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네 한바퀴' 전북 전주, 황포묵·피순대·막걸리 골목
- 입력 2022. 11.12. 19:10:00
- [셀럽미디어 허지형 기자] '동네 한바퀴'가 전북 전주를 찾아간다.
'동네 한 바퀴'
12일 오후 방송되는 KBS1 '동네 한 바퀴' 195화에서는 가을을 닮아 받은 만큼 내어줄 줄 아는 이들이 사는 동네, 전주에서의 여정을 함께 한다.
좋은 기운을 가진 동네는 좋은 사람들을 만든다. 예로부터 전주는 풍요의 고장이었다. 전국각지의 식재료 조달이 가능했던 위치적 특성 덕분에 맛이 발달했고 풍류를 벗 삼아 예인(藝人)들이 터를 잡았다. 조선왕조의 태 자리로 여러 역사 유산을 품어내기도 했다. 수많은 한옥들이 만들어낸 유려한 곡선처럼 전주는 이 모든 복된 것들을 21세기 이 시대까지 그대로 다 이어냈다. 이것이 지금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이 전주를 찾는 이유다.
◆ 조선왕조의 모태, 오목대에서 바라보는 전주 전경
한때 전주는 전라도 전 지역은 물론 제주도까지 관할했던 전라도의 실질적인 수도였다. 전주가 이토록 힘을 얻은 데엔 조선왕조의 발상지라는 큰 배경이 있다. 고려가 기울어져 가던 14세기 후반, 전주에서 나고 자란 태조 이성계는 왜구를 상대로 대승을 거두고 귀경하던 중 일가친지를 찾아 전주에 들렀다. 금의환향의 기쁨을 큰 잔치로 베풀기 위해서였다. 이후 국위선양을 한 장군은 곧 한 나라의 임금이 되었고 자연히 그가 머물렀던 장소는 한 고을의 자랑이 됐다. 숱한 세월이 흘러, 오목대가 위치한 작은 언덕은 한옥마을 전경을 가장 잘 바라볼 수 있는 명소로 알려져 있다. 전주를 찾은 이만기는 동네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오목대에서 힘찬 첫 발걸음을 떼어본다.
◆ 한옥마을 50년 지기 이웃들과 전주8味 황포묵
만추의 한옥마을은 멋스럽다. 그러나 이곳은 오랫동안 평범한 주민들이 살아왔던 동네. 먹거리, 즐길 거리 가득한 큰 골목에서 딱 한 번만 꺾어져 들어가면 수십 년 이곳을 지킨 ‘진짜배기 전주’를 만날 수 있다. 한 오십 년, 외지에서 막 시집온 새댁 시절 친해진 한옥마을 오 총사 어머니는 그 시절 다 같이 만들어 먹던 황포묵을 생생히 기억한다. 황녹두로 만들어 노란빛을 띠는 황포묵은 전주 8미, 손은 많이 가도 여럿 푸지게 나눠먹기엔 이만한 게 없었다. 그날을 기억하며, 일흔을 훌쩍 넘긴 어머니들이 황포묵을 쑨다. 낯선 동네에서 50년, 꼬박 부대끼며 하나가 된 어머니들이 잘 익은 감나무 아래에서 온기를 나눈다. 모두가 없이 살아도 대문 넘어 이웃집에만 오면 배고플 일 없던, 꼭 그 옛날 그 시절 같다.
◆ 전주의 부엌, 남부시장에서 만난 피순대 부부
맛 고장 전주의 별칭은 식재전주(食在全州). 밥걱정할 일 없다는 전주에서도 남부시장은 유독 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 1473년 만들어져 무려 500년의 역사를 이어온 남부시장은 과거 호남 최대의 물류 집산지. 완주, 김제, 익산, 군산 등 인근 각지에서 찾아온 장꾼들이 구름처럼 몰렸다는데. 그들에게 ‘시장표 국밥’은 맛과 속도, 포만감까지 다 채울 수 있는 최고의 음식이었다. 그 유명한 남문시장 콩나물국밥이 탄생한 것도 바로 이때. 콩나물국밥이 지겨울 땐 양대 산맥, 피순대 국밥이 있으니 번갈아 가면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고. 그렇게 그 오랜 세월 이어온 국밥 골목은 이제 드문드문 시장 입구로, 인근 시내로 이동해 명맥만 유지할 정도다. 이곳에서도 거의 유일하게 24시간 영업을 지속한다는 피순대국밥 부부. 올 5월, 큰 수술을 겪은 뒤에도 교대로 불을 밝히는 덴 이유가 있단다. 식지 않는 열정만큼 뜨거운 국밥을 끓이며, 힘닿는 날까지 남부시장을 떠날 수 없다는 한 부부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 도시락 편지를 나누는 서학동 예술마을의 가을
예향의 도시, 전주엔 서학동 예술마을이라는 이름의 작은 동네가 있다. 불과 10여 년 남짓 된 이 예술마을은 원래 ‘선생촌’이라 불리는 한 낙후된 골목이었다. 조용하고도 저렴한 방을 찾던 인근 학교 선생과 학생들이 떠나고 한동안 잠잠했던 동네에 활력을 불어넣은 건 어느 한 예술가 부부였다. 이들의 영향 때문일지 이후 수많은 예술가들이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감성이 남다르고 섬세한 예술가들에게 평범한 골목은 드넓도록 하얀 도화지. 5년 전부터 예술가들이 가장 먼저 한 건 동네 어르신들을 초대해 다 같이 즐기는 파자마 파티, 그렇게 물꼬를 튼 손길은 ‘도시락 편지’로 이어졌다. 이만기가 동네를 도는 날, 마침 날이 맞았던지 예술가들이 도시락 배달을 부탁한다.
