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블 Vs DC, 토끼와 거북이 경주
- 입력 2022. 08.01. 15:30:14
- [유진모 칼럼]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시대는 이대로 저물어 가는 것일까? 마블 페이즈 3의 하이라이트 격인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와 ‘어벤져스: 엔드 게임’이 국내에서 각각 10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훌쩍 뛰어넘었고, 대미를 장식한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이 내용이 다소 빈약하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800만 명을 넘긴 바 있다.
그만큼 ‘아이언맨’(2008) 이후 시작된 MCU는 승승장구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코로나19의 창궐에 때맞춰 시작된 페이즈 4는 1~3의 위용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2021년 개봉된 ‘블랙 위도우’(296만여 명),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174만여 명), ‘이터널스’(305만여 명),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755만여 명)은 사뭇 달랐던 것.
올해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588만여 명에 그쳤고, 지난달 6일 개봉된 ‘토르: 러브 앤 썬더’는 270만여 명에서 사실상 좌판을 거둬야 할 지경이다. 이런 결과는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은 양상이다. 이를 의식한 듯 마블은 지난달 23일(현지 시각) 차기작 제작 계획을 공개하는 행사를 열었다.
페이즈5~6의 극장용 영화부터 디즈니 플러스의 OTT 시리즈물까지 방대한 구상을 펼친 것. 이에 따르면 페이즈 4의 마지막을 장식할 ‘변호사 쉬헐크’(8월 OTT)부터 ‘블랙팬서: 와칸다 포에버’, ‘캉 다이내스티’, ‘스크릿 워즈’,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 ‘앤트맨 3’, ‘캡틴 아메리카: 뉴 월드 오더’, ‘썬더볼츠’ 등이 줄줄이 제작된다.
그 외에도 20세기 폭스가 실패했던 ‘판타스틱 포’를 부활시킬 계획이고, 뉴라인 시네마가 성공시켰던 ‘블레이드’의 판권을 인수해 새롭게 제작한다. 소니 픽처스와의 협업작인 ‘스파이더맨’, 20세기 폭스와 공동 제작한 ‘데드풀’ 역시 계속된다. 과연 마블은 이런 계획을 통해 외연을 더 확장하고, 내실을 더욱더 탄탄하게 다질 것인가?
현재의 상황만 놓고 본다면 미지수이다. 확률적으로 밝은 쪽보다는 어두운 쪽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일단 코로나19는 핑계가 안 된다. 지난해까지는 코로나19의 영향이 컸던 것은 사실이지만 지난해 말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때부터 코로나19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오면서 팬데믹 구실을 댈 수 없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그렇게 ‘예년 관객을 되찾았다.’라는 기사가 나돌았고, 이를 입증하듯 ‘범죄도시 2’는 거뜬히 1000만 관객을 넘어섰다. 이는 코로나19, 그리고 팬데믹과 공교롭게도 보조를 맞춘 OTT의 성장세가 분명 극장 관객 일부를 빼앗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장 문화는 살아 있고, 극장에서 볼 영화가 따로 있다는 문화의 증거이다.
마블은 DC와 함께 미국 코믹스의 양대 산맥인데 영화 쪽으로의 기선 제압은 DC가 먼저 했다. 1934년 설립된 DC의 영웅의 대표 주자 ‘슈퍼맨’이 1948년에 첫 영화화된 것. 이후 슈퍼맨과 배트맨은 극장과 TV를 번갈아 오가며 오늘에 이를 만큼 각광받고 있다. MCU의 첫걸음인 ‘아이언맨’이 2008년 개봉된 것과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마블은 늦은 만큼 그동안 축적한 노하우와 전략으로 DC를 경천동지하게 만들었다. 이를 계기로 슈퍼 히어로 영화의 주도권은 마블이 확실하게 틀어쥐었고, DC는 ‘다크 나이트’ 등 일부를 제외하면 짧은 다리로 토끼 뒤를 쫓는 거북이처럼 매번 숨을 헐떡거렸다. 흥행 성적은 물론 평단과 관객의 평가마저 혹독했다.
