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완료’, 국내에서 보기 드문 아트 컬트
입력 2022. 09.26. 10:01:04

‘거래완료’

[유진모 칼럼] 조경호 감독이 직접 각본을 쓴 장편 데뷔작 ‘거래완료’(내달 6일 개봉)는 다섯 편의 중편으로 이루어져 나중에 모두 만나게 되는 연결형 옴니버스 형식인데 각종 영화제 등에서 주목한 게 납득이 될 만한 웰 메이드 판타지이다. 첫 번째 에피소드 ‘2002년 베이스볼 자켓’. 석호(태인호)와 지숙(최예빈) 남매는 두산 베어스 팬이다.

그런데 초등학생 조카 재하가 어느 날 갑자기 LG 트윈스 팬이었음을 밝힌다. 재하는 한정판 2002년 엘지 유광 점퍼를 사기 위해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알게 된 엘지 포수 출신의 광성(전석호)을 만난다. 그런데 왠지 광성은 깡패들에게 쫓긴다. ‘스위치’. 잠 못 이루는 재수생 민혁은 잠 잘 자는 여고 3년생 예지를 만난다.

그녀로부터 수면 유도기를 구매하려는 것. 둘은 밤새 함께 시간을 보내며 호감을 느끼게 된다. ‘붉은 방패와 세 개의 별’. 27살의 수정(이규현)은 교정 공무원이지만 로커가 되고 싶어 멋진 기타를 사려고 기타리스트 교형을 찾아간다. 그런데 교형은 자신들의 비참한 처지를 보여 주는데.


‘사형장으로의 초대’. 신문방송학과 여대생 나나는 과제인 다큐멘터리를 찍기 위해 사형수 우철(조성하)을 면회한다. 서울 한 폭력 조직의 부두목인 그는 일가족을 잔인하게 살해한 혐의로 사형 판결을 받았다. 그런데 그는 도스 게임 ‘마성 전설’의 끝까지 가 보는 게 소원이었고, 나나에게 게임기를 구매하기로 한 것.

면회실 안에서 우철은 ‘마성 전설’에 빠진 채 나나와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나나가 그걸 촬영하는 가운데 살인 사건의 진실이 드러나는데. ‘크리스마스 선물’. 작가 지망생 석호는 지숙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 주기 위해 평생 모아 온 세계문학전집을 신사(이원종)에게 팔고자 만난다. 그런데 신사도 문학에 조예가 깊다.

나나가 팔지 말라고 말리는 가운데 신사는 이례적인 제안을 하는데. 감독은 이 작품을 대놓고 “제임스 조이스의 단편 소설집 ‘더블린 사람들’을 영화 언어로 쓴 ‘서울 사람들’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이 책이 출간된 1914년은 아일랜드가 대영 제국에 병합된 때이니 더블린 사람들은 당연히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더구나 조이스는 어머니 사망 직후부터 이 단편들을 쓰기 시작했으니 내용이 밝을 리 없다. 조이스는 연상 작용에 의해서 의식과 무의식의 연속적인 흐름을 그대로 써 내려가는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유명하다. 조 감독은 연출 스타일마저도 조이스를 따라가는 듯하다. 왜 중고 물품 거래가 소재인가?


특별한 케이스를 제외하고는 중고품을 구매하려는 사람이나 팔려는 사람은 모두 궁핍하거나 최소한의 경제적 핸디캡이 있다. 그럼에도 남이 쓰던 걸 꼭 사야만 할 이유가 있고, 판매자는 오래 써서 정이 들었음에도 팔아야 할 사정이 있는 것. 게다가 요즘은 SNS의 발달로 판매자와 구매자 간의 직거래가 당연시되고 있다.

그런데 이 작품 속 중고 물품은 그런 보편적인 거래상의 중고품이 아니라 저마다 희소가치 혹은 의미를 갖추고 있다. 재하는 10만 원에 거래되던 유광 점퍼를 40만 원을 지불하고서라도 구매하려 한다. 교형의 전자 기타, 나나의 도스 게임기, 석호의 세계문학전집 등은 벼룩시장에 가면 적당히 싼 가격에 구입할 수도 있다.

대다수에게는 상품 가치가 없을 법하지만 그것을 구매하려는 주인공들에게는 그 어떤 신상품보다 소중한 레트로 명품인 것이다. 감독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촬영 현장 분위기를 만들고자 하였다고 한다. 이 작품은 창작의 기본기인 ‘낯설게 하기’를 통한 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가 아닐까?


다섯 에피소드는 유기적으로 매우 매끄럽게 연결되어 있다. 독립영화이지만 나름의 상업적 재미도 갖추었다. 그뿐만 아니라 저 에피소드에서 조연인 인물이 이 에피소드에서는 주인공이 되는 식의 구도를 이해해 가는 과정이 흥미진진하다. 게다가 웬만한 미스터리 뺨칠 만한 반전도 도사리고 있다. 그리고 주인공들은 결국 행복해진다.

이 작품의 분위기는 미장센을 떠나 밝다. 마지막은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컬트적 느낌이 물씬 풍긴다. 컬트 영화는 특정 형식의 장르라기보다는 마니아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마치 변종 종교 같은, 기괴하고 폭력적이며 매우 파격적인 영화를 말한다. 컬트의 경전 ‘록키 호러 픽처 쇼’가 대표적이다.

이 작품에는 그로테스크한 폭력이나 섹스가 없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스토리들이 심하게 왜곡되어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어리둥절하게 만들면서도 결국은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 준다. 조 감독은 근래 보기 드문 신예 아트 버스터 작가로서 차기작이 굉장히 기대된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아름답고 포근한 컬트’이다.

[유진모 칼럼/사진=영화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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