이 될 위험을 감수하면서 양심에 따라 처신했기 때문이다.

작가 지망생들이 이론 공부를 할 때 가장 먼저 배우는 게 ‘하늘 아래 새로운 이야기는 없다.’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야기에는 시작, 중간, 결말이 있다.’라는 명제는 2300년도 넘게 적용되고 있다. 대중음악은 서양의 12음계를 기준으로 만들어진다. 미국의 팝을 기저로 하는 K팝 역시 그런 틀 안에서 작곡, 편곡이 이루어진다.

저 위대한 비틀스와 마이클 잭슨조차 표절 시비에 휘말린 바 있다. 유희열은 “긴 시간 가장 영향 받고 존경해 온 뮤지션이기에 무의식중에 제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유사한 진행 방식으로 곡을 쓰게 되었다. 발표 당시 저의 순수 창작물로 생각했지만 두 곡의 유사성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표절 인정의 배경을 설명했다.

창작자에게 표절의 유혹과 위험은 상존한다. 하늘 아래 새로운 이야기가 없듯 하늘 아래 새로운 음악은 없다. 다만 새로운 영감과 아이디어가 신곡을 만들 따름이다. 표절의 원인은 의도와 무의식중 두 가지. 영감과 아이디어가 안 떠오르거나 원래 약할 경우 특정한 한 곡 이상에서 가사, 멜로디, 리듬, 편곡 등을 도용하는 것이 첫 번째.

다 그렇지는 않지만 뛰어난 뮤지션일수록 대부분 다른 우수한 창작자의 곡을 많이 듣기 마련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그랬을 경우 감동받거나 우수성을 인정하는 음악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의식 속에 남기 마련이다. 그런 잔존 현상이 창작 때 역시 무의식에서 의식(창작)으로 흘러 악보 위를 스멀스멀 기어 다니게 되는 것이다.

유희열의 고백이 진심이건 의도이건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재빠른 대응(시인)이다. 만약 질질 끌었거나 부인했다면 인정한 것보다 더 큰 손실을 입었을 것이다. 탈레스 이래 인류가 인문학과 과학에 매진한 이후로 표절은 끊임없는 논란을 야기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문제는 유희열 같은 양심 혹은 셈법이다.

[유진모 칼럼 / 사진=셀럽미디어DB, 뉴시스(류이치 사카모토), KB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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