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용의 출현' 박해일, 절제에 담은 많은 것들 [인터뷰]
입력 2022. 08.01. 13:00:31

박해일

[셀럽미디어 김희서 기자] 배우 박해일이 지장(智將)으로서의 이순신의 면모를 갖췄다. 장군 보다는 선비에 가까운 이미지인 박해일은 제법 갑옷이 잘 어울렸고 널리 알려진 이순신 장군의 영정 속 모습과도 묘하게 닮아 보인다. ‘한산: 용의 출현’을 보고 나면.

‘한산: 용의 출현’은 명량해전 5년 전, 진군 중인 왜군을 상대로 조선을 지키기 위해 필사의 전략과 패기로 뭉친 이순신 장군과 조선 수군의 ‘한산해전’을 그린 전쟁 액션 대작. 박해일은 지혜로운 성정을 지닌 조선 최고의 장군이자 조선의 바다를 지키는 전라좌수사 이순신으로 분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박해일의 눈동자에 끌려다니다시피 했다. 선과 악을 오가며 묘한 눈빛을 풍기는 박해일의 두 눈이 ‘한산: 용의 출현’에서는 오로지 영명한 눈빛만 담겼다. 이순신 장군의 강직함과 곧은 결의를 표현할 때도 많은 대사가 필요하지 않았다. 박해일의 눈길 한번, 말 한마디에 모든 말초신경이 곤두섰다.

이에 인터뷰에서 만난 박해일은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풍겼다. 그는 갑옷만 입지 않았지, 스크린 속의 이순신 장군이 그대로 튀어나온 듯한 모습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특히 예상치 못했던 박해일의 시 낭송은 꽤 낭만적이었다. 취재진들에 잠시 양해를 구한 뒤 박해일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쓴 시를 낭송했다. 충무공 이순신을 연기한 만큼 지금도 여전히 마음 한켠에 그의 숭고한 정신을 잊지 않으려는 박해일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그의 낭송이 울려 퍼진 현장에서 인터뷰는 사뭇 달라진 공기로 시작됐다.

“시도 쓰는 장군이셨다. 7년 전쟁을 버텨내시기까지 어마어마한 스트레스가 있었을 거다. 난중일기에서 보면 그럴 때 수장들을 불러 술을 한 잔 하거나 밤중에라도 나가서 안 보이는 과녁에 땀이 흠뻑 젖도록 활을 쐈다고 한다. 그것도 안 되면 글을 쓰셨더라. 글을 쓰신다는 건 인상적이었다. 전투를 임하는 수장이 일기도 쓰고 시도 짓는다는 부분을 가져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간 미디어에서 숱하게 그려진 이순신 장군의 모습은 각기 다르다. 작품마다 가진 고유의 색깔에 따라 변화하듯 ‘한산’에서 이순신 장군 역시 그 안에 또 다른 모습을 구현해냈다. 박해일은 파죽지세로 진군하는 왜군으로 인해 조선이 수세에 놓인 상황에도 일관되게 침착한 이순신으로 연기해야 했다. 이를 위해 박해일은 베일에 가려져 있던 이순신 장군의 모습들을 찾아갔다.

“몇십 년 전부터 이순신 장군을 다룬 드라마와 영화와 저서들이 있는데 한 인물을 부각하는 톤은 다양하다. 그 시대가 요구하고 바라는 부분을 부각시킨 측면이 있다고 본다. 지금은 ‘한산’이란 작품이 이순신 장군의 감성적인 부분도 갖고 있고 이 시대와 어울릴 것 같다. 감독님께서 ‘한산’의 전투를 ‘명량’과 다른 이야기의 결로 보여주자고 하셨을 때 수양을 많이 쌓은 선비 같다는 문장이 저한테 깊숙이 들어왔다. 그런 문장에서 이순신 장군을 캐릭터적으로 표현하는데 많이 살려보려고 했고 감독님 또한 자연스럽게 저의 그런 기질적인 측면으로 유도해주면서 나온 역할이다.”

‘한산: 용의 출현’에서는 그간의 작품들을 통해 쌓아 올린 박해일의 내공과 깊이감이 한껏 발휘된다. 신중하면서도 대담한 카리스마를 지닌 이순신 장군의 위용을 역동적인 액션보다는 눈빛과 존재감 그 자체로 승부해야 했다. 이를 카메라 밖을 넘어 스크린에도 담아내는 것이 숙제였다는 박해일은 오히려 욕심을 내려놓았다. 그는 연기를 할 때 일심동체로 움직이는 감정, 호흡, 동작 등 모든 것들을 절제하며 이순신 장군에 다가갔다.

