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주은의 극단적 선택과 연예인이라는 직업
입력 2022. 08.30. 09:30:29

유주은

[유진모 칼럼] 27년 3개월여를 산 여배우 유주은이 29일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연기가 너무 하고 싶었어. 그런데 그 삶을 사는 게 쉽지가 않았어. 다른 어떤 것도 하고 싶지 않아. 그게 너무 절망적이었어. 하고 싶은 게 있다는 건 축복이지만 그것만 하고 싶다는 건 저주라는 것도 깨달았어.”라고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고인은 2018년 tvN 드라마 ‘빅 포레스트’로 데뷔해 이듬해 TV조선 드라마 ‘조선생존기’에 출연한 게 필모그래피의 전부이다.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 이혼율, 자살률, 낮은 출산율 등에서 1위이다. 유독 연예인의 자살이 많은 듯하게 느껴지는 것은 대중의 관심을 끄는 직업인 데다 널리 알려진 유명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연예인이기에 자살률이 높은 것일까? 연예인이라서 높아 보이는 것일까? 왜 연예인은 자살하는 것일까? 저마다의 사연이 다르기 때문에 물론 그 이유는 제각각일 것이다. 일반인이 보기에 남부러울 것 없는, 지명도와 부를 동시에 갖춘 스타도 극단적 선택을 한다. 오죽하면 언론에서 ‘자살’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기로 약속했을까?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은 비단 연예인만 있는 게 아니다. 유명 인사가 아닌, 비교적 평범한 사람이기에 언론에서 관심을 가지지 않아서 그렇지 연예인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왜? 세상을 사는 게 쉽고 편한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서민이라면 더욱 힘들다. 가진 자보다 없는 게 많으니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유주은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는 그녀가 제일 잘 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언과 여러 가지 정황을 토대로 유추는 가능하다. 그녀는 23살 때 데뷔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꿈에 부풀었을 것이다. 의지와 욕망도 강했을 것이다. 이듬해까지는 비교적 순탄했다. 큰 공백 없이 차기 작품에 출연했다. 그 다음이 문제였다.

3년째 활동을 쉬었다. 많은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자신의 능력, 매니저(소속사) 문제 등이 제일 컸을 것이다. 데뷔할 때만 하더라도 후너스 엔터테인먼트라는 소속사가 있었지만 현 시점에서는 별다른 기획사가 거론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후너스와는 헤어진 것으로 보인다. 신인인 데다 소속사까지 없으니 어려울 것은 당연지사.

그녀의 유언에 따르면 그녀가 가장 좋아하고, 하고 싶으며, 해야만 하는 것은 오직 연기 하나였다. 다른 것은 하고 싶지도 않고, 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일이 안 들어왔다. 자괴감에 괴롭고, 불투명한 미래가 두려웠을 것이다. 그녀의 선택으로 보아 두려움 정도가 아니라 아예 절망을 본 듯하다. 가망성이 전혀 없다는.

자살을 정당하게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전적으로 나쁜 행위라고 일방적으로 모는 태도는 점점 사라지는 추세이다. 영화 ‘콘스탄틴’은 주인공 콘스탄틴이 어릴 때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기 때문에 지옥행이 예약된 것으로 설정하고 있다. 기독교는 하느님이 주신 생명을 제멋대로 좌지우지하는 것을 죄악시하기 때문이다.

성 아우구스티누스 이전에 유대교나 기독교에서 자살을 죄악시했다는 기록은 없고, 다만 코란에서 거론했다고 한다. 물론 자살은 종교나 도덕을 떠나서 절대 찬성하거나 방조해서는 안 되는 게 사리에 맞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인식론은 비겁하다거나, 무책임하다거나, 부도덕한 쪽으로 몰지 않는 방향으로 흐른다.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에는-종교, 혹은 유신론자이냐, 무신론자이냐를 떠나-일단 고인의 명복을 빌어 주는 게 인지상정이고 기본 도리이다. 다음은 고인에 대한 이해이다. 행위 자체를 이렇다, 저렇다 평가할 게 아니라 ‘오죽하면 그랬을까.’라며 그의 생이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을 만큼 힘들었음을 알아주고 헤아려 주는 것이다.

화가 반 고흐는 스스로 총을 쐈고, 철학자 질 들뢰즈는 투신해 생을 마감했다. 모든 생명은 본능적으로 생존을 위해 몸부림을 치기 마련이다. 조금이라도 더 살아 보겠다고 발버둥을 치는 게 생명체이다. 빨리 죽겠다고 설치는 개체는 오직 인간에게만 있다. 그 이유는 인간에게는 행복 추구 등의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다른 생명체는 그저 그날 하루를 무사히 보내면 끝이다. 하지만 인간은 오늘에 내일을 걱정한다. 모든 직업이 성공을 추구하겠지만 연예인이라는 직업은 오늘날의 그 위상 때문에 기대감과 절망감이 다른 직업에 비해 엄청나게 큰 것이 사실이다. 연예인은 정치인이나 학자보다 대중에게, 특히 청소년에게 신뢰도와 친밀감이 높다.

배우의 경우 주연급이 아니더라도 웬만큼만 활약하면 40~50대에 최소한 수십억 원의 자산가가 되는 게 연예인이다. 서울 소재의 4년제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업한다 하더라도 20년 만에 그런 재산을 축재할 수 있는 샐러리맨은 극소수이지만 연예인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들은 스타이자 아티스트이다.

사회적 위상과 돈벌이가 다른 직업군과 차원이 다르다는 증거. 그러나 그런 성공이 보장된 만큼 성공 가도에 진입하기까지가 엄청나게 어려운, 극한 직업인 것도 사실이다. 또한 연예인이 아티스트로 분류되는 이유는 그들의 감수성이 일반인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극단적 선택의 유혹에 더욱 노출된 것이다.

연예 기획사나 연예인 지망생 자식을 둔 부모라면 고인의 명복을 빌어 주면서 점검할 게 있다. 신인 연예인을 양성하거나 자식을 연예 기획사로 보낼 계획이라면 그에게 실패의 가능성과 그때의 대처 방법을 미리 세워 주는 것이다. 정신력 강화도 필수이다. 고인의 “하고 싶은 게 있다는 건 축복이지만 그것만 하고 싶다는 건 저주라는 것도 깨달았어.”라는 말을 곱씹어 볼 일이다.

기원후 초기 로마 제국 황제 하드리아누스는 브리타니아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거대한 방벽을 구축했다. 오직 연기에 대한 열정과 능력은 축복이지만 그것으로 성공하지 못했을 때에는 최악의 핸디캡이 된다. 연예인 지망생이 스스로 구축한 하드리아누스 방벽에 가로막히지 않도록 기성세대가 신경을 곤두세울 필요가 있다.

[사진=유주은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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