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리 작곡 송백경과 도둑질의 철학
- 입력 2022. 08.09. 09:50:43
- [유진모 칼럼] 1세대 아이돌 멤버가 작곡했다고 공식적으로 기록된 노래를 사실은 자신이 대리로 작곡해 줬다는 힙합 그룹 원타임 출신 작곡가 겸 성우 송백경(43)의 폭로 의도는 무엇일까? 그는 지난 7일 인스타그램에 “산소 호흡기를 떼는 잔인한 짓까지는 하기 싫어서 실명을 밝힐 의도는 없다.”라며 뻔뻔한 장본인의 공개를 거부했다.
송백경
그는 지난 4일 SNS를 통해 “한국의 1세대 아이돌을 대표하는 그룹(멤버 중 한두 명 쓰레기가 존재하는)멤버가 자기 스스로 작곡했다는 노래(별로 유명한 노래도 아님)그거 실은 내가 돈 한 푼 안 받고 싸구려 우정으로 대리 작곡해 준 것. 아직도 어디 가서 폼 잡으며 잘 불러 댄다는데 영광이다.”라는 글을 올려 주목을 받았다.
그러면서 “그때는 우정으로 해 줘 놓고 왜 이제 와서 문제 삼느냐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우선 인성 검사부터 제대로 좀 해 봐라. 만일 대리 작곡으로 내가 얻은 저작권 수익이 있다면 난 공범 맞다. 그런데 난 얻은 게 없다. 그 가짜 작곡에 대한 잔돈푼 저작권 수익? 1도 욕심 안 난다.(유명한 곡 아니다)”라고 속내를 밝혔다.
그러자 일부 누리꾼의 비난이 쇄도했다. 자작곡으로 꾸민 비도덕적인 당사자를 밝히라는 압박과 함께 송백경도 공범이라는 주장이 넘실댄 것. 그러자 송백경은 “나한테 대리 작곡해 달라고 제안한 그 XXX 잘못과 거기에 응한 내 잘못을 등가로 친다.”라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그 ‘도둑’의 정체는 보호하고 나선 것.
송백경은 1998년 원타임으로서 ‘원타임’, ‘쾌지나 칭칭’, ‘Hot 뜨거’ 등 다수의 히트곡을 낸 후 YG엔터테인먼트를 대표하는 프로듀서로서 맹활약을 펼쳤다. 2006년엔 양현석의 아내인 이은주와 함께 4인조 힙합 그룹 무가당을 결성하고 싱글을 발표한 적도 있다. 이후 YG를 떠나 성우 겸 요식업 사업가로 지내는 중이다.
송백경이 대리 작곡을 해 준 시점은 최대한 멀리 보면 90년대 중후반이고, 보편적으로 보면 2000년대로 추정된다. 물론 해당 그룹은 당시 YG 소속일 확률이 높다. 뒤늦은 폭로의 이유는 그의 글에서 보듯 최소한 자신의 이름을 공동 작곡자로 등재해 줄 것으로 생각했는데 멤버의 단독 작곡으로 신고했다는 데 대한 서운함이다.
즉 자신에게 고마워하지 않는 해당 멤버의 뻔뻔함(혹은 YG의 행정에 대한 서운함)에 계속 스트레스를 받다가 YG와 아무 관계없는 현시점에서 분노가 제대로 폭발한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행간의 뉘앙스로 보아서 그는 자신의 잘못을 인지하며 인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 곡에 대한 수익이 전혀 없다는 점을 면죄부로 내세운다.
우리 사회는 연예계든 정치계든 전 분야에 걸쳐 표절 등의 도둑질 행위가 문제가 되고 있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진행 중이다. 송백경과 해당 아이돌 멤버의 행위는 표절은 아니지만 도둑질과 유사한 것은 맞다. 송백경은 합의하에-혹은 그의 주장대로 의리로-양심을 팔아 도둑질에 동참했고, 멤버는 의리를 빙자해 도둑질했다.
