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 ‘헤어질 결심’을 순수한 영화라 한 이유 [인터뷰]
입력 2022. 07.07. 16:25:36

'헤어질 결심' 박찬욱 감독 인터뷰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고전적이고, 우아한 사랑 얘기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런 순수한 영화. ‘순수하다’고 말하는 건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는 게 아닌, 정치적 메시지나 감독의 주장을 포함시키지 않는 것이죠. 영화적으로 화려한 볼거리와 기교가 없는, 영화를 구상하는 최소한의 요소를 가지고 간결하게 구사해서 깊은 사랑을 끌어내는 영화를 만들어내고 싶었어요.”

박찬욱 감독이 말한 ‘헤어질 결심’은 이렇다. 파격과 금기가 아닌, 미묘한 감정의 ‘떨림’과 내면에 ‘파동’을 일으키는 이야기다. 상실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비극적이지 않은, 미묘하고, 우아한, ‘헤어질 결심’이다.

‘헤어질 결심’은 산에서 벌어진 변사 사건을 수사하게 된 형사 해준(박해일)이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를 만나고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느끼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탕웨이와 박해일의 캐스팅은 각본 단계부터 박찬욱 감독의 확신에 찬 선택이었다.

“캐스팅은 탕웨이가 먼저였어요. 탕웨이를 캐스팅하기 위해 주인공을 중국인으로 정했죠. 탕웨이를 잘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로 창조된 거예요. 캐릭터에 맞는 사람을 캐스팅한 게 아닌, 그 반대였죠. 사적으로 알진 못했으니까 전작들을 보면서 가지고 있던 막연한 인상과 그녀의 매력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한편으로 궁금해 하면서 이런 모습의 탕웨이를 보고 싶다고 생각하며 각본을 썼어요. 제가 아는 탕웨이는 ‘색계’ ‘만추’ ‘황금시대’의 배우였죠. 각본이 완성되기 전, 탕웨이를 만나 출연을 제안했어요. ‘하겠다’는 의사를 받은 다음 각본을 썼죠. 탕웨이를 1대1로 만나 알아가는 과정과 각본을 완성해가는 과정을 동시에 진행했어요. 탕웨이를 알게 되면서 각본에 반영된 거죠. 실제로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장난기가 있는 사람이더라고요. 그리고 조금 더 고집스러운 면도 있었어요. ‘나는 이렇게 해야 잘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작업방식은 이렇다’라는 소신이 뚜렷했죠. 그런 면들을 각본과 캐릭터에 반영했어요.”

박해일 역시 맞춤형으로 각본을 썼다고. 특히 박해일이 맡은 해준 이름의 ‘해’는 바다를 뜻하기도 하지만 박해일의 ‘해’에서 따온 것이라고 밝혔다.

“박해일이라는 사람을 상상하며 각본을 써보자고 정서경 작가에게 제안했어요. 어느 영화에서 보여줬던 박해일이 아닌, 실제 담백하고, 깨끗하고, 상대를 배려해주는 인간 박해일을 이 캐릭터에 대입하자고 했죠. 해준은 경찰 공무원이라는 확고한 직업의식을 가지고 있어요. 시민에게 봉사하는 직업, 거기서 모든 게 출발된다고 봤죠. 경찰 공무원으로서 직업윤리를 가지고 있고, 슈트를 입는 게 예의라고 생각하는 인물이죠. 용의자일지라도 유죄가 확정되기 전까지 공정하게 다루고, 친절하게 대해요. 또 뛰어다녀야 하니 검정 운동화를 신는 사고방식을 가진 고지식한 사람이죠. 그런 사람이 자기의 윤리에서 배반하게 되는 처지에 놓일 때 딜레마와 고통이 커질 거라고 봤어요.”



박찬욱 감독의 ‘단일한’ 선택은 통했다. 탕웨이는 모두를 뒤흔들었고, 박해일은 누구나 빠져들게 만들었다. 두 사람의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은 몰입과 여운을 남기는 매혹적인 시너지로 완성됐다.

“좋은 배우들끼리 만나면 언제나 좋은 케미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고 믿는 편이에요. 거저 되는 게 아닌, 노력을 많이 해야 하죠. 당사자들이 서로에 대해 잘 알고, 배려해주고, 지금 저 사람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는 배우들끼리만 통하는 거죠. 그러면서 배려해주고, 배려를 느끼며 서로에게 잘해주려고 하고. 그렇게 연기가 잘 되는 거예요. 연기는 상호작용이에요. 서로에게 기대고, 의지해가며 주고받는 것이기에 그런 면에서 두 사람은 천성이 사려 깊고, 자상하기 짝이 없는 인간들이라 잘 만난 것 같아요. 항상 서로에게 감동하고, 감동을 주고받으며 연기를 했죠.”

