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남' 하정우가 지켜온 2년의 고뇌 [인터뷰]
입력 2022. 09.22. 10:39:31

하정우

[셀럽미디어 김희서 기자] 배우 하정우가 더 단단해져서 돌아왔다. 배테랑 배우다운 면모를 아낌없이 쏟아내며 선의와 도의 사이에서 고뇌했다.

지난 9일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수리남’(감독 윤종빈)은 남미 국가 수리남을 장악한 무소불위의 마약 대부로 인해 누명을 쓴 한 민간인이 국정원의 비밀 임무를 수락하며 벌어지는 이야기.

실화를 기반으로 한 만큼 ‘수리남’은 탄탄하게 쌓아올린 이야기와 각 캐릭터들의 서사는 단숨에 몰입도를 선사하며, 전 세계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공개 이후 넷플릭스 주간 글로벌 1위, OTT 콘텐츠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 패트롤이 발표한 전 세계 TOP10 TV쇼 3위, 키노라이츠 통합 콘텐츠 랭킹 1위에 오르는 등 흥행가도를 이어가고 있다.

‘수리남’ 흥행 주역에는 오랜 만에 얼굴을 비춘 하정우가 있다. ‘클로젯’ 이후 2년 만에 활동복귀한 하정우는 공백기가 무색할 정도로 능청스러운 연기, 찰진 입담, 처절한 액션으로 대중에 돌아왔다. 극 중 하정우는 큰돈을 벌 기회를 찾아 수리남에 간 사업가 강인구 역으로 분했다. 강인구는 전요환(황정민)에 의해 예상치 못한 고초를 겪고 국정원의 비밀작전에 투입되는 인물이다.

초호화 배우진들과 윤종빈 감독의 만남으로 기대를 모은 ‘수리남’은 6부작 시리즈임에도 영화 못지않은 스케일을 자랑했다. 이는 영화판 스태프들이 의기투합해 이루어낸 결과물이었다. 속도감 있게 진행된 촬영 환경에 따라 하정우도 현장 분위기를 맞춰갔다.

“감독님이나 제작진 모두 영화를 만들던 사람들이라 영화를 만드는 호흡, 속도가 있다. 그렇다 보니까 뭐 하나 넘어가는 것 없이 준비되고 세팅하고 하다 보면 배우들도 미리 준비하지 않고 올 수 없었다. 8시에 슛이면 30분 전에는 모든 걸 끝내놓는다. 처음 현장에 가고 나서 엄청나게 준비하는 그 분위기에 맞춰 저도 준비를 할 수 밖에 없는 압박감이 있었다.”

그간 영화에 매진해왔던 하정우는 ‘수리남’과 같이 드라마 형식의 작품을 소화하는데도 낯설었다. 나레이션으로 전개되는 1화를 비롯해 절정을 달려가는 순간까지도 극의 중심에는 하정우가 있었다. 극에서도 많은 부분들을 도맡아했던 만큼 현장은 늘 치열했다.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물리적인 피곤함이 달랐다. 분량이 해도 해도 너무 많았다. 강인구는 모든 인물을 다 만나고 외국어 대사, 액션, 감정연기까지 모든 연기를 총망라한 캐릭터라서 힘들었다. 우선 대사량이 엄청나게 많다. 드라마여서 많은 건지 영화보다 많았던 것 같고 한정된 스케줄 안에 6시간 짜리를 만들기 때문에 일단 하루에 소화해야할 양이 많았다. 하루 운영된 진행 속도가 타이트했다는 생각이 든다.”