“많은 작품을 해오면서 인물을 보여주는 방식이 여러 가지였다. 좀 더 감정을 드러내거나 말을 하거나 작품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산’에서는 최대한 절제된 톤에서 주어진 대사가 적더라도 그 대사 한 마디 한마디에 모든 기운을 실어 날려보고자 했다. 그렇지만 앞뒤 문맥이 말이 되게끔. 그래서 사실 더 어려운 방식이었다. 효율적으로 연기가 전달되지 못하면 연기를 안 하는 것처럼 보일까봐. 대사는 배우가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확실하고 일반적인 방식인데 이번 작품에서는 얼굴 한 번 비추는 몇 초 안에 감정들을 눈빛으로 보낸다던가. 짧은 호흡을 활용해서 보낸다던가, 얼굴도 아닌 서 있는 자세 하나로 그 인물과 상황을 보여줘야 했다. 그래서 대사화하는 방식이랑 최대한 똑같은 기운을 가지려고 했다.”

매 작품마다 메소드 연기를 해내는 박해일이지만 ‘절제된 연기’는 그에게도 도전이었다. 다양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현장이 코로나로 인해 묶이면서 박해일은 의도치 않게 촬영 외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이에 박해일은 고독함을 이용해 소소한 일상들 속의 이순신 장군에 이입해보는 노력도 기울였다.

“절제된 연기를 하는데 어려움은 코로나 시기였다. 중간에 회식도 없었고 그렇다 보니 숙소 생활을 꽤 오래한 작품이다. 혼자있는 시간이 많으면서 스태프와 동료 배우들이 서로를 다 위해준 것 같다. 스크린 밖에서 준비했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모두가 다른 영화보다 더 진중하고 더 절제된 배우 생활을 했다고나 할까. 저 같은 경우에는 숙소에서 시나리오 복원할 때도 책상 의자에 앉기보다 양반다리하고 바닥에 앉았다. 그게 도움이 됐던 것 같다. 수양을 쌓아보는 태도 같기도 했고. 난중일기는 촬영 들어가기 전에 볼 수 있을 만큼 봤다. 촬영하면서는 오히려 콘티와 시나리오를 더 봤고 그 두 개를 보지 않을 때는 많이 걸었다. 잡념들이 생길 때면 강릉이나 여수 일대를 많이 걸었다. 이순신 장군님이 활을 쏘셨듯이 활을 쏠 수는 없으니 조용히 많이 걸었다.(웃음)”

‘한산: 용의 출현’은 ‘임진왜란’ 전투 중 가장 최초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한산도대첩의 위엄과 더불어 학익진 연출, 거북선 디자인까지 완벽하게 구현해낸 바. 다만 등장하는 해상전투신은 바다에 배 한 척 띄워놓지 않고 완성된 장면들로 알려져 놀라움을 안겼다. 배우들 역시 대부분 녹색 스크린이 둘러싸인 촬영장서 연기에 집중해야했다. 몰입에 어려움은 없었을까.

“처음에는 난감했다. 쉬운 예로 ‘괴물’을 할 때는 하나의 크리처를 두고 연기에 집중하면 됐는데 이번엔 전투에서 물살의 흐름도 알아야 하고 어느 정도 적진이 와 닿아있는지 가늠도 해야 하고 수세에 몰렸는지 공세를 진행해야 하는지 판단하는 연기도 해야 했다. 강릉 스케이트장 안에 실제 크기와 비슷한 판옥선, 안택선, 거북선 세트를 운영하고 사방에 녹색 스크린이 둘러쳐져 있는데 연극했을 때 최소한의 무대 세트로 연극하는 느낌이었다. 원초적으로 돌아가더라. 그 안에서 항해 역할을 해준 것은 CG팀과 감독님이 만들어낸 애니메이션 작품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애니메이션 지도, 동영상 콘티가 있어서 그걸 보면서 지금 이때는 어떤 상황이 펼쳐졌고 배우가 어떤 곳을 바라보며 감정과 연기를 보여줘야 하는지 합을 맞추는 지점이 많았다. 덕분에 후반 작업이 더 정교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고. 그런 합과 준비가 많이 필요했다. 그래도 제일 우선은 배우의 감정과 CG가 따로 놀지 않길 바라서 감정에 집중했던 것 같다.”