◆ 전주 합죽선의 자부심, 부채 장인 부자(父子)
오래전부터 전주는 곧고 단단한 대나무가 많이 나는 곳이었다. 조선시대 임금에게 진상할 부채를 만드는 선자청이 생긴 후 전국의 수많은 부채 장인들이 전주로 모였다. ‘가재미 마을’이라 불리는 부채공방촌에서 5대를 이은 합죽선 명가가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 그 명망을 이은 명장의 후손들은 가재미 마을이 아닌 삼천동 한 작은 빌라촌에서 살고 있다. 겨울을 앞두고 여름용 부채를 만들려나 싶지만 합죽선 작업은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이맘때가 한창 바쁠 시기. 10월에 베어낸 대나무를 가득 쌓아두고 가정집 옥상에서 작업하는 선자장 부자의 손이 쉴 틈 없다. 힘만큼 손재주에도 자신 있는 이만기가 호기롭게 합죽선 작업에 도전해본다. 합죽선 작업부터 다양한 종류의 부채들, 서로를 향한 부자의 뜨거운 애정까지 만날 수 있는 합죽선 공방을 엿본다.
◆ 추수를 앞두고, 한 해 농사를 자축하는 전주기접놀이
삼천동 아파트 단지를 걷다 보니 곳곳에 농경지가 보인다. 노랗게 벼가 익은 논 사이를 걸으니 아파트촌 사이로 풍악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에 이끌려 들어가 보니 모를 심고 추수해 상머슴을 뽑아 가마를 태우고 농민들의 노고를 자축하는 뜻이 있는 기접놀이 연습이 한창이다. 벼농사 끝나기 직전인 이맘때 윗마을과 아랫마을이 깃발로 물꼬의 우선권을 잡은 후 대동단결하자는 의미를 지닌 기접놀이는 현재, 실제 농민이거나 한평생 농사를 지었던 어르신들이 직접 참여하고 보존, 전승하고 있다. 15살 나이부터 농악놀이에 따라다니던 한 어르신은 95세인 지금까지도 직접 기접놀이에 참여해 그 의미를 전하고 있다. 이만기는 기접놀이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기수가 되어 직접 마을의 깃발을 들어보는데. 논농사 손 터는 날, 그간의 고생을 씻어내는 어르신들과 함께 흥 나도록 어우러져 본다.
◆ 삼천동 막걸리 골목, 전주 한상차림 부부의 푸진 인심
막걸리 가게가 한데 모여 있어 막걸리 골목이라고 불리는 곳을 걷던 이만기는 막걸리 궤를 잔뜩 쌓아놓은 한 가게를 발견한다. 막걸리 한 주전자에 기본 찬이 20가지, 여기에 주전자를 추가할 때마다 총 40여 가지의 찬이 끝도 없이 나오는 막걸리 골목의 인심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어 사장님 부부와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얘기를 나누는데, 부지런함을 무기 삼아 매일 아침 7시 남부시장으로 출근하여 직접 재료를 사고 또 직접 음식을 한다는 부부의 정성은 들을수록 대단하다. 거기에 무조건 퍼주는 게 원칙. 2월 28일 생일까지 똑 닮은 부부는 어느덧 20년째, 막걸리 골목을 지키며 함께 고생하고 웃는다. 이만기는 하루도 쉬지 않고 바쁘게 일해 왔지만 항상 가게를 찾아주는 손님들에게 감사해하며 기운 넘치게 지내는 부부에게 인생을 배운다.
'동네 한 바퀴'는 매주 토요일 오후 7시 10분에 방송된다.
[셀럽미디어 허지형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KBS1 '동네 한 바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