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웅’ 정성화 “캐스팅 소식에 현타 와, 목숨 걸고 해야겠다 싶었죠” [인터뷰]
- 입력 2022. 12.22. 14:50:25
-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존경심, 진정성, 그리고 노력이 온전히 담겼다. 안중근 역에 정성화보다 잘 어울리는 배우가 있었을까. 완벽하게 표현해낸 것은 물론, 오리지널 넘버를 압도적인 가창력과 라이브로 극 몰입을 이끈 그다.
'영웅' 정성화 인터뷰
오리지널 뮤지컬 ‘영웅’을 영화화한 ‘영웅’은 1909년 10월,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뒤 일본 법정의 사형 판결을 받고 순국한 안중근 의사가 거사를 준비하던 때부터 죽음을 맞이하던 순간까지, 잊을 수 없는 마지막 1년을 그린 영화다.
2019년 12월 크랭크업한 이 영화는 당초 2020년 8월 개봉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개봉이 연기됐고, 2년의 기다림 끝에 2022년 12월 21일 드디어 관객들과 만나게 됐다.
“족적을 남기는 것에 의의를 두고 있어요. 오리지널 뮤지컬이 영화화 된다는 건 뮤지컬을 하는 사람들이 꿈꾸는 일이죠. 실제로 이룰 수 있다는 자체로 꿈을 이룬 것 같아요. 구름 위로 떠다니는 느낌이었죠. 촬영하는 내내.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관객들 마음에 쏙 들 수 있도록 하자였어요. 결과물을 앞에 두고 생각하면 열심히 했던 것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더라고요. 오리지널 뮤지컬 영화를 할 수 있어 기분 좋지만 한편으로 두렵고 떨리기도 해요.”
정성화는 문헌과 영상, 사진까지 자료 조사를 통해 캐릭터를 구축했다. 이뿐만 아니라 약 14kg의 체중 감량을 한 그는 눈빛과 표정에 이르기까지 안중근의 모습을 그려내기 위한 디테일한 노력을 기울였다.
“공연에서는 많은 관객분들이 홀을 채웠을 때 울려야하는 의무가 있었어요. 작게 연기해도 A석에 있는 관객에게까지 닿아야했죠. 영화에서는 그렇게 하면 어색하더라고요. 영화에서는 작고, 섬세한 연기를 하는 게 중요했어요. 특히 넘버 부분이 그랬죠. 공연 때는 크게 부르는 게 일상적이었는데 여기(영화)서는 속삭이면서 불러야 했어요. 어떤 부분은 포기하고, 감정을 내세워야 하기도 했죠. 제가 라이브로 소화했잖아요. 현장에서 마이크를 세 개 달았거든요. 공연 때는 오케스트라가 시작되고, 좋은 소리가 나오고, 제 목소리도 들으면서 관객들과 즐겼어요. 영화에서는 그러지 못했죠. 가까이서 카메라가 들어오니까 스피커로 나오는 MR이면 안 되더라고요. 인이어로 듣는 MR은 제 목소리, 생소리로 나왔어요. 에코 없이 나오니까 답답하기도 했죠. 노래도 잘 못하는 것 같고. 그래서 처음에 애를 먹었어요. 계속 하다 보니 조금씩 노하우가 생겼는데 믿고 가게 됐어요. 테이크가 가면 갈수록 익숙해지는 경향이 있었죠.”
특히 정성화는 ‘영웅’의 백미를 장식하는 오리지널 넘버들을 완벽하게 현장 라이브로 소화했다.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떨림, 고뇌 등 수많은 감정이 응집된 안중근 의사의 진심을 전하며 여운을 선사했다.
“‘그날을 기억하며’와 ‘단지동맹’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나요. 그런 부분은 영화여서 큰 스케일로 관객에게 보여드릴 수 있어 좋았죠. ‘십자가 앞에서’와 ‘장부가’ 노래를 부를 땐 모든 것들을 안중근의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었어요. 넘버가 정제되지 않거든요. 대신 우리가 제일 신경 쓴 건 ‘넘버를 어떻게 대사화할 것인가’였어요. 노래처럼 들리면 관객이 감정에서 빠져나오죠. 노래가 아니라, 대사처럼 들리고, 감정을 이어서 노래처럼 들리도록 하는 게 숙제였어요.”
뮤지컬 속 안중근 의사와 영화에서의 안중근 의사 캐릭터를 어떻게 접근하려 했을까. 차별을 둔 지점이 있는지도 궁금해졌다.
“뮤지컬에서는 안중근 의사가 강하게 보여요. 공연 자체는 캐릭터가 가진 에너지가 관객들에게 세게 와야 하거든요. 같은 걸 표현하더라도 크게 목소리를 내면서 관객들은 안중근 의사의 강한 모습을 봤을 거예요. 영화에서는 평소, 생활 연기가 가장 자연스러워야 했어요. 영화에서 보시면 덤덤하고, 절제된 연기를 하죠.”