이순신 장군을 연기하면서 개인적으로 그를 바라보는 관점에도 변화가 생겼을까. 박해일은 이순신 장군을 연기하기까지의 부담감을 털어놨다. 완벽한 위인의 한 단면을 연기하고 대중들에게 인정받는 것은 꽤 크나큰 두려움으로 다가왔을 터. 그럼에도 박해일은 그간 비춰지지 않았던 이순신의 다른 모습을 그만의 색으로 소화해냈다.

“흠결이 없는 사람이라는 점이 가장 크게 다가왔다. 그 만큼 배우로서도 박해일로서든 간극이 제일 컸다. 연기를 하면 되지만 그 간극을 두고 연기하기엔 거짓말 같고 그걸 잊고 나서 하고 싶은데 떨쳐버리기가 쉽지 않더라. 흠결 자체인 저 인물을 연기한다는 게. 리더의 자질은 ‘명량’에서 명확한 톤이 있었고 ‘한산’에서 이순신의 모습도 수군들에게 기운을 복돋아주면서 본인은 한 수장으로서 기운을 전면에 드러내기보다 그들이 잘 수행하는 자체가 자기의 지략을 펼치는 거랑 같은 행위라 본다. 그런 둘이 같을 수도 없고 같지도 않지만 한 인물에게서 나온 기운이라고 본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순신 장군의 영화는 전 세대에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 박해일은 ‘한산: 용의 출현’을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를 대변하는 영화라고 설명했다. 더 나아가 그는 이순신 장군을 다룬 작품은 앞으로도 무수히 나올 수 있다고 자부했다.

“지금 시대에 어울리는 건 ‘한산’에서 이순신의 기운이라 생각하고 작품의 결도 정보전이나 첩보전이 이 시대에 어울릴만하다. 이순신 영화가 왜 지금 나오는지에 대해서도 고민했는데 지금도 어디선가 전쟁이 일어나고 있지 않나. 과거에 이야기로 치부할 수 없는 상황이고 항상 뉴스를 보면 지역적 특성 때문에 익숙해져서 못 느낄 뿐이지. 전쟁은 언제든 또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관객분들에게 위기감을 심어주려는 건 아니고 앞으로 ‘노량’도 나오겠지만 이순신 장군을 비롯한 전 국민이 아는 역사적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 대대로 나올 것 같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거 같다.”

박해일은 뜻하지 않게 올여름, 두 작품으로 관객들을 만나게 됐다. 앞서 ‘헤어질 결심’의 인기가 가시기도 전에 개봉한 ‘한산: 용의 출현’에 한 줄 관람평에는 두 영화를 합친 재미난 리뷰들이 채워지고 있다. 배우로서는 자칫 캐릭터 몰입에 방해될 수 있는 개봉 시기다. 다만 박해일은 두 작품의 묘한 연결고리를 언급하며 지금의 상황을 유쾌하게 받아들였다.

“제 의지가 아닌데 코로나가 지나가면서 기다리고 또 기다렸던 작품들이 한데 뭉쳐서 나온 느낌이다. 관객분들에게 그렇게 전달되다 보니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는데 제 의지가 반영되지 않은 거라 즐기자는 태도고 또 다른 측면으로는 흥미로운 부분도 있다. ‘헤어질 결심’의 해준이 해군 출신이다. 그리고 서래가 해준을 재울 때나 엔딩을 맞추는 장면도 바다였다. 문학적 말투를 쓰기도 하지 않나. 그런데 이순신 장군님도 시를 쓰시고 바다 위에서 전투를 하는 해군이고. 둘 다 공무원이더라. 재밌게 생각해주셔도 좋겠다.(웃음)”

한국 영화상 최고 흥행작 자리를 유지 중인 ‘명량’의 속편인 만큼 성적에 대한 기대감도 있을 터. 박해일은 흥행 목표에 대해선 언급을 자제했다. 그는 이순신 장군의 숭고한 업적을 담은 영화인 만큼 작품의 인기보다는 많은 관객들로부터 이순신 장군이 기억되는 작품으로 남기를 바랐다.

“많이 보셨으면 좋겠다. 역할을 연기한 이순신이라는 인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조차도 다른 영화보다 버겁고 조심스럽다. 그렇기에 어느 정도 관객이 보겠냐고 이야기하면 아직 그럴 말을 할 입장은 아닌 것 같다. 조심스럽긴 하다. 하지만 오래 유독 이색적인 풍경이 아닌가. 일주일 단위로 저희 영화를 포함한 대작들이 연달아 관객들에 선보이게 되는데 다시 팬데믹 전처럼 편하게 극장에서 그 다양한 색깔의 많은 영화를 재밌게 즐겨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셀럽미디어 김희서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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