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화요비 일부 패소의 의미
- 입력 2022. 09.20. 11:35:54
- [유진모 칼럼] 연예 기획사 음악권력이 전 소속 가수 박화요비(40, 본명 박레아)를 상대로 낸 위약벌(채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벌금을 내는 것.) 등의 청구 소송에서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5부(송승우 부장판사)는“피고가 원고에게 3억 3000만 원을 지급하라.”라며 원고 일부 승소를 판결하였다.
박화요비
그런데 2020년 2월 박화요비가 전속 계약 해지를 요청하였다. 음악권력은 계약 파탄의 책임이 그녀에게 있고, 그녀가 계약을 위반해 손해를 보았다며, 계약금 3억 원, 손해 배상금 1억 1000여만 원, 그녀가 회사에서 빌린 3000여만 원을 함께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이후 음악권력은 그녀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하였다.
박화요비는 “음악권력 사장의 강박에 의해 계약했으므로 ‘사기나 강박에 의한 의사 표시는 취소할 수 있다.’라는 민법에 의해 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라고 주장하였으나 재판부는 “피고의 채무 불이행으로 전속 계약의 기초가 되는 신뢰 관계가 파괴되었다. 계약 파탄의 책임은 피고에게 있고, 원고의 계약 해지는 적법하다.”라고 판결하였다.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연예인과 연예 기획사(혹은 매니저) 사이에는 계약서라는 게 거의 존재하지 않았었다. 그저 매니저와 연예인이 구두로 약속한 채 ‘믿음’으로써 함께 일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90년대 접어들어 100만 장 음반 판매가 속출하고, 배우의 작품이나 CF 출연료가 억대에 진입하면서 선진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게다가 배우 매니저가 활성화되면서 가수와 배우 분야의 연예 기획사 양쪽에서 계약서와 매니저의 분업이 자리잡게 되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전속 계약서가 생김으로 인해 전속 계약 위반 문제가 법정에 자주 오르내리게 되었다. 계약서가 없던 시절에는 전속에 관한 법적 분쟁이 아예 성립될 수 없었던 것.
연예인과 기획사 사이의 전속 계약 분쟁(이하 분쟁)을 바라보는 대다수의 시각은 대체로 연예인 편이었다. 대중 예술 관련 부처나 재판부도 그런 흐름이 없지 않았다. 여론을 의식했기 때문일 수 있다. 물론 일부 기획사에서 보았듯 연예인을 지나치게 혹사한다거나 수입 배분에서 불공정한 기획사도 존재하였었다.
그런 전례 때문에 대체로 연예인을 피해자로 보는 시각이 팽배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중간 규모 이상의 연예 기획사는 대부분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상태이거나 준비 중이다. 소형 기획사의 최종 목표 역시 상장이다. 이 때문에 소속 연예인에 대한 관리는 주가나 투자와 직결되기 마련이다.
만약 초코파이에서 먹을 수 없는 이물질이 발견되었다고 한다면 오리온의 주가는 폭락할 것이다. 음악권력은 상장사는 아니다. 하지만 홈페이지에서 보면 알 수 있듯 박화요비가 사실상 이 회사의 전 재산이었다. 재판부가 ‘명쾌하게’ 원고 일부 승소를 결정한 내용을 보면 현실적으로 ‘일부’가 아닌, ‘그냥’ 승소였다.
물론 원고의 주장이 100%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럼에도 재판부의 판결을 보았을 때 박화요비가 먼저 계약을 위반한 것은 사실이다. 즉 그녀의 부채 3억 원 정도를 음악권력이 갚아 주었고, 그녀가 회사에서 3000만 원을 빌린 것은 진실이라는 이야기이다. 재판부는 그녀 때문에 손해를 보았다는 주장만은 인정하지 않았다.
양측의 분쟁 과정을 보면 결정적인 시점은 2020년 2월, 박화요비가 먼저 음악권력 측에 ‘일방적’으로 전속 계약 해지를 요청한 때로 볼 수 있다. 그녀의 속내를 알 수는 없지만 그 원인을 두 가지로 유추는 가능하다. 첫째, 음악권력이 자신의 음악 활동을 충분히 돕지 못한다거나, 그런 능력이 부족하다고 느꼈을 가능성이다.
둘째, 음악권력보다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한 기획사가 있었을 가능성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재판이 진행되어 온 과정이나, 이후 새 기획사 관련 뉴스나 소문이 없는 것으로 보아서 여지가 높지는 않아 보인다. 그 외라면 다른 불미스러운 사연이 있었을 텐데 박화요비 측에서 그런 주장이 없는 것으로 보아 가망성이 희박한 듯하다.
어떤 이유이든 그녀 정도 되는 경력과 실력의 싱어 송 라이터라면 기획사를 볼 줄 아는 ‘시력’이 약할 리 없다. 그 정도 경험으로 판단 능력이 약할 수도 없다. 충분히 검토하고 계약을 맺었을 것이라는 예상도 가능하다. 갓 데뷔한 신인이 아니므로. 만약 잘못된 계약이었다고 할지라도 그 책임은 결국 그녀 몫이다.
기획사와 연예인의 관계는 회사와 사원과의 관계와는 또 다르다. 회사는 사원이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한 정년을 보장하여 준다. 하지만 기획사는 연예인이 잘못을 저지르지 않더라도 상품 가치가 떨어지면 냉정하게 등을 돌린다. 회사는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사원일지라도 퇴사하겠다고 주장하면 끝까지 잡지는 않는다.
하지만 기획사는 연예인이 쓸모가 높으면 높을수록 어떻게 해서든 잡으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회사와 사원, 기획사와 연예인 사이는 이렇게 다르면서도 서로 간에 지켜야 할 룰은 공통적이다. 대한민국 프로 야구장에는 ‘회사와 구단의 공통점은 팀워크’라는 카피가 있는데 이와 유사하다. 바로 최소한의 신뢰이다.
팀워크를 이루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 오귀스트 콩트가 창시한 실증주의적이고 계몽주의적인 사회학(인간이 일상에서 겪는 다양한 문제들은 사회 구조와 밀접하다는, 사회에 속한 인간의 삶과 행동에 대한 학문.)이다. 동물 중에 인간만큼 사회적인 종이 있을까?
계몽주의는 이성을 중요시하고, 실증주의는 매우 과학적이다. 과학적인 실험과 결과에 의한 이성적인 판단에 의해 서로 계약을 맺고, 그 기간만큼 자기 신뢰(에밀 뒤르켐)를 바탕으로 한 상호 신뢰를 지켜 가는 게 회사-사원, 기획사-연예인의 관계이다. 그것이 밑바탕이 되어야 팀워크도 성립하게 되는 것이다.
콩트를 이은 뒤르켐의 가치관은 도덕, 개인의 존엄성, 그리고 자유였다. 각 개체가 존엄성을 인정받으면서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도덕률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동물은 야생에서 살기에 자연 법칙에만 적용되는 데 비해 인간은 자연과 문명에 동시에 걸쳐 있기 때문이다. 이미 분쟁에 대한 시선과 패러다임은 변화 중이다.
[유진모 칼럼/ 사진=호기심스튜디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