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 가족’ 정일우의 갈망 [인터뷰]
입력 2022. 11.04. 15:18:35

'고속도로 가족' 정일우 인터뷰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정일우에게 이런 얼굴이 있었던가. “영혼을 갈아 넣었다”라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훈훈한 이미지는 잠시 내려놓고, 망가짐을 불사한 배우 정일우가 영화 ‘고속도로 가족’(감독 이상문)을 통해 파격 변신을 하는데 성공했다.

정일우가 7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으로 택한 ‘고속도로 가족’은 인생은 놀이, 삶은 여행처럼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살아가는 한 가족이 우연히 한 부부를 만나면서 예기치 못한 사건을 겪게 되는 이야기다.

“아직 얼떨떨해요. 어떻게 봐주실 지도 궁금하고요. 요즘에는 지인들에게 영화를 어떻게 봤냐고 물어보고 있어요. 보는 분들마다 관점이 다르더라고요. 본인들끼리 다양한 결말을 내서 얘기하는 것도 새롭고, 그런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친한 지인분이 이 캐릭터를 한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고 하셨어요. 이정도일 줄 몰랐다고. 하하. 따뜻한 영화라 생각하고 봤는데 충격적이라 하셨죠. 하길 잘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도 이 작품을 선택한 걸 후회한 적 없어요.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하고 싶어요’라고 말씀드렸죠. 그런데 막상 하니 ‘왜 한다고 했을까?’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걱정들이 소용돌이치면서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눴죠. 그때부터는 치열하게 준비했던 것 같아요.”

‘고속도로 가족’은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부문에 공식 초청되며 주목받았다. 매끄럽고 완성도 높은 연출은 물론, 고속도로 휴게소를 유랑하듯 살아가는 가족이라는 새로운 아이디어, 예측불가하고 과감한 전개로 높은 몰입을 자랑하는 스토리텔링까지 관객들로부터 호평 받고 있다.

“이 시나리오가 저에게 와서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배우라면 해보고 싶은 캐릭터가 아닐까 문득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잘 못하면 두 번 다시 영화를 못 찍을 수 있겠다는 두려움에 쌓여 고통스럽기도 했어요. 그래서 더 치열하게 준비했던 것 같아요. 두 달 가량, 일주일에 몇 번 씩 만나면서 인터뷰하고, 자료를 찾아보고, 아이들과 스킨십을 자주 나눴죠. 지숙(김슬기)이랑도 얘기 나누면서 어느 순간 기우가 되어있었어요. 감독님이 저를 이해시킨 부분이 많았어요. 납득되고, 이해해야 연기를 할 수 있잖아요. 척하는 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시간들이 힘들었지만 생각하며 연기하려 했죠.”



정일우가 맡은 기우는 인생은 놀이, 삶은 여행처럼 유랑하는 가족의 가장으로 고속도로 휴게소를 옮겨 다니며 캠핑하듯 살아간다. 휴게소 방문객들에게 ‘지갑을 잃어버려 기름값이 없다’는 핑계로 2만 원씩 빌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다. 낙천적이고 능글맞기까지 해 보이는 인물이지만 영화의 후반부에서 예측할 수 없는 스토리 전개의 한 축을 담당하는 중요한 인물이다.

“아이들과 휴게소에서 살고 있는데 2만원 빌릴 때 아이들도 같이 오잖아요. 저는 아이들을 이용하는 거라고 보였어요. 그 부분을 변화 준 게 제가 먼저 (구걸을) 하고 있으면 아이들이 아빠를 지켜보다가 오는 것이었어요. 기우가 ‘빌런’처럼 보이지 않았으면 했죠. 그 부분에 대해 치열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캐릭터를 만들어갔어요. 지숙이가 아이들을 데리고 가구점에 들어가서 따뜻한 밥을 먹이고, 잘 사는데 기우는 굳이 찾아가서 같이 살자고 해요. 왜 그러야 하나 생각했는데 라미란 선배님도 똑같은 지점에 고민을 하시더라고요. 사회와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면서 그렇게 살 수밖에 없고, 그게 가족을 보호하는 거라 생각해요. 나의 모든 것인 가족을 뺏어간 사람들에게 찾으러가는 건 보호한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지숙이에게 ‘저 사람들을 어떻게 믿나, 사람이 얼마나 무서운데’라는 대사를 하면서 이유를 만들어 갔어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파격 변신이다. 극단을 오가는 감정의 롤러코스터도 선보이며 확장된 연기 스펙트럼을 증명한 정일우다.

“다들 ‘고생 많았겠다’라고 얘기하시던데 잘 모르겠어요. 육체적으로 힘든 건 개의치 않아하는 편이거든요. ‘약간 변태인가?’ 생각도 들었어요. 하하. 그 정도는 당연히 해야 하다고 생각하고 (연기) 한 거죠. 그 정도 해야 감정들이 나오기 편하니까요. 진흙을 얼굴에 바르는 신도 9분 정도 롱테이크로 찍었어요. 그런 감정 연기를 쭉 끌고 가는 게 재밌고, 연기할 맛이 났죠. 굉장히 치열하게 준비했어요. ‘영혼을 갈아 넣었다’라는 말도 했는데 최선을 다했단 뜻이었죠. 저는 끼 많은 사람이 아니에요.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그만큼 열심히 준비하고, 캐릭터를 파야지만 그 역할이 된다고 생각해요. 캐릭터를 준비하면서 이 친구의 전사를 많이 만들어놓았죠. 어떻게 살아왔고, 이 행동을 하는지. 납득돼야 연기할 수 있기 때문이었죠.”