‘수리남’에서는 하정우를 필두로 황정민, 박해수, 유연석, 조우진 등 제 옷을 입은 듯 각각의 캐릭터들로 완벽하게 녹아든 배우들의 호연이 강력한 흡입력을 발휘했다. 첫 대본을 읽으면서 캐스팅에도 기대감이 컸다는 하정우는 윤종빈 감독의 안목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완성된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 한 묶음으로 와서 엄청 나게 길었다. 여섯 개로 나눠서 하나씩 읽어 나갔는데. 알던 이야기고 재구성해서 시나리오를 잘 만들었구나 정도. 특별한 것은 없었는데 캐스팅이 누가 되느냐가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박해수, 조우진 씨가 한명씩 합류하면서 그 배우들을 떠올리면서 장면들을 상상하게 됐다. 유연석 배우도 능글하게 데이비드 역에 잘 맞는다 생각했고 박해수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된 배운데 같이 리딩하고 초반 장면을 같이 찍을 때붙 ‘잘 캐스팅됐구나. 윤 감독이 잘 찾아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정우는 영어 연기에도 세심하게 신경썼다. 앞서 ‘PMC: 더 벙커’에서 유창하게 영어 대사를 소화한 모습에 비해 ‘수리남’에서는 친근하면서도 조금은 서툰 영어를 선보였다. 일부러 능숙하진 못한 영어실력을 의도한 하정우는 오히려 그래서 부담도 없었다고 밝혔다.

“일단 강인구는 생존언어를 하는 거다. 이 사람은 교육기관에서 영어를 배운 게 아니라 미군부대에 납품하면서 어깨너머로 배웠지 않나.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문장 만들고 단어 선택하는 레벨은 떨어지는데 또 쉬운 단어들을 조합해서 말은 잘한다. 그래서 부담이 없었다. 상대적으로 ‘PMC’ 때는 감독님이 원어민에 가깝게 발음을 하는 것을 원해서 거기에 갇혀있었는데 도리어 ‘수리남’은 편하게 발음 신경 안 쓰고 콩글리쉬로 의사만 전달하면 돼서 시작은 편했다. 하지만 영어 연기는 제 모국어가 아니니까 반복 연습이 필요했다. 반복 연습의 양은 몇 개월 정도 영어 대사만 발췌해서 연마했던 것 같다.”

하정우는 ‘용서받지 못한자’, ‘비스티 보이즈’, ‘범죄와의 전쟁’, ‘군도’ 그리고 수리남’까지 윤종빈 감독과 함께한 작품만으로도 다섯 손가락을 펼치게 됐다. 윤종빈 감독의 페르소나라 불리우는 하정우. 두 사람은 실제로 동문의 연을 이어 지금까지도 영화계서 둘도 없는 동료이자 친구로 지내고 있다. 하정우에게 윤종빈 감독은 어떤 존재일까. 하정우는 실소를 터트리면서도 사뭇 진지하게 진심을 전했다.

“영향을 많이 받았겠죠. 하나를 끄집어내서 이야기하기는 어려운데 영향을 많이 받았다.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 주연배우로서 처음 카메라 연기를 해보면서 영화를 배우고 연기를 배우고 제가 전공했던 연기를 카메라에 적용시켰다. 그러면서 ‘비스티 보이즈’를 찍으면서 영화적으로 큰 영향을 준 감독이 아닌가. 제가 연출을 두 편했는데 연출할 때도 가장 큰 영향을 받은 분이 아닐까. 한 살 차이지만 친구고 같이 40대 중반을 맞이했다. 그간 이뤄냈던 성취보다 함께한 추억이 많으니까 그 추억이 뒷받침이 돼주고 이야기 거리가 된다. 그래서 감사하다.”

어느 작품에선가는 투 샷을 봤던 것 같은 익숙함이 들지만, 하정우와 황정민의 만남은 이번이 처음이다. 두 배우만으로도 스크린이 꽉 채워지는 듯한 안정감을 줄 정도로 각자의 자리에서 활약을 해오던 두 사람을 한 작품에서 본다는 건 관객들에게도 꽤 흥미로운 모습이었다. 선배에서 상대역으로 현장에서 만난 황정민은 어떤 배우였을까.

“어렸을 때 보고 무서운 선배다 싶었는데 배우로서 열정적이시다. 평상시에 말씀도 많이 하시고 에너제틱 하시고 술도 좋아하고 사람들을 좋아하고 활발하신데 연기를 하는 순간만큼은 에너지를 응축한 것처럼 조용히 있으신다. 연기하기 직전에 마음을 다스리고, 준비하고 계획하는 루틴이 있으신 것 같은데 그게 굉장히 서정적인 느낌이었다. 액션 외치기 직전에 짧게 혼자 그런 시간을 가지시는데 기억에 남는 모습이었다.”

