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밤', 살아 있다고 다 삶이냐고 묻는 독립영화
입력 2022. 07.15. 13:32:18

'초록밤'

[유진모 칼럼] 윤서진 감독의 장편 데뷔 독립영화 ‘초록밤’이 부산국제영화제, CGV 아트하우스상, 캐나다 판타지아영화제 등에서 주목받았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는 의미이다. 30대 장애인 활동 지원사 원형(강길우)은 수입이 많지 않은 데다 집안도 넉넉하지 못해 결혼은 언감생심인지라 연인 은혜(김국희)와 8년째 모텔을 전전하고 있다.

60대 아버지(이태훈)는 집 근처의 아파트 경비원으로 밤에 근무하고 아침에 퇴근한다. 어머니(김민경)는 그런 무기력한 두 남자가 답답하고, 평생 고생만 한 결혼 생활 역시 후회스럽다. 집주인이 아파트를 팔 것이라며 퇴거를 요구한다. 갑자기 할아버지가 눈을 감자 작은 소란을 겪으며 작은 고모(오민애)의 주도로 장례식을 마친다.

세 가족은 할아버지가 남긴 시골집을 처분하기 위해 찾아갔다가 기함한다. 할아버지의 애인이 있었던 것. 가족은 그 할머니에게 다음날 찾아올 터이니 퇴거하고, 할아버지 재산도 정리하자고 통보한다. 다음날 가족은 목을 맨 할머니를 발견한다. 일전에 누군가 목을 매단 고양이 사체를 보았던 아버지는 삶과 죽음을 고민하는데.

‘초록밤’으로 제목을 바꾼 이유는 양가성과 이항대립, 혹은 모순과 역설을 어필하고자 했던 듯하다. 거처에서 갑자기 쫓겨나야 했던 가족은 한 할머니를 쫓아내야 하는 입장으로 위치가 전도된다. 이리저리 결혼식에 불려 다니며 축의금으로 지갑을 축내야 했던 원형은 그러나 정작 결혼을 하지 못한 채 모텔 연애를 지겨워한다.

연애(섹스)는 좋다. 그래서 결혼(섹스와 번식과 안정)을 하고 싶지만 남의 결혼식만 바라보아야 하는 형편이다. 그 삶이 바람직한, 그래서 내일을 꿈꿔 볼 만한 삶일까? 어떻게 해서든 살고자 했던 아버지는 그러나 지나온 삶이 허무하거나 회의적이라는 판단을 내리고는 이만 마감하고자 하는, 처음으로 자기 주도 의지를 갖는다.

인트로에서 아파트 순찰 중 누군가에 의해 목이 매달린 채 사망한 고양이를 발견하고 땅에 묻어 주었던 아버지가 거의 마지막 시퀀스에서 목을 매려 하는 수미상관의 시퀀스가 그런 의미이다. 인류는 사상을 품게 된 이래로 이항대립과 이분법을 좋아해 왔다. 좋은 놈과 나쁜 놈, 미녀와 추녀, 일원론과 이원론, 부자와 빈자 등.

하지만 조금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이분법이나 양가성이 과연 올바른지에 대해 의문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과연 정의와 도덕의 기준은 무엇인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간통법이 존재했지만 지금은 없어졌다. 사형 제도 역시 마찬가지로 도마 위에 올라 있다. 한때 중범죄였던 동성애는 이제 결혼까지 허용하는 추세이다.

초록은 파랑과 노랑의 중간색이다. 제목을 파랑과 빨강의 중간색인 보라로 하지 않고 초록을 선택한 이유 역시 이항대립에 대한 반발로 보인다. 보라는 매우 노골적이므로. 초록의 본래 이미지는 푸릇푸릇한 생동감과 생명력이다. 물이 잔뜩 오른 녹색 풀이 연상된다. 칠판이 초록인 이유 역시 눈의 피로감을 최소화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조도나 채도를 낮추면 그로테스크해질 수 있다. 공포 영화를 연상하면 쉽다. 이 작품 역시 그런 뉘앙스를 풍긴다. 그래서 제작사는 장르를 ‘미스틱 시네마’라고 명명했다. 파랑과 노랑은 강렬하고 초록은 싱그럽다. 파랑은 시원하고, 노랑은 선정적이다. 초록은 밝을 때 청량하지만 어두워지면 탐미적이지 못한 쇠락이 된다.

부유함과 가난함, 삶과 죽음은 무엇일까? 그 차이는 무엇일까? 세 가족은 그런 걸 생각할 틈도 없이, 느낄 여유도 없이 살아왔다. 그렇게 살아‘진’ 인생을 되돌아볼 나이가 된 아버지와 어머니는 비로소 삶의 의미와 방향을 깨닫는다.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쉴 새 없이 잔소리를 늘어놓고, 불평불만을 털어놓을 수 있는 배경이다.

이에 비해 원형은 아직도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이 세상이 잘못된 것인지, 자신이 잘못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세 가족이 모텔 방에 누워 잠을 청하는 마지막 시퀀스는 전형적인 독립영화 식 맥락의 마무리인데 결코 희망적이지 않아 서늘하다. 할리우드에 비해 유럽에는 독립영화 식 구문론을 따르는 상업 영화들이 꽤 많다.

한국 관객들에게는 프랑스 영화가 익숙할 터인데 이 작품은 프랑스 취향이라기보다는 동유럽에 가깝다. 한국 독립영화를 대표하는 홍상수 감독의 작품마저도 일기장 같은 개인적 서사의 반복을 제외하면 상업성을 배제할 수 없는데 이 작품은 낯선 동유럽의 냄새가 짙게 풍긴다. 그래서 스산하고 목덜미가 뻐근해진다. 28일 개봉.

[유진모 칼럼/사진=㈜인디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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