‘헤어질 결심’의 삽입곡 ‘안개’는 중요한 영감을 준 곡이라고 한다. 가수 정훈희와 송창식의 조화로운 목소리는 본편에 이어 엔딩크레딧까지 울려 퍼지며 깊게 스며들도록 만든다.

“곡이 발표된 때부터 지금까지 제일 좋아하는 한국 가요 중 하나에요. 정훈희 씨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여가수죠. 우연히 송창식 씨가 포함된 그룹도 이 곡을 커버한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모든 게 출발됐어요. ‘안개 속에 눈을 떠라, 눈물을 감추어라’는 가사가 특히 더 제 심금을 울렸죠. 안개가 뿌옇게 끼어서 시야가 흐릿할 때 눈을 똑바로 뜨고, 잘 보이지 않는 뭔가를 열심히 해보겠다는 의지와 노력을 느꼈죠. 감흥을 표현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영화에서 안개도 나오고, 녹색인지 파랑인지 모르는 그런 색깔도 나와요. 여러 가지 불분명한, 불확실한 상태, 사물이나 관계, 감정 같은 게 노래에서 출발했다고 보면 되죠.”



박찬욱 감독의 고심이 느껴지는 독창적인 대사들도 곱씹게 된다. 한국어가 서툰 서래는 ‘단일한’ ‘마침내’ ‘운명하셨습니다’ 등 익숙한 단어들을 낯설게 느껴지게 하는 표현으로 궁금증을 높인다. 또 통역이 앱을 사용하는 두 사람의 소통 방식은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문어체로 구성된 대사까지 박 감독의 위트를 느낄 수 있다.

“영화 속에서 현대인 치고 품위 있다고 하잖아요. 스마트폰, 스마트 기기를 한껏 활용하면서도 말투, 장소, 공간에서는 고풍스러운 구식 느낌을 만들어 대비 시키려고 했어요. 서래는 중국 사람으로서 한국어를 책과 사극 드라마를 보면서 공부했기에 쓸 수밖에 없어요. 정확하지만 요즘사람이 듣기엔 낯선 한국어죠. 처음엔 웃음이 나올 수 있지만 한 번 더 생각해보면 ‘이런 표현도 있었지, 내가 쓰는 말보다 더 정확하잖아?’라고 생각해요. 매력 있고, 사랑스러운 생각도 들게 하고. 익숙하게 쓰는 한국어인데 낯설게 들리죠. 그 단어 뜻에 대해 조금 더 음미하게 되고요. ‘마침내’도 흔한 단어인데 ‘운명적인, 올 것이 온’ 등 거창한 생각으로 가지를 뻗어나가는 효과를 만들고 싶었어요. 해준은 서래의 표현대로 현대인치고 품위 있는 사람답게 말을 해요. 그래서 서래와 잘 어울리고, 같은 종족으로 알아보죠. ‘마침내’라는 단어가 어쩌면 부적절한 것처럼 사용했을 때 해준이 곰곰이 음미하며 ‘저보다 한국말 잘 하시네요?’라고 할 수 있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그런 말을 들었을 때 픽 웃고 말 것인데 해준은 같은 종족의 인간임을 느끼죠. 서경 작가와 그런 걸 찾으려고 노력했어요.”

‘헤어질 결심’은 사랑이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리지만 그에 상반되는 제목이다. ‘헤어질 결심’을 제목으로 결정한 박찬욱 감독의 결심은 무엇일까.

“동료 영화인들이 ‘독립영화 제목 같다’고 걱정하는 분도 계시더라고요. 저는 당황했어요. ‘독립영화 제목은 따로 있나?’란 생각에 ‘정말? 그런가요?’라고 반문했죠. 서경 작가와 의견을 나누면서 제목을 떠올릴 때가 많아요. ‘아가씨’도 그랬죠. ‘헤어질 결심’은 트리트먼트를 쓴 단계에서 얘기를 했어요. 이때 서래가 ‘헤어질 결심을 하는 건가요?’라고 하죠. ‘헤어질 결심, 그것 참 제목 같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어요. 관객이 글자 그대로 믿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고요. ‘결심’이라는 단어는 결심의 ‘실패’와 연결돼요. ‘헤어질 결심’을 하지만 끝내 헤어지지 못하거나 고통스럽게 헤어지거나. 그렇게 관객들이 능동적인 참여를 한다고 생각했죠.”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CJ EN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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