14년 동안 안중근을 연기해온 정성화. 조국의 독립과 평화를 위해 희생을 아끼지 않았던 독립군 대장 안중근은 지금까지도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기억되고 존경받는 인물이다. 그런 인물을 연기한다는 건 정성화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안중근 의사는 제 인생에 가장 큰 롤모델이자 선생님 같은 분이세요. 매번 시즌을 할 때마다 만만한 적이 없었죠. 그만큼 어려운 작품이에요. ‘십자가 앞에서’ ‘누가 죄인인가’ ‘장부가’까지 안중근 혼자 끌어가야할 게 많았어요. 섬세하고, 에너지가 세고, 어려웠죠. 매번 도전적이었어요. 저도 나이를 먹어가니까 이뤄내기 위해 새롭게 발성을 고치는 작업도 했죠. 제가 계속 도전할 수 있어서 작품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안중근 의사라고 하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철학, 신앙, 사상가로서 모습을 보면 그분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분이 쓰신 책, 유목 속에서 제 삶에 적용되는 게 많았죠. 그런 걸 보고 배우면서 저에게 스승님처럼 다가왔어요.”
윤제균 감독은 제작 단계부터 안중근 역에 정성화를 생각했다고. 윤제균 감독이 “안중근 역에 정성화보다 잘 어울리는 배우는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남다른 신뢰를 전한 만큼 정성화는 인물에 완벽하게 녹아들었다.
“윤 감독님이 영화로 만들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런데 제가 안중근이 될 줄은 몰랐죠. 처음부터 안중근을 생각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리스크도 있고, 투자하시는 분들에게 설명할 기회가 필요했을 거예요. 그래서 신중하셨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저는 오만 생각이 들었죠. ‘하면 좋겠는데, 하면 안 되겠지? 조승우 등 많은 배우가 있는데 난 안되겠지? 옆에서 도와드리는 역할이라도 좋겠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감독님이 ‘너를 안중근으로 하기로 했다’라고. 막상 들으니 그때는 덤덤하더라고요. 나중에 가서 현타가 왔죠. ‘하기로 했는데 어떻게 하지?’라고. 이 작품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봤어요. 오리지널 뮤지컬 영화의 첫 발자국이고, 관객들이 실망하면 다시는 안 보실 것 같았죠. 그래서 ‘이건 목숨 걸고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감독님도 살 빼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때 86kg이었는데 72kg까지 빼기도 했어요.”
‘영웅’은 정성화를 비롯, 김고은, 나문희, 조재윤, 배정남, 이현우, 박진주까지 배우들의 열연이 더해져 울림을 더한다. 이들은 앙상블과 뜨거운 시너지를 만들어내 가슴을 울린다.
“설희 역에 누가 하냐니까 김고은 배우가 한다고 하더라고요. 듣자마자 ‘와 진짜요? 너무 감사합니다’라고 했어요. 그런데 생각하니 저랑 부딪히는 신이 없었어요. 하하. 하나 넣어달라고 부탁드리기도 했죠. 영화 외적으로 자주 만났어요. 작품하면서 친했던 배우들이 없었거든요. 화면에서 본 김고은이 너무 잘하더라고요. 잘할 줄 알았지만 대단했어요. 질투가 날 정도였죠. 뮤지컬 영화가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활성화된다면 좋은 역할을 할 것 같아요.”
그러면서 정성화는 뮤지컬 영화의 활성화를 간절히 바랐다.
“이 작품을 통해 뮤지컬 시장이 열렸으면 해요. 뮤지컬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잘된 적 없잖아요. 투자도 활발해졌으면 하죠. 모든 분들이 뮤지컬 영화라는 건 우리나라에서 불모지라고 나뒀는데 새롭게 땅을 파고, 좋은 건물을 지어 사람들이 드나들었으면 해요. 예전 영화인데 뮤지컬로 재탄생하는 일도 생겨서 새로운 장르가 탄생했으면 하죠.”
지난 21일 개봉된 ‘영웅’은 10만 5468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 영화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했다. 거대 자본이 투자된 할리우드 대작 ‘아바타: 물의 길’(감독 제임스 카메론)과 맞붙게 된 ‘영웅’은 CGV 골든 에그지수 93%, 네이버 관람객 평점 9.6점, 롯데시네마 9.5점, 메가박스 9.6점을 기록하며 한국 영화의 저력을 실감케 하고 있다.
“안중근 의사는 ‘자긍심’ 그 자체에요. 우리나라에 이러한 훌륭한 사람이 있었기에 정신이 이어진 것이죠. 대한민국 최초 오리지널 뮤지컬 ‘영웅’이 자긍심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윤제균 감독님이 입버릇처럼 하신 말씀이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만들자’라고 하셨어요. 이 영화를 선택하기 전 망설인 이유는 두 가지였어요. 첫 번째, 조연이었던 정성화가 어떻게 활약하나, 두 번째는 뮤지컬 영화가 생소한데 어떻게 이물감 없이 들어갈 수 있나였죠. 관객분들이 여러분들의 리뷰를 보고, 마음껏 극장을 찾아주셨으면 해요. ‘아바타2’의 존재는 부인할 수 없어요. 하지만 대한민국 오천만 국민의 취향은 굉장히 다양해요. 그렇기에 ‘영웅’은 충분히 ‘아바타2’와 대적해도 될 만한, 관객들이 극장을 찾을 작품이지 않을까 싶어요. ‘아바타2’도 천만 가고, 저희도 천만 가길 바라죠.”
[셀럽미디어 전예슬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CJ ENM 제공]