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라차차 내 인생’, 청춘도 즐겨 보는 일일 드라마
입력 2022. 08.08. 12:59:48

'으라차차 내 인생'

[유진모 칼럼] 120부작 일일 드라마라면 대부분 막장이라는 평가를 받게 마련이고, 많은 횟수인 만큼 다소 늘어지는 느낌을 주기 십상이다. 지난 4월 11일 시작된 KBS1 일일 드라마 ‘으라차차 내 인생’(성준해 연출, 구지원 극본)은 그 한계에서 살짝 벗어나 젊은층의 지지 속에 안정된 시청률 선상에서 호평을 얻고 있다.

주인공은 서동희(27, 남상지), 강차열(32, 양병열), 강성욱(34, 이시강), 백승주(32, 차민지). 동희는 여고 시절 오빠 재석이 어린 아들 힘찬(9)을 남긴 채 뺑소니 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모든 꿈을 뒤로한 채 조카의 어머니가 되었다. 재석을 친 범인은 성욱인데 사고 당시 차열은 동승자였으나 신고하지 않은 죄책감에 시달린다.

차열은 동희를 사랑하고, 동희 역시 차열에게 호감을 품었기에 집에 초대해 힘찬과 어울리게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차열은 재석 생전에 동희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고 괴로움과 갈등 속에서 헤맨다. 힘찬의 생모는 승주. 승주는 성욱의 아이를 임신했다며 억지 결혼 생활을 이어가는 팜 파탈이고, 성욱 역시 선하지 않은 캐릭터.

사실 차열은 성욱의 사촌 동생이다. 차열의 아버지가 회사를 창업해 성공시킨 뒤 세상을 뜨자 회사를 이어 받은 성욱 아버지가 책임감 때문에 차열을 입양한 것. 이런 구조는 막장이라는 비난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그럼에도 좋은 평가가 앞서는 이유는 동희 캐릭터가 이 각박하고 삭막한 정글 같은 현실에서 매우 아름답다는 점.

과한 욕망, 결국 돈 때문에 친족끼리도 척지는 일이 비일비재한 게 이 시대상이다. 그런 뉴스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가족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고 희생하는 일이 오히려 진기한 뉴스가 되는 세상이다. 그런데 동희는 제대로 사랑도 못 해 본 18살 꽃다운 나이에 한 살 힘찬을 위해, 어쩌면 재석을 위해 꿈을 포기했다.

그건 제 꿈을 저버려서라기보다는 힘찬과 재석을 위했다는 점에서 위대하다. 꿈과 희망은 대체로 이루어지기보다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 거창할수록 더욱 그렇다. 그 때문에 동희의 희생은 제 인생을 내던져서가 아니라 세상을 떠난 오빠가 편히 쉴 수 있도록 힘찬의 보호자 역할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게 숭고한 것이다.



성욱과 승주는 빌런이지만 차열은 애매모호한 캐릭터이다. 비록 삼촌에게 입양된 처지이기는 하지만 그는 자신의 ‘지분’을 요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오늘날의 양부모와 성욱의 풍요와 사회적 지위를 물려준 사람이 친부이니까. 게다가 그는 어느 모로 보나 성욱보다 뛰어나다. 그럼에도 일부러 성욱의 그림자 뒤에 숨으려 한다.

어찌 되었든 ‘싱글맘’인 동희를 사랑하는 마음 씀씀이는 고결하다. 그러나 성욱의 범죄를 신고하지 않았고, 성욱에게 자수를 재촉하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선과 악의 경계를 넘나들며 순수와 비천함 사이를 방황하는 캐릭터이다. 동희는 거룩하지만 현세적이지 않다. 그래서 차열이 균형을 잡아 주는 역할을 해 주는 것이다.

사실 일일 드라마는 극한 장점과 단점을 지녔다. 장점은 스토리에 깊게 몰입하지 않고도, 매회 챙겨 보지 않더라도 비교적 쉽게 감상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클 것이다. 중간에 보더라도 금세 이해가 되고, 머리 아프게 이것저것 따지지 않아도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더욱 매회 챙겨 보게 되는 게 바로 일일 드라마이다.

그러나 미니시리즈와 달리 매우 단선적이다. 미니시리즈는 로케이션이 많고 세트도 비교적 정교하고 웅장한 데 비해 일일 드라마는 대부분 세트 혹은 실내에서 진행된다. 야외 촬영이 있더라도 배경이나 미장센이 큰 몫을 담당하지 않고 등장인물 위주로 진행되기 마련이다. ‘으라차차~’ 역시 그런 기준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충청남도 태안을 매우 중요한 로케이션 장소로 설정하는가 하면 세트 촬영 때의 미장센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등 일일 드라마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많이 보여 준다는 게 시청자의 마음을 움직인다. 성 PD의 연출력과 구 작가의 필력, 그리고 두 사람의 찰떡같은 호흡이 만들어낸 훌륭한 결과물이라는 것.

네 명의 주연 배우의 신선함도 한몫한다. 양병열과 이시강은 노력파로 유명한데 그들이 흘린 땀은 시청자들이 충분히 납득할 만한데 특히 남상지와 차민지의 연기력은 커리어에 비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여기에 ‘한국의 셀린 디온’으로 불리는 서제이가 부른 OST ‘이제는 나 사랑할 수 없게 됐어’도 시청률을 견인해 준다.



물론 예전의 KBS2 토일 드라마 ‘오! 삼광빌라!’(33.7%)나 ‘오케이 광자매’(32.6%)에 비교하면 시청률이 다소 아쉬울 수도 있지만 그건 편성상의 차이일 따름인 데다 1~2년 전에 비해 플랫폼과 콘텐츠가 더욱 확장된 현실을 반영한다면 매우 선전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순히 KBS가 일일 드라마를 독식해 온 전통만은 아닌 것.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미덕은 젊은이들이 공감하고 즐기는 일일 드라마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일일 드라마의 주 시청자는 중년 이상의 가정주부였다. 일일 드라마가 아침의 경우 출근 시각 직후, 저녁의 경우 9시 직전에 편성된 것만 보아도 주 시청층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내용도 가족의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었다.

‘으라차차~’의 경우도 가족 이야기가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무엇보다 앞서는 스토리는 네 젊은 주인공의 사연이다. 그중에서도 동희가 첫 번째이다. 그녀는 20대 젊은이의 현실을 보여 준다. 현실의 그들은 ‘N포 세대’로 불린다.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내 집 마련도 모두 포기한 세대라는 뜻. 그만큼 힘들게 살아간다.

동희는 그런 N포 세대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고아에 싱글맘이다. 현실은 척박하고, 미래는 불투명하다. 아니 잘 살 수는 있겠지만 잘살 수는 없다는 게 투명하게 보인다. 그럼에도 그녀는 오빠를 죽인 범인을 잡기 위해 전단지를 뿌리는 한편 꿋꿋하게 힘찬을 키우면서 나름대로 자신의 사랑도 조금씩 키워 가고 있다.

그런 그녀를 보며 20~30대의 시청자는 끝이 안 보이는 사막을 헤매는 현실의 삶에 절망하지 않고 힘찬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는 희망을 찾는다. 그게 이 드라마의 힘이다. 특히 제목이 신의 한 수!

[유진모 칼럼 / 사진=KBS, 요구르트스튜디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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