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리스마스 캐럴' 박진영, 20대 끝자락에 만난 선물 [인터뷰]
- 입력 2022. 12.10. 09:22:00
- [셀럽미디어 김희서 기자] 배우 박진영의 재발견이다. 지금껏 본 적 없는 박진영의 얼굴은 낯설다 못해 소름이 돋는다. 그동안 갈고 닦았던 박진영의 농익은 연기력이 ‘크리스마스 캐럴’을 통해 빛을 발했다. 작품을 거듭할수록 깊은 울림을 선사하는 박진영의 다음이 더 기다려진다.
박진영
박진영은 극 중 죽은 동생의 복수를 위해 스스로 소년원에 들어간 쌍둥이 형 일우와 동시에 아픔을 간직한 채 크리스마스 아침에 시신으로 발견된 동생 월우를 소화했다.
영화는 일우와 월우를 둘러싼 사건을 중심으로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적나라하게 담았다. 이러한 절망적인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박진영의 파격적인 변신은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구김살 없는 밝은 모습의 박진영 대신 현실에 찌든 얼굴이 스크린을 장악했다. 특히 맨몸 액션, 욕설, 성폭행 등 보기 거북한 장면들도 다수 등장해 배우로서 출연이 망설여질만도 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진영을 움직인 것은 다름 아닌 ‘불편함’ 때문이었다.
“불편함이었던 것 같다. 입에 담기 힘든 폭력과 성적인 비유가 있다. ‘그런 부분들을 어떻게 영화에 표현하지?’ 생각을 먼저 했는데 시나리오는 원작보단 덜 표현됐고 캐릭터에 끌리기도 했다. 1인 2역에 대해선 생각을 깊게 하지 않았다. 너무 아이들이라 마음이 아프기도 했고 ‘이걸 내가 한다고 하면 어떻게 할까’를 먼저 생각하게 되더라. 이런 생각하는 저를 보면서 ‘내가 이거 하고 싶은가보다’ 거기까지였는데 진짜 캐스팅 된 후부터 문제였다. ‘유미의 세포들’ 촬영 막바지 때 시나리오를 받아서 여유 있을 때마다 읽으면서 캐릭터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크리스마스 캐럴’은 박진영에게 새로운 경험을 안겨준 작품이다. 전작들도 각각의 이유들을 갖고 출연을 결심했지만 박진영이 이번만큼 캐릭터에 빠진 적은 처음이었다고. 시나리오와 원작 소설을 읽고 난 후에도 일우와 월우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는 박진영이다.
“예전에 선배님들이나 다른 배우들이 말하는 ‘어떤 포인트에 마음이 갔다’라는 걸 경험한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이번에는 월우, 일우 때문이었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라는 불편함과 불안함이 있었지만 그 캐릭터들이 생각났다. 감독님 이 친구들의 표정이 생각났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어떻게 있어야할까’ 계속 생각을 했다. 처음으로 인물 때문에 (작품을) 한다는 게 이런 마음인가 싶었다. 기회가 주어졌으니까 감사했다. 기존에 안 했던 저의 모습을 감독님이 봐주시고 캐스팅해주신 점에 대한 고마움이 있었다.”
무엇보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같은 얼굴로 다른 두 인물을 연기한 박진영의 ‘1인 2역’ 열연이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에 박진영은 겸손하게 캐릭터를 구축했던 방법을 이야기했다. 월우의 내면에서부터 접근하며 자연스럽게 이해했기에 나올 수 있었던 결과물이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시스템이라고 봤다. 월우 뿐만 아니라 일우도 손환도 본인만의 생각 경로가 있고 저도 있듯이 거기에 많이 집중하려고 했다. 월우가 생각하는 경로는 어떻게 보면 직관적이고 거짓말을 해도 눈에 뻔히 보이는 아이 같은 모습에 집중하고 싶었다. 그게 시나리오에 적혀있기도 해서 인물을 구축할 때 일우나 월우를 다른 인물처럼 연기했다기보다 각각 생각하는 경로를 만들다 보니 자연스럽게 따라온 선물이었다.”
특히 박진영은 불안한 눈빛, 떨리는 목소리, 감정이 담긴 몸짓 등 발달장애를 가진 월우의 모습을 가감 없이 표현해냈다. 제대로 말하지 않아도, 속내를 드러내지 않아도 월우의 감정이 영화 안팎으로 스며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1인 2역이라 다르게 보여야하니까 외적인 것도 중요했지만 저는 연기하는 입장에서 내적인 부분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얘가 어떤 식으로 움직이게 되는지 거기에 집중하다보니까. 거짓말을 못한다거나 티가 나는 부분을 표현하려고 했다. 월우는 거짓말이 눈에 보이고 생각이 직접 보였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만들어갔던 것 같다.”
