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가릴 것 없이 너무 빨간 TV 예능
입력 2022. 10.19. 15:18:11
[유진모 칼럼] TV만 켜면 온통 새빨갛다. 성과 조금이라도 연관된 프로그램이라면 플랫폼을 가리지 않고 낯 뜨거워 시청자의 피로감을 상승시키기만 한다. 케이블TV나 OTT의 연애 프로그램에는 이런 논란이 진작부터 있었다. 최근 공개된 웨이브 ‘잠만 자는 사이’, 쿠팡플레이 ‘체인리액션’, 디즈니+ ‘핑크라이’, JTBC ‘결혼에 진심’까지 계속되고 있다.

‘OTT니까 그러려니.’라고 할 수 있지만 지상파라면 차원이 다르다. MBC ‘오은영 리포트-결혼지옥’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편안한 관찰 예능이었던 KBS2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까지 다소 어울리지 않는, 무리한 소재를 가져왔다. 최근 방송에서 이호선 한국노인상담센터장을 초대해 매일 성관계를 요구하며, 아내가 응하지 않을 경우 장작으로 폭행하는 83살 노인 이야기를 다뤘다.

이 프로그램의 공식 정체성은 ‘화려했던 전성기를 지나 인생의 후반전을 준비 중인 혼자 사는 중년 여자 스타들의 동거 생활을 담은 프로그램.’이다. 여기서 뜬금없이 고정 패널과 아무 상관없는, 노인들의 성 문제, 혹은 부부 관계를 소재 삼을 필요가 있었을까?

종합편성채널 MBN ‘어른들은 모르는 고딩엄빠2’로 가면 문제는 정말 심각해진다. 최근 방송에서는 세 아이를 둔 김수연, 이연호 부부가 출연해 남편은 아내가 부부 관계에 응해 주지 않는다는 불평을 늘어놓았고, 아내는 남편이 넷째를 원하지 않으면서도 피임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하였다.

이 프로그램은 ‘10대에 부모가 된 고딩엄빠들의 다양한 이야기와 좌충우돌 세상과 부딪히며 성장하는 리얼 가족 프로그램’이라고 정체성을 규정해 놓고 있다. 그 짧은 로그라인을 풀어 보면 ‘원하지 않게 갑자기 부모가 된 고교생 신분의 부모가 험난한 현실을 이겨 내며 자식과 함께 성장하고, 부모와 화합해 가는 가족 리얼 예능.’ 정도가 된다.

모든 예능이 착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지상파, 종편, 케이블TV까지는 결론은 훈훈하고 고개가 끄덕여지는 게 진리이다. 특히 보도 프로그램을 보유한 지상파와 종편은 필수적이다. 이 프로그램은 고등학생과 그 부모가 함께 볼 수도 있는 포맷이다. 그렇다면 더욱더 따뜻해야 하고, 교훈과 솔루션을 주어야 한다.

이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는 착함과 음흉함의 두 가지로 유추할 수 있다. 첫 번째 당연히 종편다운 정체성으로 본의 아니게 부모가 된 고등학생들의 어려움을 보여 주고, 그들이 위험을 어떻게 헤쳐 나가는지 함께 고민하면서 드라마타이즈를 만들어 시청자에게 긴장감을 조성한다. 결국 그들의 사회 적응기로 훈훈한 마무리를 하면서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라는 희망을 준다.

그뿐만이 아니다. 고등학생은 미성년자로서 성에 관련해 자유스러울 수 없다. 하지만 육체적으로는 이미 어른과 거의 동등하게 성장한 그들은 자의에 의해 성관계를 갖고는 하는 게 현실이다. 문제는 피임과 성병 예방에 있다. 자신들의 몸으로 스스로 즐기겠다는 데 그걸 부모가 아닌 이상 말릴 수 없다. 범죄도 아니다.

하지만 성병이 감염되면 문제가 된다. 더 나아가 임신이라면 의도하지 않은 이상 사태는 심각해진다. 만약 이 프로그램이 선한 의도로 기획되었다면 이런 결정적인 내용을 간과한 것이다. 고등학생은 현실과 행정의 괴리감의 가장 대표적인 사각지대에 있는 나이이다. 법은 미성년자로 규정했지만 그 육체는 이미 성년이다.

정신은 아직 어리지만 그래서 더욱더 하루빨리 어른 흉내를 내고 싶은 것이다. 물론 리얼리티 예능이기에 어느 정도 재미를 추구하는 것은 이해는 된다. 하지만 제작진은 벌써 아이를 셋이나 가진 고등학생 부부의 피임 때문에 발생하는 성관계 갈등까지 재미의 소재로 삼는 것은 잔인하다고 생각해 보지는 않았을까?

이건 자극적이라기보다는 잔인하다. 더 나아가 저질스럽다. 매우 불편하다. 고등학생 시청자들은 키득키득할지 몰라도 고등학생 자식을 둔 부모라면 분노까지도 가능할 소재이다. 과연 김수연과 이연호의 부모는 이 프로그램을 보고 어떤 생각과 감정이 들었을까? 두 번째로 유추할 수 있는 기획 의도인 ‘자극적’에 대해 강력한 의심이 드는 이유이다.

2000년도 훨씬 전에 서양의 아리스토텔레스와 중국의 공자가 중용을 외쳤고, 우리나라에도 과유불급이라는 사자성어가 오랫동안 가르침으로 전해져 온 이유는 인간은 한없는 욕심의 동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남의 이목을 떠나 당사자에게는 과할수록 좋은 것도 있지만 남의 이야기가 정도를 넘어설 때는 눈이 피로하다.

[유진모 칼럼/ 사진=각 방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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