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남’, 꼭 그 제목이어야 했나?
입력 2022. 09.19. 09:39:45

'수리남'

[유진모 칼럼] OTT 넷플릭스 6부작 ‘수리남’(윤종빈 감독)이 TV 쇼 부문 글로벌 톱 3위에 오르는 쾌거를 달성했지만 외교적으로는 시끄럽다. 수리남 정부가 자국을 마약 국가로 묘사한 데 반발해 법적 대응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수리남에서 대규모 마약 조직을 운영하다가 2009년 검거된 조봉행의 실화를 모티프로 만들어졌다.

작품 공개 후 알베르트 람딘 수리남 외교·국제사업·국제협력부(BIBIS) 장관은 BIBIS 웹 사이트를 통해 “‘수리남’은 우리나라를 마약을 거래하는 부정적 이미지로 그렸다. 우리나라는 이미지 개선을 위해 노력해 왔는데 이 드라마 때문에 그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위기에 처했다.”라며 법적 대응을 시사했다.

주베네수엘라 대한민국 대사관은 최근 ‘수리남 한인 사회 대상 안전 공지’를 통해 “수리남에 거주하는 한인 여러분께서 ‘수리남’ 방영 여파로 많이 곤혹스러우실 것으로 짐작된다. 저희는 한인 여러분들의 안전이 가장 우려되는바, 여러분의 안위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일단 각자 안전을 위해 주의를 기울여 주시기 바란다.”라고 전했다.

현재 수리남에는 약 50여 명의 한국 동포가 거주 중이다. 그들의 안전을 우려한 것. 그런데 넷플릭스를 비롯해 제작사인 (주)영화사 월광과 (주)퍼펙트스톰필름, 그리고 윤 감독은 왜 수리남이라는 제목을 고수한 것일까? 한 매체에 따르면 수리남 정부는 이 작품의 공개 전부터 지속적으로 제목 수정을 요구했었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 외교부 역시 지난해부터 넷플릭스 코리아 측과 접촉하며 수리남 정부를 도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문 제목을 ‘나르코스 세인츠’(Narcos-Saints=·마약상-성자)로 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감독, 제작사, 배급사 등이 ‘수리남’이라는 제목이 가져올 파장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창작과 표현의 자유’의 침해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을 수 있다. 단지 픽션으로 꾸민 드라마일 따름인데 수리남 정부가 과민 반응을 보이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개진될 수 있는 것. 게다가 작품 내용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작과 표현의 자유에는 어느 정도의 제한이 있을 수 있다. 배려도 필요할 수 있다.

자유는 무제한이 아니다. 방종과 자만이 개입해도 곤란하다. 당사자(나라)가 가진 상처에 대한 고념은 매우 중요하다. 수리남은 네덜란드 식민 시절을 거쳐 독립했지만 아직도 영토 분쟁 중이다. 남미 중 가장 작은 나라이지만 경제적으로 그리 어렵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마약에 대해 남미 여느 국가처럼 아픔을 갖고 있다.

굳이 제목을 수리남으로 강행군했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넷플릭스 ‘호스텔’을 비롯해 영화 ‘보랏’, ‘캐리비안의 해적: 망자의 함’ 등이 슬로바키아, 카자흐스탄, 도미니카 공화국 등으로부터 항의와 법적 대응을 일으킨 사례인데 결과적으로 법적인 제재는 일어나지 않았다. 눈여겨 볼 대목은 제목이 해당 국가가 아니라는 점.



조봉행을 모티프로 한 영화는 ‘집으로 가는 길’(방은진 감독, 2013)도 있었다. 이러한 사례에서 보듯 ‘수리남’이 굳이 ‘수리남’이어야 할 만한 개연성과 필연성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울리히 에델 감독, 1990)라는 영화가 있었다. 휴버트 셀비 2세의 소설(1964)을 원작으로 한다.

한국전쟁이 있었던 1950년대의 미국 사회 내의 모든 문제를 다룬 화제작이었다. 만약 외국 제작사가 외국인 남성들을 상대하는 한국 여성들의 집창촌 영화를 찍어 ‘사우스 코리아’라고 제목을 단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기분은 어떨까? 우리나라는 이제 마약 청정 국가라고 자랑하기 머쓱할 만한 수준에 이르렀다.

수리남에서 마약 영화를 찍어 ‘코리아’라고 명명한다면? 영화나 드라마에서 제목은 무척 중요하다. 제75회 칸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헤어질 결심’은 박찬욱 감독이어서 더욱 돋보였던, 대표적으로 잘 지은 제목의 사례이다. 만약 ‘수리남’이 한국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서였다면 어느 정도는 성공한 셈이다.



수리남은 우리 국민에게 그리 낯익은 국가는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굳이 낯선 국명을 고집했어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다수가 납득하기 힘들다는 반응이다. 게다가 공개 전 수리남 정부와 한국 정부가 개명을 요구했거나 그런 방향의 접촉을 했었다는 언론 보도까지 있는 상황이다.

하정우에게는 매우 중요한 작품이라는 점도 있다. 그는 2020년 2월 5일 영화 ‘클로젯’ 개봉 직후 프로포폴 불법 투약 의혹에 휘말렸다. 이후 1년여의 재판 끝에 벌금형의 유죄를 확정 받았다. ‘수리남’은 ‘클로젯’ 이후의 복귀작. 이 작품 역시 애초에 영화로 시작했지만 우여곡절을 거쳐 넷플릭스 시리즈물로 제작된 것이다.

이토록 여러 면에서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의 사연이 구구절절한데 제목에 대한 고집 때문에 그 피와 땀이 빛바래지는 모양새이다. 현재 K-드라마의 위상은 전 세계 중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징어 게임’에서 보듯 K-드라마는 곧 세계적인 유행이나 문화의 변화와 직결된다. 수리남 정부가 제목에 민감한 이유일 것이다.

[유진모 칼럼 / 사진=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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