홍진영은 논문 표절로 하루아침에 트로트 여왕의 자라에서 나락으로 떨어졌고, 유희열은 작곡 표절로 13년이 넘는 KBS2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폐지되게 만들었다. 논문 표절은 현재 진행형이다. 논문이든 작곡이든 왜 사람들은, 유명하거나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더욱더 표절의 유혹에 휘말리게 되는 것일까? 명예욕이다.
가수의 경우를 보자. 가장 흔한 가수는 가창력이 뛰어난 캐릭터이다. 음색까지 개성 강하다면 더욱더 좋다. 그런 가수는 좋은 곡을 받기 매우 쉽다. 다음으로 퍼포먼스형 가수이다. 주로 댄스 뮤직 가수인데 요즘은 가창력을 겸비한 멤버를 보유한 아이돌 그룹의 형태로 진행된다. 가장 이상적인 가수는 스스로 곡을 쓰는 싱어송라이터.
사실 ‘이상적’인 게 아니라 ‘보편적’인 정상으로 보는 게 합리적이다. 팝이 시작된 미국의 대중음악 초창기에는 거의 모든 가수가 제 레퍼토리를 스스로 쓰는 싱어송라이터 겸 연주자였다. 그러다가 산업이 발전하면서 엘비스 프레슬리 같은, 작곡을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상업적인 퍼포먼스형 가수가 각광받기 시작한 것이다.
그럼에도 싱어송라이터가 가장 이상적이고 포지션에서 상위로 평가받는다는 것은 확실하고 변함없다. 아이유가 절대적 찬사를 받는 배경이다. 그러니 퍼포먼스형 아이돌 멤버가 싱어송라이터를 부러워하는 것은 당연지사. 자신도 작곡가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싶어 할 것은 자명한 일. 대리 작곡의 동기이자 배경이다.
‘장자’에서 도둑들이 우두머리 도척에게 “도둑질하는 데에도 도(道)가 있습니까?”라고 묻는다. 도척은 “어디엔들 도가 없겠느냐? 방안에 감춰진 것을 짐작으로 아는 성(聖), 훔치러 들어갈 때 앞장서는 용(勇), 훔친 다음 맨 뒤에 나오는 의(義), 훔치게 될지 안 될지를 아는 지(知), 훔친 것을 골고루 나누는 인(仁)이다.”라고 답한다.
성은 못된 부자를 털어야 한다는 뜻이고, 용과 의는 조직에서의 도리와 정의이다. 지는 행동 여부에 대한 판단 능력이고, 인은 골고루 가져야 한다는 공평 의식이다. 홍길동, 임꺽정, 로빈 후드 같은 의적들이 대중의 인기를 끌 수 있었던 배경은 그만큼 사회가 불공정, 불공평했다는, 그래서 탈법으로 부자가 생겼다는 뜻이다.
표절이나 대리 작곡에 도리가 있을 리 없다. 변명이나 핑계의 여지가 없다. ‘장자’의 용과 의이다. 용과 의는 책임 소재를 말하기도 한다. 무슨 일이 벌어지면 윗사람이나 아랫사람에게 떠넘기기 급급한 사례를 우리는 정치계나 경제계에서 어렵지 않게 보고는 한다. 과연 그게 용기와 의리가 있는 행동일까? 도둑만도 못하다.
송백경의 대리 작곡 양심선언의 배경과 저의가 어떻든 간에 그 행위 자체는 용으로 보아야 마땅하다. 이제 남은 건 의이다. 대리 작곡의 수혜 당사자가 잘못인 줄 알면서도 의에 근거해 대리 작곡을 해 준 송백경의 용기 있는 폭로에 대해 자신이 그 핵심이라고 밝히고 나서야 할 때이다. 그게 용과 의이고 지와 인이다.
‘장자’의 ‘도둑질에도 철학이 있다.’라는 가르침은 ‘도둑질도 그러할진대 하물며 보편타당한 사람은 물론 공인에게 철학이 없어서야 되겠느냐?’라는 질책이다. 철학은 ‘지혜 사랑’을 떠나 어떤 분야, 인식론, 현상, 형상 등에 관한 자신만의 독특하고 확고한 신념과 의지도 뜻한다. 도둑질은 철학을 거론할 수 없는 범죄일 따름이다.
[유진모 칼럼/사진=송백경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