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덴티티’, 내 안의 다른 존재자의 스릴러
입력 2022. 08.26. 11:55:20

'아이덴티티'

[유진모 칼럼] ‘아이덴티티’(2003)는 ‘X맨’ 시리즈 중 가장 어둡다는 ‘로건’을 연출한 제임스 맨골드 감독의 작품으로 ‘23 아이덴티티’(2016) 이전까지 다중 인격 반전 영화의 대명사격이었을 만큼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 네바다 주 사막에 위치한, 래리의 외딴 모텔에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한 10명이 모여 총 11명이 된다.

손님들은 여배우를 태우고 가던 리무진 운전사 에드(존 쿠삭), 살인범을 호송하던 경찰 로즈(레이 리오타), 매춘부 패리스, 조지-앨리스 부부와 앨리스가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티모시, 신혼부부 지니와 루. 폭풍우 탓에 길이 막히고 통신이 두절된 상황에서 여배우부터 차례차례 모두 6명이 살해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영화는 모텔과 법정의 두 가지 상황으로 전개된다. 모텔 시퀀스는 과연 범인은 누구이고, 왜 살인을 저지르는가에 대한 미스터리 스릴러로 전개된다. 법정은 사형 집행이 하루도 안 남은 연쇄 살인범을 구하려는 변호사와 맬릭 박사의 주도로 이루어진다. 그 시리얼 킬러 말콤이 드러날 즈음 제목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말콤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어머니는 매춘부였고, 아버지는 그래서 말콤이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떠나갔다. 심지어 어머니는 말콤을 학대했고, 여관에 가둬 두고 방치했다. 그런 상처 때문에 그의 자아는 파괴되어 5개의 인격으로 분열되었다. 다섯 손가락의 다섯 캐릭터로 표현된 포스터는 그걸 암시한다.



이 영화를 즐기는 첫 번째의 재미는 전술했다시피 범인의 정체와 범행 동기를 파헤치는, 감독과의 두뇌 게임이다. 그런데 끝으로 가면 그보다 더 큰 반전의 충격이 전달되므로 결국 누가 범인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에 만연되고 산재한 이항대립, 혹은 이원론에 대해 꽤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다.

감독은 노골적으로 여배우의 리무진 안에 장 폴 사르트르의 명저 ‘존재와 무’를 미장센으로 배치한다. 철학이 생긴 이래 지금까지 2600년이 넘게 인류는 두 가지의 대립되는 이념(이론, 사상)으로 다투고 고민하여 왔다. 실재론과 유명론, 유물론과 관념론, 경험론과 합리론,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의 구조주의와 해체주의이다.

맬릭은 판사에게 말콤의 해리 장애를 설명하고, 이해시켜 주며, 그래서 범행을 저지른 육체는 말콤이 맞지만 그걸 의도하고 행동으로 옮기게 만든 정신의 주체는 말콤이 아님을 주장한다. 결국 말콤에게 필요한 것은 사형이 아니라 정신과 치료라는 것. 그런 완치를 위해서는 다섯 인격을 하나하나 지워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건 노골적인 해체주의이다. 현대의 많은 분야에서는 구조주의가 활개친다. 실제로 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을 명함으로 소개하고, 대화나 전화 통화 때 역시 소속 조직의 일원으로서 알리기 마련이다. 모든 분야가 발전하는 첨단으로 나아갈수록 각각의 개인은 희미해지고, 그 대신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즉 부분으로서 알려진다.

구조주의는 ‘사회 현상의 체계적이며 관계적인 특성을 강조한다. 연구의 대상은 본래적인 속성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체계에서 다른 대상과의 관계와 차이점에 의해 규정된다.’(‘사회학사전’)라는 언어학에서 시작되었는데 이제는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다. 다수가 살아가는 사회생활에 적용되는 게 대표적이다.

그런 맥락에서 구조주의에 반기를 드는 사상은 해체주의보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가 더 가깝다. ‘존재와 무’에서 중요한 것은 우연성, 즉자-대자, 그리고 자유이다. 하이데거와 사르트르에 의하면 인간은 이 세상에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우연히’ 피투된(던져진) 존재자이다. 말콤의 매춘부를 통한 탄생은 매우 극단적인 피투였다.



하이데거가 시간 개념을 통하여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려 한 데 비해 사르트르는 아예 죽음을 무시한 채 현 시점에서의 자유를 강조했다. 하이데거는 본래적 존재(영혼)가 현존재(육체)를 통해 이 세상을 살지만 결국 본래적 존재인 도래적 존재(죽음)가 된다는, 기독교나 플라톤을 연상케 하는 결론을 도출해 내었다.

사르트르는 실물인 나는 즉자 존재인데 그걸 초월해 밖에서 즉자를 바라볼 수 있는 대자(본질에 앞선) 존재가 되어 자유를 만끽하자며 우연한 탄생(피투)을 대자를 통해 자유로운 운명(기투)으로 승화하자고 독려한 것이다. 맬릭은 사르트르 같은 인물이다. 사르트르는 무신론자이다. 맬릭이 의학 박사인 건 우연이 아니다.

결국 모텔 상황은 말콤의 내면에 도사린, 말콤이 아닌 다섯 인격이 6명을 연쇄 살해하고 경찰에 잡힌 뒤 느끼는 가상의 세계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굉장히 전율할 만한 반전이 여러 번 이어진다. 그리고 감독은 작정한 듯 마지막 시퀀스에서 가장 충격적인, 목이 서늘할 정도의 반전으로 관객에게 자신의 승리를 선포한다.



물론 반전 스릴러에 고수 수준인 관객이라면 이마저 예상하고 감독의 자부심을 무참하게 뭉갤 수도 있다. 과연 말콤은 유죄인가, 무죄인가? 맬릭은 말콤 내면에 도사린 다섯 인격을 제어 혹은 제거할 수 있을까? 인간이 다른 종에 비해 특별한 이유는 사고하고, 의지를 갖추며, 여러 생각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모든 동물은 그저 본능에 의해, 즉 선험적(DNA로 물려받은 본능이나 지혜)이고 경험적인 능력치로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대처하지만 인류는 고민과 고뇌를 거친다. 심지어 타자와 상의도 한다. 동물은 회의를 할 줄 모른다. 다섯 인격은 서로서로 친화적일까, 적대적일까? 어느 인격이 말콤 육체의 진짜 주인, 즉 대자일까?

[유진모 칼럼 / 사진=영화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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