DC가 그러면 그럴수록 마블의 위상은 더욱 강고해졌다. 물론 원작의 우수성과 깊이 등이 든든한 기초가 되어 주었겠지만 그 속에 재미와 철학을 동시에 담아 화려한 비주얼로 구현해 내는 테크닉과 세계관이 훌륭했던 덕이다. 흔히 DCEU(DC 확장 유니버스)는 MCU에 비해 어둡다고 평가한다. 겉만 보고 판단하는 난센스이다.
마블의 다크 유니버스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와 ‘어벤져스: 엔드 게임’에서 절정에 달했다. DC의 ‘저스티스 리그’의 빌런 스테픈울프는 자신의 권력욕 때문에 마더 박스를 차지하기 위해 지구를 공격하지만 ‘어벤져스’의 빌런 타노스는 전 우주 생명체의 생존을 위해 인피니티 스톤을 차지하고자 어벤져스와 죽기 살기로 싸운다.
어떤 게 더 어두운 딜레마일까? 우주의 상위권 지능 생명체들이 아무 생각 없이 개체 수를 늘리는 바람에 식량난 초기에 접어들었고, 머지않아 그 모든 생명체들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우주의 평화를 고민해 온 타노스는 그걸 해결할 방법은 무작위로, 강제적으로 모든 종의 개체 수를 절반으로 줄이는 것밖에 없다고 결론 내린다.
스테픈울프는 그냥 악마의 왕일 뿐이지만 타노스는 우주의 항구적, 평화적 미래를 위해 자신이 악역을 맡아 희생하는 역할을 자처한 것이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도 그런 인식론의 혼돈이 있었다. 각 나라의 정상들이 어벤져스의 힘을 겁내 법으로 그들을 통제하려 하자 재벌인 토니 스타크(아이언맨)는 이에 찬성한다.
그런데 미국의 상징인 캡틴 아메리카는 그 법에 반대해 추종자들과 함께 스타크에 맞서 싸운다. 게다가 윈터 솔저와 스타크의 숨겨진 악연까지. 그런 철학적 깊이는 DC의 ‘왓치맨’에도 있기는 했지만 ‘다크 나이트’ 시리즈 이후 사실상 사라졌다. ‘맨 오브 스틸’에서 미군 장성이 “만약 슈퍼맨이 우리의 반대편에 선다면?”이라는 질문을 던진 게 고작이었다.
그렇게 압도적이었던 MCU의 심장과 두뇌는 페이즈 3를 끝으로 노쇠하기 시작했다. ‘블랙 위도우’부터 호불호가 엇갈리더니 ‘샹치~’에서는 확실하게 실망만 줬다. 현실적으로 ‘샹치~’ 스타일의 중국 판타지 무협 영화는 널리고 널렸다. ‘닥터 스트레인지’가 티베트의 신비주의를 빌려온 것과 ‘샹치~’의 ‘중국 스타일’은 확연히 다르다.
중국 관객이 아닌 바에야 마블에서 굳이 중국 판타지 무협을 보고자 하지는 않는다. ‘이터널스’는 ‘어벤져스’의 아류로 비칠 수밖에 없는 게 한계이다. 인간의 상상력이 대단하다고는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인류의 창작은 순서와 캐릭터의 변화일 뿐 창의력이 무궁무진한 것은 아니었다. 상상력과 플롯은 교과서 안에 갇혀 있다.
그러니 ‘이터널스’가 관객들에게 새롭게 다가갈 비장의 무기가 부족했던 것이다. 마블에는 슈퍼 히어로라는 전가의 보도는 있을지언정 ‘토르: 러브 앤 썬더’에서 빌런 고르가 휘두르는, 신을 죽이는 신검 네크로소드는 없는 것이다. 어느 스튜디오나 마찬가지이겠지만 픽사는 스토리텔러의 양성과 관리에 가장 공을 들인다고 한다.
물론 마블도 그렇다. 그런데 케빈 파이기의 입김이 많이 약해졌다는 소문이 있다. 그 때문인지, 작가 관리에 문제가 있는지, 작가들의 창의력이 고갈되었는지 내부 점검이 필요한 때이다. ‘토르: 러브 앤 썬더’만 하더라도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은 이제 피로감만 줄 뿐이다. 토끼(마블)는 지쳤고, 거북이(DC)는 이제 반등을 노릴 만하다.
[유진모 칼럼 /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