강인구의 매력은 평범함 속 대범함이었다. 민간인으로 목숨을 걸고 작전에 협조할 사람이 어디있을까 싶을정도로 무모하면서도 대단했던 강인구의 용기가 결국 선한 영향력으로 뻗칠 수 있었다. 그간의 작품들에서 연기한 캐릭터들 중에서도 가장 예측 불가한 행동과 다면적인 면모들을 두루 갖추었기에 하정우는 강인구의 인간미를 이해하고자 했다. 더 나아가 한국으로 돌아온 뒤 그가 내린 선택의 의미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삶이란 게 그런 것이 아닐까. 하다보니 거기까지 간 것. 한 걸음 한 걸음 갈 때 그렇게 위험한 일이지 거창한 일인지 몰랐는데 한걸음 가다보니 내가 여기까지 와있네. 이 함정에 빠졌구나 느낀다. 만약에 강인구가 언더커버에 들어가는 걸 예상했었더라면 수리남에 조차 가지 않았을 거다. 강인구가 하나하나 사건을 맞이하는 생각을 하면서 연기를 해나갔다. 저도 그런 생각을 했다. 단란주점 하나 준다고 하면 그걸 현금화해도 되지 않을까. 그런데 오죽하면 거절할까. 사업하다 친구를 잃고 거기서 언더커버 생활하면서 아마도 엄청 비인간적이고 경험하지 말아야할 것들을 경험한 게 쌓여서 겨우 탈출해서 왔을 거다. 또 다시 조금이라도 발을 딛고 싶지 않았을 거다. 말도 안 되는 경험을 하면 아주 평범한 일상이 그립지 않나. 그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최근 ‘오징어게임’ 팀이 제74회 프라임타임 에미상에서 수상하면서 또 한 번 한국 콘텐츠의 위상을 입증한 바. 하정우는 ‘수리남’도 오래도록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는 작품이 되길 소망했다. 그러면서 그가 배우로서 나가야할 방향, 배우로서 가지는 무게감을 마음깊이 새겼다.

“제가 모로코에서 촬영을 하는데 거기 현지 분들이 ‘오징어게임’에 나온 배우 아니냐며 저를 붙잡기도 했다. 일단 한국 콘텐츠가 그 정도로 발을 뻗고 확장할 길이 열렸다는 건 너무 감사하고 대단한 일 같다. 더 책임감 있고 양질의 작품을 만들어내야 될 것 같다. 배우나 제작진들 모두 그런 각오와 생각이 드는 것 같다. 수상소식 들으면서 너무 부럽더라. ‘수리남’도 그런 자리에 초대받으면 행복하겠다. ‘오징어게임’ 팀의 단체사진을 보면서 ‘수리남’ 배우들 얼굴을 대입해봤다.(웃음)”

데뷔 이후 쉴 틈 없이 다작 행보로 충무로 간판스타가 된 하정우에게 지난 2년은 모질었다. 그동안 쌓아온 것들을 내려놓으며 내실을 다지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러한 시간을 지나 결국 하정우가 다시 돌아오고 싶었던 곳은 사람들 곁이었다. 수없이 고비와 난관에 부딪혀도 동료들과 가족들의 힘이 있었기에 하정우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그래서 하정우는 지금 이 순간에 대한 소중함, 절실함을 털어놨다.

“주변 사람들. 제가 좋은 작품에 출연한건 주변 사람들이 저와 함께하겠다는 마음이 있어서 였다. 어떤 위기나 절망적인 순간에도 부모님을 생각해서. 혹은 감독을 사랑하고 그 제작진을 좋아하기에 그들을 위해서다. 그러한 작은 마음들이 결국에는 사람들 때문에 오늘의 제가 다 관계하고 만나고 서로 살아가고 일상을 보낸다. 윤 감독도 ‘용서받지 못한 자’부터 ‘수리남’까지 17년 동안 다섯 작품을 했지만 거창한 성과나 예술 작품의 성취 이런 것이 아니다. 같이 영화를 좋아하고 만들면서 힘이 돼주고 그런 작은 힘들이 오늘의 지금, 저를 이 자리에 앉게 해준 것 같다.”

[셀럽미디어 김희서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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