반면 분노에 차있고 거친 언행을 하는 일우를 연기할 땐 감정을 폭발시켜야 했다. 영화 후반부에는 월우와 대비되는 일우의 하루와 행적이 나타나기도. 이를 통해 영화는 일우를 완전한 피해자도, 가해자로 그리지 않았다. 일우에 대해 다각도로 해석할 여지를 남기며 관객으로 하여금 시선의 균형을 잃지 않도록 유도했다.
“일우한테 중요한 장면이다. 어떻게 보면 한 인물을 따라가려면 좋은 서사만 보여줘야 하는데 폭력에 대한 양면성을 보여줘야 하다 보니 일우가 철거촌에 폭력을 행사하고 월우를 발로 차고 물건 뒤집어 던지고 했던 장면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 부분을 잘 살려야 된다고 고심을 했었고 일우를 착하게 보이고 싶진 않았다. 사실 좋은 놈도 나쁜 놈도 없는 거 아니냐 같이. 인물 서사에 깊어 보일 수 있는 지점을 건들고 싶었다.”
‘크리스마스 캐럴’은 마지막까지 관객들에 물음을 던졌다. 장르는 처절한 복수극이었지만, 속 시원하고 통쾌한 복수와는 거리가 멀다. 일우는 복수심 하나로 극을 이끌어갔지만 숨겨진 진실을 알고 난 후에는 다소 맥 빠진 모습이었다. 권선징악이라 하기에도 모호한데 과연 일우는 복수에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박진영은 실패라고 봤다.
“저는 두 가지 마음이었다. 영화에 ‘피해자는 항상 참아야 하냐’는 대사가 있다. 끝에 애들이 죽긴 하지만 마음은 불편한데 그렇게 안 했으면 억울할 것 같더라. 그런 걸 조합했을 때 복수는 하더라도 성공하지는 못한 것 같다. 애들이 죽었어도 본인 마음이 힘들다면 복수는 못했다고 생각해서 일우의 복수는 실패라고 봤다.”
박진영은 20대의 끝자락에서 월우와 일우를 만나 더 단단해지고 부드러워졌다.
“분명히 방점이다. 연기는 남의 평가도 있지만 저만의 느낌이 달라질 수도 있지 않나. 좀 더 유연해진 느낌이 든다. 몸도 고생을 많이 했다보니까. 여유도 생기고 앞으로의 작품에도 유연하게 임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것 같다. 한번 고생하면 다음이 편하다는 말처럼 그런 느낌이다. 몸도 마음도. 사실 성격이 긍정적인 스타일이라 남들이 볼 때 도전적인 것도 아무 생각 없이 결정한 면도 있지만 해보지 않은 것들에 마음을 열어준 방점이 됐다.”
올해 데뷔 10주년을 맞았다. 박진영은 지난 세월이 피부로 와 닿지 않는다지만 곳곳에서 ‘열일’의 흔적을 찾았다. 꽤나 빼곡하게 채워진 박진영의 필모그래피는 그가 쉼 없이 달려온 10년을 방증하는 지표가 됐다. 그래서 더 보여주고 싶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박진영이다.
“체감으로 느껴지진 않는다. 아직 철없고 20대 초에 데뷔했을 때 마음이랑 비슷한데 달라진 점이 있다면 현장이 예전보다 부담스럽지 않고 어색하지 않다는 것. ‘선배님’이라는 소리를 들을 때 내가 11, 12년차가 됐구나한다. 그래도 마음은 여전히 20대 초다.(웃음) 그래서 웬만한 캐릭터는 다 하고 싶다. 저만의 필모그래피를 채워나가는 게 재밌더라. 검색해보면 필모그래피에 작품이 하나씩 채워지는 걸 보면서 ‘열심히 했구나’를 느낀다. 그래서 뭐든 다 해보고 싶다.”
어느 때보다 강렬한 변신을 선보인 만큼 박진영은 팬들의 반응에 대해 기대감과 동시에 걱정을 드러냈다. 앞서 말했다시피 ‘크리스마스 캐럴’은 보기와 다르게 약간의 용기와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영화다. 그럼에도 스크린 속 자신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을 아가새(갓세븐 팬덤명)에게 박진영은 당부의 말을 전했다.
“겨울에 개봉해서 감사하다. 올해 초까지 찍었는데 나의 최선이라 생각하고 진짜 열심히 만들어서 뿌듯함이 컸다. 스크린에 나오니까 부끄럽긴 하지만 좋더라. 반지 끼지 말고(잘 안 가려지니까) 잘 가려서 보시고 팬들이 보기에는 냉정하게 불편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가 가진 것과 제가 해보려고 했던 시도들을 긍정적으로 봐주시면 감사하겠다.”
[셀럽미디어 김희서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주)엔케이컨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