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창정과 김문정 음악 감독의 나이 서열
입력 2022. 07.19. 11:17:51
[유지모 칼럼] 과연 나이란 무엇일까? 일각에서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테제를 외치지만 대한민국 사회에는 여전히 나이 서열이 엄존한다. 나이 좀 먹었다는 사람들의 말다툼을 듣다 보면 승패가 쉽사리 갈리지 않으면 종당에는 “너 몇 살이야?”라는 호통이 나오는 걸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외국인이 알아듣는다면 코웃음 칠 일이다.

우리 나이는 여러 행정과 법적으로도 제각각이어서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고는 한다. 오죽하면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나이 계산법을 만 나이 기준으로 통일하겠다고 했을까! 지나치게 바빠서인지 아직 아무런 제스처도 나오지 않고 있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그래서 임창정(49)과 음악 감독 김문정(51)의 상황이 흥미롭다.

지난 18일 방송된 SBS 예능 ‘동상이몽 2-너는 내 운명’에서 김 감독은 약 10년 만에 뮤지컬에 출연하는 임창정의 연습을 주도했다. 임창정은 아내 서하얀 씨가 지켜보기 때문인지, 오랜만의 복귀 때문인지 제대로 음정을 잡지 못했다. 그러자 김 감독은 “가창 연습을 제대로 안 하신 것 같다.”라고 따끔하게 지적했다.

이에 임창정은 “나 옛날에 가수였는데.”라며 민망해했고 김 감독은 “창정 씨, 제 나이 아세요? 왜 자꾸 반말하세요?”라며 다짜고짜 서열 정리를 하려 했다. 대화 내용으로 보아 두 사람은 이날 처음 만났거나, 최소한 가까운 사이는 아니다. 김 감독은 “제가 돼지띠(1971년생)이니까 누나이다.”라고 덧붙이며 구체적으로 서열을 정했다.

“제가 반말한 적 없다.”라며 변명한 임창정은 소띠(1973년생)이다. 그는 김 감독의 말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누나, 죄송합니다.”라며 90도 인사를 했다. 재미있는 건 이를 지켜본 서 씨의 반응. 그녀는 “(남편이) 미국식 인사를 되게 좋아한다.”라고 은근히 임창정을 변호해 줬다. 이게 미국이었다면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

물론 이 방송은 예능이다. 재미를 위한 설정, 혹은 연출일 수도 있다. 임창정이 김 감독에게 “동안이라 몰라봤다.”라며 해명한 것이 설정을 유추하게 만든다. 그런데 이 상황이 과연 시청자들에게 얼마나 재미있게 비쳤을까? 50대 이상의 ‘꼰대’들에게는 흥미로웠을 수도 있겠지만 젊은층에도 공감에서 우러나오는 재미를 줬을까?

우리나라를 제외한 모든 국가에서는 만 나이를 사용한다. 현시점에서 생년월일을 뺀 나이로 이를테면 ‘29살 3개월 되었다.’, 혹은 더 나아가 ‘29살 3개월 7일 되었다.’라는 식이다. 우리나라에는 세는 나이, 연 나이, 만 나이가 있다. 태어나자마자 1살이 되고 1월 1일이 되면 무조건 한 살 더 먹는 게 전통적인 세는 나이이다.

현재 연도에서 태어난 연도를 빼는 게 연 나이인데 이 역시 우리나라에만 있는 계산법으로 주로 언론 등에서 사용한다. 만 나이는 세계 공용 계산법으로 현재 연월일에서 태어난 연월일을 빼는 식이다. 세는 나이는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의 각종 문화와 생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중국에서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에는 일본을 비롯해 동아시아 일부 국가들도 그 영향 아래에 있었다. 하지만 현재 동아시아 국가들은 세는 나이를 폐지했다. 종주국 격인 중국은 1960∼1970년대의 문화 대혁명 이후에, 일본은 1902년에 만 나이를 공식 적용했다. 심지어 일본은 1950년부터 세는 나이가 불법이다. 북한은 1980년대 이후 만 나이만 사용한다.

세는 나이에 관한 한 우리나라는 천연기념물이다. 태어나자마자 한 살로 친 배경이 태아도 인격체로 존중했기 때문이라는 일각의 해석이 나름의 의미를 지니기는 한다. 게다가 지켜야 할 고유의 문화유산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시대착오적이어서 현 생활 패턴과 법률과 질서 등에 맞지 않는 것이라면 예외일 것이다.

과연 세는 나이가 ‘장래의 문화적 발전을 위하여 다음 세대 또는 젊은 세대에게 계승, 상속할 만한 가치를 지닌 과학, 기술, 관습, 규범 따위의 민족 사회 또는 인류 사회의 문화적 소산. 정신적, 물질적 각종 문화재나 문화 양식.’(네이버 국어사전)이라는 문화유산의 범주에 들기는 한 걸까?

임창정과 김 감독은 이날 처음 만났거나 최소한 서먹서먹한 사이이다. 임창정이 “나 옛날에 가수였는데.”라는 식으로 자꾸 말끝을 흐린 것은 잘한 언행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특히 높임말과 낮춤말의 구분이 확실한 언어 체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초면 혹은 친하지 않은 사이라면 더욱더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그게 질책과 서열 구분의 빌미가 될 만큼 큰 잘못이었을까? 우리 구어체에는 매우 격식을 차려야 할 사이가 아니라면 짧은 말이 허용되는 케이스가 왕왕 존재한다. 임창정과 김 감독이 뉴스나 토크 프로에 출연했다면 ‘다’와 ‘까’로 끝내는 격식의 언어 체계를 사용하는 게 옳았겠지만 그 프로는 예능이었다.

물론 임창정의 ‘짧은 말’이 상황적으로 봤을 때 전적으로 옳다는 것은 아니다. 찬반의 이분법으로 봤을 때 정합이 아닌 부정합인 것은 확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색한 사이에 다짜고짜 나이를 기준으로 서열을 정하려 한 김 감독의 주도는 결코 옳다고 보기 힘들다. 법적으로 만인의 인권은 동등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자신의 음악 감독이라는 지위를 앞세워 “서로 공경하는 차원에서 격식을 갖춘 언어를 사용하자.”라고 제안했더라면 어땠을까? 연 나이 혹은 만 나이 51살이면 예전 같으면 할머니가 되었을 터이지만 지금은 달라도 한참 다르다. 현재 노인을 가늠하거나 가름하는 만 65살조차도 70살로 미루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올 정도이다.

요즘 연예인은 그 누구보다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오피니언 리더이다. 심지어 적지 않은 어린이나 청소년에게는 교과서 이상의 인식론적 준거틀이 되기도 한다. 지켜야 할 문화유산은 보존하되 시대적 흐름에 맞춰 바꿔야 할 것을 가능한 한 빨리 변화해야 한다. 대중이 오피니언 리더, 혹은 공인의 자리에 올려 준 연예인, 방송인의 책무 중 하나이다. 그런 상황을 예능의 설정으로 활용하는 것 역시 시대착오적이다.

[유진모 칼럼/ 사진=SBS '동상이몽 2-너는 내 운명' 캡처, 셀럽미디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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