기우와 지숙은 영선(라미란)과 얽히면서 전혀 다른 국면을 맞이한다. 영선이 경찰에 신고한 후 기우는 가족과 헤어지게 되고, 영선은 지숙과 아이들을 거둬 자신의 집으로 데려간다. 새로운 일상이 주는 작은 행복에 적응해가던 것도 잠시, 우연한 만남이 틔운 작은 불씨는 기우의 돌발행동을 불러일으키고, 영화는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전개로 흘러간다. 관객들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은 채 다양한 감정의 파도를 경험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지숙이가 오빠만 없으면 돼 라고 하는 장면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기우는 왜 돌아왔을까 생각했죠. 그 이유는 가족을 사랑하기 때문이었어요. 가족을 사랑해서 가족과 함께하고 싶지만 기우가 떠나가면 가족이 행복해질 수 있겠다 받아들여 떠나죠. 그런데 감정이 발현되면서 컨트롤이 안 되고, 다시 ‘내 가족 내놔’라고 하면서 가게 돼요. 그 신에는 다양한 감정이 섞여있어요. 처음에는 반가움, 설렘, 기쁨, 다시 행복해질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만났다가 충격과 분노, 그러다가 좌절까지 느끼죠. 거기서 기우가 무너졌다고 생각해요. 인생을 포기할 만큼요. 그 신은 감독님과도 많은 얘기를 나눴어요. 그날은 오히려 촬영할 때 감독님이 맡겨주셔서 감정이 가는대로, 지숙이가 주는 대로 연기했던 것 같아요.”



2006년 ‘거침없이 하이킥’의 윤호 역으로 성공적인 데뷔를 치른 정일우는 ‘돌아온 일지매’ ‘해를 품은 달’ 등을 거쳐 최근 ‘보쌈-운명을 훔치다’ ‘굿잡’까지 다수의 드라마를 통해 차근차근 연기력을 쌓았다. 그동안 재벌집 아들, 꽃미남 역을 주로 맡았던 그는 ‘고속도로 가족’에선 본 적 없는 강렬한 연기로 기존 이미지 탈피를 시도했다.

“영화를 찍은 건 13년 만이에요. 찍기까지 시간동안 이 캐릭터, 대중이 가진 정일우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싶은 갈망이 있었죠. 연기할 때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끝까지 이 작품을 끌고 가려 노력했죠. 그런 마음들이 장면마다 들어가 있어요. 흥행 여부를 떠나 정일우의 이미지가 바뀌면 좋겠다는 바람 하나뿐이죠. 항상 재벌집 아들이나 꽃미남 이런 역할을 했잖아요. 저 나름대로 ‘보쌈’ 등 작품으로 변화를 주려고 했는데 ‘하이킥’ 윤호의 이미지가 강한 것 같아요. 벗어나고 싶다가 아닌, 발전해나가는 구나를 알아주시면 하죠. 어떻게 봐주실지 궁금해요.”

‘거침없이 하이킥’의 윤호는 정일우를 스타덤에 올린 역할이다. 데뷔 때부터 ‘스타’였던 그는 어느덧 17년차를 맞이한 베테랑 배우가 됐다.

“배우에게 대표작이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에요. 그게 없었으면 지금의 제가 없기에 긍정적으로 바라보죠. 족쇄가 될 수 있지만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제가 지금까지 활동할 수 있는 거예요. 그걸 지울 순 없죠. 이미 ‘레전드’ 작품이 됐잖아요. 지금까지 얘기하시는 게 너무 감사한 일이에요. 벌써 11년이 지난 작품인데 아직도 사랑해주시니까요. ‘하이킥’은 신기한 것 같아요. 더 오래 얘기해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이죠. (웃음)”

30대 중반에 접어든 정일우는 20대, 데뷔했을 당시 ‘초심’을 잃지 않을 것이라 약속했다. 오히려 ‘간절함’이 많이 생겼다고. 간절함에서 비롯된 마음은 연기를 향한 식지 않는 열정과 끊임없는 도전으로 그를 이끌고 있다.

“초심이랑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이 드는 건 끼 많은 배우분들이 많잖아요. 그런 분들에 비하면 저는 정말 끼가 없다고 생각해요. 소심하고, 어디 가서 말도 잘 못 꺼냈던 아이였죠. 그걸 깨려고 노력했어요. 그렇기에 작품을 할 때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죠. 그 마음은 데뷔 때부터 변하지 않았어요. 진심으로 하지 않으면 티가 나고, 제가 작품을 봐도 보일 때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간절함이 많이 생겼어요.”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9아토엔터테인먼트, 제이원인터내셔널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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